미 해군이 보유한 항모는 재래식이든 핵추진이든 관계없이, 그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8만∼10만t). 이러한 항모에는 1개 전투비행단 규모인 70∼90대의 전투기가 탑재된다. 따라서 운영비도 엄청나서, 웬만한 나라는 거저 준다고 해도 꾸려가지 못한다. 그래서 러시아와 영국·프랑스 등 중규모 강국은 3만t급 내외의 경(輕)항모를 만들었다. 이러한 항모는 활주로가 짧아 해리어기처럼 짧은 활주로에서 이착함하는 전투기를 싣는다. 이러한 항모를 CVH(단거리 및 수직이착륙기용 항모) 혹은 CVL(경항모)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CVH는 영국 해군이 보유한 인빈셔블함이다. 한국과 영국은 인구나 국토 면적에서 상당히 비슷하다. 현재는 영국의 국민총생산(GNP)이 한국보다 많지만, 2010년이면 한국은 지금 영국 정도의 국민총생산을 올릴 수 있다. 배를 설계해서 건조하는 데까지는 대개 10∼15년이 필요하다.
때문에 상당수의 전략가들은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수직이착륙기용 항모나 경항모 건조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이 보유하게 되는 첫 번째 항모는 ‘세종대왕함’으로 명명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해군은 “항모 도입계획은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세종대왕함’ 같은 이름은 학자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지 해군에서 명명한 이름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항모는 엄청난 공격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적으로부터는 첫 번째 타격 목표가 된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적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쏴서라도 항모 격침을 시도할 것이다(그러나 항모는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ICBM으로 맞히기는 어렵다. ICBM은 지상에 있는 고정 목표물 타격에 주로 사용된다). ICBM이 없다면 전투기를 가미카제(神風)식으로 돌진시켜 격침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항모는 대부분의 갑판을 활주로로 쓰기 때문에, 함포다운 함포나 미사일을 장착하지 못하고 있다. 공격력에 비해 방어력이 크게 약한 것은 항모가 가진 큰 약점이다.
따라서 항모 곁에는 가미카제식으로 덤벼드는 적의 공격을 제압하는 중무장한 군함이 있어야 한다. 작전에 들어간 항모는 초대형 태풍이 몰아쳐도 피항(避港)하지 않으므로, 호위 함정 역시 초대형 태풍을 견뎌야 한다. 초대형 태풍을 이겨내려면 함정은 최소 3000t급 이상이어야 한다. 항모를 호위하는 함정 중에 가장 큰 것이 순양함인데, 순양함은 대개 8000t급 이상이다. 순양함은 영어로 cruiser라, 영어 약호는 C로 표기한다. 순양함에는 구경 5인치(127㎜) 이상의 함포가 장착된다.
가미카제와 이지스함
순양함에는 ‘토마호크’처럼 지상에 있는 적의 전략시설을 공격하는 대지(對地) 공격용 크루즈 미사일, ‘하푼’ 따위의 적 함정를 공격하는 대함 미사일, 적 전투기와 미사일을 100㎞ 바깥에서 격추시키는 ‘SM-2’ 같은 중거리 대공 미사일이 장착된다. 이러한 미사일 중에 중거리 대공 미사일은 정밀 유도(guided)가 요구되는데, 이러한 유도 미사일을 탑재한 순양함은 CG로 표기한다. 순양함은 덩치가 큰 만큼 대부분 중거리 대공 미사일을 싣고 있어, CG로 표기된다. 디젤엔진이 아니라 원자력으로 추진되는 되는 순양함은 CGN이다.
중무장 순양함은 항모 호위뿐만 아니라, 단독이나 구축함대를 이끌고 위험 수역에 들어가 작전을 펼 수 있다. 항모 호위에서 단독 작전까지 모든 전투 임무를 거침없이 수행하므로 이 함정을 순양함(巡洋艦·cruiser)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순양함에도 약점은 있다. 전투기들이 순양함에서 쏘아대는 함포와 미사일을 요리조리 피하며 가미카제(神風)식으로 새카맣게 덤벼들고 동시에 미사일까지 떼로 날아오면 피할 방책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질(質)이 아니라 양(量)으로 덤벼들면 그중 하나는 순양함을 폭파시킬지도 모른다.
태평양전쟁 말기 실제로 미 해군은 새카맣게 덤벼드는 일본 해군의 가미카제 전투기 때문에 적잖은 함정을 잃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미 해군은 떼로 덤벼드는 전투기와 미사일을 막는 방법 연구에 들어갔다. 새카맣게 덤비는 전투기와 미사일을 요격하려면 고성능 레이더와 슈퍼 컴퓨터 그리고 함정 내의 각종 무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화력통제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이 시스템은 함정에 가장 근접한 적기나 미사일을 순식간에 골라내, 적절한 무기를 발사한다. 그리고 곧바로 그 다음 목표를 골라 준비된 무기를 발사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한 개의 표적을 놓고 함포와 미사일을 중복 발사하는 낭비가 없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왕 제우스는 그의 딸 아테네에게 어떠한 창과 화살도 뚫을 수 없는 ‘이지스(Aegis)’라는 이름의 방패를 주었다고 한다. 1973년 미 해군은 적기 100대가 공격해 와도 헷갈리지 않고 막아낼 수 있는 화력통제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이지스(Aegis) 체제’로 명명했다. 미 해군은 이 시스템을 노던 사운드함에 장착해 처음 시험운용함으로써 철벽 대공 체제가 개발됐음을 만방에 과시했다.
그러나 하늘만 막는 방패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항공 공격이 막히면 적은 가미카제 공격과 동시에 수상함·잠수함까지 동원해 하늘과 수상과 수중에서 동시다발로 항모를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 해군은 대공(對空)과 대함(對艦)과 대잠(對潛)작전을 동시에 실시할 수 있도록 이지스 체제를 개량했다. 이렇게 해서 새로 만들어진 이지스 체제를 순양함인 벙커힐(CG 52)·프린스턴(CG 59)·초신(CG 65)함 등에 탑재했다. 이지스 체제 순양함이 탄생한 것이다.
순양함 초신함과 6·25전쟁
미 해군이 개발한 첫 번째 이지스 순양함인 초신(Chosin)함은 6·25전쟁과 깊은 인연이 있다. 함경남도 장진군에는 장진(長津)강을 막아서 만든 장진호라는 인공호수가 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반전된 1950년 11월24일, 맥아더 원수는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을 끝내겠다며 ‘크리스마스 대공세’를 명령했다. 이에 따라 미 해병대 1사단이 장진호 쪽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이때 이미 중국의 인민지원군 9병단이 몰래 장진호 일대에 들어와 있었다. 9병단은 미 해병대 1사단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도록 허용한 후 크게 포위해 공격했다. 당시 장진호 일대는 영하 30℃를 오르내리는 혹한이었다.
뒤늦게 사지(死地)에 들어왔음을 안 미 해병대 1사단은 방향을 바꿔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결사적으로 포위 추적하는 중공군과 매서운 추위, 그리고 엄혹한 굶주림 속에서 상당수 대원을 잃고 간신히 흥남으로 빠져 나왔다. 이날 이후 장진호 전투는 미 해병대에서 가장 무서운 전투로 회자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에서는 장진호 전투에 대한 수기(手記)가 쏟아지고, 장진호 전투의 생존자 모임인 ‘초신 퓨(Chosin Few)’라는 단체까지 생겨났다.
이러한 장진(長津)을 일본어로 읽으면 ‘초신(ちょうしん)’이 된다. 6·25전쟁 때 한국에는 변변한 지도조차 없었다. 당시의 지도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만든 것뿐이었다. 미군은 일본인이 만든 지도를 구해, 일어를 영어로 바꿔 적은 후 사용했다. 그래서 미군은 장진을 초신으로 알았던 것이다. 미군에는 혹독했던 전쟁터를 함정 이름으로 붙이는 전통이 있다. 이런 이유로 미 해군은 1989년 진수한 순양함(CG 65)을 ‘초신’으로 명명했다.
초신을 비롯한 세 함정은 모두 신형인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급 순양함이다. 이후 신조함(新造艦)은 물론이고 기존의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까지도 이지스함으로 개조했다. 현재 미 해군은 이지스 체제의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을 20척 갖고 있다.
순양함을 가진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해군뿐이다. 그러나 러시아에는 이지스 순양함이 없다. 이지스 순양함은 오직 미 해군만 갖고 있다.
순양함보다 작은 군함이 구축함이다. 잠수함을 다루는 부분에서 다시 한 번 설명하겠지만, 항모에 가장 위험한 세력은 가미카제 전투기가 아니라 잠수함이다. 따라서 항모전단에는 전문적으로 대잠(對潛) 작전을 하는 함정이 따라붙는데, 이것이 바로 구축함이다. 잠수함을 발견해 쫓거나 공격하는 것이 주임무여서 영미 국가는 이 함정을 destroyer로 명명했다. 한국과 일본은 이를 ‘(잠수함을) 쫓는 함정’으로 이해해 구축(驅逐)함으로 번역하였다. 구축함은 3000∼8000t 사이의 함정인데, 영어 약호는 DD다. DD 중에서도 중거리 대공 미사일을 탑재한 것은 DDG로 표기한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대잠전 장비는 더욱 작아져 공간에 여유가 생기자, 구축함에는 대잠전 장비 외에 대함 및 대공 장비도 실리게 되었다. 구축함은 대잠전 전문 함정에서 벗어나 ‘작은 순양함’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중규모 강국이 가진 수직이착륙기용 항모나 경항모는 이러한 구축함만으로도 충분히 호위할 수 있다. 구축함은 경항모 호위뿐만 아니라 단독 혹은 구축함대를 이끌고 위험수역에 들어가 작전을 펴는 함정으로 용도가 확장되었다.
구축함의 용도가 확장되자 미 해군은 순양함에 탑재하던 이지스 체제를 줄여 구축함에 싣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독립 215주년인 1991년 7월4일, 이지스 체제를 탑재한 8300t급의 알레이 버크 구축함(DDG 51)을 취역시켰다. 현재 미 해군은 35척의 이지스 체제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을 갖고 있다. 20척의 이지스 체제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을 더하면 모두 55척의 이지스함을 갖고 있는 셈이다. 미 해군은 대부분의 구축함과 순양함을 이지스함으로 바꿔 모두 84척의 이지스함을 보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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