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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구

둘러대는 韓國語 핵심 찌르는 英語

언어구조와 사고방식

  • 권삼윤 < 문화비평가 > tumida@hanmail.net

둘러대는 韓國語 핵심 찌르는 英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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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연장이고 도구(tool)라면 그 특징을 제대로 알아야 그 주인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영어를 배우고 또 실생활에서 제대로 활용하려 한다면 영어의 특징, 그리고 영어를 말하는 사람들의 언어 습관을 아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영어를 쓰는 영미인들은 매우 논리적인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솔직한 대화’가 아니라 데이터에 기초한 ‘논리적 대화’일 것이다. “그들도 인간인데 가슴을 열고 이야기하다 보면 통하지 않을 게 있겠는가” 하고 협상에 임하는 경우 대개 실패로 끝나고 마는 것은 바로 이런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을 무시한 탓에 빚어진 결과다. 알맹이 없는 말로 그저 “내 처지를 이해해 달라”는 식의 하소연을 대하면 그들은 갖고 있던 애정마저 거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은 우리끼리는 통할지 몰라도 우리와 다른 삶의 방식 속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게는 요령부득으로 비칠 뿐이다.

팔머씨의 두 번째 지적 역시 앞의 것과 대동소이하다. 경어나 내용상 전혀 불필요한 “Please” 또는 “I am sorry to trouble you”와 같은 말을 지나치게 쓰는 것이다. 공손한 태도를 보이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그것도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말에는 경어와 존칭이 너무 많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나이와 전문분야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때로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공개토론에서는 그걸 제대로 소화하기 쉽지 않다. 때로는 경어와 존칭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토론을 망칠 수도 있다.

염화시중의 미소가 존중되던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경어와 존칭, 과묵이 가치일 수 있었지만 엄청난 정보를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해야 하는 지금과 같은 정보화 사회에선 그렇지 않다. 일일이 존칭을 쓰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해가면서 토론을 진행하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같으면 비행중에 갑자기 난기류를 만나 기체가 흔들리게 되면 “난기류로 기체가 몹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좌석으로 돌아가셔서 안전벨트를 매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을 들려줄 것이나, 그들은 좌석 앞 위쪽의 사인보드에 ‘FASTEN SEATBELT’라는 불을 밝히고는 곧 “자기 좌석으로 돌아가 시트벨트를 매주십시오”로 끝낸다. 상황설명이나 ‘죄송합니다만’ 같은 말은 가능한 한 절제한다. 그래서 매우 사무적이란 느낌을 준다.

전철역에서 “지금 전동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친절하고 공손하며 정중한 안내방송에 익숙한 우리에게 상대방의 질문에 ‘Yes’ 또는 ‘No’를 써서 한 마디로 답하는 것은 참으로 어색한 일이다. 그럴 때면 상대방에게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어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면 서론이 길어지고 때에 따라서는 ‘죄송합니다만’과 같은 불필요한 말을 끼워 넣기도 한다. 이게 우리 문화이고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영어는 다르다. 영어의 어순을 보아도 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영어에선 “Yes, I think so.” 또는 “Yes, I agree with you.” 또는 “No, I don’t think so.” 이런 식이다. 이처럼 그들은 Yes 또는 No를 먼저 말하고 화자(話者)의 행위나 판단은 그 다음에야 드러낸다. 또 부정조동사인 don’t가 본동사인 think보다 먼저 등장해 화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한다.

그때 만약 화자가 자신의 행위나 판단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Yes, I think so, because…” 또는 “No, I don’t think so. There are 3 reasons: First, … Second, …Third,…”

결론을 아끼는 한국인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설령 그것이 아무리 간단한 질문이라고 할지라도 결론을 한 마디로 나타내는 ‘Yes’ 또는 ‘No’의 대답은 빼먹어선 안 된다. 누군가 전화로 “May I speak to Mr. Kim”이라고 했을 때 마침 Mr. Kim이 다른 전화를 받고 있어 연결이 어려운 경우라면, “No, the line is busy.”라며 No를 분명히 붙여야 하는 것이다.

결론을 서둘러 말하고, 그것도 아주 간결하게 표현하는 게 영어의 언어 습관이라면 우리말은 결론을 무척 아낀다. 제일 마지막에 가서야 ‘어쩔 수 없이’ 내놓는 식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말은 끝까지 들어보아야 한다”는 말도 생겨났는데, 이런 언어습관에 익숙하지 않은 서구인들은 우리의 장황한 서론에 이내 지쳐버려 우리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놓치기 쉽다. 우리의 대화가 그들을 계속 긴장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그들은 대화를 지속하는 데 흥미를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의 도출이 느슨한 이러한 문장형식은 구어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일반 문어체 문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음 문장을 보자.

‘찬호가 던진 공에 우리 집 창문이 깨졌다.’ 이런 우리말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건인 창문이 깨진 사실은 마지막에야 나타나고, 창을 깨게 만든 공에 대한 설명이 먼저 등장한다. 매우 묘사적(descriptive)이다. 그러나 영어에선 어순이 바뀌면서 문장도 이렇게 매우 정의적(definitive)이 된다.

‘My window was broken by the ball which was thrown by Chanho.’

영어에선 한국어와는 달리 이렇게 중심어가 먼저 등장한다. 그리고 공에 대한 설명은 부차적인 사항으로 치부돼 맨 뒤로 돌려버린다. 미국의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이러한 언어구조를 ‘핵 선행(head-initial) 언어’라고 명명했다.

영어는 잘 알다시피 명사형(일반명사, 대명사, 동명사구, 부정사구, 명사절 등)의 주어가 먼저 나오고 곧이어 주어의 행위나 상태 등을 알려주는 동사(verb)가 등장한다. 이런 문장에서 화자의 최고 관심은 주어일 수밖에 없다. 목적어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관심이 된다. 예를 들어 ‘I love you’라는 문장을 보자.

여기서 화자(나)의 일차적인 관심은 사랑이란 행위다. 사랑의 대상이 되는 ‘당신’은 이차적 관심에 머문다. 다시 말해 나는 사랑이란 행위를 하고 있는데, ‘당신’은 그 대상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어순을 갖는 한국어에서는 화자의 일차적 관심은 ‘당신’이다. ‘사랑’이란 화자의 행위보다 그 행위의 대상인 ‘당신’에게 화자의 관심이 더 쏠려 있다. 그러니까 당신에 대한 내 감정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영어 문장과 우리말 문장이 동일한 상황을 서술하고 있는데도 그 뉘앙스는 이처럼 다르다. 우리는 이러한 한국어의 문장구조를 통해 우리의 사고방식이 어떠한 지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다. 우리의 사고세계에선 행위의 대상이 되는 타인 또는 사물이 늘 행위보다 앞선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주어와 목적어는 운명 공동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세상을 인연의 그물망(즉 인드라의 망)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이 은연중에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좋은 증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어는 목적어에 대한 서술을 서두에서부터 장황하게 늘어놓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전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장점을 발휘한다. 그런 다음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들려줌으로써 상대방이 화자의 견해에 신경 쓰지 않고 사물을 이해하거나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참으로 친절한 언어습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우리(동양인)의 언어습관 내지 사고방식을 미국 미시건 대학의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 교수 리처드 니스베트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계(표현 이전의 비가시적 관계를 포함해서)에 주목하여 ‘전관적(全觀的) 사고방식(Holistic Thought)’이라고 불렀다.

그는 주체와 객체를 분리해(John gives a ring to Mary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주체인 John과 객체인 Mary 사이에 to를 두어 거리를 두고 있다) 가능한 한 객관적 시각에서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서구인들의 언어습관 내지 사고방식을 ‘분석적 사고방식(Analytic Thought)’이라고 부르면서 서로 대비해 그들의 행동양식과 문화를 분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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