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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 성공학

토종기술로 세계를 밝힌다

우리조명(주) 윤철주 사장

  • 곽희자 < 자유기고가 >

토종기술로 세계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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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장은 장회장이 회사를 떠날 때 적어준 생활오체(生活五體·신의, 성실, 품위, 기술, 결과)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으며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장회장이 이렇게 일찍부터 직원들에게 경영교육을 시킨 것은 60세가 되면 회사를 떠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60세가 되던 1991년 장회장은 약속대로 당시 전무였던 김지중 사장에게 회사를 맡기고 은퇴했다. 1995년 GE와 합작한 ‘한국GE조명’의 합병설이 거론되면서 대주주로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복귀해, 3년간 경영에 관여했으나 1998년 윤철주 사장에게 사장직을 넘기고 완전히 떠났다. 장회장은 회사를 떠나면서 자신의 보유주식 9만6000주를 회사에 기증했다. 윤사장은 이 주식을 올 연말에 성과가 높은 사원들에게 무상증여할 계획이다.

장회장이 전구사업을 시작한 것은 전구는 인간에게 꼭 필요하고 제조하는 데 필요한 원자재(유리, 중석, 텅스텐)를 모두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처음에 30명의 종업원을 데리고 크리스마스 전구와 샹들리에에 사용되는 장식용 전구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했다. 기술이 전혀 없었던 초기, 일본에서 전구 제조기계와 제품을 들여와 견본품을 보고 만들었다.

처음엔 수출이 미미했다. 그러나 미국 전역에 크리스마스 붐이 일면서 장식용 전구는 해를 거듭할수록 수출량이 늘어났다. 크리스마스 전구 수출은 1972년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항상 좋은 날만 있지 않듯 1973년 갑자기 닥친 오일쇼크로 주문이 끊기고 이미 계약이 성사된 주문마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 정부가 에너지 절약운동으로 ‘크리스마스 전구 안 켜기 운동’을 벌였기 때문인데 이 일로 몇 년간의 호황은 순식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주문이 중단되고 일감이 크게 줄면서 종업원의 절반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남은 종업원들도 기름이 바닥 나 냉방에서 자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렇게 6개월간 생산이 중단되다시피 하면서 풍우실업은 부도위기에 놓였다. 이때 그 동안 쌓아놓은 장사장의 인간적인 비즈니스가 한몫 했다. 회사가 어려워진 걸 알고 몇몇 거래처가 다시 주문을 해주었던 것이다. 위기를 겪으면서 장사장은 탄탄한 수출루트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처음 목표로 했던 GE의 문을 두드렸다. 그가 GE를 선택한 건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이 세운 회사인데다 세계적인 전기기기 회사였기 때문이다.



GE측은 풍우실업의 제품을 마음에 들어했다. 2년에 걸쳐 수명과 밝기 등 여러 가지 품질 테스트를 한 끝에 1975년 GE는 풍우실업과 크리스마스 장식용 전구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이 있기 전까지 GE는 미국 자체공장에서 전량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풍우실업이 GE의 최초 수입업체가 된 것이다. 이후 1977년부터는 장식용 전구 수출도 재개됐다. 초창기 500만개였던 수출물량은 1988년에 이르면서 연간 1억개로 늘어났다. 당시 풍우실업은 생산 제품 전량을 GE에 수출했다. GE와의 수출이 확대되면서 1988년 두 회사는 50 대 50으로 자본을 출자해 합작회사 ‘한국GE조명’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형광램프와 할로겐램프를 생산했다. 장식용 램프는 따로 우리조명에서 생산했다.

이렇게 합작 운영한 지 8년째가 되던 1995년, GE는 ‘한국GE조명’을 인수하려 했다. 그러나 우리조명은 장식용 전구만으로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우리조명까지 함께 인수하기를 원했다. GE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2년여의 협상 끝에 처음 계획과 달리 우리조명이 ‘한국GE조명’을 인수하는 것으로 타결을 보았다. 1996년 우리조명은 ‘한국GE조명’을 흡수 통합했다.

GE가 철수하면서 우리조명은 1996년 내수시장과 함께 새 수출시장 개척에 나섰다. 이 업무를 윤사장이 맡았다. 윤씨는 고려대 경영학과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강제로 군에 입대하게 되면서 학적을 단국대 행정학과로 옮겨야 했다. 졸업 후 1977년 서통그룹에 입사, 계열사인 동해 생명보험회사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발령을 받은 윤씨는 이곳에서 2년의 직장 생활을 한 후 1979년 풍우실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장세원 사장은 효율적인 기업운영을 위해선 전산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컴퓨터를 먼저 구입해 놓고 직원을 뽑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입사한 윤씨는 평사원에서 시작해 8년 만에 기획부장 자리에 올랐다. 서른다섯이 되면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자신과 약속했던 그는 기획부장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8년 만에 지킨 약속

“회사를 떠나겠다고 하자, 사장님께서 이미 제 마음이 떠난 걸 아시고 열심히 해보라면서 ‘회사가 너를 필요로 할 때 한 번은 와줄 수 있겠어?’ 하고 물어요. 그래서 그럴 일이 안 생길 것 같은데, 만약에 그럴 일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이 약속은 8년 만에 지켜졌다. 1995년 GE가 ‘한국GE조명’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을 때 장회장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 정리하고 보석상을 하고 있던 윤씨에게 “도와달라”고 전화했다. 그 동안 영화사업과 무역업 등을 해오며 힘든 과정을 겪다 모두 정리하고 보석상을 하며 겨우 심리적 안정을 찾은 윤씨로선 반갑지 않은 청이었다.

그러나 과거에 한 약속도 있어 일언지하에 거절도 못하고 있는데 아내가 “아직은 나이도 있고 좀더 일해보는 게 좋겠다”며 장회장의 청을 받아들이길 원했다. 그는 1995년 이사로 우리조명에 복귀했다. 복귀한 6개월 후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1998년 3월 사장으로 취임했다.

우리조명으로 돌아온 윤사장은 다양한 수출라인이 필요함을 깨닫고 직접 필립스 오스람 등을 찾아다녔다. 윤사장은 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는 신의고, 둘째는 품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을 솔직하게 공개함으로써 상대의 신뢰를 얻는다.

“상대방에게 나의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공개합니다. 그것은 상대가 경쟁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알려주고 판단은 상대방 스스로 하게 합니다. 나는 전구를 파는 사람이지만 절대 전구를 팔지 않습니다. 먼저 상대방과 인간적인 교류를 통해 상대방이 나를 신뢰하게 합니다. 신뢰가 쌓이면 전구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팔 수 있습니다.”

그는 바이어를 만나도 대등한 관계에서 당당하게 거래한다. 제품생산을 의뢰받는 쪽이라고 해 절대 굽실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처지도 충분히 고려한 합리적인 안을 내놓는다. 이렇게 솔직하고 당당하면서 합리적인 방법을 내놓기 때문에 바이어들은 그 앞에서 꼼짝못한다. 물론 여기엔 무엇보다 품질 좋은 제품이 밑받침돼야 한다.

이런 자신감 있는 영업으로 윤사장은 1997년 필립스와 오스람으로부터 수출 계약서에 도장을 받아냈다. 현재 우리조명의 수출비중은 GE(40%) 필립스(40%) SATCO(15%) 오스람과 기타(5%) 순. 이렇게 수출판로가 개척되기 전 우리조명은 내수판매를 먼저 시작했다. 1996년 자체브랜드 ‘장수램프’를 만들어 대리점에 납품했다.

대리점업자들은 촌스럽게 장수램프가 뭐냐며 좀더 세련된 이름으로 바꾸라고 했다. 그러나 윤사장은 장수램프는 1976년 정부의 지시에 따라 2년간 국내판매를 할 때 사용했던 상표인데다, 모두들 외국어 상표를 사용하는 이때 반대로 순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돋보인다고 판단,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조명이 장수램프로 내수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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