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동의 실질적인 주체인 기업경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선 국유기업의 통합과 재편에 따라 거대 기업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는데, 조선 철강 등의 제조업과 항공 미디어 등 외자 진입을 규제하는 기간산업에서 주로 출현하고 있다.
가령 중국 정부는 한국, 일본을 추월하는 조선 대국을 목표로 조선업계를 재편, 대기업인 상하이의 후둥(扈東)조선집단과 중견기업인 중화조선소를 합병해 중국 전체 선박 건조량의 20%를 차지하는 후둥중화조선집단을 발족시켰다. 철강업계에서는 상하이의 바오산(寶山), 베이징의 서우두(首都), 후베이성의 우한(武漢) 등 선두 3사가 원료 공동조달 등 협력체제를 구축했다( 참조).
이같이 국영기업의 통합과 재편을 급속히 추진하는 것은 WTO 가입이 임박하면서 경영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또한 주식의 해외 상장을 통해 설비능력 증강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고, 중국 진출을 목표로 하는 해외 유력기업과 제휴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중국의 일부 기업은 이미 기술력과 브랜드에서 국제적 평가를 받고 있을 만큼 성장했다. 중국 최대의 PC 메이커 렌샹그룹(聯想集團·Legend Group)은 대표적 정보통신 기업으로서 2000년 6월 ‘비즈니스위크’의 세계 100대 첨단 정보통신기술기업 평가에서 8위를 차지, 아시아 지역에서는 대만 최대의 반도체회사인 TSMC(臺灣積體電路製造, 5위)와 함께 10대 기업 안에 진입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자와 IT산업을 중심으로 미국이나 유럽 기업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경영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 이들에게선 인사제도, 보상체계, 경영관행 등에 있어 중국의 전통적 국유기업의 경직된 행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렌샹그룹은 정형화한 승진·급여제도를 운영하지 않고 상사, 부하, 동료직원들이 360° 평가한 결과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海爾)그룹은 사원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공개 평가해 가격을 책정하는데, 이에 따라 급여가 10배까지 격차를 보이기도 한다. 이 회사는 연구·개발 부문에서도 개발된 상품의 판매실적에 따라 보상에 차등을 둔다. 유선전화기 부문에서 11년째 1위를 지키고 있는 TLC그룹은 자회사 주식의 40%를 관리직 사원들에게 나눠주고, 업적이 목표를 초과하면 배당금에 해당하는 돈을 보너스로 지급하는 유사 스톡옵션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CEO들도 고학력의 젊은 경영자나 해외유학파가 증가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 통신기기 메이커인 화웨이(華爲)의 수석부사장 후용(胡勇)은 1996년에 대학을 졸업한 최연소 부사장(만 27세)이다. 이 회사 부사장들의 평균 연령은 34세이고 1만5000명의 직원 가운데 60% 이상이 석·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기술과 투자를 시장과 바꾼다”
개발도상국의 초기 발전단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의 산업과 경제가 성장하는 데는 개발독재에 가까운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정부가 중요한 기능을 해왔다. 중국 정부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일관되게 국가발전전략과 산업정책을 추진해왔다. 때때로 속도조절을 하기도 했고 비판받을 일도 했지만 개혁·개방선언후 20여 년 동안 중국 정부는 한번도 경제발전이라는 중심 화두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이는 어느 개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상하이 푸둥(浦東)지구 등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는 첨단산업 발전 거점지역에는 우수한 공무원을 배치하고 예산을 우선 배정하는 등 집중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으며, 관료주의는 인센티브로 타파하고 있다. 상하이시 외자유치 담당공무원의 급여는 다른 지역 공무원의 2배가 넘고 각 시나 성(省) 정부의 초상국(招商局·투자유치공사) 공무원도 외자유치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다.
첨단지역의 외자계 기업 유치는 매우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지는데, 푸둥지구에서 투자 허가를 얻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2주에 불과하다.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법규에 구애받지 않고 조기에 처리하기도 한다.
중국 정부는 장기적인 경제발전 방향을 설정해 놓고 적극적이면서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 일관된 자세로 ‘주식회사 중국’을 이끌어간다. 푸둥지구 건설은 1990년에 시작됐으나 최근 1∼2년에 급성장한 것으로, 초기에는 외자 유치에 고전했지만 지금은 이곳에 투자하려는 외국 기업들이 쇄도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전략은 “기술과 투자를 시장과 바꾼다”는 것으로 거대한 시장을 무기로 선진 기술을 도입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다.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가 경제발전의 메리트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중국 정부는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단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국가 전체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도록 점진적인 개방과 개혁을 시도했다. 또한 천안문사태 같은 정치적 고비에도 경제발전을 우선한다는 정책 수행의 일관성을 유지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노사분규를 통제하거나 거액의 횡령, 밀수 같은 경제사범은 극형으로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다.
최근의 첨단산업 발전과 관련해서는 발전의 중심축이 되는 지역들을 살펴볼 만하다. 지역적으로 보면 개방 이후 연해지역이 가장 먼저 발달했으며, 그중에서도 상하이, 베이징, 선전(深)이 각각 중부, 북부, 남부지역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데 현재 상하이 푸둥지구, 베이징 중관춘(中關村), 선전이 중국 첨단산업의 3개 지역 축으로서 각자 특징을 갖고 발전하고 있다( 참조).
70개국이 푸둥에 투자
상하이 푸둥지구는 종합적인 하이테크 단지. 푸둥을 포함한 상하이 지역은 장강(양쯔강) 유역 발전의 거점으로서 반도체, IT 등 첨단산업과 금융서비스의 중심지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상하이는 경제·산업적인 면에서 중국 최대의 도시로서 중국 건국 이후 최대의 무역항, 공업 및 과학기술 기지, 금융 및 상업 중심지, 최대의 재정수입원 기능을 해왔다.
최근 상하이의 지역경제는 중국에서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지역에는 제조업은 물론 하이테크 산업, 서비스 산업 등에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데,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장강 델타’ 지역은 향후 세계적인 하이테크 메카로 발전할 전망이다.
상하이 황푸(黃浦)강 동쪽에 위치한 푸둥지구는 남부의 경제특구들보다 10년이나 늦은 1990년에 국가급 개발구로 지정됐지만 지금은 중국경제발전의 최선두 주자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개발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180배에 이르는 523㎢. 지리적 이점, 양질의 인프라, 풍부한 인적 자원 등 뛰어난 입지·사회조건을 지닌 이 지역은 중앙정부와 시 당국의 치밀하고 장기적인 투자유치계획 아래 조성됐다.
지난 11년간 전세계 70여 국가의 6600여 개 기업이 361억달러를 투자했으며 한국도 70여 개 기업이 6억달러를 투자했다. 중국 국내 기업 6000여 개를 포함, 총 1만20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했는데, 세계 500대 기업 중 108개 기업이 푸둥에 진출해 있다.
이 지역의 인구는 상하이 전체의 12%인 163만명 정도지만, 푸둥이 상하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GDP가 20%(921억위안), 외자유치 규모는 45%(29억달러), 수출은 38%(96억달러)다(2000년 기준).
금융무역구, 수출가공구, 하이테크구, 보세구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진차오(金橋) 수출가공구에는 하이테크 산업이 밀집해 있고 루자추이(陸家嘴) 금융무역구는 금융, 무역, 3차산업의 중심지로서 국제금융센터로 육성될 예정이다. 와이가오차오(外高橋) 보세구는 보세창고, 상품교역, 수출가공 등의 종합적 기능을 갖춘 국제적 자유무역지대로 개발되고 있으며, 장장(長江) 가오신(高新·하이테크) 기술개발구는 의약, 전자, 정보, 바이오 등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로서 푸둥 소프트웨어단지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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