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호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 된다

  • 입력2010-12-21 14:1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신묘년(辛卯年), 토끼띠의 해다. 어느 점술가에 따르면 신묘년은 토끼가 이빨을 드러내는 운세라고 한다. 신금(辛金)과 묘목(卯木)이라는 금기(金氣)와 목기(木氣)가 상전(相戰)하는 형세라는 얘기다. 나라의 운세를 점술에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으나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한반도에 드리워진 전쟁의 그림자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협박에 못이긴 굴욕적 평화는 결국 더 큰 화를 불러온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김정일-김정은 부자(父子)의 연평도 포격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나쁜 행동’이다. ‘나쁜 행동’에 보상이 따를 수는 없다. 벌주고 응징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대통령이 우리 군에게 북한이 다시 도발할 경우 “몇 배의 화력으로 응징할 것”을 지시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하자면 교전규칙을 기존 ‘비례성의 원칙’에서 ‘충분성의 원칙’으로 수정할 수밖에 없다. 북이 포를 쏘면 포로 대응하는 식의 소극적 대응으로는 북의 도발을 응징하기 어렵다. 그러니 해군과 공군을 동원해 도발의 원점(原點)을 ‘충분히’ 타격해 북이 다시 도발할 수 없도록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

    이 또한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맞다고 해서 현실에도 맞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닌텐도 게임’이 아니다. 따라서 모든 대응의 전제는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 된다’가 되어야 한다. 전쟁을 막기 위해 북의 도발을 응징하자는 것과 전면전을 무릅쓰고서라도 도발을 응징하자는 것은 천양지차(天壤之差)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 점에서 나는 연평도 사태 직후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에 지시했다고 해서 논란이 됐던 발언(청와대 측은 논란이 일자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이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가 잘못이라는 비난에 동의할 수 없다. 그 시점에 대통령의 그런 발언을 공개하는 것이 적절했느냐는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만, 확전(擴戰)에 대한 대통령의 우려까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대통령의 첫째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단호한 대응’이다. 연평도 사태를 복기해보면 단호한 대응에 실패한 것은 분명하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국회에서 “지난 8월 감청을 통해 (북한의) 서해 5도 공격계획을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해안포 부대 사격준비를 하라’는 당시 감청내용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고 밝혔다. 군은 연평도 포격 도발 이틀 전인 11월21일 북한군이 122㎜ 방사포 1개 대대를 황해도 강령군의 개머리 포진지에 이동배치하고 사격준비를 진행한 움직임을 포착하고도 사전대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연평도에 배치한 자주포 6문 중 2문은 피격돼 고장이 났고, 1문은 훈련 중 고장이 난 상태여서 고작 3문만 작동했다고 한다. 레이더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북한군은 170발을 쏘았는데 우리 군은 80발밖에 쏘지 못했고, 그중에서도 45발만 탄착점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35발은 바다에 떨어졌다는 소리다. 풍향 등의 영향으로 탄착점 오차가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한 발도 명중하지 못했다면 궁색한 변명일 수밖에 없다.

    결국 ‘비례성의 원칙’에 비추어서도 북의 공격에 단호히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하물며 연평도는 2009년 11월에 3차 교전이 있었고, 8개월 전인 3월에는 천안함이 폭침된 서해 지역의 섬이 아닌가. 바로 그 서해에서 북의 도발에 속수무책이었다면 이 정부와 군이 그동안 외쳐왔던 결연한 안보의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의 햇볕정책으로 군의 정신자세가 해이해졌다는 것은 우스운 소리다. 지금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3년이 다 돼가는 시점이다. 이 정부는 햇볕정책이 북한의 ‘나쁜 행동’에 끌려 다니며 ‘굴욕적 평화’ 유지에 급급했다고 보는 입장이다.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비밀문서에 따르면 미국 측은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가 끝날 때까지 남북관계를 냉각된 채로 내버려둘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냉각된 채로 내버려둠’이 북한 정권의 압박에 양보하지 않고 기다리는 전략으로 상대의 변화(굴복)를 유도하는 것이었다면, 그에 반발할 가능성이 높은 북의 도발에 철저히 대비했어야 한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에 이은 연평도 사태는 이 정부와 군이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입증했다.

    김관진 신임 국방장관은 “북한이 도발하면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라며, “군에 만연해 있는 행정주의, 관료적 풍토, 매너리즘을 타파하고 군의 작전기강과 전투의지를 고양해 야전성을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자위권에 대해 “적의 도발을 응징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교전규칙의 필요성 비례성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북한군이 연평도 포격 같은 도발을 다시 할 경우 북쪽 지역을 항공기로 폭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측도 한국군의 자위권 행사에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측이 한국군의 ‘예방적 차원의 자위권 행사’까지 인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미국의 관심사가 북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북의 도발을 억제하는 강력한 의지 또한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 된다’는 전제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적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단호한 응징’을 계속 외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북이 다시 도발한다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부질없는 소리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지만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 된다’는 전제는 북의 김정일-김정은 부자에게 먼저 적용돼야 할 것이다. 60년 전 김일성은 남침을 감행해 6·25전쟁을 일으켰다. 민족상잔(相殘)의 전쟁 범죄를 대를 이어 저지른다면 그 어떤 명분이나 이유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다수 대한민국 국민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믿는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고 본다. 그러나 북의 도발에는 분노한다. 한 손으로는 도움을 청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도발을 꾀하는 북한정권의 이중성에 치를 떤다. 그런 분노가 상승하면 원치 않는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 전화(戰禍)로 잿더미가 된 나라를 이만큼까지 올려놓는 데 두 세대가 피와 땀을 흘려야 했다. 어느덧 전쟁 1세대는 떠나가고 있지만 전쟁의 상처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은 트라우마(trauma·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남아 있다. 전쟁을 쉽게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정일-김정은 부자도 전면전이 그들 체제의 종말을 가져오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전쟁이 일어날 경우 북에 비해 잃을 것이 너무 많은 남이 전면전으로 나서지는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여 국지적인 도발로 남남(南南) 갈등을 유발하고 동북아 위기를 고조해 중국의 지원을 받고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속셈일 것이다. 의도적인 도발로 부자간 권력세습기의 대내적 안정을 꾀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분석이야 어떻든 대책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으로 한반도 평화관리를 하려 했다. 경제협력과 민간교류를 통해 남북 갈등을 완화하고 평화공존을 모색했다. 그러나 북은 끝내 핵무기로 체제를 보위하려 했고, 남은 심각한 내부 분열에 직면했다. 보수세력은 진보정권의 ‘퍼주기’가 북의 핵과 미사일로 돌아왔다고 비난하고, 진보세력은 그것은 ‘평화 비용’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퍼주기’란 원색적인 용어는 분명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진보정권의 대북지원이 북의 핵개발에 이용됐을 개연성을 부정할 수 없다면 햇볕정책이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평화 비용’에는 분명 긍정적 측면이 있다. 전쟁 위기에 따른 안보비용 증가와 대내외적인 경제손실, 국민의 불안감 등에 비추어보면 ‘평화 비용’이 오히려 실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북한 정권의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대북정책의 딜레마다.

    이명박 정부는 햇볕정책을 폐기했다. 북을 압박해 못된 버릇을 고치겠다고 했다. 남북 관계는 악화됐다. 보수정권의 정책 전환에 따른 예고된 과정이었다. 이 대통령은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했다. 북의 비위를 맞춰가며 끌려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그것은 ‘굴욕적인 평화’라고 했다. 그러나 남한 국민 다수가 북에 대해 굴욕을 느꼈는지는 의문이다. 나는 우리 국민이 북의 이중적 행태에 대해 배신을 느끼고 괘씸해하기는 했지만 굴욕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바탕에는 우리가 저들보다는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절대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정권하에서 ‘설마, 전쟁 걱정하겠나’ 싶은 믿음이 있다. 그것을 두고 국민의 안보의식이 약해졌다는 소리를 해선 안 된다. 걸핏하면 전 정권 탓을 하는 것도 보기에 안 좋다. 안보 무능을 보인 것은 오히려 이 정부와 군이 아니던가.

    이 대통령은 연평도 사태 이후 부쩍 통일 얘기를 입에 올렸다. “머지않아 통일이 가까운 것을 느낀다” “북한 주민들이 이제는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이는 중대한 변화로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하루빨리 평화적 통일을 해 2300만 북한 주민도 최소한의 기본권과 행복권을 갖고 살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 된다
    全津雨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언뜻 북한의 내부붕괴가 임박한 듯한 느낌을 주는 발언들이다. 하지만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하고 또 다른 도발을 공언하고 있는 판에 국민에게는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뚜렷한 근거도 없이 북한이 곧 망할 것이라고 해봐야 연평도 사태로 놀라고 불안해진 국민이 안심할 수 없다. 지금은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줄 때다. 평화를 지켜야 할 때다. 토끼가 이빨을 드러내는 신년 운세의 불안감을 없애야 할 때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