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호

정권-국회-지자체 야합 비효율 국책사업 열전

선심, 야심, 흑심 앞에 춤추는 세금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0-12-21 15: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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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례행사인 ‘난장판 예산 국회’가 또 재연됐다. 졸속 심의로 넣어야 할 건 빠지고, 빼도 될 건 끼워넣는 작태도 그대로였다. 정치인과 지자체의 로비에 힘입어 어거지로 책정된 예산은 십중팔구 세금 낭비로 귀결된다. 역대 정권에서 예산이 헤프게 쓰였거나, 절감 가능한 예산을 축냈거나, 급하지 않은 일을 무리하게 추진한 사례를 살펴봤다.
    정권-국회-지자체 야합 비효율 국책사업 열전

    12월8일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야당 의원들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

    12월8일 국회 본회의장이 난장판으로 변한 가운데 새해 예산안이 처리된 뒤 정치권에 강한 후폭풍이 불어닥쳤다. 한나라당의 예산안 기습처리에 대한 야당의 반발은 그렇다 쳐도 여권 안에서조차 자중지란이 불거진 것. 불교계의 템플스테이와 소득 하위 70% 계층에 대한 보육비, 재일민단 지원 예산,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건설 예산 등 여당이 추진하던 주요 예산이 졸속 심의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축소된 데 따른 책임공방이었다.

    12월13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예산안 편성 경위를 듣고 정부를 질책하기 위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여의도 당사로 불러들였다. 40여 분 동안 두 사람은 면담장 밖에까지 들릴 만큼 고성을 주고받았다. 안 대표는 “우리는 바보냐. 당신들만 똑똑하냐. 애들 보육비 좀 주려고 당 대표가 약속했는데, 하나도 반영이 안 됐다”고 따졌다. 윤 장관은 “당도 예산기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맞받아치며 여당의 ‘선심성 공약’에 불만을 터뜨렸다.

    이런 언쟁은 예산 편성을 둘러싼 정부-여당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내세우지만 여당은 민심을 확보할 수 있는 예산 편성에 주안점을 둔다.

    새해 예산안이 입안되고 확정되는 과정은 이러하다. 매년 초 각 지자체와 일선기관에서 다음해에 필요한 예산을 해당부처에 신청 → 부처별로 선별, 취합 후 기획재정부로 이관 → 기재부 총괄 조정 → 국무회의 심의·의결 및 대통령 승인 → 국회에 정부안 제출 → 국회 상임위별 예비심사 → 예결위 본심사 →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세부심사→ 예결위 처리 → 본회의 처리로 확정.

    각 지자체와 지역구 의원들의 예산 따내기 경쟁은 이 모든 단계에 걸쳐 이뤄진다. 1년 내내 ‘예산전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예산국회가 열리면 무차별적인 로비가 벌어진다. 예산 세부 항목의 증액, 삭감을 결정하는 계수조정소위는 지역별로 위원을 할당해 구성되는데, 그들은 해당 시·도의 국비지원예산을 챙기는 책무를 떠안는다.



    이번에도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에는 항목 자체가 없다가 국회 예산심사 때 신규 편성하거나 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처리 과정에서 증액분으로 추가된 예산이 3500억원에 달했다. 신규 예산 중엔 여·야가 상임위 예비심사 과정에서 합의한 내용도 있지만, 일부 예산은 상임위 및 예결위 회의에서 증액요구 사항으로 전혀 언급된 바가 없어 예결위원에게 쪽지를 전달하며 편성한 끼워넣기 지역구 예산으로 추정됐다.

    각 지역에서는 예산에 밝은 의원들을 소위에 포진시켜 다른 지역과 경쟁을 벌이게 한다. 소위에 들어간 의원이 해당 시·도 전체의 예산을 챙기기보다는 자신의 지역구 예산이나 계파 보스가 관심을 갖는 예산을 따는 데만 주력해 동료 의원들의 질책을 받기도 한다. 예결위에 들어가거나 경제관련 상임위원을 맡으면 당내 실세들의 지역구 예산을 대신 챙겨주기도 한다. 이번 예산국회에서도 예산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나라당 모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를 찾아가 “지역구(대구 달성)에 필요한 예산이 있으면 말씀하시라”고 했지만 “괜찮아요”라는 답변을 듣고 머쓱해서 나왔다고 한다.

    지자체와 정치권이 예산 확보 로비를 벌이는 것을 두고 ‘제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이 많지만, 지역민을 대표해 국회에 들어간 의원에겐 통상적 활동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번 예산안 파동으로 사퇴한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지역구 의원이 지역사업에 예산을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방적으로 매도할 일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지자체의 경우에도 민선 단체장은 과거의 임명직 단체장보다 주민들의 이익을 더 적극적으로 대변해야 하므로 국비예산 확보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모 광역단체는 이번 예산국회 내내 국회 주변에 캠프를 차려놓고 부지사와 기획관리실장, 예산 담당관들이 번갈아 상주하면서 정부와 해당 지역 출신 의원들을 상대로 꼭 반영돼야 할 예산 내역을 설명하고 귀찮을 정도로 매달렸다. 덕분에 정부안보다 수천억원이 많은 예산을 추가로 배정받아 다른 지자체의 부러움을 샀다.

    “청와대가 하라면 해야지…”

    정권-국회-지자체 야합 비효율 국책사업 열전

    공사 중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세종시. 사진은 정부청사 경제 부처가 주로 들어설 공사 현장이다.

    안상수 대표와 윤증현 장관의 언쟁에서 보듯, 정부는 정치인들의 부탁을 받으면 재정건전성이나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을 방패막이로 삼는다. 그러나 정권 차원에선 재정건전성이나 형평성이 무시되기 일쑤다.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 출신지역이나 집권세력의 텃밭에 막대한 개발사업비가 투입된다. 대통령이 관심을 갖거나 여권 실세들이 요청하는 사업들이 정부안에 담겨 국회 심사과정을 무사통과하는 일이 다반사다.

    여기에다 예산안 편성과 심의 때마다 국회의원과 지자체들의 로비가 벌어지면서 당초 정부가 마련한 예산이 누더기로 변하기도 한다. 로비전은 국회 예산안 심사의 마지막 단계인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서 정점에 달한다. 이번에 국회가 난장판으로 변한 와중에도 여야 실세들은 지역구 예산을 챙기느라 계수조정소위 회의장에 ‘쪽지’를 넣기에 바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책정된 예산의 대부분은 투입된 자금규모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는 ‘낭비성’이다.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는 2008년 2월, ‘국민세금 1원도 중요하다-예산낭비 사례 분석을 통한 예산절감지침’을 펴냈다. 최근 5년간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된 8004건의 예산낭비 지적 사례를 모아 유형별 10대 예산낭비 유형을 예시했다. 10대 유형은 ▲사업타당성 검토 잘못 ▲중복 또는 과잉 투자 ▲계약 및 공사관리 잘못 ▲예산의 목적 외 사용 및 불요불급한 집행 ▲국고보조금 및 출연금 관리 잘못 ▲기금 관리 잘못 ▲선심성·과시성 행사 ▲불합리한 제도 ▲국·공유재산 등의 소극적 관리로 인한 수입증대 기회 일실(逸失) ▲공무원의 도덕적 해이 및 부정 등으로 정리됐다.

    인수위는 이들 10대 유형별 주요 관련 사례 200여 건을 함께 제시했는데, 이 사례만으로도 예산낭비 등의 액수가 9조4081억원에 달했다. 낭비 또는 비효율 2조9516억원, 예산편성 목적 외 사용 1029억원, 횡령 44억원, 향후 예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대효과 6조3492억원을 합친 금액이다. 200여 개 사례의 대다수는 청와대의 막무가내식 압력이나 정치권, 지자체의 로비에 의해 예산이 편성된 사업이다.

    소규모 SOC사업은 차치하더라도 대형 국책사업은 국고 낭비가 심각한 수준이다. 국책사업은 정권에 따라서 집권세력의 입맛대로 예산이 편성됐다. 대통령의 고향이나 정치적 텃밭에 대형 사업을 유치하는 것이 마치 대선 승리의 ‘전리품’처럼 인식되는 까닭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기 10년 사이에 확정된 대형 국책사업만 봐도 그렇다. 이 기간에 ▲인천 국제공항과 경제자유구역 ▲아산만 평택항과 첨단산업도시 ▲태안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새만금 최첨단 물류·관광도시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와 광산업 ▲무안 국제공항과 기업도시 ▲영암·해남의 J프로젝트 ▲광양의 광양항과 경제자유구역 ▲여수 엑스포(2012년), 부산APEC(2005년) 등이 확정됐다. 호남 지역에 많은 국책사업이 몰려 있다.

    경제부처의 예산 담당 고위직으로 근무했던 한 여당 의원은 “과거에는 집권층이 지시한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관계부처장관회의 등을 열어 심의를 하고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지만 모두 형식적이었다. 청와대가 하라면 하는 분위기였다”고 털어놨다.

    예비타당성조사 예외 많아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다. 1999년 도입돼 2006년 국가재정법 제정을 계기로 제도의 기본운영 틀이 법제화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 때문이다. 대규모 개발사업에 앞서 시행되는 개략적인 타당성조사다. 이를 통해 해당 사업의 경제성, 투자 우선순위, 적정 투자 시기, 재원 조달 방법 등의 타당성을 검증함으로써 대형 사업에 신중하게 착수하고 재정투자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타당성조사가 주로 기술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반면, 예타는 경제적 타당성을 주된 조사 대상으로 삼는다. 예타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사업에 대해 실시한다. 이에 따라 대형 투자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 → 타당성조사 → 설계 → 보상 → 착공의 순서로 진행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타제 시행 이후 정권 차원에서 추진하는 불요불급한 사업이 상당수 걸러지고 있다.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타 제도가 시행된다고 해서 대형 사업 예산 편성 과정에서 정권의 입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예타는 신규사업 중 건설공사가 포함된 사업, 정보화·국가연구개발 사업, 사회복지·보건·교육·노동·문화·관광·환경보호·농림해양수산·산업·중소기업 분야의 사업에 대해 실시한다. 그러나 공공청사, 교정시설, 초·중·등 교육시설신·증축사업과 문화재복원사업, 법령에 따라 설치하거나 추진해야 하는 사업 등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중에는 국가 기반시설 구축에 꼭 필요한 사업도 있지만,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권의 의지에 따라 추진됨으로써 국가예산을 낭비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런 사업들은 ▲정권이 교체되면서 정책변화에 따라 사업 내용이 변경되는 경우 ▲정치 실세들이 지역구에 선심을 쓰는 경우 ▲정권 소외지역을 달래기 위한 경우 ▲사업예측을 잘못한 경우 등이다.

    정권 교체와 동시에 정책도 바뀌면서 예산을 낭비한 최근의 대표적인 사업은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조성이다.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할지, 수정할지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막대한 홍보비와 인건비가 낭비됐다.

    정치 실세들이 출신지역에 선심을 쓰면서 막대한 예산을 허비한 사례로는 무분별한 지방공항 건설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이용객이 거의 없어 이미 공항의 기능을 상실한 양양·울진·무안·김제·예천공항 등 5곳의 ‘유령공항’을 건설하는 데 8597억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14개 지방공항 중 흑자를 내는 곳은 김포·김해·제주공항 3곳뿐이다. 이들 공항은 대부분 해당 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힘을 갖고 있을 때 계획이 수립됐다.

    영남권에서는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을 대표적인 ‘권력형 사업’이라고 주장한다. 이 사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뒤 2004년 3월 대통령 소속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를 발족시켜 국책사업으로 추진됐다. 2023년까지 5조3000억원(국고 2조8000억원, 지방비 8000억원, 민자 1조7000억원) 이상의 재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한나라당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병)은 “참여정부에서 서남권 종합발전 구상 계획(24조6000억원)과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을 계속사업 예산으로 말뚝을 박는 바람에 이명박 정부에서도 대구·경북의 5대 국책사업비가 광주·전남의 6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집권세력이 ‘홀대론’을 제기하는 지역을 무마하기 위해 벌인 대표적 사업은 대구지역섬유산업 육성 방안인 ‘밀라노 프로젝트’다. 김대중 정부 초기인 1998년 3월 대구 섬유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 지원 방침이 나온 후 1999년 4월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대구 섬유산업을 이탈리아의 밀라노처럼 21세기 첨단·고부가산업으로 탈바꿈시켜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구지역 경제발전에 별 기여를 못하고 사실상 실패했다.

    정부와 대구시가 8778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대형 국책사업이지만, 업체에 빌려준 자금의 회수 여부를 파악하지 못할 만큼 무분별한 지원이 이뤄졌다. 이 바람에 사업을 주관한 단체들이 사업비를 유용하거나 횡령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대구 출신의 여당 의원은 “이런저런 명목으로 실제 투입된 돈은 2조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 계획이 성공했으면 대구는 벌써 ‘제2의 밀라노’가 돼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업 예측을 잘못해 예산을 낭비한 경우도 많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1조8680억원을 투입, 전북 부안군 대정리에서 군산시 비응도에 이르는 세계 최장(33㎞) 방조제를 건설, 서울 여의도의 140배 규모인 4만100㏊(토지조성 2만8300㏊, 담수호 1만1800㏊)의 국토를 조성하는 계획이다. 1970년대 서남해안 간척 장기 구상에 뿌리를 둔 새만금 간척사업은 전두환 정권 당시 농림부 장관이던 황인성씨가 1987년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출발했다. 그해 3월부터 11월까지 7개월 동안의 짧은 기간에 사업 타당성조사를 한 뒤 1991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다.

    신설 고속도로 교통량 41.3%

    정권-국회-지자체 야합 비효율 국책사업 열전

    새만금방조제 신시광장. 새만금 간척사업은 용도가 수시로 바뀌면서 많은 예산이 낭비됐다.

    초기에는 우리나라가 쌀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국토확장 및 농경지 확보를 목적으로 추진됐으나 이후 쌀이 남아돌면서 계획이 변경됐다. 이에 따라 1994년부터는 전북도가 복합산업단지 조성이라는 개발계획으로 바꿨고, 1999년에는 환경부가 복합산업단지 조성계획을 백지화하고 간척지구를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며 농수산 중심지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용도가 수시로 변경되면서 지속적으로 추가비용이 낭비됐다는 지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과도한 인구증가를 전제로 도시기본계획을 작성하는 바람에 필요 이상의 택지·시가화 용지 수요발생 등 비효율적인 자원운용을 초래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올해 국정감사 때 발간한 정책자료에 따르면, 16개 시·도의 도시기본계획 및 종합계획상 2020년 장래 목표인구는 약 5400만명인데 이는 통계청의 인구예측치와 500만명이나 차이가 난다. 광역시 및 시·군 목표인구를 합하면 6000만명이 넘는다. 목표 인구를 높게 설정한 지자체들은 대표적인 지역개발사업인 택지개발사업을 많이 추진하고, 시가화 용지 면적도 높게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과다한 기반시설투자로 예산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전남 광양항 개발도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가 발간한 보고서에서 예산 낭비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물동량에 비해 너무 많은 예산이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 개발에 투입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해양수산부가 물량과 항만 하역능력을 잘못 예측해 광양항에는 물량에 비해 예산이 너무 많이 투입되는 반면, 부산항에는 예산이 부족하다고 적시했으나 이는 전남 동부지역의 큰 반발을 샀다. 부산항으로 집중돼 왜곡된 물류체계를 개선하고 지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킨다는 광양항 개발의 정책적 목표와 과정을 무시한 평가라는 것.

    전국 곳곳의 ‘텅 빈 고속도로’도 수요예측을 잘못한 결과다. 2007년 이후 개통된 전국 8개 고속도로의 실제 교통량은 41.3%다. 이 기간 중 도로 건설에 8조510억원이 소요됐다. 2007년 개통한 익산~장수 고속도로의 2009년 하루 이용차량대수는 8714대로 당초 예측치의 17%에 불과했다. 장성~담양 고속도로 이용률은 19%다. 적자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주기로 한 4개 민자도로 중 서울외곽순환도로를 제외한 인천공항고속도로와 천안~논산, 대구~부산 등 3개 고속도로의 누적손실 보전금은 2001년 이후 9072억원에 달한다.

    “전리품 챙기기” “독식”

    이한구 수원대 교수(경제학)는 언론매체 기고문에서 이 같은 도로 수요 예측 잘못에 따른 혈세 낭비 사례를 적시한 뒤 “국토해양부가 계획 중인 신도시 건설 연계 고속도로만 전국에서 20곳으로 총연장 329.9㎞에 예산은 19조3554억원”이라며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13조원짜리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들이 불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9년 공사를 시작한 경인아라뱃길(경인운하) 사업은 경제성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인천 서구 오류동(서해)~서울 강서구 개화동(한강)을 잇는 길이 18㎞, 너비 80m, 수심 6.3m의 뱃길을 만드는 2조2500억원 규모의 이 사업은 2011년 9월 완공 예정이다. 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가 이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최근 경인아라뱃길 재검증위원회는 “경제성이 부풀려지고 환경피해에 대한 조사도 충실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각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짓고 있는 영화·드라마 세트장 건립 사업은 가뜩이나 재정상태가 열악한 지자체의 예산을 허투루 쓰는 대표적인 사업이라는 분석이 많다. 방송사 등에서 지자체와 연계해 수십억원을 투자, 경쟁적으로 영화와 드라마 세트장을 남발한 결과, 촬영 직후 관광지 등으로 선순환되지 않고 폐쇄 직전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자금을 지원해 건립한 전국 드라마 오픈세트장은 34개에 달하며, 지자체의 제작비 지원액이 10억원 이상인 세트장만 11개가 넘는다. 가장 규모가 큰 오픈세트인 ‘서동요’ 세트장은 부여와 익산 세트장을 합쳐 72억원, ‘신돈’ 세트장은 약 50억원이 투자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에는 예산낭비신고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각 지자체와 사회단체들도 예산낭비를 방지하기 위한 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질구레한 내용이다. 지금까지 예시한 10대 사례처럼 국가나 지방재정에 큰 악영향을 미치는 사업들에 대한 예산 편성의 타당성과 집행과정에 대한 감독권은 국회에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리품 챙기기 경쟁을 벌이고, 정권을 놓친 쪽에서는 이를 ‘독식’이라고 비판하는 일만 되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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