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호

‘캐스팅보트’ 5인방 손익계산서

독자노선 정몽준·친한나라당 강창희·입각설 김용환·허주와 동행 한승수·親與 행보 강숙자

  • 육성철 sixman@donga.com

    입력2005-04-26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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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29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어느 식당에서는 정치권의 눈길을 끌 만한 모임이 있었다. 이른바 ‘3자 회동’이 그것이다. 참석자는 한국신당 김용환(金龍煥) 대표, 무소속 강창희(姜昌熙), 정몽준(鄭夢準) 의원 등 3명이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박빙의 여야 세력구도를 깨트릴 가능성도 있는 의미심장한 자리였다.

    이날 회동을 제안한 사람은 김용환 대표였다. 김대표는 이미 1월 초부터 강의원과 정의원은 물론, 민국당 의원까지 접촉하며 ‘무소속 연대’의 가능성을 타진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김대표는 민국당 한승수(韓昇洙) 의원까지 포함, ‘4자 회동’을 가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의원은 다른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불참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회동의 성격에 조금씩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먼저 김용환 대표측은 “여야의 틈바구니에서 의미있는 역을 하기 위한 첫걸음 아니겠느냐”는 반응이다. 현재의 여야 구도에서 민국당 2석을 포함, 5명의 의원이 한목소리를 낸다면 캐스팅보트로서 소수파의 위상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구상이다.

    정몽준 의원측도 ‘3인 회동’에 적잖은 희망을 나타냈다. 한 측근의 말.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 김용환, 강창희, 정몽준 의원은 나름대로 현재의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다.”



    반면 강창희 의원은 이날 회동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강의원은 “정치적 의미를 두기보다는 그냥 식사하는 자리였다. 앞으로 의견이 일치해서 어느 당을 택할 수도 있고 우리끼리 당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주변 상황을 종합해볼 때 이날 회동을 ‘무소속 연대’ 또는 ‘마이너리그 연대’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과장된 시각이다. 실제로 이 자리에서 합의된 사항은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민국당 의원까지 포함해 돌아가면서 월례회동을 주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동을 주재한 사람이 논의된 내용을 언론에 공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2월15일엔 한승수 의원까지 참여한 ‘4자회동’이 열렸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1차회동 다음날 모 일간지에 보도된 김용환 대표의 말이다. 김대표는 “앞으로 정치적 결사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나가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날 김대표는 민국당 김윤환(金潤煥) 대표와도 만났다. 하지만 김윤환 대표는 회동의 성격에 대해 “우리는 무소속이 아니다. 우리는 당조직이 있고, 지역구와 전국구 의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무소속 의원들과 정책 협의는 하겠지만, 연대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민국당과 ‘3인 회동’을 분명히 구분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김윤환 대표는 한승수, 강숙자(姜淑子) 의원에게도 이런 의견을 전달했다. 김대표는 “앞으로 민국당 의원들이 당과 상의없이 개인 행동을 한다면, 차라리 당을 해체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허주의 노림수

    김윤환 대표의 의도대로 만일 민국당 소속인 한승수 강숙자 의원이 당론을 충실히 따른다면, ‘무소속 연대’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공동여당은 민국당의 2석만 끌어들여도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월15일 오후 12시15분. 여의도 63빌딩 55층 ‘가버너스’에 정몽준 의원이 나타났다. 폭설이 내려 다른 의원들은 약속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4명이 모두 모인 시간은 12시 40분. 이때부터 1시간 남짓 ‘2차 회동’이 열렸다. 정몽준 의원은 울산행 기차를 타기 위해 1시45분쯤 먼저 나왔고, 20여분 뒤 김용환, 강창희, 한승수 의원이 일어섰다.

    정의원은 모임의 성격에 대해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모두들 총재급 정치인이라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정의원은 “앞으로도 계속 협의할 거냐”는 질문에 “모임은 계속 가질 것이다. 서로 비슷한 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는데, ‘협의’라는 말을 굳이 쓸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강창회 의원은 “정치적인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고 말했으며. 모임에 처음 참석한 한승수 의원도 “Political meeting(정치적 만남)이 아니고, Social meeting(사교적 만남)이었다”고 회동 분위기를 전했다.

    정국을 움직이는 ‘1표의 힘’

    16대 국회가 개원했을 때 캐스팅보트는 4명이었다. 여야가 팽팽히 맞설 때마다 이들 4인방의 의원회관 사무실 전화는 불이 났다. 민주당은 정균환(鄭均桓) 전 총무가 직접 부탁하는 형식을 취했고, 한나라당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 총동원됐다. 지난해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 열었을 때는 민주당이 참석을, 한나라당이 불참을 종용한 일도 있었다. 또한 국회법 날치기 파동으로 자택에 감금됐던 김종호 국회 부의장이 사라졌을 때는 여야 모두 4인방을 찾는 소동이 벌어졌다.

    16대 국회에서 캐스팅보트의 중요성이 부각된 첫 사건은 2000년 6월5일 벌어진 국회의장 선출 투표였다. 민주당과 자민련은 이만섭(李萬燮) 의원을 밀었고, 한나라당은 서청원(徐淸源) 의원을 내세웠다. 여야 모두 승리를 위해서는 캐스팅보트 4인방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140 대 132. ‘4인방’은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었고, 한나라당에서는 1표의 이탈표가 나왔다.

    이와 같은 추세는 6월30일 치러진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표결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표결에는 정몽준 의원이 국제축구연맹(FIFA) 회의 때문에 출석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신병으로 병원에 입원중인 김찬우(金燦于) 의원까지 참석시키며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찬성 139, 반대 130, 기권 2, 무효 1표였다. 이번에도 캐스팅보트는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캐스팅보트 4인방이 민주당 또는 자민련과 보조를 맞춘 사례는 더 있다. 2000년 7월31일. 여당이 약사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해 소집한 본회의에 한나라당은 불참했다. 의결 정족수인 과반수 확보에 비상이 걸리자, 민주당 정균환 총무는 급히 4인방에게 전화를 돌렸다. 이들은 표결을 코앞에 두고 본회의장에 들어와 법안을 통과시켰다.

    캐스팅보트가 자민련에 힘을 실어준 경우도 있었다. 자민련은 2000년 12월 정부와 민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62세인 현행 교육정년을 63세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의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의원입법 형식으로 국회에 제출했는데, 당소속 의원 17명(이한동 국무총리 포함)과 민국당 강숙자 한승수 의원, 한국신당 김용환 의원의 동의를 얻어 20명을 채웠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가에서 유행한 말이 ‘DJP+4’다. 이것은 민국당(2석), 한국신당(1석), 무소속(1석)이 모두 ‘DJP공조’에 협력하고 있다는 뜻으로, 한나라당측에서 보자면 ‘반한나라 연합전선’이 구축된 것이다.

    ‘DJP+4’ 구도에 변화 조짐이 생긴 것은 지난해 말이다. 자민련의 교섭단체 등록을 위해 민주당 의원 3명이 당적을 옮기자 강창희 의원이 이에 반발해 서명을 거부했다. 그러자 자민련은 강의원을 제명했고, 민주당은 장재식(張在植) 의원을 추가로 자민련에 입당시켰다. 결국 민주당은 4석을 잃었고, 자민련은 3석을 불린 셈이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캐스팅보트가 4석에서 5석으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4석과 5석은 미세한 차이가 있다. 캐스팅보트가 4석이었을 때 민주당과 자민련은 상대적으로 선택의 폭이 넓었다. 4명 가운데 1석만 끌어들이면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민국당이든 무소속이든 관계없이 1석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캐스팅보트가 5석으로 늘어나면서 계산이 다소 복잡해졌다. 공동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캐스팅보트가 2석으로 늘어나면서 민국당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진 것이다. 공동여당이 민국당의 도움을 받으면 문제가 간단히 풀리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나머지 3석 가운데 2석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캐스팅보트 의원들의 회동은 이러한 역학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부풀려졌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5인으로 늘어난 캐스팅보트의 성격이 처음으로 드러날 수도 있었던 안건은 한나라당 강삼재 부총재에 대한 체포동의안이었다. 하지만 이 안건은 여야의 지루한 공방이 계속되면서 표결처리가 무산됐다. 정가에서는 민주당이 정치권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내부 반란표의 가능성, 캐스팅보트의 불분명한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표결을 강행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캐스팅보트 5인방 가운데 정가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정몽준 의원이다. 그는 5인방 중에서는 유일하게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정의원은 16대 총선 직후 민주당 입당을 심각하게 고려한 일이 있다. 그는 민주당 권노갑(權魯甲) 최고위원과 비밀 회동까지 가졌으나, 최종적으로 입당을 포기했다.

    16대 총선이 끝난 직후였다. 당시 정의원의 한 측근은 “만일 입당한다면 민주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후 정의원은 “민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 입당 등 모든 가능성을 놓고 숙고중”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정의원이 공개적으로 민주당 입당 포기를 선언한 것은 그로부터 수개월 뒤다. 정의원은 2000년 11월30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월드컵을 앞두고 특정 정파에 가담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발언이 나오기 20여 일 전 그는 ‘월간 경실련’과 한 인터뷰에서 “2002년에 대통령선거와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가 함께 있다. 모두 출마할지, 하나만 출마할지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결국 민주당 입당 포기와 무관하게 대권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얘기다.

    내년 5월 말쯤 열릴 예정인 차기 FIFA 회장 선거와 관련, 최근 일부 외신에서는 정의원을 유력한 후보로 거론하고 있다. 제프 블래터 현 회장의 대항마로 국제무대에서 친화력이 높는 정의원이 부각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의원이 정말 FIFA 회장에 나설 생각이라면, 지금부터 선거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대통령선거 출마는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와 관련, 정의원의 한 측근은 “FIFA 회장은 사실상 포기한 것 같다. 지금은 대선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의원의 대권도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정의원은 무소속으로 월드컵 준비에 전력하면서 국민에게 최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뒤 결정적인 국면에 출마를 선언하리라는 것이다.

    관심의 초점은 그가 어느 정당을 택할 것인가다. 민주당 입당을 포기했다고는 하지만,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만일 민주당 전당대회가 지방선거와 월드컵 이후로 늦춰진다면, 입당 가능성은 높아진다. 또한 민주당 내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영남후보론’이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서 힘을 받을 경우, 정의원의 몸값은 치솟을 수도 있다. 정의원은 바로 그러한 상황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의원은 16대 국회가 개원한 이래 줄곧 민주당 편에 서왔다. 본회의 표결은 물론 상임위(통일외교통상위)에서도 민주당의 숨겨진 ‘우군’이었다. 통외통위는 모두 23명으로 구성돼 있다. 한나라당 11명, 민주당 9명, 자민련 1명, 민국당 1명, 그리고 정몽준 의원이다.

    지난해 10월21일 통외통위는 임동원(林東源) 국정원장 등 4인의 증인채택 여부를 두고 표결을 실시했다. 이날 민국당 한승수 의원은 외유중이어서 불참했기 때문에 정의원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정의원은 민주당 의원과 함께 4명 모두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황장엽(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경우는 자민련 김종호(金宗鎬) 총재 권한대행이 찬성하는 바람에 가결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그렇다고 정의원이 일방적으로 민주당에 기운 것도 아니다. 정의원은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내는 한나라당 의원이 많다.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차기 대선에서 영남을 확실히 끌어안기 위해 정의원을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이와 관련, 정가에서는 ‘정의원이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또한 정의원 주변에서는 “내년 대선을 ‘징검다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2002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를 밀고, 2007년 대권에 도전한다는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정의원이 기존 여야 정당과는 별개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의원은 최근 기자에게 “주변에서 현재의 양당제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새로운 정당구조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신당 창당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정의원은 “새로운 정당이 나오면 새로운 형태의 패러다임이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우리도 유럽의 녹색당과 같은 ‘색깔 있는’ 정당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정당구조와 관련, 정의원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주장이 이른바 ‘3.5 정당론’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현재의 정당구조는 2.5 정당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1이고, 자민련이 0.5라는 설명. 2.5 정당구조에서는 두 개의 정당만으로도 정책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 뜻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1개의 정당이 더 생기면 더욱 폭넓게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여기에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을 통한 대권 도전이 여의치 않을 경우, 신당을 창당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결론적으로 정의원은 민주당 또는 한나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듯하다. 정의원은 대선 직전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양한 방식으로 대권의 문을 두드릴 것으로 보인다.

    강창희 의원은 ‘의원 꿔주기’ 파동 속에서 무소속이 되었다. 자민련이 민주당 의원 3명을 넘겨받아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려 했을 때 강의원은 “정도가 아니다”며 등록 날인을 거부했다. 강의원은 1월4일 기자회견까지 열어 “이런 식으로 교섭단체를 만드는 것은 날치기보다 못한 방법이며, 자민련은 민주당의 ‘인질 괴뢰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극언을 함으로써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강창희 의원은 어디로

    강의원은 자민련 시절 눈치 보지 않는 ‘소신파’로 불렸다. 그는 지난해 11월 국회의 검찰 수뇌부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JP의 불참 방침을 거스르고 ‘6인 반란파’를 이끌었다. 또한 9월엔 자민련이 한빛은행 의혹사건 특검제 실시와 의약분업 원점 회귀를 당론으로 정하는 데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 이 사건 직후 강의원은 이한동 총리에게 뼈아픈 ‘직격탄’을 날렸다. “총리직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당 총재직을 내놓으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강의원의 소신 앞에서는 당직도 무의미했다. 99년 8월 내각제가 철회되자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책임을 진다”며 자민련 원내총무직을 사퇴했다. 16대 총선 직후인 지난해 5월엔 JP가 이한동 총재의 국무총리 지명에 묵시적으로 동의한 데 반발해 사무총장직을 내던졌고, 이후 다시 사무총장에 기용됐으나 민주당과의 공조 복원에 항의하며 사의를 표했다.

    강의원의 이런 성격은 그가 육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遇) 두 전직 대통령 등이 조직한 ‘하나회’ 출신이다. 민정당 창당 과정에 전 전대통령의 지시로 입당했으며 11대와 12대 때는 전국구로 배지를 달았고, 13대 때는 JP가 주도한 ‘녹색바람’에 밀려 낙선했다가 14대 때 무소속으로 당선, 14대 국회가 끝날 무렵 자민련에 입당했다.

    강의원은 캐스팅보트 5인방 가운데 한나라당 의원들과 친화성이 가장 높다. 그는 “당분간 정당을 택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잔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현실적으로 한나라당 쪽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는 말로 향후 행보를 짐작케 했다. 강의원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자민련은 나를 제명한 정당이고, 민주당은 의원을 꿔줬으니 그 원인을 제공한 셈입니다. 나는 민주당보다 한나라당 사람들을 더 많이 알아요. 내가 민정당 사람이잖아요.”

    강의원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도 남다른 교분을 쌓았다. 강의원은 11대 국회의원 시절 1년간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재직한 적이 있다. 이때 총리실 사람들과 교분을 쌓았는데, 김영삼 정부 때 이회창 총재가 국무총리로 기용되면서 강의원과 선이 닿았다. 강의원은 이총재가 정계 입문을 놓고 고민하던 시절 가깝게 지내며 덕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총리로 계실 때는 ‘정치를 시작할 생각이 있으면 장애인이나 환경문제 같은 비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라’고 조언했어요.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불편하더라도 운전을 배우고, 야구장에도 가보시라고 했지요. 제가 낙선했을 때 그렇게 했거든요.”

    이회창 총재도 강의원이 자민련에서 제명된 직후 간접적으로 그의 행동을 추켜세우는 발언을 했다. 이총재는 1월17일 강의원의 지역구인 대전에서 열린 ‘김대중 신(新)독재 및 장기집권 음모분쇄 규탄대회’에 참석해 민주당의 ‘의원 꿔주기’를 비판한 뒤 “자민련은 지금이라도 4명의 의원을 되돌려 보내야 충청인의 긍지를 살려 명맥이라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의원이 가까운 시일 내 한나라당에 입당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강의원 자신도 “대전에 가보니까 ‘JP한테 그러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고, ‘잘했다’는 얘기도 있더라구요”라는 말로 충청권의 복잡한 기류를 설명했다. 그런 상황에 자칫 한나라당에 기울어질 경우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는 것이다. 강의원은 “내가 ‘정도’를 강조한만큼 앞으로 ‘정도’가 아닌 길을 택한다면, 더 큰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강의원의 행동이 차기 충청권 맹주를 겨냥한 ‘계산된 작품’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강의원은 그런 시각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내가 살아온 상식과 양식에 따라 판단한 행동이다. 주변에서 오히려 분위기가 꺼지지 않게 이벤트를 만들라고 하는데,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똑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내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강의원은 캐스팅보트 5인방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사안별로 의견이 맞는다면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정당처럼 패키지로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지금은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스트 JP’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한국신당 김용환 대표다. 그는 97년 대선을 앞두고 내각제를 전제로 한 ‘DJP연합’을 이끌어낸 주인공이었으며,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엔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IMF 사태를 수습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그는 JP가 내각제 약속을 파기하자 16대 총선을 앞두고 자민련을 탈당, 한국신당을 창당했다.

    침묵하는 김용환

    자민련이 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던 무렵, 정가에서는 김용환 의원의 자민련 복귀설이 심심치 않게 떠돌았다. 하지만 김의원은 침묵을 지켰다. 그저 “JP와의 인간적 관계가 회복됐다”는 말만 흘릴 뿐이었다.

    김용환 의원은 최근까지도 현실 정치와 관련된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국회 보좌진은 물론, 한국신당 당직자들도 김의원의 의중을 짐작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경제문제와 관련해서는 의견을 활발히 개진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에는 각종 매체를 통해 ‘DJ노믹스’의 재검토를 강력히 촉구했다. 김의원 측근의 말을 들어보자.

    “김의원은 아직도 공동정부를 탄생시켰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우리 경제가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김의원이 국무총리로 입각할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민주당의 실세가 JP를 설득하기 위해 물밑에서 움직인다는 소문도 있다. 하지만 김의원은 한 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권 재창출을 위해 현 정부가 총리를 제안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나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여전히 속마음은 드러내지 않은 셈이다.

    김용환 의원과 강창희 의원의 연대 가능성도 정가에서는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 강의원은 “내각제 문제에 있어서 김의원과 나는 견해가 비슷했다. 자민련을 떠난 순서가 달랐을 뿐이다. 김의원은 직접적인 당사자여서 먼저 행동으로 옮겼다고 생각한다”며 동질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김의원측의 견해는 다르다. 강의원은 여론몰이를 하다가 당에서 제명됐지만, 김의원은 스스로 책임지고 당을 떠났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두 사람이 연대해서 한나라당에 합세하는 경우를 가장 경계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차기 대선에서 충청권이 안개구도로 전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의원이 내각제를 반대하는 한나라당측과 손잡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와 관련, 충청지역 모 일간지 기자의 의견은 주목할 만하다.

    “김의원은 올해로 일흔살이 된다. 다음에 지역구에서 출마할 가능성도 높지 않고, 바깥에서 정치세력을 규합하는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보다는 국가경제를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하고 싶은 의지가 엿보인다.”

    한승수 의원은 16대 총선에서 민국당 후보로 당선됐다. 그는 88년 민정당 영입케이스로 공천을 받아 13대 국회에 진출했으나, 14대 때는 국민당 돌풍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16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고교 후배인 유종수(柳鍾洙) 후보에게 밀렸지만, 접전 끝에 600여 표 차로 당선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한의원은 16대 국회에서 줄곧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한의원은 “국가이익에 합당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한동 총리 인준안의 경우 ‘정국의 불확실성을 야기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찬성했고, 검찰수뇌부 탄핵안의 경우 ‘공권력의 공백이 우려된다’는 것이 반대 사유였다. 이 대목에서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아 오면서 형성된 그의 시국관을 확인할 수 있다.

    한의원은 캐스팅보트가 4명에서 5명으로 늘어난 점에 주목했다. 한의원은 “이제부터 민국당이 실질적인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국가이익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겠지만, 야당이라도 사안별로 대응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한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앞으로 정계개편이 있을 경우, 민국당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것은 민국당 김윤환 대표의 정국구상과도 맞물리는 부분이다.

    한의원은 미국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한의원은 한국에서 손에 꼽을 만한 ‘부시인맥’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에도 부시가(家)의 실력자에게 당선 축하메시지를 보냈고, 아버지 부시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기도 했다. 이런 관계로 한의원이 입각할 것이라는 소문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강숙자 의원도 ‘국익’을 우선 고려한다는 점에서는 한의원과 비슷하다. 하지만 현실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한의원보다 ‘친여’ 성향이 훨씬 강하다. 강의원은 “정치권에 들어와서 보니까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일을 하면서 싸워야 하는데, 당론을 위한 투쟁에 치우쳐 있다”고 말했다.

    강의원은 98년 지자체 선거 때 한나라당을 탈당해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한 김기재 후보를 지지한 일이 있으며, 16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전국구설이 나돌기도 했다. 강의원이 말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들어보면, 그의 정치적 성향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위정자가 열심히 해서 이만큼이라도 사는 것이다. 위정자가 더 잘하게 도와주고 널리 알려야 한다. 무턱대고 비판만 하는 것은 국가적 손해다.”

    민국당 내에는 이러한 강의원의 ‘친여’ 행보를 꼬집는 목소리도 있다. 그가 당론과 무관하게 움직인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강의원은 이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김윤환 대표와 같은 생각이다. 중요한 시기엔 항상 김대표를 만나 상의하고 있다.”

    강의원은 상당한 시간을 부산지역에서 보낸다. 각종 모임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주된 일과다. 하지만 그는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마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강의원은 민국당의 진로와 관련, “당론에 치우치지 않고 국익을 생각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큰일을 하게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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