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 회장을 아버지로 둔 그의 납득할 수 없는 기세등등함과 기행에 가까운 탈법적 폭력이라니! 파렴치한 작태는 공분을 자아낸다. 그가 저지른 기이하고 야릇한 활극은 아비의 훈육 없이 자라난 ‘후레자식’의 전형적인 행위다. 이 막돼먹음과 비천함이라니! 유영철도 그렇고, 김길태도 그렇고, 조두순도 그렇다. 정신분석학에서 사이코패스로 분류하는 이런 사회적 돌연변이들이 잇달아 나타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부성(父性)이 멸종되었음을 알리는 불길한 징후는 아닐까? 아버지들은 종종 아이를 안아 하늘로 올렸다가 되받는 행동을 한다. 아버지와 아이에게 동시적으로 상징성을 띤 인류학적인 몸짓이다.
“하늘을 향해 자식을 들어올리는 아버지의 행동은 단순한 신체적인 행동이지만 자식에게는 일종의 축복이고 통과의례였다. 동시에 아버지에게 이 행동은 남성성에서 부성으로 도약하는 계기였으며, 신체적인 기증(정자의 기증) 이상의 의미를 지닌 정신적인 도약이었다. 부성이라는 의미가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어떤 새로운 탄생과도 같은 것이라면, 자식을 들어올리는 행위와 성인식은 아버지로서의 의미를 자식에게 펼쳐놓는 것과 같은 정신적인 고양이라고 할 수 있다.”(루이지 조야, ‘아버지란 무엇인가’ 중에서)
즉 아버지가 아이를 하늘로 들어올렸다가 되받는 행위는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축복이고 통과의례다. 그것은 동시에 남성성이 부성으로 도약하게 하는 계기적 행위다. 부성은 남성성에 견주어볼 때 인격적으로 더 고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성의 특성인 제멋대로 함, 막돼먹음, 야만성 등을 순치시켜야만 얻을 수 있는 게 부성이다.
‘후레자식’의 탄생
아버지의 사랑이나 훈육 없이 자란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정신분석학자들은 부성의 몸짓이라는 축복과 통과의례를 겪지 않고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은 심리적 혼란을 겪는다고 말한다. 남성성에서 부성으로 도약하는 정신적 계기들이 생략된 환경에서 자란 그들은 한마디로 ‘아비 없는 후레자식’이 된다. 모든 혁명가는 반부성(反父性)의 언어를 내뱉고, 사회의 위계질서를 전복한다는 뜻에서 ‘후레자식’이다. 가부장적 권력의 억압 아래 놓여 있던 1980년대에 나온 이 반부성의 언어를 보라!
“아버지, 아버지! 내가 네 아버지냐/ 그해 가을 나는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을 다 살아/ 버렸지만 벽에 맺힌 물방울 같은 또 한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가 흩어지기 전까지 세상 모든 눈들이 감기지/ 않을 것을 나는 알았고 그래서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들이/ 매장을 끝내고 소풍 갈 준비를 하는 것을 이해했다/ 아버지, 아버지………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이성복 시, ‘그해 가을’의 일부).
전근대의 가부장적 세계에서 아버지는 독재자요 절대 군주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안 돼!’라고 명령하는 초월적 이성이고 대타자다. 그 대타자를 향해 젊은 시인은 “아버지, 아버지………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라고, 신성모독적인 반항의 언어를 날린다. 이 아버지는 분명히 악성(惡性) 부성신화(父性神話)를 퍼뜨린 군사독재 권력자들을 가리키는 것일 게다. 유교사회의 전통이 엄연한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는 실제의 아버지만을 가리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