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호

사이버 증권高手들의 피말리는 낮과 밤

  • 김진경 < 아이위클리 객원기자 > kjk@iweekly.co.kr

    입력2004-09-03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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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29일 오후 2시 분당의 한 아파트. 유명 사이버 증권분석가인 ‘보초병’ 박동운(39)씨가 방송을 하고 있다. 방송이라 해봐야 아파트의 작은 사무실이 스튜디오이고, 청취자와 소통하는 수단은 486 퍼스널컴퓨터와 마이크 달린 헤드셋이 전부다. 두 대의 모니터에 떠있는 차트를 분석하며, 한편으로는 채팅창에 올라오는 회원들의 질문에 답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니텍은 불안매수를 항상 강조했던 종목이었죠.”

    “휴맥스는 제가 목표주가 7만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시오텍은 자체 기술력이 있어 내재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있으니 그대로 보유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니텍은 저평가 우량주이기 때문에 전량 매도하지 말고 일부분만 이익실현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손절매가 지나치면 원금이 바닥납니다. 그림을 크게 그리고 하루 정도 추세를 지켜보는 여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눈과 손, 입은 쉴 틈이 없어 보였지만 혼자서 능숙하게 척척 진행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자, 이제 방송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후장 공략 종목으로 추천할 만한 것은 기아자동차, 국순당, 이레전자산업 등입니다. 파인디지털 등은 분할매수할 만합니다. 소량 분할매수하고 월요일에 추가 상승할지 한번 보도록 합시다.”

    1시간 정도 계속된 방송은 오후 3시가 돼서야 끝났다.

    ‘얼굴 없는 재야 고수(高手)’로 불리며 제도권 증권전문가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이버 애널리스트. 이들의 등장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1995~96년, PC통신 천리안·하이텔이 텍스트로 주식정보를 제공하면서 정보에 목말라 있던 개인 투자자들이 컴퓨터 앞에 모여 앉기 시작했다. 이들은 정보사이트에 자신의 투자 경험을 올렸다. 엄연히 주식시장의 한 축을 형성하는 투자자이건만 ‘개미’라는 이름으로 기관투자가에 당하고, 제도권 증권사에 뒤통수 맞던 이들이 나름대로 쌓은 노하우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써 올린 것이다.

    증권사로 대변되는 제도권의 전유물이었던 ‘정보’를 접하게 된 네티즌들이 몰려들었고 글 하나가 올라오면 조회 수가 순식간에 수천회를 기록하는 등 ‘얼굴 없는’ 이들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증폭됐다. 하이텔에서 활동했던 백경일씨와 ‘하누림’ 한상수씨 등은 개미투자자들이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존재들이었다.

    1999년, 인터넷에 증권정보 제공 사이트가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이트 운영회사들은 PC통신에서 필력을 자랑하던 이들에게 ‘러브 콜’을 보냈다. 이들이 할 일은 PC통신에서와 같이 인터넷 사이트에 나름의 분석 글을 올리는 것. 바뀐 것이 있다면 글을 올리는 대가로 돈을 받게 된 점이다.

    팍스넷(www.paxnet.co.kr) 투자정보사업본부 이사인 ‘하누림’ 한상수씨는 “개미투자자들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활동하던 사람들 중 영입대상 1순위로 꼽혔다. ‘고수’로 불리던 사람들이 좋은 조건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개미투자자들을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PC통신에 주식정보를 올리던 사람들은 자의반타의반 인터넷으로 옮겨갔다. 한때 이들은 ‘변절자’로 불리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떠난 사람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1999년 코스닥 주가 급등과 벤처붐이 맞물리면서, 주식정보사이트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PC통신 증권동호회 운영진이 직접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기도 했고, 동호회 회원들이 십시일반 투자해 인터넷 사이트를 만드는 일도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금 유치 경쟁, 주도권 다툼 등 증권정보 서비스 분야 또한 내부적으로 큰 갈등을 겪으면서 예전의 아마추어리즘과 순수성은 점차 사라져갔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했다. PC통신에 그대로 남아 있던 사람들은 도태됐고, 인터넷으로 자신의 터전을 바꾼 사람들은 사이버 애널리스트라는 새로운 직업군을 형성하게 됐다.

    매일경제TV에서 ‘시골의사의 다시 쓰는 기술적 분석’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시골의사’ 박경철(39)씨는 경북 안동에서 ‘잘 나가는’ 현직 외과 전문의다. 대학졸업 즈음 세상물정을 알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조언으로 시작한 첫번째 주식투자는 1989년 6월 ‘깡통’을 차는 것으로 끝이 났다.

    “자존심이 상했죠. 미국에 유학 가 있는 선배에게 부탁해 주식관련 원서 50여 권을 소포로 받아 의과대학 동기 5명과 스터디를 했어요. 덕분에 이론에서만큼은 웬만한 펀드매니저보다 낫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죠.”

    박경철씨는 상승장이던 1999년 말 씽크풀(www.thinkpool.com) 사이트를 통해 주식매도를 권유했다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해 주가가 폭락하자 다시 개미투자자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게 됐다.

    “2000년 하락장에서 너무 많은 손실을 본 개미투자자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씽크풀과 팍스넷 등의 게시판에 본격적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폐쇄적입니다. 주식투자는 삶에 활력을 주기에 충분했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어 익명의 공간에서 스타가 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죠.”

    주식투자의 대가로 소문난 후 우연한 기회에 방송에 잠깐 출연한 것이 화근이 돼, 병원에 주식투자로 마음의 병이 든 환자들이 ‘한수 가르쳐 달라’며 찾아와 북새통을 이룬 적도 있었다.

    개미투자자를 지켜준다는 의미의 ‘보초병’으로 널리 알려진 박동운씨. 고려대 철학과 졸업 후 삼성중공업, 한라중공업 등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본격적인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길에 뛰어들었다.

    “면접시험 볼 때 입고 갈 양복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샐러리맨으로만 살다가는 어쩌면 영원히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식투자를 시작했습니다. 대기업 샐러리맨 생활보다 자유롭고 구애받지 않는 요즘 생활에 더 만족합니다.”

    ‘초생달’ 이경수(43)씨도 LG반도체 연구원이었다.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을 탐독하는 등 부의 축적에 관심이 많던 그는 8년간의 직장생활을 뒤로 한 채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길로 들어섰다.

    전업 사이버 애널리스트가 출현한 것은 1∼2년 사이의 일이다. ‘돈맛’을 봐 예전의 순수성을 잃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만의 투자 노하우로 수많은 개미투자자 팬을 확보하고 있다.

    마이에셋 수석연구원이었던 ‘홀짝박사’ 김문석(33)씨는 증권사 직원들을 상대로 강의할 정도로 뛰어난 분석력을 자랑한다. 김문석씨의 매매비법은 투자원금 조절을 통한 매매전략인 ‘홀짝이론’이다. 홀짝이론이란 동전을 던지면 앞면이 나오거나 뒷면이 나오듯이 주가도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오르거나 혹은 내린다는, 동전 던지기의 경우의 수와 비슷한 경향성을 보인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투자원금 조절을 통해 안정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확률적 접근이다.

    팍스넷 투자전략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50대 중반의 백경일씨는 주식투자 경력 20년의 베테랑이다. 독창적인 차트분석으로 유명하다.

    “1998년 종합주가지수 280선이었을 때 하이텔에 글을 올렸습니다. 더 이상 주가가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500원짜리도 좋고 100원짜리도 좋다, 부담 없는 값싼 주식을 적극 매수하라, 싼 주식을 30종목 정도 분할 매수하면 그중에 2종목 정도는 망할지라도 다른 것은 분명히 오를 것이라고 장담했지요.”

    당시 주가는 계속 하락하고 있었고,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매수추천을 꺼리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백경일씨의 강력한 매수추천은 ‘책임지지 못할 정보를 올린다’는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정말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고 반등장이 이어지면서 백씨는 네티즌들 사이에 필명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백경일씨의 강의는 펀드매니저들도 수강할 정도로 유명하다. 지방 강연까지 따라다니는 열성팬도 있다. 그는 ‘세력주 포착법’으로 2001년 2월 현대백화점, 2001년 가을 39쇼핑 등의 급등주를 포착해 개미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강의를 들은 개미투자자들이 원금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가장 기쁩니다. 수익을 올렸다고 했을 때보다 더 기분이 좋지요.”

    ‘골드존’ 김기준씨는 1999년 9월 5000만원을 투자해 600%의 수익을 올리면서 고수로 떠올랐다. 사업가였던 그는 IMF 외환위기 당시 사업실패 후 남은 자금으로 주식투자를 해 큰 수익을 내면서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는 2000년 1월 제도권을 비롯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상승분위기에 도취되어 있을 때 매도전망을 내놓았고 그 예상이 적중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리얼투자컨설팅 대표인 ‘리얼’ 김인준(34)씨는 매수·매도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증권사에 입사해 제도권에서 수업받은 그는 “개인투자를 시작하면서 기업가치 등 펀더멘털보다 시장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개인투자를 하면서 단타 트레이딩에 매력을 느꼈고, 2000년 하락장에서도 초단타 매매로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초생달’ 이경수(43)씨는 각도술과 이동평균선을 통한 심리전판독법, 그리고 추세를 이용한 베팅전략과 전체시장의 흐름을 읽어내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0분봉 차트를 이용해서 3일 이상의 주가흐름을 판독해, 강력한 지지선에 최대한 접근한 종목군을 타깃으로 집중적인 베팅을 한 뒤 철수하는 전략으로 많은 개미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안겨주었습니다.”

    기술적 분석을 한다는 것은 주식시장에서 동일한 조건을 가지고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현재 자신이 보유한 종목 또는 사고자 하는 종목이 오를 가능성이 큰지, 하락할 가능성이 더 높은지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골드존’ 김기준씨 또한 매수와 매도 에너지의 흐름에서 어느 쪽이 강하게 작용하냐에 따라 주가가 결정된다며, 어떤 에너지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보초병’ 박동운씨는 ‘개별종목의 대가’로 불린다. 차트를 이용한 거래량 분석이 장점이다. “거래량 증감에는 속임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사이버 애널리스트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자질은 윤리와 도덕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많은 지식과 정확한 판단력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개인투자자에게 의도된 피해를 끼치지는 않는 기본적 신뢰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개미투자자를 현혹하는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업으로 투자전략을 짜고 회원을 모아 운용하는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름값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개미투자자들 사이에 필명만 대면 알 만한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의 경우 연간 수입이 2억∼3억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먼저 주된 활동무대인 인터넷 사이트부터 살펴보자. 사이버 애널리스트 대부분은 전속이 아닌 건당 계약의 개념으로 활동한다. “우리 사이트에서 활동해 주시면 얼마의 보수를 지급하겠습니다” 하는 식이다. 사이트의 방문을 많이 유도할 수 있는 인기 있는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몸값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지사. 사이트마다 차이는 있지만 월 수십만원에서 500만원 수준이다.

    이들의 활동무대는 ARS(700서비스)와 SMS 서비스로 이어진다. SMS 서비스는 휴대전화로 문자정보를 보낸 후 추가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게 수수료를 받고 새 정보를 주는 것을 말한다. 이윤 분배 방식은 3(인터넷 사이트) : 3(솔루션업체) : 3(사이버 애널리스트)이다. 많은 사람이 서비스를 신청할수록 각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커진다. SMS 서비스만으로 월 5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린다는 A씨는 “요즘 사이버 애널리스트들 사이에 최대 이슈는 마케팅”이라며 “정해진 자원 혹은 재능을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 사업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슈퍼롱다리’ 황영태씨는 “ARS와 SMS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버 애널리스트가 늘어나고 있다.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정보에 관심이 없으면 전혀 소득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라고 말했다.

    ‘홀짝박사’ 김문석씨는 SMS 서비스를 하자는 제안을 많이 받고 있지만 이미지 관리를 위해 월 1500만원 정도의 수입은 포기했다고 한다. ‘쉽고 싸게 뿌려지는 정보’의 제공자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전화는 접근이 용이하기 때문에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서비스다. 전화통화요금에 정보 이용료가 많게는 4000원 정도까지 부과된다. 문제는 TV, 인터넷 등 무료 매체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이 많다는 것이다. 개미투자자의 입장에서는 ‘비싼 정보인데 뭔가 있겠지, 뭔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몇천원의 비용을 들여 추천종목을 듣고 매수했는데 다음날 그 종목이 오른다면 그 정도 돈은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설사 추천에 따라 매수했다 손해를 본다 해도 ‘내가 잘못 골랐나보다’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성의 없는 정보, 큰 가치가 없는 정보가 횡행하는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

    요즘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은 케이블 방송과 강연회로까지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다. 한경와우TV에서 방송하는 ‘홀짝박사’ 김문석씨는 1회 출연료로 10만원을 받는다. 1일 7회까지 출연하는 경우도 있다보니 하루 방송 출연료로만 70만원을 벌기도 한다. 그외 한경와우TV와 공동 프로모션을 하는 VIP회원 대상 유료서비스로 월 5000만원, 지역별로 이루어지는 3시간 강연회 진행에 각4000만원 등 연간 수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상당수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수입은 월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리얼’ 김인준씨는 “사이버 애널리스트가 모두 고수익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이버 애널리스트는 외롭고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이버 애널리스트는 자신의 글에 대한 조회수가 평가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글을 올려놓고 자신의 조회수를 조작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의 베이스캠프 격인 팍스넷의 경우 현재 활동하는 재야 고수는 40명 정도. 초기 고수로 내공을 보여줬던 ‘쥬라기’ ‘스티브’ 등을 비롯해 ‘무극선생’ ‘보초병’ 등 유명 전문가들을 배출했다. 씽크풀, 이큐더스(www.ekudos.co.kr)와 슈어넷(www. surenet.co.kr), 이토마토(www.etomato.co.kr), 솔론(www.solon.co.kr) 등 여타 사이트들도 10명 내외의 전문가를 확보하고 있어 국내 사이버 애널리스트는 1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백경일 ‘골드존’ ‘스티브’ 등 초기 멤버들은 대체로 40대 중반 이상이다. 백경일씨는 50대 중반으로 중후한 매력에 매너가 좋아 후배들이 많이 따른다. ‘보초병’은 39세로 나이는 많지 않지만 1세대로 꼽히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2세대로는 ‘평택촌놈’ ‘홍길동닷컴’을 비롯 ‘리얼’ ‘인천여우’ ‘미래칩스’ 등을 꼽을 수 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인물로는 프로그래머 출신인 27세의 ‘슈퍼롱다리’를 들 수 있다.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사이버 애널리스트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층도 증가하고 있다. 하일도(가명)씨도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

    “경영학과를 졸업했는데 취업도 쉽지 않고, 주식투자에 대한 기본지식은 있으니 천천히 시작한다면 머지않아 사이버 애널리스트로 이름을 떨칠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없어진 요즘, 사이버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재테크까지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그러나 이런 신세대 사이버 애널리스트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백경일씨는 “고수들끼리는 상승기 3년, 하락기 3년은 경험해봐야 조금이나마 주식시장을 보는 눈이 생긴다는 말을 한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온라인을 주름잡는 젊은 세대들이 꽤 있지만 큰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전문방송 한경와우TV의 관계자는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은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수매도 추천 및 종목추천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100% 정확도를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수가 잦으면 생명력도 짧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탁월한 실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시장의 논리에 의해 도태되고 만다”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잘 나가는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대부분이 과거 투자에 크게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골드존’ 김기준씨는 외환위기 때 ‘몰빵(한 종목에 전액을 투자하는 것)’을 했다가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깡통을 찬 아픈 경험이 있다. ‘보초병’ 박동운씨도 직장생활하며 한푼 두푼 모은 1000여 만원을 두 차례나 날리는 등 쓰라린 고통을 겪었다. 개인적 투자실패뿐 아니라 제공한 정보가 들어맞지 않아 개미투자자들의 항의를 받는 경우도 많다.

    김기준씨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지난해 470포인트에서 900포인트까지 약 7개월간 계속 주가지수가 상승하고 있을 때 800포인트 정도에서 외국인 매도가 계속되면서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증시에 끼치는 외국 투자가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내놓은 분석이었지요.”

    그러나 800포인트에서 기관이 매수를 주도하면서 주가는 더 상승했고, 900포인트까지 올랐다. 예측이 어긋나자 개미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유명해지기 전에는 제 의견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적어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개미투자자들이 절 주목하고 있어 솔직히 의견을 내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개미군단이 사이버 애널리스트를 찾는 주된 이유는 이들이 투자할 종목을 ‘짚어’ 주기 때문이다. 증권사에 소속된 ‘제도권’ 애널리스트로부터는 알 듯 모를 듯 변죽만 울려대는 얘기를 듣기 일쑤지만 사이버 고수들로부터는 맞든 틀리든 속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 특히 주식을 살지 팔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이들의 조언은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개미투자자들이 적지 않은 이용료를 아까워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제도권 애널리스트들은 웬만해선 매도 의견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은 매도 가격대까지 제시한다. 어떤 종목으로 갈아타는 게 좋을지도 가르쳐준다. 개별종목에 대해 1대1 상담을 해준다는 것도 장점이다.

    최근 증권정보 유료 서비스를 받기 시작한 유영옥(57)씨는 높은 수익률과 서비스에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주식투자를 시작한 지 7∼8년이나 됐지만 수익은 내지도 못한 채 매번 원금손실만 봤어요. 그런데 유료서비스를 받기 시작한 3월부터 드디어 돈을 벌기 시작한 거예요. 월 33만원의 상담료를 내고 있지만 이달에만 500만원의 수익을 올려 수수료가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유씨는 투자상담뿐 아니라 다른 개미투자자들과 채팅하면서 많은 위안과 소통의 즐거움도 누리고 있다고 했다. 주식투자가 비로소 즐거워졌다는 것이다.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정보가 고급화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보초병’ 박동운씨 등 스타급들은 기업체에 직접 정보를 요청할 정도로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싶다고 하면 자료를 제공해줍니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요즘은 사이버 애널리스트에 의해 개인투자자들의 물량이 움직일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야 고수들의 활약에 대한 제도권 분석가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A증권사의 수석애널리스트인 C씨는 “제도권 분석가들은 증권사 직원이므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대한 보수적인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은 ‘책임이 없다’는 점을 이용해 투자자 보호 의무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경고했다.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하루는 일반 직장인들보다 빠른 아침 8시에 시작된다.

    “월 20만원을 내고 ‘내 회원’으로 가입한 개미투자자들을 위해 하루종일 일에 매달립니다. 실전 경험을 위해 자기 돈을 투자함은 물론이지요. 아침 8시면 동시호가 열어놓고 우선 경제신문부터 훑어봅니다. 8시40분부터 9시40분까지는 오전방송을 하고, 장중에는 회원들 대상으로 전화상담을 합니다. 점심식사 후 1시50분부터 2시50분까지는 오후방송 시간이에요. 이후 증시관련 뉴스를 사이트에 업데이트하고 게시판과 이메일로 들어오는 문의에 대해 답변합니다. 8시20분부터 9시20분까지는 저녁방송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밤이라고 쉴 수는 없어요. 채팅방을 열어 회원들과 대화를 나눠야 하거든요. 그 일이 끝난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는 1700여 개의 차트를 분석해 투자 우량종목을 발굴합니다.”

    ‘보초병’ 박동운씨의 하루다.

    홀짝박사 김문석씨도 이른 아침부터 한경와우TV에 출연해 하루 4개의 방송을 하느라 3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한다.

    사이버 애널리스트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혼자라는 것. 그래서 요즘은 다양한 ‘조직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개인 사무실을 여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아예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도 있다.

    김문석씨는 2001년 2월 직원 12명의 하우투인베스트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여의도 증권가에 사무실을 마련한 그는 최근 자본금 30억원의 자산운용사를 설립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박동운씨는 ‘골드마인’(www.goldmine.ne.kr)이라는 유료 증권정보 사이트를 개설하고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4명의 직원이 그를 돕고 있다. ‘초생달’ 이경수씨도 올 1월에 연 개인 동호회(www.dals.co.kr) 사이트를 통해 개인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의 사이트에는 ‘함께 운영할 사람을 찾는다’는 공고가 올려져 있다.

    ‘골드존’은 “주가라는 것은 정보가 반영되는 과정인데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정보가 빠르게 적용돼 주가변동이 굉장히 심해지고 있어 움직임을 예측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우투인베스트 신승훈 이사는 이런 흐름에 대해 “정보가 광범위해지고 주식정보가 입수되는 채널도 다양화, 고속화해 애널리스트 혼자 그 모든 정보를 분석해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결국은 저마다 사무실 운영, 법인 설립 등 조직화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수들의 사무실 앞은 투자자들로 늘 문전성시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투자비법을 전수해 달라는 사람부터 억대의 투자금액을 모두 맡길 테니 운용해 달라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이다. 무작정 찾아와 주식투자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원금의 10%도 남지 않았다, 제발 원금만 찾게 해달라며 통사정하는 사람도 있다.

    사이버 애널리스트를 힘들게 하는 건 이들 모두가 ‘대박’과 ‘급등주’를 찾는다는 것이다. 한 사이버 애널리스트는 “수년간 실패도 해보면서 경험을 쌓은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이 일반 개인투자자보다 투자에 성공할 확률은 훨씬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00% 성공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항상 적중했다면 빌 게이츠보다 부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버 애널리스트 중 지나치게 수익률에 집착해 큰 리스크를 안고 투자했다 깡통을 차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익에 비례해 위험도 높다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제도권 애널리스트의 대안으로 떠오른 사이버 애널리스트에 대해 “순수했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들린다. 전업 사이버 애널리스트 시대가 되면서 개미투자자들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순수성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최근 사이버 애널리스트 활동을 접은 P씨의 말.

    “책 몇 권 읽고 차트와 분석 글을 올린 뒤 조회수를 조작해 스타로 둔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면 금상첨화지요. 사이버 애널리스트는 우리나라 싸구려 투자문화의 틈새현상일 뿐, 이들을 맹신하는 개인투자자의 피해를 막을 길이 없습니다.”

    박경철씨는 “주식시장에는 ‘상승장에 바보 없고, 폭락장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1999년에서 2000년 초반 상승장에 큰 수익률을 올린 사람들을 고수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요즘 같은 상승장에서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조언으로 수익을 올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골드존 김기준씨도 박씨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600%의 수익률은 1999년 집단적 최면 상태에서 비정상적인 주식시장 상황으로 인해 이뤄진 것이며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자신의 주식투자 노하우에 대한 일반 투자자의 맹신을 경계했다. 큰 자랑거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TV에 출연하게 되면서 갑자기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는 것이다.

    사이버 애널리스트가 드물었던 초기와 달리 자고 나면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지금, 결국 사이트에 올라오는 수많은 정보의 취사선택은 전적으로 투자자들의 몫인 셈이다. 사이버 고수가 개인 투자에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필명만 대면 알 만한 사이버 애널리스트 K씨 또한 주변 사람들의 돈을 모아 주식투자를 했다가 큰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사이버 애널리스트인 30대 후반의 L씨는 “1999년 상승장에 큰 수익을 내면서 고수로 추앙받았던 대다수 사람들이 2000년 하락장에서는 대부분 원금까지 까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 증권방송 출연료를 차압당한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더 나아가 고객의 돈을 위탁받아 투자했다 90% 이상의 원금손실을 보고 송사에 휘말릴까 전전긍긍하는 사이버 애널리스트도 있다”고 밝혔다.

    ‘슈퍼롱다리’ 황영태씨는 “솔직히 옥석을 가릴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사이버 애널리스트 중에 더러는 남의 글을 거의 복사하다시피 해 써먹거나, 유명 애널리스트들의 추천종목을 기계적으로 똑같이 추천하는 사람도 있다. 또 작전 세력과 결탁해 매도 추천을 내는 등의 불법을 자행하는 자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0년 폭락장은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시험기간이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물론 양심적으로 활동하는, 실력이 뛰어난 애널리스트들도 적지 않다. 개인 유료사이트를 운영하는 C씨는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개미투자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으로 운영되는 유사투자자문업체 중에는 투자정보를 제공한다며 수백만원의 ‘컨설팅비’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은 자신의 필명을 걸고 최대한 좋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잘못된 정보를 내보냈다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게 되면 회원이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는데 일부러 투자자들을 울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투자자 입장에서도 월 5만~30만원 정도를 투자해 수백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괜찮은 거래 아닙니까?”

    인터넷 혁명 덕분에 개미투자자들은 그토록 목말라하던 투자정보를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화려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먹을 음식을 골라내는 건 역시 투자자의 몫이다. 자신만의 매매원칙이 세워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흩뿌려진 정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특정 애널리스트의 ‘의견’에 맹종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숟가락질까지 대신 해달라는 건 투자자의 자세가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개미투자자라면 주식시장을 당장 떠나라.” 한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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