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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18

자아를 찾는 여성, 마녀가 되다

메두사 vs 메데이아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자아를 찾는 여성, 마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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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찬란한 재능과 아름다움의 대가

코린트인에게 메데이아는 마치 페스트와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크리스타 볼프의 ‘메데이아, 목소리들’(1996)에서 메데이아는 말한다. 그들은 지금 나, 메데이아를 마치 나병환자처럼 피하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내 주위에 원을 그리고는, 어느 누구도 그 원을 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버림받은 메데이아를 마치 병균 다루듯이 피했다.

그리스 신화의 대표적인 영웅 페르세우스의 전투 또한 뭔가 비겁한 데가 있지 않은가. 메두사의 눈과 혹시라도 마주칠까 벌벌 떠는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처치하는 장면은 통쾌하기보다는 ‘영웅의 카리스마’에 어울리지 않는 사술(邪術)처럼 보인다. 그녀를 정면으로 무찌르지도, 혹은 깜짝 반전을 일으켜 그녀를 사랑하지도 않고, 오직 그녀의 눈길을 ‘성공적으로 회피함’으로써 승리하다니. 그리스 신화에는 그토록 많은 영웅이 존재하지만, 메두사의 저주를 깨는 진정한(?) 구원의 남성상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스 신화에서 ‘괴물’이나 ‘마녀’로 규정되는 메두사와 메데이아는 남성중심주의 신화의 껍질을 벗으면 단지 ‘여자’일 뿐이었다. 그녀들이 ‘애초에’ 저지른 유일한 죄(?)는, 단지 ‘여성’이라는 사실뿐이었다.

메데이아는 남성의 접근을 물리치고 뗏장을 떠서 문밖에다 두 기(基)의 제단을 쌓았다. 오른쪽 제단은 헤카테 여신에게 바치는 제단, 왼쪽 제단은 유벤타(헤라클레스의 아내) 여신에게 바치는 제단이었다. …… 메데이아가 불 위에 올린 가마솥에서는 약초즙이 흰 거품을 내며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메데이아는 여기에다 하이모니아 계곡에서 거두어온 약초의 뿌리와 종자와 꽃과 즙을 넣고, 또 극동에서 가져온 돌, 오케아노스의 파도에 씻긴 자갈, 보름 밤에 내린 이슬, 부엉이 고기와 날개, 인간으로 둔갑할 수 있다고 믿어지던 이리의 내장을 넣었다. …… 미개한 나라에서 온 공주는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약재를 더 넣었다. …… 메데이아는 칼을 뽑아 노인의 목을 따고는 늙은 피를 깡그리 뽑아내고 칼로 딴 자리와 입으로 약을 부어넣었다. 늙은 이아손은 입으로, 메데이아가 열개(裂開)한 목의 상처로 이 약을 마셨다. 약이 들어간 지 오래지 않아 그의 하얗던 수염이 그 흰 빛을 잃더니 곧 검어지기 시작했다. …… 이렇게 해서 그는 40년 전의 자기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오비디우스, 이윤기 옮김, ‘변신이야기 1’, 민음사, 295~297쪽.



위 장면은 메데이아가 남편 이아손의 부탁으로 시아버지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장면이다. 메데이아가 홀로 당당히 제의를 주관하고 마법을 실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반지의 제왕’의 건달프나, ‘해리 포터’의 마법사들보다 훨씬 멋지고 카리스마 넘친다. 그 순간 그녀는 남자의 사랑 따위에 의존할 필요 없는 완전히 자기충족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는 이아손의 배신에는 아무런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메데이아의 ‘사악함’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의 좌절된 여성성은 배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그녀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여성의 히스테리, ‘비이성’과 ‘광기’의 대명사가 된다. 메데이아에게는 ‘헨젤과 그레텔’이나 ‘인어공주’의 마녀가 보여주는 주술적 능력, ‘백설공주’의 계모나 ‘신데렐라’의 계모가 실현하는 잔혹한 모성의 원형이 살아 숨 쉬고 있다.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이고 실리주의적인 이아손과 감정적이고 과거에 사로잡히며 격정적인 메데이아의 대립. 이런 식의 신화 해석에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가부장 중심의 시선이 담겨 있다. 사실 메데이아는 이중, 삼중의 차별을 받고 있었다. 조국을 배반한 인간, ‘여성’이라는 핸디캡. 그녀는 ‘그리스인’이 아닌 ‘야만인’이라는 인종차별까지 받는다. 나아가 마법의 힘을 이용할 줄 안다는 것, 남편의 ‘배신’을 인내하지 못하고 감히(?) 남편에게 복수하려 했다는 것까지.

그녀의 모든 충동이 단지 ‘파괴’를 향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열정과 충동을 감싸 안아주는 사랑이 있었다면, 그녀는 마법사로서의 연금술사적인 재능을 마음껏 뽐내지 않았을까. 실제로 이아손의 배신 이전 메데이아는 전사의 용맹성과 마법사의 재능으로 빛났다. 메데이아는 ‘여걸’과 ‘샤먼’의 권능으로 가득 찬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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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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