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호

정보통신·금융·e-비즈니스 주름잡는 첨단전사

  • 최영재 cyj@donga.com

    입력2005-05-02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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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는 서울대보다 더 알아주는 하버드 대학. 세계 최고 명문이라는 이 대학 출신들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퍼져 있는가? 그리고 그 인적 유대는 어떤가? 이 대학 출신들이 한국 최고의 엘리트이고, 요직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적 유대는 생각만큼 강하지 않다. 전체 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는 1년에 한 번 있는 송년회 정도다.

    2001년부터 하버드한국총동창회 회장을 맡게 된 서울대 국제지역원 원장 조동성 교수는 “하버드대 출신들은 누가 동문인지도 잘 모른다. 알더라도 한국처럼 밀어주거나 끌어주지 않는다. 잘 모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한국적인 의미의 인맥이라는 것은 전혀 없다. 그런 표현은 적당치 않다. 그저 하버드 출신들이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전체 모임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하버드 출신들은 대개 한국에서도 최고 엘리트 과정을 밟았다. 경기고 서울대 출신이 대부분인데 구태여 따로 모임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국내 기반이 없는 이들, 말하자면 국내 학부를 거치지 않고 바로 학부과정을 하버드로 간 사람들은 하버드 동창회를 찾는 경우도 있다.

    하버드 동창회의 활동이 활발치 못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하버드 학부를 졸업했거나,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른바 핵심 동문들이 동창회에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 회장을 맡았던 이순우씨는 “처음 동창회에 나가보니 유명한 학자 동문들은 잘 나오지 않고, 몇개월 과정으로 갔다온 사람들만 많아서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하버드 한국총동창회는 전체 모임보다는 단과대학별로 모임이 조직되어 있다. 또 소그룹별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 관심이 비슷한 사람끼리, 나이가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것이다. 동창회 모임이 지지부진하지만 하버드대 당국은 학부를 졸업했건, 대학원을 졸업했건, 1∼2개월짜리 연수 초청프로그램을 밟았건 이를 구별하지 않고 동문으로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 하버드대 세계총동창회 미국 지부도 학위(degree) 과정이나 연수과정(nondegree)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한다. 학부만을 대학 동문으로 여기는 한국의 순결주의와는 구별되는 대목이다. 하버드대 동문들에 따르면 한번도 답신을 하지 않는데도, 동창회 소식지가 매년 서너 차례 집으로 배달되어 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하버드 세계 동창회장을 뽑는다는 우편물과 투표용지까지 날아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버드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뛰어난 개인 기량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각 개인들이 사회 중요 지점에 자리잡고 활약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하버드 출신의 힘이 가장 거센 곳은 경제계다. 이들은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출신들이다. 절대적인 수로 따진다면 60명 정도의 소수 그룹이지만, 이들은 한국 경제의 최첨단 분야에서 파워 엘리트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그룹은 아니지만, 유행과 흐름을 앞에서 끌고 가는 그룹이다. 이 사람들이 주로 포진한 곳은 재벌그룹의 전략기획실과 국제 금융 등 한국 경제의 핵심 포스트다.

    하버드의 힘은 뛰어난 개인기

    이 그룹이 가진 큰 장점은 영어에 능하다는 것이다. 외국과의 무역에 명운을 걸고 있는 한국 경제를 이들이 좌우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버드 출신들이 그 동안 진출했던 분야는 한국 경제의 분야별 흥망성쇠와 정확히 연결된다. 60년대와 70년대, 80년대 수출한국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운 역군들의 최선두에는 이들 하버드 출신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선진경영기법을 공부하고 와서 한국기업의 국제화를 위해 노력했다.

    미국의 대학 가운데서도 시대 변화에 가장 민감한 곳이 바로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BUS)이다. 변화에 민감한 하버드대 학생들의 학문 선호도는 시대에 따라서 바뀌었다. 이들의 관심 분야는 50∼60년대는 생산과 마케팅이었고, 70년대는 컨설팅, 8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는 투자, 뱅킹, 재무관리였다. 최근 5년간은 정보통신 분야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추세는 한국 경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60∼70년대에 하버드 출신들은 재벌 기업에 주로 취직했다. 80∼90년대는 컨설팅 회사를 선호했다. 최근에는 정보통신 쪽으로 몰리고 있다. 90년대 이후 한국경제계에서는 금융업과 컨설팅업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를 주도하는 그룹이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출신들이다.

    하버드대 출신 경제인들이 한국 경제의 트렌드를 앞서서 이끌어가는 것은 하버드의 학풍 때문이다.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의 학풍을 한마디로 말하면 실사구시(實事求是)다. 이곳에서는 교과서로 수업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이 사례 중심이다. 의대생이 사체를 놓고 수술기술을 연마하듯이 기업경영자가 되기 전에, 여러 사례를 모아 놓고 수술하듯 분석하고 난상 토론을 벌인다.

    이렇게 된 데는 하버드 로스쿨(Law School) 영향이 컸다. 하버드대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원은 1800년대 초기 터를 닦은 로스쿨이다. 이 법학대학원의 학습 방식이 바로 사례별 연구였다. 하버드대학이 비즈니스 스쿨을 처음 만든 시기는 1909년이다. 하버드는 경영자를 위한 대학이 필요해, 비즈니스 스쿨을 만들었는데, 교수가 없어 로스쿨에서 교수를 초빙해서 가르쳤다. 미국은 판례를 중시하는 영미법 전통을 가진 국가다. 로스쿨 교수들은 이 영미법 전통을 비즈니스 스쿨에 그대로 적용했다.

    그래서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은 경영 현장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다른 대학처럼 이론을 가지고 모델을 만들지 않는다. 대학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면 밀림에서 처음으로 길을 내는 논문이 있고, 다른 사람이 낸 길을 검증하는 것이 있다. 가설을 만드는 논문과, 만든 가설을 증명하는 논문의 차이다. 하버드의 학풍은 전자다. 미국의 시카고대학이나 MIT 같은 곳은 다른 사람이 만든 가설을 통계학으로 검증하는 경향이 짙다.

    이처럼 하버드는 학교에서 토론한 사례를 모두 현장에서 확인한다. 대학은 이것이 가능하게끔 학생과 현장을 연결한다. 사례를 연구해서 나온 모델을 현장에 적용하고,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 이를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해야 학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하버드대에서 학위를 받은 이들은 학자가 아니라, 컨설턴트나 최고경영자를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은 이들은 한국에 와서도 대학이 아니라 기업 같은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가 많다.

    이런 학풍 덕택에 하버드대는 한국대학의 최고경영자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AMP(Advanced Management Program) 과정을 키웠다. 이 또한 학과 점수보다는 현장 경험과 경력을 중시하는 실사구시 학풍 때문이다. 하버드의 AMP는 3개월 프로그램인데, 주로 기업의 대표이사급 간부들이 거친다. 이 하버드 AMP 과정을 거친 이들은 한국에서 60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쟁쟁한 인사들이다. 삼성생명 이수빈 회장이 대표로 있고, 내외경제신문 이정우 사장, 무역협회 김재철 회장,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 등이 있다(표 참조). 이 하버드 AMP 과정은 3개월 학비가 미화 3만 달러나 되기 때문에 IMF 이후에는 한국인 학생수가 많이 줄었다. 현재 한국의 하버드동창 모임 가운데 가장 활발한 그룹이 이 AMP 그룹이다. 58명 회원 모두가 기업체에서는 대표이사급이고 정관계에서는 장차관급이라 사회적 지위가 비슷하다. 또 연령대도 50∼60대로 비슷하다. 젊은 하버드 동문들과는 나이 차 때문에 어울리기 힘든 이들은 주로 주말에 골프를 치면서 모임을 가진다.

    이 하버드 AMP는 국내 대학의 AMP 과정과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 사실 국내 대학의 AMP 과정은 반 사교장 비슷한 곳이다. 한주일에 두 번 정도, 저녁 시간에 모여 수업을 듣는 것이 거의 전부다. 하지만 하버드 AMP 과정은 13주 동안 기숙사에 입소한 뒤 아침부터 오후까지 사례를 연구해야 한다. 이곳에 파견되어 오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업 중역들이다. 하버드 AMP는 적어도 과정을 밟는 13주만큼은 현실적으로 기업 경영에 필요한 사례를 토론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최근에는 비즈니스스쿨을 나온 젊은 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선배 하버드 동문들과는 조금 다르다. 젊은 세대들은 대기업보다는 자기 사업을 하거나 외국 기업체 한국 지사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 금융기관의 한국 지사에서 근무하는 사례도 많다. 이들은 한국 기업을 거의 외면하고 있다. 드물게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사장과 직접 협상을 벌여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이사 같은 임원으로 채용된다. 그만큼 전문성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벤처, 재벌기업, 증권,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 젊은 하버드 그룹에서 대표적인 사람이 ‘아시아 에볼루션’의 박지환 대표이사(32)다. 그는 부모가 외교관이었던 탓에 초등학교는 한국에서 나오고, 중학교는 일본, 고등학교는 호주에서 졸업했다. 대학 학부는 미국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MBA(경영학석사과정) 과정을 거쳤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외국어다. 일본어,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한다. 그런 탓에 사업 영역을 굳이 국내에 한정할 필요가 없다. 사업 파트너도 외국인이 많다.



    연령별로 모이는 소모임

    박 대표이사 같은 젊은 하버드 동문들은 소그룹 모임을 자주 갖는다. 나이와 관심사,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이들끼리 자주 만나는 것이다. 박지환 이사는 이런 모임을 주도한다. 그가 주도하는 하버드 동문 모임은 15명 정도가 모이는데 벤처, 재벌그룹, 증권, 컨설팅업에서 일하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이 회원이다. 이들은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며 서로의 관심사에 관해 토론을 벌인다. 이 회원들은 대부분 집안도 좋고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젊은이들이다. 물론 비즈니스에 대해 보통 사람보다 훨씬 관심이 많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출신들은 세계 경제의 흐름을 앞서서 알아차리기에 유리한 점이 많이 있다. 그중 하나가 모교의 교수들이다. 하버드대는 교수들이 외국 여행을 하게 되면 그 지역 동창회를 찾아 동문들과 만나는 전통이 있다. 이때 해당 교수를 아는 제자가 다리를 놓아 동문들이 모여 교수와 식사를 하며 그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토론을 한다.

    하버드 한국총동창회 가운데 비즈니스 스쿨 다음으로 활동이 활발한 쪽이 케네디스쿨이다. 케네디스쿨은 98년 현재 회원수가 95명으로 비즈니스스쿨의 60여 명보다 많다. 케네디스쿨(KSG: The John F. Kennedy School of Government, Harvard University)은 1936년에 하버드대학교 행정대학원(Harvard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Public Administ- ration)으로 설립되었다. 설립목적은 정치, 행정, 언론, 외교, 교육 같은 공공성이 강한 분야의 지도자를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분야 현직자나 향후 크게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 젊은이에게 필요한 지식, 경험, 합리적 분석 능력, 문제 해결력, 협동심을 지도한다는 취지였다. 입학 지망생은 위에 언급한 공공성 분야로 엄격히 제한하며, 졸업생은 대부분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케네디 스쿨은 98년 현재 69개국에서 모인 재학생 80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이중 외국인이 36%다.

    이 케네디스쿨이 최근 한국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이곳의 학장 조셉 나이(Joseph S. Nye. Jr)박사 때문이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1997년 말까지 국방부 차관보로 활약했으며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학자이자 행정가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지한파로 한국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의 방한 목적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기부금 모금이었다고 한다.

    하버드대는 스쿨마다 독립채산제라서 대학원 학장이 기부금을 걷으러 전세계를 순회하는 경우가 있다. 조셉 나이 학장은 한국에서는 대우 김우중 회장과 친한 사이였다. 김우중 회장은 정확한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셉 나이 학장에게 상당액의 기부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동문 가입 조건은 케네디스쿨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6개월 이상 공부한 사람은 준회원으로 영입하고 있다. 케네디스쿨 정기 모임은 매년 6월과 12월 둘째 월요일이다.

    케네디 스쿨은 공공분야 종사자만 뽑기 때문에 한국 동문회에서도 사기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케네디스쿨 출신은 대부분 대학교수, 한국은행 같은 은행간부, 정부 각 부처 관료들이다. 정부 산하단체 직원이나 변호사도 약간명 있다. 현재 케네디스쿨 동문회장은 박현두 KDI 국가발전지도자프로그램 소장이다.

    하버드대의 학부 과정은 전공이 크게 나뉘어 있지 않다. 대학원부터 전공이 결정되는데 일반 학술적인 분야(사회, 철학, 경제, 심리학 등)를 공부하는 문리과대학원(GSAS)과 비즈니스스쿨(business school), 메디컬 스쿨(medical school), 로 스쿨(law school) 등 프로페셔널 스쿨 3개가 있다. 이 밖에 케네디 스쿨, 신학대학원, 디자인 스쿨 등 전문화된 대학원이 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동문 모임이 유지되는 그룹은 앞에서 살펴본 비즈니스 스쿨과 케네디 스쿨이다. 유명한 로스쿨(Law School)이나 학부과정, 일반대학원, 박사과정 모임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하버드 출신들은 세대별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먼저 1세대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다. 당시 하버드대를 다닌 이들은 6·25전쟁 이후 이런 저런 사연으로 미국인을 알게 돼 특별 초청 케이스로 유학한 극소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다섯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고, 제대로 파악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람은 하버드대 학부를 59년에 졸업한 뒤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김여수 박사다. 그 다음이 하버드대 한국인 경영학박사 1호인 백재민 교수다. 그는 현재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로 있다. 다음은 경영학 박사 2호인 박윤식 박사로 역시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다음은 70년대에 하버드대를 다닌 2세대다. 이들은 1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하버드대 한국인 경영학 박사 3호인 서울대 국제지역원장 조동성 교수다. 197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학교에 지원해서 입학허가를 받아 입학한 경우다. 이때 하버드대를 다닌 사람들은 그야말로 춥고 배고픈 유학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이때만 해도 한국에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외화는 200달러 정도로 묶여 있었다. 그러니 이 시기에 하버드를 다닌 이들은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아르바이트와 아내의 뒷바라지로 유학생활을 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어쨌든 이때까지는 극소수 선택받은 사람들만 하버드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은 3세대로 80년대에 하버드대를 다닌 이들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상황은 70년대와 크게 달라졌다. 우선 경제 상황이 좋아졌고, 부모 손목 잡고 미국으로 온 이민 2세의 진학이 늘기 시작했다. 따라서 하버드대로 진학하는 한국 학생 수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서울대 조동성 교수에 따르면 80년대에 하버드 학생 가운데 20% 정도가 외국인이었는데, 외국인 중 가장 많은 그룹이 캐나다인이었고, 둘째가 한국인이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하버드대에는 부유한 한국인 학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으로부터 외화 송금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90년대에 들어서는 외화 송금이 자유로워지고 이민2세가 새로 입학하는 등 하버드 출신이 더욱 늘어나기 시작했다.

    개인 기량은 뛰어나나 한결같이 결속력은 약하다고 말하는 하버드 동문들.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없다. 단지 이들이 모임의 ‘티’를 내지 않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명문 대학을 나온 동문들끼리 결속하는 현상은 한국의 현상만은 아니다. 하버드 동문 모임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상류사회에 들어갈수록 더욱 굳건하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하버드한국총동창회 총무를 맡았던 세이에셋코리아 곽태선 대표이사는 “미국의 큰 법률회사나 기업체를 보면 대표이사는 거의 하버드 출신이다. 내가 미국 법률사무소에 들어갔을 때, 전체 인원 300명 중 80명이 하버드 출신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 최고 두뇌 집단인 하버드 동문 모임이 끼치는 부정적 영향도 있을 수 있다. 곽태선 총무는 “하버드 출신들은 공부를 잘하고 뛰어난 사람들이지만, 일단 특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잘 사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리더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집단 이익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주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이가 40∼50대가 되면 어느 대학에서 공부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최근에 어떤 일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도 한국은 지금도 장관이 새로 임명되면 고향이 어디고, 출신 학교가 어디인지 따진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외국 대학 간판을 달기 위해 몇 개월 연수 갔다 와서 모든 동창을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좀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최고 두뇌집단 모임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해 하버드동창회 간부들은 고민이 많다. 2001년부터 총동창회장을 맡게 된 서울대 조동성 교수는 ‘하버드대 동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새해 초기부터 적지 않게 고민했다. 20세기 세계사를 보면 어느 나라든지 근대화하는 과정에 선진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소수 엘리트들이 이바지한 바가 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하버드대 동문 중에는 경제인이 가장 많습니다. 이들은 앞으로도 한국 경제에 새 물결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국 사회를 법에 의한, 법이 지켜지는 사회로 만드는 데 선구적인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전통문화를 세계화하는 것도 가능한 일입니다. 이처럼 좋은 주제를 잡아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동문들이 친목만 도모할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을 하면 여러 가지로 국가에 보탬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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