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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만 먹는 사람들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thwang@donga.com

풀만 먹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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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도 건강문제 못지않은 채식 유발 요인이다. 채식주의자 가운데는 환경 운동을 하는 사람이 유달리 많다. 이들은 인간이 먹다 남은 부산물로 가축을 키우는 전통 농법이 아닌 곡식을 먹여서 키운 고기를 소비하는 것이 얼마나 환경파괴적이고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인지를 지적한다.

녹색연합 상근자로 일하다가 현재는 호주 멜버른대학에서 에너지환경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남상민씨(34)가 대표적인 예다. 농촌에서 자란 남상민씨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개, 돼지, 닭을 잡는 광경을 많이 보며 자랐다. 그를 채식으로 이끈 일차적인 동기는 이런 광경을 보면서 느낀 충격과 참혹함이었다. 목이 도끼에 잘려 끊어질 듯 겨우 붙은 상태로 한참 동안 버둥거리다 죽어가는 닭, 격한 숨을 쉴 때마다 목에서 검붉은 피를 뿜어내며 죽어가는 돼지, 영리하고 친근하던 개가 동네 아저씨들에게 팔려 한여름날 포플러 나무에 매달려 맞아 죽어가는 모습. 이런 광경을 보고 그는 고기를 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대학 초까지만 해도 고기를 먹었다. 대학에서 휴머니즘에 눈뜨게 된 그는 어느날 시위에 참여했다가 일주일 구류를 받고 유치장에서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읽게 됐는데, 여기서 그는 생명윤리와 채식의 의미를 명료하게 확인했다.

남씨는 이러한 인식을 발전시켜 반핵운동, 환경운동가의 길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절대로 육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필요에 따른 섭취와 탐욕에 의한 섭취는 구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알래스카와 몽골 초원에서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영양원은 고기밖에 없다. 생태적 조건으로 인해 고기를 섭취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씨는 먹을 것이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면 개고기도 주저없이 먹겠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고기를 먹는 것은 자연의 보편적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는 단순히 살육의 과정이 아니라 물질의 순환 과정이고 생물종을 유지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부시맨이 잡은 동물에게 경건한 태도를 보이고, 죽어가는 부모를 곰의 제물로 바치는 에스키모의 옛풍습도 이런 자연의 순환적 질서에 동참하는 것이다. 다만 지나친 탐욕으로 생명체를 무생물인 제품처럼 생산하고 도살하는 육식 중심 식문화가 문제라는 것이다.

남상민씨는 환경 전문가답게 채식과 육식 문제를 환경과 에너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생태계의 영양학 법칙에 따르면 먹이사슬이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섭취한 음식에서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평균 10% 정도다. 생태계의 먹이사슬 구조는 피라미드형이다. 즉 풀보다는 메뚜기 수자가 적고, 메뚜기 수보다는 독수리 수가 적다. 이처럼 영양단계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개체수가 적어진다.



이것은 에너지 흐름의 피라미드 때문이다. 즉 물 속의 식물성 플랑크톤에서 1만 단위 에너지를 동물성 플랑크톤이 섭취하더라도 1000 정도의 에너지만 이용할 수 있고, 나머지 9000단위는 열로 버려진다. 동물성 플랑크톤이 갖고 있는 에너지 1000단위가 물고기로 가면 100단위만 남고, 최종 소비자인 인간에게 오면 결국 10단위밖에 활용되지 못한다. 이렇게 각 영양단계마다 에너지가 낭비되는데, 생태계 특성에 따라 낭비규모는 80∼95% 된다.

채식은 식량문제 해결에도 기여

그는 여기서 영양단계를 축소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설명한다. 1000t의 풀은 메뚜기 2700만마리를 먹여살릴 수 있고, 이 메뚜기는 개구리 9만마리를, 이 개구리는 송어 300마리를 먹여살릴 수 있다. 이 송어는 한 사람이 한 달간 먹고 지낼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영양단계에서 송어가 없고, 인간이 직접 개구리만 먹는다면 30명이 한 달간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식량 사정이 절박하여 개구리를 영양단계에서 배제하고 인간이 직접 메뚜기를 먹는다면 900명이 한 달간 버틸 수 있다. 이렇게 낮은 영양단계의 식품을 섭취할수록 많은 사람이 생존할 수 있다.

남상민씨는 이런 에너지 법칙 때문에 채식주의자 수십 명이 음식 섭취에 소비하는 에너지는 육식주의자 한 명이 쓰는 양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전세계의 곡물 생산량 가운데 37%가 가축사료로 사용되고 있다(1995년 통계). 육식을 자제하여 이런 곡물을 식량으로 직접 사용한다면 식량문제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또 가축을 사육하면서 생기는 열대림과 숲의 파괴, 축산폐수 등 환경문제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식 바람이 거세지면서 채식동호회와 전문음식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공간이 PC통신이다. 하이텔의 ‘vega’, 천리안의 ‘vege’, 다음의 ‘채식사랑’, ‘지구사랑’, 프리첼의 ‘생명채식동호회’ 등이 대표적이다. 채식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채식운동가들이 만든 ‘푸른생명한국채식연합’(www.vegetus.or.kr), ‘생명과 환경을 살리는 채식모임’(www.veg.or.kr) 등에 잘 나와 있다.

채식 전문식당도 늘고 있다. 풀향기, SM채식뷔페, 시골생활건강식당, 산골채식건강식당, 뉴스타트건강식당 등 채식 전문 음식점은 밋밋한 풀만 먹는 차원에서 벗어나 입맛을 돋우는 여러 채소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이 음식점의 콩단백 켄터키치킨과, 채식 샤브샤브, 채소햄, 콩단백 육포 등은 마치 고기를 먹는 느낌이다.

채식 붐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훨씬 오래 전에 채식운동이 시작되었다. 현재 국제채식주의자 모임이 추산하는 채식주의자는 세계 인구의 3% 정도. 채식 인구가 400만명이라는 영국은 1996년 최초로 광우병 파동이 난 이후 1700만명이 고기 섭취를 줄이거나 끊었다고 한다. 유럽지역에서는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이 특히 적극적이다. 인도는 종교적 이유로 채식을 즐기고 있다.

채식운동은 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창설된 아시아채식주의자모임은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처럼 채식주의자들의 활동이 거의 없는 지역부터 우선적으로 본부를 만들어 본격 활동에 들어가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이 나라들은 기본적인 식단이 채식 위주였지만, 육식 위주의 서구식 식단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서 최근 폐해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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