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호

“히포크라테스 정신? 자부심도 돈도 떠났는데…”

  • 하태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9-19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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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당 근로시간 130시간, 본봉 70만원대. 13년 넘게 의학을 공부하고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는 레지던트 4 년차의 현주소다. 의약분업에 반발한 파업에서 가장 목소리를 높였던 전공의·수련의들은 7월13일 정부가 내놓은 약사법 개정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해 제2의 의료대란도 점쳐지고 있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원자력 병원 등 3개 병원의 전공의·수련의들과 7일간 합숙생활을 하며 보고 듣고 느낀 의사파업의 본질, 그리고 그들의 애환. 》
    7월10일 오전6시3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암센터 5층 신경외과 의국. 10여평되는 방에는 잘 정돈되지 않은 책상 5개가 놓여 있었고 출입구 오른편 구석에는 허름한 철제 2층 침대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방 가운데에는 그 전 날 먹다 만 것으로 보이는 햄버거가 뒹굴고 있고, 침대위에는 잠옷 대용으로 사용하고 벗어 던진 녹색 수술복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책상 위에는 음식을 자주 시켜먹기 때문인지 중국집 도시락집 등에서 보낸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전공의 의국 풍경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시계는 어느덧 오전 6시반을 지나고 있었다. 중환자실로 신경외과 의국장 권흠대씨를 찾아 나섰다. 60평 정도로 보이는 방에는 각종 호흡장비, 영양주사, 심장박동 체크기 등을 주렁주렁 매단 환자들이 고통스러워 하며 잠을 청하고 있다. 대부분 뇌를 수술한 탓인지 삭발한 상태의 환자들 머리에는 실밥이 보인다.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 사이사이에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보였다. 환자들의 손을 꼬옥 잡은 채 차도를 묻기도 하고 수술이 끝났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환자들에게 큰소리로 이것저것 물어보며 의식회복을 독려하는 의사도 있었다. 권씨의 행방을 묻자 곧 올테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다. 복도 끝에서 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짧게 짜른 반 고수머리에 다부진 체격이 군대로 치면 영락없는 훈련조교다.

    “오셨습니까. 곧바로 시작하시지요.” 목소리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권씨 옆에는 어느새인가 레지던트 1년차 황교준씨(27)가 와 있었다. 호출을 받고 달려 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때가 오전7시. 권씨는 황씨에게 담당 환자 리스트를 인계하며 오전 7시반까지 환자를 둘러보고 오라고 지시했다. 환자가 앓고 있는 질환이 무엇이며 몸 상태는 어떤지 등 환자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파악하라는 것.

    “오전에만 호출이 100번 옵니다”



    중환자실을 빠져 나온 황씨는 거의 달리다시피 병동을 누비기 시작했다. 도무지 말을 붙일 여유가 없었다. 말을 붙일 여유라니! 어찌나 빠른 걸음으로 다니는지 따라 붙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그렇게 30분을 다닌 황씨는 약속시간인 오전7시반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중환자실에는 신경외과 기능질환(functional)팀 4명이 모여 환자상황을 체크하고 하루 일정을 논의하는 간이회의가 열렸다. 4년차 치프 권흠대씨 주재로 레지던트 3년차 심규원씨, 2년차 신동아씨(28) 그리고 1년차인 황교준씨가 모였다.

    30여분간 환자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 이들은 환자들의 CT촬영 필름과 MRI판독사진, 그리고 기록차트 등을 들고 판독실로 갔다. 각 환자의 주치의인 교수들에게 브리핑을 하기 위해서다. 물론 각종 차트와 필름을 운반하는 일은 1년차 황씨 몫. 오전8시10분경 판독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신경외과 정상섭, 박용구 교수 등이 방에 들어왔다. 수술준비를 위해 수술실에 간 권씨 대신 심규원씨와 황교준씨가 브리핑을 맡았다.

    교수의 회진수행이 끝나면 담당 환자들에 대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4명이 한 팀을 이루지만 수술에 전념하는 4년차 치프나, 환자회진 수술참여 등으로 바쁜 2,3 년차들은 처방전을 쓰지 않기 때문에 모든 처방전을 1년차 레지던트가 쓴다. 담당환자가 50여명이니 처방전 쓰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암센터 5층에는 인턴실이 있다. 103명의 인턴이 1년 동안 수련의 생활을 하면서 사용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컴퓨터, TV, 냉장고, 전자레인지 소파 등이 마련돼 있어 피로에 지친 인턴들이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다. 수술복 차림으로 오전 TV방송을 보는 사람, 신문을 뒤적이는 사람,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 허공으로 담배를 뿜어대는 사람, 소파에 몸을 기대고 쉬는 사람 등 제각각이다.

    오전 중에 황씨가 해야 할 일 중 중요한 것이 CT촬영. 환자가 많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제시간에 CT촬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황씨의 설명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푸시(push)’란 관행. 15개의 CT 촬영방을 일일이 다니며 우리 환자를 먼저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푸시’다. 이 환자는 언제까지 촬영을 마치지 않으면 큰 지장이 생긴다는 은근한 압력도 잊지 않는다.

    한때 전국민이 하나씩 가지고 있던 호출기. 이제는 휴대폰에 밀려 호출기를 가진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분초를 다투는 기사를 송고하는 기자들도 호출기를 애용했지만 이제는 허리에 호출기를 단 기자는 드물다. 하지만 인턴이나 레지던트에게 호출기는 생명줄과도 같다. 목이나 허리, 아니면 가운 주머니 등 호출음이 가장 잘 들리는 위치에 호출기를 착용하고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병원 이곳저곳을 다니는 황씨의 호출기는 약간 과장하면 거의 1분 단위로 한번씩 울렸다. 환자를 돌보고 처방전을 내리고, CT촬영을 부탁하는 중간중간 호출기가 울려댈 때마다 황씨는 그다지 유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후를 지나고 100여통의 호출을 받은 황씨의 입에서는 결국 “에이 ××, 정말 돌아버리겠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신경외과 기능질환 파트의 모든 호출은 일단 1년차 레지던트에게 몰린다. 1년차 레지던트는 호출을 받은 뒤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이면 자신이 처리하고 그렇지 않고 중한 일이면 고참 레지던트에게 도움을 청한다. 물론 일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삐비비비’. 오전11시 40분경 또 호출기가 울렸다. 5층 복도를 걷던 황교준씨는 급히 간호사실에 있는 전화로 뛰어간다. “황교준입니다…알았습니다. 곧 내려가겠습니다.” 황씨가 급히 복도 끝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뛰어간다. 황씨가 누른 곳은 지하1층. 응급실이 있는 곳이다. 밀려든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룬 응급실 통로 휠체어에 초췌한 환자가 앉아 있고 주변에는 걱정스러운 눈빛의 가족들이 서성이고 있다.

    찜질방에 근무한다는 이 환자는 전날 야근을 마친 뒤 퇴근하려고 옷을 갈아입으려다 신체 일부분에 마비가 온 70대 남자. CT필름을 살펴보니 뇌출혈이다. 황씨가 “평소 이런 증상이 온 적이 있느냐, 구토는 있었느냐, 다른 질환은 없느냐” 는 등의 질문을 하자 가족들은 “다른 선생님들이 와서 벌써 몇 번째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며 짜증섞인 반응이다.

    뇌출혈 환자인데 빨리 입원실을 알아봐달라고 요구한다. 황씨는 “뇌출혈로 들어온 환자인데 신경과에서 환자를 보느라 시간을 보냈다”며 빠른 처리를 약속했다(이 환자는 병실이 확보되지 않아 결국 오후3시경 일산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어느덧 시간은 낮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뇌출혈 환자의 차트와 CT필름은 든 황씨는 신경외과 응급실에 있는 의사당직실로 가 레지던트 3년차에게 환자의 상황을 자세히 보고했다. “담배나 한 대 피죠.” 5시간 만에 기자에게 던진 황씨의 첫마디다. 흡연실에서 황씨는 “영동세브란스 병원에서 4개월간 근무하다가 오늘이 신촌 세브란스 첫 출근이에요. 아직 환자 파악도 안되고 정신이 없어요” 라며 씨익 웃어보인다. “점심은 안 먹느냐”는 질문에 “이래가지고 밥 먹겠습니까”라며 담뱃불을 급하게 끄고 일어선다.

    수술이 끝난 환자를 회복실에서 데려와 CT를 찍은 뒤 중환자실로 데려오고 환자들에게 처방내리고, 병동 5층, 7층, 8층을 회진하던 황씨는 오후3시경 의대본관에 위치한 시청각 사진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씨를 기다리는 사람은 사지가 떨리고 수족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신경계의 난치병인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40대 남자 환자. 팔운동, 걷기, 글씨쓰기, 환자복 단추를 풀고 채우기 등을 모두 비디오 테이프에 기록했다.

    오후4시까지 황씨가 한 일은 대부분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잡무에 가까웠다. 신경외과는 워낙 전문분야여서 인턴은 물론 레지던트 1년차도 수술방에 들어가지 못한다. 인턴실에서 마주친 한 레지던트가 황씨에게 농담을 던진다. “우리 살기 너무 힘들지 않냐?” 황씨는 그저 웃을 뿐. 벌써 회진 돌 시간이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오후 6시. 응급실에 두 명의 신경외과 환자가 대기중이라는 연락이다. 응급환자를 보는 것도 오늘 응급실 당직인 황씨 몫. 차트와 CT촬영 결과를 보니 6세의 남자아이는 뇌수종, 다른 60대 여자환자는 뇌경색 환자였다. 자기 환자는 아니지만 심전도 검사 등 간단한 검사 등을 마쳤다.

    한숨 돌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호출기가 울렸다. 오후에 수술을 받은 환자가 회복실에 누워 있다가 CT를 찍지 않은 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는 것. 뇌 부위에 큰 수술을 받은 뒤에는 예상치 못한 출혈 등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CT를 찍어둬야 한다는 것이 황씨의 설명. 부랴부랴 환자를 중환자실에서 끌어내 CT실에 보내 촬영를 하고서야 담배를 한 모금 빨 기회가 생긴다.

    성격좋은 의사=능력없는 의사?

    “집에는 가시나요?” 기자의 질문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 일주일치 옷 가지러 잠깐 들러요”라고 답한다. 아침은 물론 점심까지 걸러 거의 탈진상태에 빠진 기자는 “저녁까지 거르실 작정인가요?”라며 절박한 심정으로 물었다. 황씨는 “점심은 의국에서 가끔 시켜먹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먹지 않는다”며 “저녁은 거의 먹는 편”이라고 말했다. ‘휴우’하고 한숨이 나왔다.

    밤 8시40분경 CT촬영실에 신경외과 기능질환팀이 모였다. 권흠대씨가 수술을 다 마치고 자신이 수술을 한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CT방에 들렀기 때문이다. 12시간 이상 황교준씨와 생활을 한 소감을 말하면서 “많이 힘들어 하더라”고 말하자 권씨는 “오늘이 가장 ‘스테이블’한 날인데 무슨 소리냐”고 말했다. 황씨가 첫날이라 적응이 안돼서 힘들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옆에 있던 3년차 심규원씨도 한마디 거든다. 신경외과는 항상 동시에 3,4가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경이 곤두 설 수밖에 없다는 것. 신경외과 의사가 주위 사람들에게서 “성격좋네요” “차분하시네요” 란 소리를 들으면 그것은 신경외과 의사 자질이 부족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

    CT실에서 망중한(忙中閑)을 즐긴 레지던트 4명은 밤 9시부터 또다시 회진을 시작했다. 수술받은 환자들에게 수술 후 주의사항을 환기시키고 간호사들에게는 올바른 간호요령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병동을 회진하던 중 권씨는 폐암말기 환자의 가족을 만났다. 폐에서 시작한 암이 머리까지 번진 4기 암환자로 수술을 할 경우에도 소생하리라는 보장은 없는 중환자였다.

    7월11일 감마나이프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간에는 이견이 있었다. 이미 시한부 인생인데 1000만원대에 달하는 수술비를 들여가며 수술을 받아 뭐하느냐고 주장하는 쪽과 아무리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족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 권씨는 “가족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저희는 수술을 강요하지 않는다”라며 “가족들이 합의한 뒤 결정사항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밤 9시45분경 회진이 끝나고 신경외과 의국으로 돌아오자 책상에는 음식이 배달돼 있었다. 두어시간 전에 배달됐는지 김치찌개는 이미 식어있고 국수도 퉁퉁 불어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지만 권흠대씨는 마무리 회의를 진행했다. 오늘 수술을 받거나 입원한 환자 50여명에 대한 종합정리시간이었다. 아울러 내일 할 일에 대해 팀원들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자리였다. 오늘 신촌 세브란스로 첫 출근한 황교준씨에 대한 질책과 격려도 이어졌다. 오늘은 첫날이라 여러 가지 미숙한 일이 있어도 참았으니 내일부터는 실수 없도록 하라는 권씨의 추상같은 호령이 있었다.

    식사를 하는 중간 중간 권씨를 비롯한 레지던트들은 최근 문제가 됐던 의약분업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3년차 심규원씨는 불쑥 “우리가 한 달에 월급을 얼마정도 받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200만원쯤 받지 않느냐고 대답하자 의국 한귀퉁이에 쌓인 서류더미에서 채 개봉하지도 않은 월급명세서를 내민다. 레지던트 4년차의 6월 급여를 보니 본봉이 68만원대였다. 이달은 50%의 보너스가 있는 달이어서 이런저런 수당과 교통비 등을 합쳐 실수령액이 150여만원이었다. 매달 같은 월급을 받는다고 가정해 연봉을 계산해 보니 약 1800만원 정도였다.

    권흠대씨는 “우리가 받는 돈이 무작정 적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며 “같이 생활해 봐서 알겠지만 전공의나 수련의 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 관리들은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월급 몇푼 올려주면 조용해질 것이라는 둥 상황인식을 잘못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신들이 무조건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국가가 시행해온 의료정책의 부조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의료인들이 정부의 시책에 맞서 항거하지 못하고 밀월관계를 유지해 오다가 뒤늦게 병원을 집단적으로 폐업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것. 하지만 젊은 전공의나 수련의들이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된 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레지던트 2년차인 신동아씨도 “이번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의약분업을 실시하되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하라는 요구일 것”이라며 “의과대학을 포함해 15년에 가까운 세월을 수련의 기간으로 삼는 의사들이 해야 할 진료행위를 학부에서 4년간 공부한 약사에게 분담시킨다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1년차 레지던트 황교준씨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주치의 브리핑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 필름을 판독하고 차트를 분석해 환자의 특성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뇌를 비롯한 신경계통에 큰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순간적으로 위급한 상황에 빠질수도 있기 때문에 병실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 할 수 없다. 성공리에 수술을 마친 환자라도 환부에 염증이 생기지는 않는지를 세심히 살피고 하루에도 3,4차례 소독을 해줘야 한다.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보면 어느새 먼동이 터오는 날이 부지기수다.

    밤을 새는 것은 1년차 레지던트 뿐만이 아니다. 신경외과 중환자실 한구석에서 열심히 차트를 정리하는 김대야씨는 인턴이다. 김씨는 7월8일 연세대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전공의 비상총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는 바쁜 와중에도 대다수의 전공의가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투표결과도 90% 이상이 현재의 의약분업안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재파업에 돌입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시계가 새벽 1시를 넘어가도 인턴과 레지던트들은 활동을 멈출 줄 모른다. 병동에는 심전도를 체크하고 환자의 환부를 드레싱 하는 전공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응급실에는 수시로 밀려오는 응급 환자들을 돌보는 손길이 멈출 줄 몰랐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것이 눈꺼풀의 무게라고 했던가.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에게 처방전을 쓰던 레지던트 1년차 조준형씨가 연이은 야근의 피로를 이기지 못해 고개를 자주 떨군다.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간호사가 “저래가지고는 오늘 밤 안에 일 안 끝나지. 처방전 ‘오더’는 내려야겠으니 불안하고, 그렇지만 피곤하고 졸립기는 하지. 괴롭겠어 정말”이라며 놀려댄다.

    “후회할 시간조차 없어요”

    후배 전공의들만 밤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레지던트 4년차 치프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의국에서도 밤을 밝히는 사람이 있었다. 신경외과 소아과 척추파트 레지던트 치프 신준재씨(30). 근무시간에 짬을 내기 어려우니 일과가 끝난 뒤부터 학위논문을 쓰느라 졸린 눈을 비빈다.

    자신도 인턴 때는 착한 의사였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신씨는 시간이 지나 4년차 레지던트가 된 지금에 와서는 슬프게도 더 이상 착한 의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인턴 때 같으면 지치고 병든 환자들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여도 어지간하면 참고 웃으려던 자신이었지만 이제는 환자가 조금이라도 성질을 건드릴라 치면 먼저 발끈하고 성을 내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 하지만 이런 일이 모두 5년 넘게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체득한 습성 아니겠느냐며 씁쓸해 했다.

    신씨는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다. 영동세브란스 근무 시절에 한 입원환자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병원이나 의사의 과실이 아니었고 생명을 연장시킬 수 없었는데도 유족들이 병원으로 몰려와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목격한 것. 흥분한 유가족들은 의사나 간호사 등 보이는 사람마다 멱살을 잡으며 상소리를 해댔고 심지어는 따귀를 때리기까지 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한 것을 처음으로 후회한 때였다.

    여러 전공의 수련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느새 동이 텄다. 새벽6시 병원은 벌써부터 활력이 넘친다. 황교준씨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밤새 환자기록을 정리하고 브리핑에 대비한 탓이지 수척해 보인다. 잠을 못자서 그런지 눈도 충혈된 것 같다.

    6시반 권흠대 치프가 와 환자들 차트와 CT필름을 보면서 설명을 해보라 한다. 나름대로 설명하는 황씨지만 권씨는 이맛살을 찌푸린다. 급기야 설명을 중단시키고 이것저것 물으니 황씨의 목소리는 더 작아지고 있었다. 권씨의 입에서는 불호령이 떨어지고 기본기를 제대로 갖추라는 ‘설교’가 10여분간 이어졌다.

    잠시 담배를 피러 나온 황씨는 “세게 훈련시킨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더 강도가 심하다”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후회할 시간조차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담배 몇 모금을 급히 빨아들인 황씨는 또다시 잰걸음으로 병동을 향했다.

    레지던트와 인턴의 생활은 약간 다르다. 이미 자신의 전공분야를 선택한 레지던트와 달리 인턴은 매년3월부터 1년간 1개월 단위로 각과를 돌며 기초수련을 받는다. 한 과에서 1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을 수련하기 때문에 각과의 전문적인 영역까지 간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 인턴이 맡는 일은 의사와 간호사 업무의 중간 정도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7월5일 밤8시 서울대병원에서 내과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김성환씨(26)를 만났다. 190㎝가 넘는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서울대 인턴 대표를 맡고 있는 김씨는 마침 오늘 당직이니 차분하게 얘기하자며 8층에 있는 인턴 당직실로 안내했다. 화장실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당직실은 2층 침대 2개가 있어 사람 3명이 서 있기 곤란할 정도로 협소했다. 내과와 안과, 비뇨기과 인턴들이 숙소 겸 휴식공간으로 활용하는 곳이다.

    서울대 인턴은 자잘한 일이 많기로 유명하다. 김씨 스스로도 수련의라 부르기에 민망한 일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보통 다른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하는 ▲채혈 ▲환부소독 ▲정맥주사 등을 모두 인턴이 하는 것. 간호사로부터 정맥주사를 잘못 맞은 환자가 중태에 빠진 일이 발생한 뒤 취해진 조치다. 이런 일은 대부분 새벽6시부터 시작된다. 보통 오전9시경 수술이 시작되므로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시간에 대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씨가 근무하는 병동은 내과계 질환 중에서도 콩팥의 기능이 정상적이지 않은 환자들이 모인 특수병동. 정상적으로 소변을 보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소변을 체외로 걸러주는 일을 자주한다. 남자환자들의 경우 간호사들이 바지를 벗기고 소변을 걸러주는 것을 껄끄러워 해 거의 인턴들이 그 일을 전담한다.

    하루 당직비 1만원

    의사들은 ‘퐁당퐁당’이란 말을 다 안다. ‘당’은 당직을 ‘퐁’은 정상근무를 말한다. 대부분의 인턴들은 하루걸러 하루 당직을 서서 퐁당퐁당이다. 하지만 말이 퐁당퐁당이지 많은 인턴들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집에 가는 것이 관례다. 그래서 인턴 숙소에 보면 큼지막한 여행가방이 여러 개 놓여있다. 물론 가방안에는 일주일치의 내의와 양말, 그리고 셔츠가 가득 담겨 있다.

    김성환씨는 의사들이 당직을 서면 당직비가 얼마쯤 될 것 같냐고 물었다. 내심 그래도 3만원은 주겠거니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하룻밤 당직비가 고작 1만원이란다. 그나마 내과 응급실 당직은 아예 당직비를 받지 못한다. 그래도 서울대는 좀 나은 편으로 여타 병원들은 5000원이나 6000원인 경우도 허다하다. 서울대 병원의 인턴 기본급은 70만원대고 연봉은 2000만원 정도다.

    김씨는 “전공의나 수련의들은 각기 자기 분야에서 일이 바쁘기 때문에 일단 업무에 복귀한 뒤에는 한 자리에 모여 토론을 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모이기 힘든 만큼 재파업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집단행동을 다시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 스스로도 의사집단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아래쪽의 의견이 위로 전달되는 것이 그리 자유로운 편은 아니라고 말했다.

    지난달 파업에서도 인턴들의 목소리는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씨는 “의사의 업무 특성상 인턴은 레지던트에게 종속된 사람입니다. 레지던트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에 따라야 한다는 묵계가 있는 셈이지요”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파업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의사의 대표기구인 의사협회가 파업을 결정한 마당에 반대의견을 말해 분란을 일으키기보다는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는 것.

    1주일간 파업을 하고 나서 가장 껄끄러웠던 것은 환자를 다시 만나는 일. 김성환씨는 “솔직히 병실에 들어가는 것이 좀 망설여지더라”며 “제 앞에서 대놓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는 환자는 없었고 대부분 ‘고생하셨지요’라며 안부를 묻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의사에 대해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이며 예우하지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 대다수 의사들의 생각. 김씨는 “어려운 병을 치료해주면 의사의 당연한 의무라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멱살부터 잡고 보는 것이 요즈음 풍토”라며 씁쓸해 했다. 심지어 ‘아저씨’라고 부르는 환자도 부쩍 늘고 있다는 것.

    같은 병동에서 내과 인턴으로 일하는 김유일씨(27)는 흉부외과에서 일한 한 달을 잊을 수 없다. ‘가정파탄과’라고도 불리는 흉부외과는 신경외과와 함께 업무강도가 세기로 유명하다. 수술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수술을 위한 마취준비부터 수술이 끝나고 난 뒤 회복실에 옮겨져 마취가 풀려 의식을 회복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생명과 직결되는 장기인 심장 폐 등에 질환이 생긴 환자라 까딱 잘못하면 생명을 잃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옆 내과병동 인턴인 김계완씨도 “외과파트는 업무는 고되지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환자에게 새 생명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아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맞장구를 친다. 유로2000 축구대회가 열렸던 지난주에는 낙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나마도 없어 서운하다며 농담을 하는 김씨는 “여유가 생겼을 때 통닭 시켜 놓고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마시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원자력 병원은 암환자 전문병원이다.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레지던트 1년차 김성진씨(29). 오전11시 녹색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일반외과 수술실에 들어가니 위암환자 수술이 한창 진행중이다. 집도의인 방호윤 과장, 레지던트 3년차 김인경씨, 그리고 김성진씨가 81세 된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복부를 절개한 환자의 내장이 훤히 들여다 보이고 수술실 안에는 피가 흥건한 수건이 가지런히 모아져 있다.

    암세포가 생겨 위의 3분의 2 가량을 잘라내야 하는 큰 수술인지라 분위기가 심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수술실 공기는 무겁지 않았다. 위수술 경험이 풍부한데다 워낙 낙천적인 방호윤 과장이 가끔씩 건네는 농담이 바짝 긴장한 레지던트들이나 간호사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탓이다. 위를 잘라내고 흉부세척 등을 마친 뒤 가슴을 꿰매는 것이 레지던트들 몫이다. 김인경씨(여)와 김성진씨는 한땀 한땀 정성스레 환자의 가슴을 봉합한 뒤 비로소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다. 오전9시부터 시작한 수술은 거의 4시간만인 낮12시45분에야 끝났다.

    하지만 1시부터 오후 수술이 잡힌 터라 쉴 틈이 없다. 일반외과 의국에 가 음료와 과일 등을 간단히 먹은 김씨는 또다시 수술실로 뛰어갔다. 두 번째 환자는 아예 위를 통째로 들어내야 한다. 위를 잘라낸 뒤 식도와 장을 연결하는 것이 두 번째 수술의 내용이다. 이번에도 4시간 정도의 큰 수술이었다. 꼬박 8시간 정도를 긴장상태에 서 있은 터라 레지던트들도 힘든 기색이 보인다. 김인경씨가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다리를 폈다 오므렸다 하자 당장 방과장의 입에서 호통이 떨어진다. 10시간짜리 수술도 있는데 그런 것도 견뎌내지 못하느냐는 핀잔이다.

    수술실에 들어오기 전 김성진씨는 자신이 담당한 환자들을 돌본다. 세브란스 병원과 달리 원자력 병원에서는 레지던트들이 주치의다. 오전 내내 배에 복수(腹水)가 찬 말기 위암환자의 복수를 뽑아냈고 가슴혈관을 통해 영양제를 공급해야 하는 환자의 혈관도 찾아야 했다.

    학교졸업생을 고스란히 인턴이나 레지던트로 옮겨 놓는 학교부설 대학병원의 경우 ‘군기’도 세고 경직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원자력 병원은 여러 학교에서 모이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다. 부산 고신대의대를 졸업한 김성진씨는 “학연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경우 대학부설 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하면 나중에 일자리를 잡을 때 유리할 수 있다”며 “하지만 원자력 병원 같은 암전문 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거치는 것도 밀도 있는 교육을 받는 데는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병원에 가면 드문 위암환자가 이곳에는 허다하기 때문. 그만큼 위암수술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의사들이 항상 병원에 남아 야근만 하는 것은 아니다. 7월7일은 마침내 탈장수술을 집도한 레지던트 2년차 박광인씨를 축하하는 회식이 준비됐다. ‘이와이’(일본말로 축하란 뜻)라 불리는 회식은 오후7시반경부터 병원근처 낙지집에서 일반외과 과장, 레지던트, 인턴, 간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외과에서는 맹장수술 다음으로 간단한 수술이지만 어떤 단계를 지났다는 것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것이 의료계의 오랜 관행이다.

    기형적으로 비대한 전문의 비율

    박광인씨에게 축하 꽃다발을 선사하고 간단한 인사말을 들은 뒤 유쾌한 술자리가 벌어졌다. 병원에서 물어보지 못한 것들도 자연스레 물어보고 일반외과를 하면 어떤 점이 힘들고 어떤 점이 좋은가라는 개인적인 관심사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진료부장을 맡고 있는 외과전문의 최동욱 과장은 “이런 회식자리는 1달 내내 억눌려 있던 젊은 의사들이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자리라는 의미도 있다”며 “의사도 기계가 아닌 사람이니까 술먹고 좀 풀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역시 이날 회식에 참석한 대장항문외과 황대용 과장도 이번 의료계 파업과 관련, “의사들이 대대적인 파업을 벌인 이유를 잘 생각해야 한다”며 “전공의들의 파업동참은 자존심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절박한 생존권 투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의약분업안대로 간다면 정말로 150만원짜리 월급쟁이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파업의 근저에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의료계에서 3D로 통하는 외과의사들은 이미 존경도 받지 못하고 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이번 사태로 신뢰까지 잃었다며 안타까워 했다.

    황대용과장은 “그래도 의사들만큼 순수한 집단이 없다”며 “이번 사태로 의사들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다는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대다수의 의사들은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저 환자가 내 어머니나 아버지라면…’이라는 심정으로 수술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술이 거나해질 10시반경 김성진씨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병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날 당직이라 술도 한모금 받아 마신 것 빼고는 모두 사양했다. 병원에 올라가는 길에 김씨는 “평상시에 조용한 것 같아도 늘 위험을 안고 있는 곳이 암병동”이라며 호출기를 살폈다. 수술 마친 환자는 폐렴으로 발전할 소지가 있으므로 긴장을 늦출 수 없고, 큰 수술을 받은 환자는 장기에서 급작스러운 출혈의 위험이 있으니 환자의 상태를 늘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새벽 2시경이 돼서야 김성진씨는 고단한 하루를 접을 수 있었다. 물론 숙면을 취하는 것은 아니고 침대에 몸을 뉘어보는 것. 호출기와 전화는 항상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양말도 벗지 않는다. 이날밤에도 3,4차례 호출을 받아 병동을 둘러본 뒤에야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매일 오전8시에는 의국에서 레지던트들의 회의가 있다. 레지던트 4년차 치프인 김병기씨 주재로 환자의 상황을 정리하고 차트와 필름을 판독하며 케이스 스터디를 하는 자리다. 이날은 토요일이라 수술이 없어 조금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간단한 회의를 마친 김병기씨는 기자의 질문을 받자 의료체계의 문제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 놓았다. 예방의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김씨는 일단 우리나라 의료전달 체계에 문제가 있다며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현재와 같이 1차, 2차, 3차 진료기관의 의보수가가 동일한 구조에서는 3차병원인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 간단한 감기환자도 모두 종합병원을 찾는 현재 구조로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고 동네 병원이나 의원의 생존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98%가 넘는 전문의 비율도 기형적인 거라고 비판한다. 김씨는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뒤 대다수가 개원의가 되고 개원의의 경우 1년이 지나도 배 가르고 위암 수술할 기회가 없는 것이 현실 아니냐”며 “현재의 교육은 지나치게 낭비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의료계 파업에서 공론화하지는 않았지만 전공의들의 월급줄을 쥐고 있는 병원장들에 대한 불만의 소리도 높았다고 말했다.

    의사는 극빈자?

    병원 쪽에서는 싼 임금에 전공의들을 4년간 부려먹다가 내보내면 또 다른 전공의들이 들어오니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 김씨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의대의 숫자는 그만큼 수지타산이 맞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말했다. 과거 외과계열을 제외하고는 3년으로 정해졌던 레지던트 과정을 4년으로 슬그머니 늘린 것도 병원측이 양질의 인력을 싼 값에 좀더 부려먹으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전문의 비율을 줄이고 일반인들 수요에 부응하는 일반의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김씨가 제시하는 해결방안.

    일한 만큼의 대가는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사들의 항변. 이번 파업기간중 대외적으로 목청을 높이지는 못했지만 대다수 전공의들이 가진 불만은 역시 일한 만큼의 댓가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자존심은 물론 환자들의 존경심도 잃은 지 오래지만 이번 파업으로 의사들의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턱없이 부족한 대우 등 전공의들이 직면한 실상을 조금이나마 이해시켰다는 것이 위안거리라는 것.

    “말하기 부끄럽지만 제가 얼마 전에 미국 대사관에 비자신청을 했어요. 1년간 총소득이 1680만원이 찍힌 근로소득 원천징수 영수증을 제출했다가 비자승인을 거부 당했지 뭐예요. 비자발급을 거부당하고 돌아서려니 ‘난 이제 극빈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레지던트 4년 차의 넋두리다.

    7일간의 취재과정에서 50여명이 넘는 전공의·수련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확실히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고, 온몸을 던져 환자를 돌보는 ‘좋은 의사’들이었다. 자신들이 벌인 파업은 올바른 의료서비스 정착을 위해 불가피한 행동이었다는 신념도 확고한 듯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주일간의 파업으로 국민건강에 끼친 불편에 대한 절절한 반성을 하는 전공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니 어쩌면 너무 바쁘고 힘들어 반성할 짬을 내지 못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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