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문해 화제가 된 베이징의 중관춘(中關村)은 중국 IT산업의 중심지다. ‘중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이곳은 ‘중국의 빌 게이츠’를 꿈꾸는 젊은이들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연구개발과 투자열기로 뜨겁다. 》
당시 이 거리에 투입됐던 한 공안은 나중에 이렇게 밝혔다. “북조선의 라오반(老板)이 다녀갔다.” ‘라오반’은 기업 소유주를 일컫는 말. 문화혁명 때만 해도 이 용어는 타도해야 할 대상을 지칭했으나, 지금은 사회적 부와 명성을 갖춘 성공한 기업인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
이날 김정일 북한 총비서는 중국 IT산업의 중심지로 알려진 중관춘(中關村)에 들렀다. 방중사실을 극비에 부친 것치고는 극히 이례적인 방문이었다. 김총비서는 이날 이곳에 있는 중국 최대의 컴퓨터회사 롄샹(聯想)을 둘러보고 5대의 PC를 선물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총비서가 남의 눈에 띌 각오를 하고 방문한 이곳은 어떤 곳일까. 김총비서는 17년 만의 중국방문에서 왜 중관춘을 찾았을까.
베이징대와 칭화(淸華)대, 베이징이공대 등 중국 굴지의 대학들이 모여 있는 베이징 서부 외곽의 하이뎬(海淀)구.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뎬쯔이탸오제(電子一條)’ 거리 양측으로는 컴퓨터와 주변기기, 소프트웨어를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중국의 실리콘 밸리
롄샹(聯想), 베이다팡정(北大方正), 쓰퉁(四通) 등 유명 그룹 빌딩들도 우뚝 솟아 있다.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중국의 거대그룹으로 성장한 회사들이다. 지난해 여름 문을 연 베이다(北大)태평양과학기술발전센터 빌딩과 인텔리전스 빌딩으로 이름난 하이롱(海龍)빌딩도 그 옆으로 늘어서 있다.
지난 1월 중순 중국 경제일보는 이곳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80년대는 광둥(廣東)의 선전(深), 90년대는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이 중국의 발전을 대변했다면, 21세기는 베이징의 중관춘이 대변할 것이다.”
79년 중국은 선전 등 4개 경제특구를 지정하는 단안을 내렸다. 90년에는 상하이 푸둥 지구를 특별개발구로 지정, 새로운 투자열기를 이끌어냈다. 지난 20년간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은 이 두 지역의 순차적 개방효과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중관춘이 이 분야를 맡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중국 정부는 중국 발전방향의 변화를 알리는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 베이징의 중관춘을 ‘중국의 실리콘 밸리’, 중국 과학기술의 메카로 만들어 향후 경제발전을 이끌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향후 10년 내에 대만의 신주(新竹)반도체 단지를 따라잡고, 20년 내에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장주석은 스캐너 등 중국의 컴퓨터 주변기기 시장을 휩쓸고 있는 중관춘의 유망 벤처기업 칭화츠광(淸華紫光)그룹 등을 방문, 이에 대한 관심을 거듭 밝혔다.
향후 10년간 중국은 중관춘 실리콘 밸리 조성계획에 총 2000억위안(약 220억달러)을 투입할 예정이다. 또 이 지역에 투자하는 기업들에 조세감면 등 각종 혜택도 제공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정보기술(IT)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게 21세기를 맞은 중국의 야심이다.
중관춘이 중국 IT산업의 중심지로 등장한 것은 88년. 그해 8월 중국 정부는 첨단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횃불계획이라는 장기전략을 채택하고, 중관춘을 제1호 첨단기술개발구로 지정했다. 그후 지금까지 중국 전역에서 첨단기술개발구로 지정된 지역은 모두 53개소에 이른다.
빌 게이츠를 꿈꾸는 젊은이들
중관춘은 남쪽 바이스차오(白石橋)에서 북쪽의 과학촌에 이르는 총연장 8km의 전자상가와 ‘중관춘 과학촌’ ‘상디(上地)정보산업단지’로 이뤄져 있다. 과학촌은 중국과학원과 중국공정원 연구인력 1만5000명을 보유한 중국 최고 두뇌집단의 집합처로 첨단과학기술산업의 배후지 노릇을 하고 있고, 상디정보산업단지는 미국의 IBM과 제네럴 일렉트릭(GE), 덴마크의 노르보 노르디스크, 일본의 미쓰비시 등 130여개에 이르는 세계적인 기업들과 중국의 중견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전자정보산업 전문단지다.
지난해 말 현재 이 중관춘에 들어선 첨단과학기술업체 수는 6690개사. 지난 한해 동안 1227개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무기로 간판을 내걸었다. 이 지역이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한적한 교외였던 점에 비추면 뽕밭이 푸른 바다로 바뀐 셈이다.
89년 17.8억위안에 불과하던 이 지역의 총매출액도 지난해 864.1억위안(12조1000억원)에 이르렀다. 10년 사이에 무려 48배 증가한 것이다. 올해 매출액 목표는 1100억위안. 2010년에는 6000억위안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정부의 새로운 정책과 함께 기업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베이다팡정그룹은 올초 ‘백만장자 100명 배출계획’에 들어갔다. 직원들에게 주식을 분배하는 등 부자를 양산해냄으로써 새로운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롄샹그룹 등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중국농업대 동물영양학 박사 샤오건훠(邵根) 교수가 설립한 다베이눙(大北農) 하이테크농업공사 등은 몇 년 전부터 직원들을 상대로 주식 분배를 실시, 일부 직원 가운데 백만장자도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칭화대와 베이징대 등은 대학생 창업교실을 열어 학생들의 창업열기를 고취하고 있다. 학생 신분으로 벤처기업을 창업, 백만장자 반열에 오른 사람도 있다.
중관춘은 ‘중국의 빌 게이츠’를 꿈꾸는 젊은이들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연구개발과 투자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중관춘에 최초의 벤처기업이 들어선 것은 중국의 개혁개방이 이뤄진 지 불과 2년 만인 1980년 말이었다. 당시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 주임이던 천춘센(陳春先) 교수는 동료연구원 14명과 함께 중관춘의 한 창고건물에 ‘선진기술복무부’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그해 미국을 방문, 애플사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그가 중국 정부를 설득해 만든 회사였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지금 같은 규모는 아니었다. 이들은 학생을 지도하는 등 본업을 유지한 채 매월 15위안(약 1800원)의 수당을 받고 기업을 꾸렸다. 처음 한 일은 미국 회사의 위탁을 받아 데이터 카드에 천공을 하는 일이었다. 이 회사가 지금의 화샤실리콘밸리(華夏硅谷)사로 성장했다.
이들의 빠른 발전에 놀란 베이징시와 하이뎬구 정부는 이때부터 첨단기술 기업 설립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다. 83년에는 징하이(京海), 84년에는 커하이(科海)와 신퉁(信通) 그리고 쓰퉁(四通) 등이 간판을 내걸었다. 이들 네 기업은 ‘양통양해(兩通兩海)’로 불리며 오늘의 중관춘이 만들어지는 기초를 닦는다.
지금 중관춘을 대표하는 기업은 단연 롄샹이다. 롄샹은 중국 최대의 컴퓨터 메이커. 5월 말 중국을 극비 방문했던 북한의 김정일 총비서가 베이징에서 유일하게 찾아 나선 기업이기도 하다.
롄샹의 발전사는 중국인들의 자부심이다. 롄상은 84년 중관춘의 한 단층가옥에서 출발했다. 중국과학원 연구원 11명이 직원의 전부였다.
그후 10여년 만에 롄샹은 아시아 최대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중국 최고의 컴퓨터회사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203억위안. 125만8000대의 컴퓨터를 팔았다. 이를 통해 2년 연속 중국 전자업계 최고기업의 자리를 유지했다.
지난 4월 롄샹은 그룹조직을 정리, 컴퓨터 관련산업을 주관하는 롄샹컴퓨터와 전자상거래를 맡는 롄샹선저우(神州)디지털이라는 두 개 회사로 재편성했다. 전자상거래가 급팽창할 것에 주목한 것이다.
롄샹보다 규모는 뒤지나 중관춘의 정신을 상징하는 기업이 베이다팡정이다. 베이다팡정의 역사는 문화혁명 말기인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과학원 컴퓨터연구소 연구원이던 왕쉬안(王選) 교수는 베이징대 연구진과 함께 한자 레이저 인쇄방식을 연구했다. 한자를 오랜 활판인쇄 문화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한자는 활자를 하나하나 찾아 인쇄하기에는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오자도 많았다. 이 때문에 이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관심은 대단했다.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이 프로젝트를 ‘748공정’이라고 직접 명명했다.
이 프로젝트를 완성한 ‘748공정’ 팀은 87년 베이징대의 후원으로 ‘베이다(北大)과학기술복무부’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베이다팡정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레이저인쇄 프로그램과 제어기를 주요상품으로 각종 컴퓨터 관련 기술들을 개발 판매했다. 컴퓨터 제조 분야에도 진출, 이 그룹은 현재 중국 컴퓨터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롄샹, 베이다팡정과 함께 중관춘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쓰퉁(四通)이다. 84년 타자기와 MS-도스용 워드프로세서 판매로 출발한 쓰퉁은 그동안 다방면으로 기업을 확대했다. 이 때문에 중국의 대표적인 문어발기업이라는 말도 나왔다. “초코파이 공장까지 있다”고 비난받을 정도다.
그러나 쓰퉁이 여전히 IT업체로 분류되는 것은 중국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어 워드프로세서 WPS와 중국 최고의 인터넷 포털업체인 신랑(新浪)망(sina.com)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보기술(IT)업계에서 제법 성공했다는 사람이 불과 이태 전 이렇게 말했다. ‘중국에서 인터넷은 아직 이르다. 10년 후라면 모를까.’ 그러나 그동안 상황이 급변했다. 눈길 닿는 데마다 ‘.com’(포털서비스업체)이다. 시나(sina.com), 네티즈(netease.com), 소후(sohu.com)는 이미 자리를 잡았다. 차이나컴(china.com)도 여전히 서양사람들의 돈을 긁어오며, 주가도 단번에 5배나 뛰었다. 시시드넷(ccid net.com), 차이나런(chinaren.com), 런런(renren.com)도 뒤처질 줄 모르고 따라붙는다. 인터넷 풍우(風雨)는 언제 그칠 줄 모르고, ‘.com’업체는 우후죽순식이다. 이는 실로 한마디도 과장이 아니다.”
99년 중국 정보기술(IT) 산업계의 ‘10대 경악 뉴스’를 선정 발표한 중국계산기보(報)는 ‘.com’업체가 중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는 소식을 제1위로 전하면서, 이와 같이 재치 있게 소개했다.
베이징 시산환(西三環)로의 수도체육관 부근. 중관춘 초입인 이곳에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있다. 인터넷 카페 ‘스화카이(實華開)’가 그것이다. 영문명은 ‘SPARK-ICE’. 96년 베이징에서 최초로 개설된 PC방이다. 카페에 들어서면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채팅이나 자료검색에 몰두해 있다. 모니터는 한결같이 삼성전자의 싱크매스터다. 인터넷 이용료는 시간당 15위안(1800원). 음료수값은 따로 받는데도 불구하고 하루에 150~200명이 찾아온다고 종업원이 설명한다.
인터넷 카페의 인기
이 인터넷 카페가 인기를 끌면서 베이징에서는 곳곳에 비슷한 카페들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커피를 마시면 인터넷을 무료로 이용하게 하는 인터넷 커피점도 생겼다. 스화카이도 불과 4년 만에 베이징과 톈진(天津)에 10개의 분점을 가진 체인점으로 성장했다.
중국에서 인터넷은 ‘후롄왕(互聯網)’으로 불린다. 서로 연결하는 망이라는 뜻으로 인터넷의 의역이다. 중국에 인터넷이 처음 등장한 것은 87년. 컴퓨터 엔지니어인 첸톈바이(錢天白)가 독일 칼스루에 대학에 이메일을 보냈던 것이 중국대륙과 서방세계의 첫 인터넷 접속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만 해도 동서 양진영간에 이념의 벽이 높았다. 92년 중국 대표가 일본 고베(神戶)에서 열린 국제인터넷대회에서 중국의 인터넷망 가입을 논의했을 때 미국 대표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미국 정부기관 홈페이지가 많아 중국이 직접 접속하기에는 정치적인 벽이 높다.”
그러나 정치의 벽은 정보의 흐름을 막지 못했다. 94년 4월 미·중 양국은 중국의 인터넷망 가입에 합의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르면서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관영 중국인터넷정보센터(CNNIC)는 중국 인터넷 이용자수가 97년 10월 62만명에서 98년 말 210만명, 지난해 말에는 890만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불과 2년 사이에 14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도메인수도 97년 4066개였으나 지난해 말 4만8695개로 10배 이상 늘었다. www 서버도 1500개에서 1만5153개로 증가했다. 지난해 이후 정부기관들도 홈페이지 개설에 힘을 쏟고 있다. 네티즌의 폭도 넓어졌다. 20∼35세의 젊은 지식층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나이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영어를 모르거나 영어에 익숙하지 않는 네티즌을 위해 중국 당국은 중국어 주소 사용도 장려하고 있다.
CNNIC에 따르면 중국 인터넷 이용자수는 2002년에는 6100만명에 이를 전망. 이렇게 되면 중국은 불과 2년 후 미국에 뒤이은 인터넷 대국이 된다. 그동안 이용자들의 불만이 집중된 인터넷의 접속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허가한 인터넷 서비스망은 모두 5개. ‘차이나넷’과 ‘진차오(金橋)’ ‘유니넷’은 공용 서비스고, ‘과학기술망’과 ‘교육컴퓨터망’은 정부기관이 사용하는 공익망이다.
현재 중국의 주요도시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회선용량은 미국에 비해 1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중국은 올해 안에 회선용량을 3배로 확장한다는 야심적인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또한 빈약했던 사이트 내용도 빠르게 풍부해지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인터넷 시장을 개방하지 않았다. 개인이나 단체의 홈페이지 개설도 제한했다. 국제인터넷 접속도 통제해왔다. 중국에서는 아직 CNN이나 미국의 신문사이트는 접속할 수 없다. 대만과 홍콩의 사이트도 접속이 통제되고 있다.
이러한 제약은 올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함께 다소 해소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당분간 인터넷 접속 서비스(ISP)업은 개방하지 않더라도, 인터넷 콘텐츠 제공(ICP)업 분야의 개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CNNIC는 지난 5월 말로 중국 인터넷 인구가 1000만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신지식인 知本家
중국의 인터넷 폭발을 선도해온 것이 중관춘이다. 중관춘에는 중국 최고의 인터넷 포털업체인 신랑망을 비롯, 각종 인터넷 관련 서비스업체가 포진해 있다. 새로운 기술로 인터넷 서비스에 뛰어드는 업체도 부지기수다. 하이롱빌딩이나 태평양빌딩 등 최근 들어선 대규모 빌딩은 층마다 이들 업체들이 빼곡이 메우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아리바바(aliba.ba.com) 총재 마윈(馬雲). 항저우(杭州) 전자공업대 영어강사로 있던 그는 95년 꿈에도 그리던 미국을 방문했다. 첫 해외나들이였다. 미국에서 그는 깜짝 놀랐다. 인터넷에 ‘맥주(beer)’를 입력하면 독일 맥주공장도 미국 맥주유통업체도 나왔으나 아쉽게도 중국 자료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중국(china)’을 입력했다. ‘노 데이터(no data)’였다. ‘중국문화(chinese culture)’를 입력해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역사’를 치자 5000년의 유구한 중국역사가 불과 50여개의 단어로 설명된 게 전부였다.
그때부터 그는 인터넷을 통해 중국을 소개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중국기업들의 제품이나 구매 정보도 올렸다. 중국 최대의 사이버시장 아리바바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아리바바는 삽시간에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시장 정보를 가진 사이트로 자리잡았다. 요즘도 하루에 새로 오르는 매매정보가 1000∼1200건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메일을 통해 매매를 성사시키는 이메일 사이버시장도 오픈했다. “중국은 큰 시장. 그러나 이는 부분이다.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마윈은 말했다.
추보쥔(求伯君). 중관춘 소재 소프트웨어 업체인 진산(金山)공사 총재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이기도 하다. 중국인이 사용하는 한자는 상형문자. 영어나 한글과 같은 표음문자가 아닌 탓에 워드프로세서 개발은 골치 아픈 난제였다. 그런 와중에 97년 그는 자신의 별장을 판 돈으로 중국어 워드프로세서 ‘WPS 97’을 개발했다. 도스(DOS)용 워드프로세서였다. 이 소프트웨어가 발매되면서 중국인들은 컴퓨터로 빠르게 타자(打字)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단번에 ‘민족영웅’으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그가 양복을 입는지 중산복(中山服)을 입는지도 화제가 됐다.
지난해 11월 중순 그는 또다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윈도용 워드프로세서 ‘진산츠바(金山詞覇) 2000’과 번역 소프트웨어 ‘진산콰이이(金山快譯) 2000’을 불과 28위안(3400원)씩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중국어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 가격은 보통 500~1000위안. 그러나 이처럼 파격적인 가격으로 나오자 이들 소프트웨어는 시판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100만개나 팔렸다. 올해 초 그는 현재 개발중인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두바(毒覇)’도 이 가격에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중국에서 일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은 200위안(2만4500원) 이상이다.
중국 최대 인터넷망인 신랑(新浪)망(sina.com)의 왕즈둥(王志東) 수석집행관(總經理). 지난해 말 실시된 애릭슨배(杯) 중국 최우수 인터넷망 선발대회에서 ‘중국의 최우수 인터넷 인물’로 선정된 사람이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둘러싼 중-미 협상이 타결됐을 때 그는 ‘미래 중국의 최고 부자’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갖고 있는 신랑망의 주식은 무려 100만주. 미국 나스닥(NASDAQ)에 상장된 중화(中華)망(china.com)의 주식이 중·미협상 타결 후 58달러에서 127달러로 폭등하면서, 신랑망이 나스닥 상장에 성공하면 그가 돈방석에 앉으리라고 짐작한 것이다.
이 밖에도 중국 IT산업을 개척한 사람은 수없이 많다. 중관춘의 신화를 만든 인물들이다. 롄샹(聯想)컴퓨터 총재 양위안칭(楊元慶)과 전 총엔지니어 니광난(倪光南), 베이다팡정(北大方正)의 총재 장위펑(張玉峰), 쓰퉁(四通)그룹 전 총엔지니어 왕지즈(王緝志), 중국 최대의 교육용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커리화(科利華)공사 총재 쑹차오디(宋朝第), 중국 3대 인터넷망의 하나인 왕이(網易,163.com)망의 딩레이(丁磊) 총재….
이들의 공통점은 중국에서 ‘즈번자(知本家)’로 불리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즈번자’는 작년 가을 ‘즈번자 펑바오(風暴)’라는 책이 베이징에서 출간되면서 대유행을 이룬 신조어다. 지식산업이 주류로 떠오른 사회에서 정보와 기술, 세계화 능력을 갖춘 신(新)지식인이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지난해 중국에 새로 등장한 800여개의 신조어 가운데서도 가장 큰 파급력을 자랑했다.
이 책은 지난해 출간되면서 중국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부제는 ‘중국 신지식분자 선언.’ 3명의 젊은 정보기술(IT) 분야 전문기자들이 쓴 이 책은 “이제 중국에 ‘즈번자’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중국 언론들은 정보와 기술, 그리고 세계에 눈을 돌리라는 이 책의 주장을 자세히 소개하며, “지식산업은 미국에서 나왔으나, 즈번자는 중국이 종주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는 베이징의 중관춘을 중국의 실리콘 밸리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하이테크 벤처기업 양성을 위한 각종 정책도 내놓았다. 올해부터 시행된 ‘개인독자기업법’도 그 정책의 하나였다. 단 1위안으로도 회사를 세울 수 있도록 한 이 법률은 80년대 ‘돈을 벌자’는 ‘파차이(發財) 붐’과 90년대 ‘돈벌이의 바다에 나서자’는 ‘샤하이(下海) 붐’에 이어 중국에 새로운 ‘즈번자’ 창업 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난 1월 말에는 개인독자기업법 실시 이래 최초로 등록한 벤처기업이 중관춘에 문을 열었다. 자본금 20만위안(2800만원). 런민(人民)대학을 졸업한 올해 37세의 우쿤링(吳坤)이 세운 기업이미지(CI) 설계 회사였다. 회사명은 ‘베이징즈번자투자고문사무소.’ ‘즈번자’들의 활발한 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지난해 중관춘에서 문을 연 하이롱빌딩은 1층에서 5층까지 컴퓨터와 주변기기 소프트웨어를 파는 가게로 가득 차 있다. 그 위로 18층까지가 오피스텔형 사무실이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베이징사무소가 지난 5월 이 건물 12층에 입주했다. 쓰리알소프트, 포스데이터, 현영시스템즈, 한전KND, 드림인테크 등 한국의 8개 IT업체도 함께 들어왔다. 한국 IT산업의 중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인 셈이다.
이들 업체는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IT 분야에 대한 시장조사를 비롯, 6000여개 중관춘 IT업체와 공동협력 방안도 모색할 예정이다. 또 중국과학원과 베이징대, 칭화대 등 이 지역에 있는 연구기관들과도 교류를 확대하고,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각종 IT 솔루션을 중국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관계자는 “진흥원이 그동안 닦아놓은 중국 기업 및 단체들 간 연락선을 통해 한국업체들이 한결 수월하게 중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건물 8층에는 ‘한글과 컴퓨터’사도 입주해 있다. 한컴사는 자체 개발한 리눅스용 워드프로세서 ‘원제(文杰)’를 지난 5월부터 중국에서 정식 시판하고 있다. 이 회사는 중국 최대 컴퓨터 메이커인 롄샹이 리눅스용 컴퓨터 운영체제(OS) 소프트웨어인 ‘해피리눅스’를 내놓은 것과 보조를 맞춰 원제를 롄샹과 공동 판매하기로 했다. 원제는 중국에서 유일한 리눅스용 중국어 지원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롄샹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총지휘하고 있는 슝루이(熊銳) 박사는 “중국어 워드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현재 원제밖에 없다”며 “원제는 롄샹의 해피리눅스 판매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독점적으로 공급해온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를 대체하기 위해 소스 코드가 공개돼 있는 리눅스 운영체제를 전폭 지원하고 있다. 중국 교육부는 올해 전국 초·중등학교에 리눅스를 보급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컴리눅스는 이에 따라 3∼4년 내에 중국 시장 규모가 한국의 10배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롄샹그룹과 공동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하이롱빌딩에 인접한 태평양빌딩에도 한국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대부분 올들어 입주한 업체들이다. 이 지역 일대에 한국 벤처기업들이 모인 코리아벤처타운도 생길 전망이다. 한국의 벤처컨설팅업체인 (주)오비스(대표 朴盛顯)사는 지난 4월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베이징시 및 창핑(昌平)현 정부 등과 코리아벤처타운 설립을 내용으로 하는 ‘한국성(城) 프로젝트’ 조인식을 갖고 본격적인 코리아벤처타운 조성에 들어갔다.
이날 조인된 코리아벤처타운 조성지역은 베이징 중관춘에서 창핑현 첨단과학기술구에 이르는 16㎢. 향후 이 지역에 입주하거나 투자하는 한국 벤처기업들은 각종 세제혜택과 함께 정보 인력자원 판로 등 다방면에서 중국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는 게 오비스측의 설명이다.
이는 중국 당국이 한국 첨단기술기업의 대중국 투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해 추진한 프로젝트. 장기적으로 중관춘과 베이징시 근교에 위치한 사허전(沙河鎭)반도체연구소 단지, 창핑현 과학기술개발구 단지에 한·중합자기업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지난해 말 중관춘을 중심으로 한 실리콘 밸리 조성계획을 세운 이래 외국 첨단기술산업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성 프로젝트도 이 계획의 주요 부분인 셈이다.
이 프로젝트와 관련, 한국의 반도체 테스트 장비업체인 성진전자와 인터넷업체인 바라인터내셔널 등이 현재 중국측과 합자계약을 마치고 공장을 설립하고 있으며, 우진전자 등이 음성부호 다중접속(CDMA) 방식 이동전화 단말기 부품 공장 설립을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관춘을 대만의 신주(新竹)반도체단지나 미국 실리콘 밸리를 따라잡는 중국 IT산업의 중심지로 삼겠다는 것이 중국의 야심찬 21세기 구상. 중국은 과연 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우선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관춘은 아직 대만의 신주반도체단지에 미치지 못하고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는 크게 뒤진다. 정보기술, 생물기술 분야에서도 내세울 게 없다. 롄샹의 컴퓨터를 제외하고는 시장점유율이 높은 제품도 없다.
대만의 신주단지는 다르다. 신주에서 생산하는 스캐너와 모니터, 마우스는 세계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걸프전쟁 당시 취재를 위해 모여든 세계 각국 기자들은 아무도 본국에 현장 상황을 전할 수 없었다. 오직 CNN만이 가능했다. CNN 기자가 가진 설비는 위성과 곧바로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신주의 한 공장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항공용 컨테이너를 생산하는 신주반도체단지의 한 회사는 전세계에서 가장 크며 IBM, 컴팩, 휴렛팩커드 등 굴지의 회사에서도 모두 이 회사 제품을 찾는다. 이렇게 전세계를 선도하는 업체가 중관춘에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영향력 면에서도 중관춘은 실리콘 밸리나 신주에 비해 훨씬 뒤떨어져 있다. 아시아 금융 위기로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대만의 손실은 극히 미미했다. 신주반도체단지가 대만경제에 지렛대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신주의 기술개발 능력과 세계시장 개척 능력이 아시아 금융 위기의 충격을 최소화한 것이다.
실리콘 밸리는 미국경제가 9년 동안 지속적으로 고성장, 고취업, 고수익을 이루도록 한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중관춘은 아직 중국 시장에서조차 그다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1996년 말 현재 신주단지에 있는 200개 회사의 총매출액은 110억달러였다. 당시 중관춘에는 5000개 기업이 있었으나 매출액은 49억달러에 불과했다.
중관춘에 있는 가게나 기업의 주요수입도 해외 유명 브랜드 대리영업이나 조립으로 인한 게 대부분이다. 중국 컴퓨터 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베이다팡정의 주된 수입원도 매킨토시 중국 총판을 맡아 올리는 판매수익이다. IBM은 여전히 가장 비싸고 인기도 있다. IBM이 투자해 세운 컴퓨터 애프터서비스업체인 ‘란서리에처(藍色列車)’는 서비스업체의 모델로 떠오르며 전국망을 구축했다. 중관춘에 진출한 한국기업들도 인터넷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 판매에 기대를 걸고 있다.
중국에서 지금 한창 VCD가 판매되고 있으나 VCD의 주요 칩은 모두 실리콘 밸리에서 생산된 것이다. 중국의 업체들이 VCD 판매에서 벌어들인 돈은 사실상 실리콘 밸리로 넘어가는 셈이다. 컴퓨터를 팔아도 컴퓨터 속의 램은 70%가 한국산이다. CPU는 미국산, PCB는 대만산이다. 중국에 남는 게 없다는 말이다.
최대 장점은 고급인력
그러나 중관춘이 가진 훨씬 유리한 조건도 있다. 바로 고급기술인력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신주단지의 고급기술인력은 채 5만명에 못 미친다. 실리콘 밸리도 20만명 정도다. 그러나 중관춘에는 대졸 이상의 고급인력이 36만명에 이른다. 주변에 있는 70개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어마어마하다.
이와 같은 인적 자원에다 중국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내놓고 있다. 중관춘에 들어서면 곳곳이 공사중이다. 도로망도 새로 뚫리고, 대형빌딩도 속속 건설되고 있다. 중관춘 발전을 위한 기반시설 정비에 착수한 것이다.
지난 10여년 중관춘은 베이징의 한적한 교외에서 중국 IT산업을 선도하는 ‘중국의 실리콘 밸리’로 변했다. 이와 함께 중국은 21세기 중국 경제의 질적인 변화를 꿈꾸고 있다. 첨단기술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 첨단기술기업의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앞으로 10년 후면 중관춘은 세계 IT산업 중심지로 우뚝 솟을 것이라는 게 중국 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