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호

“절망 끝에서 새 생명 자랄 때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기획 | ‘위기를 기회로’ 저출산 고령화 시대] 난임 의학계 ‘삼최다(三最多)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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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6-02-01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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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험관아기시술(IVF), 분만, 고난도 시술 국내 최다

    •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배아 키우는 공배양 추구

    • 약 100만 회에 달하는 초음파검사와 8만여 건의 난자채취

    • 배앙 기술력은 장비보다 의사의 경험이 중요

    이성구 대구마리아의원 원장. 대구마리아의원

    이성구 대구마리아의원 원장. 대구마리아의원

    난임 의사 이성구. 그의 이름 앞에는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수식어가 훈장처럼 따라붙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실력과 결과로 입증된 명성 덕분이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은 ‘삼최다(三最多) 의사’다. 시험관아기시술(IVF), 분만, 고난도 시술 건수 세 부문에서 모두 국내 최다 기록을 세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눈물로 얼룩진 세월에 마침표를 찍고 2세를 얻은 난임 부부들은 그에게 ‘생명을 만드는 미다스의 손’이라는 애칭을 선물했다.

    올해로 31년 차 난임 의사인 그는 1995년에 문을 연 마리아의료재단 대구마리아의 분원장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약 8만 건에 달하는 IVF를 했다. 명망 높은 의사들의 IVF 실적이 연간 1000건, 10년에 1만 건인데 이 원장의 기록은 그보다 2.5배 이상 높은 수치다. 보조생식학계에서도 이견이 없을 정도.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2014년 세계 3대 인명사전 마르키스 후스 후(Marquis Who’s Who)에도 이름이 오른 이성구 대구마리아의원 원장을 만나 30여 년간 의사로서 지켜온 소명과 난임 치료의 본질에 대해 들었다. 

    IVF, 개개인마다 치료 전략 달리해야 

    대구마리아의원은 마리아의료재단 분원임에도 전국구 병원처럼 IVF를 많이 했더라. 그게 가능한가.  

    “2017년에 통계를 내보니 IVF 누적 건수가 무려 7만 건이었다. 하루 평균 외래 환자 수가 140~150명에 달하고 한 해에 난자 채취를 많게는 3000건 이상 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만 빼면, 하루 종일 진료하고 난자를 채취하고 배아 이식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VF 건수처럼 이곳에서 분만한 출생아 수도 국내 최다라고 들었다. 



    “매년 2000명 넘게 태어났다. 2017년까지 태어난 아기가 약 4만 명 이상이었다. 돌아보면 기계처럼 반복되는 고된 나날의 연속이지만, 절망의 끝에서 한 생명이 자랄 때마다 가슴 벅찬 보람과 함께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당시의 고된 생활보다 생명을 다루는 일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이 만면에서 배어나는 듯했다. 

    최근에는 통계를 내지 않았나. 

    환자의 혈액을 원심분리기에 돌려 분리해 낸 PRP(혈소판이 풍부한 혈장)층을 꺼내는 모습. 마리아병원

    환자의 혈액을 원심분리기에 돌려 분리해 낸 PRP(혈소판이 풍부한 혈장)층을 꺼내는 모습. 마리아병원

    “언제부터인가 통계에 관심이 없어졌다. 요즘은 내가 받은 아기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 명의 아기에게 생명을 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건강한 성장이다. 요즘은 예전보다 더 환자 한명 한명에게 정성을 쏟고 싶다. 나를 찾아오는 부부들은 난임 시술에 지친 상태로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있다. ‘여기서 안 되면 이제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너무 절박해, 나조차 목이 멘다. 더 깊이 소통하며 진료하고 싶다. 최근 15년간 훌륭한 후배 난임 의사가 많이 배출됐고, 난임 병원이 전국적으로 많아졌다. 그래서 요즘은 고난도 시술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집에서 가까운 난임 병원을 다니라고 권한다.” 

    고난도 난임 케이스라면 어떻게 하나.

    “경험이 풍부한 의사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IVF는 프로토콜(수행 매뉴얼)이 비슷해 보이지만 환자 개인마다 치료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 난소의 상태에 따라 반응이 다르고, 이전에 실패의 맥락에서 놓친 미세한 차이까지 읽어내야 치료의 방향을 바로 잡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또 난자 채취나 배아 이식에서 의사마다 손기술이 다르고, 처한 상황마다 의사의 판단과 감각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지난 30여 년간 진료한 환자 수를 기준으로 따져보니 약 100만 회에 달하는 초음파검사와 8만여 건의 난자채취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인지 난임 시술을 받은 환자들로부터 초음파와 난자 채취에 도통한 의사라고 평가받더라.

    “과찬이다. 사실 초음파를 많이 본다고 해서 실력이 느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많이 보면 분명히 다른 눈이 생긴다. 경험의 축적이 초음파를 읽는 기준과 해석을 바꾼다. 생식기에 자궁근종, 선근종(자궁선근증) 같은 질환이 있는 경우 의사마다 초음파에 대한 소견이 달라 환자가 혼란에 빠질 때가 많다. 경험이 적으면 질환의 구조만 판독하겠지만, 경험이 많이 쌓이면 현 상태가 가임력에 지장을 주는 패턴인지 여부를 파악하는 능력이 생긴다. 결국 의사의 경험이 초음파 해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의사의 경험과 자신감이 중요한 이유 

    정자와 난자, 배아, 착상 환경의 상태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와 배양기술력이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보는데. 

    “물론 그렇다. 임신의 주체는 분명 여성의 몸이다. 1차적으로 건강한 정자와 난자가 확보돼야 하지만 임신이 잘되는 몸 상태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의사의 전략과 기술에 달려 있다. 경험 많은 의사의 눈빛과 말 한 마디는 환자의 정신과 호르몬 상태에 영향을 주고, 이는 난자와 정자, 배아의 질과 착상 환경에까지 미묘하게 반영된다. 결국 의사의 경험과 자신감은 기술을 넘어, 환자의 생식 기능과 미묘하게 하나가 된다는 얘기다.”

    임신 가능성이 희박한 고난도 난임 환자도 기적처럼 임신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고 들었다. 비결이 뭔가. 

    “공배양 덕을 본 것 같다. 공배양은 배아를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방식이다. 자연 임신에서는 수정과 초기 발달이 나팔관 안에서 이뤄지지만, IVF에서는 배아가 인공적 환경에서 분열하게 된다. 배양액이 아무리 우수해도 인체 환경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공배양은 난포액과 난구세포를 그대로 활용하는 자기 세포 배양법으로, 배아가 성장하는 동안 자가 분비와 주변 세포 간 상호작용의 도움을 받게 한다. 이런 점에서 합성 배양액보다 배아가 자라기에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한다고 판단해 공배양을 고집하고 있다.”

    만약 난자를 둘러싼 액 자체가 건강하지 않아도 공배양을 고집하나. 

    “난자를 둘러싼 환경이 건강하지 않으면 일반 배양액으로 전환한다. 다만 채취된 난자 중에서 상태가 좋은 난자와 난포액이 보이면 공배양을 선택한다. 난소 기능이 저하됐거나 난자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공배양을 통해 임신과 출산에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렇게 좋은 공배양법을 왜 다른 난임 병원들은 사용하지 않나.

    “아무래도 일이 너무 많고 까다롭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런 영역은 경험이 좌우한다. 공배양은 살아 있는 생식세포를 직접 다루는 과정이라서 위험 부담이 크고, 숙련되지 않으면 효율을 내기도 쉽지 않다. 우리 병원(대구마리아의원)은 30년간 수만 건의 공배양을 시행해 왔기에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었지만, 일반 병원에서 새로 도입해 배우기에는 현실 장벽이 높다. 게다가 최근에는 상용 배양액의 질이 크게 향상돼 굳이 공배양까지 시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난소 기능이 저하된 경우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떨어지고 세포질도 좋지 않은 난자는 배아(수정란)가 됐을 때 임신율을 떨어뜨린다. 이를 막기 위한 특별한 배양법이 있나.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이라는 폴리페놀계 항산화 물질이 있다. 미토콘드리아 기능·노화 경로(SIRT1)를 조절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몇 년 전부터 난소 기능이 저하된 여성을 위해 레스베라트롤을 첨가한 특화 배양액을 사용했더니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개선하고 활성산소를 줄여줘 배아의 질을 높이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환자 본인의 혈액에서 얻은, 성장인자가 풍부한 성분(PRP)을 배양액에 첨가해 배아를 배양하는 ‘배양 PRP’ 기술도 개발됐다. 임상 결과, 착상이 잘 안 되던 환자들의 임신 성공률이 확연하게 높아졌다. 앞으로 이를 적극 도입할 계획이다.”

    임신의 기적, 기다리기만 해선 일어나지 않아 

    IVF에서 배양 기술력은 최신 시설 여부에 따라 좌우되나.

    “물론 시설도 중요하다. 그러나 배아는 장비가 키우는 것이 아니다. 배양연구원의 눈과 손과 판단이 함께 키운다. 수없이 반복되는 시도 속에서 실패 원인과 성공 노하우가 축적되며 그 과정이 즉각적인 피드백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테크닉과 상황 판단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결국 배양 기술력은 경험이 축적되며 스스로 개발된다.”

    IVF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이성구 대구마리아의원 원장은 2014년 세계 3대 인명사전 ‘마르키스 후스 후’에 등재됐다. 대구마리아의원

    이성구 대구마리아의원 원장은 2014년 세계 3대 인명사전 ‘마르키스 후스 후’에 등재됐다. 대구마리아의원

    “IVF에서 성공 가능성은 강한 난자와 정자가 만났을 때 기대할 수 있다. 염색체 이상이 없는 난자와 정자가 나와야 하는데 문제는 그 조합이 매번 다르다는 데 있다. 회차마다 다른 난자와 정자가 나와, 매번 새로운 배아로 도전하게 된다. 배아의 잠재력은 배양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배양액과 배양 조건이 맞아야 배아는 스스로 가진 저력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고, 그 가운데서 잘 자란 배아가 선택된다. 마지막으로, 그 순간의 자궁 환경이 배아를 받아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엇박자가 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IVF는 한 번의 시도로 끝나지 않는다. 여러 번의 도전 속에서 난자와 정자, 배아와 배양 환경, 자궁의 타이밍이 동시에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임신이 된다.”

    지금까지 8만 건 이상의 IVF를 한 의사로서 말해 달라. 난임 환자의 임신을 가능하게 하는 건 기적인가, 기술의 힘인가.  

    “1978년 이후 전 세계에서 IVF로 태어난 아기는 지금까지 1700만 명에 이른다. 한국에서도 매년 신생아의 약 10%가 난임 시술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수치만 놓고 보면, 임신은 어느새 기술의 영역으로 들어온 듯 보인다. 그렇다고 생명이 기술로 만들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생명은 여전히 기적으로 시작된다. 설령 계획된 임신이고, 선택된 시점의 임신일지라도, 임신에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는 기적이다. 기술은 그 기적이 일어날 확률을 높여줄 뿐, 생명을 대신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다만 기적을 기다리기만 해선 안 된다. 두 손 모아 기도만 해서도 안 된다. (임신이 안 되면)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여주는 최신 기술(IVF)에 맡겨야 한다.” 

    이성구
    ● 1962년 대구 출생
    ● 서울대 의대 졸업
    ●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 1995년~ 마리아의료재단 대구마리아의원 원장


    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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