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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신동아’

‘나와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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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가 지령 500호를 맞았다. 500호 기념 특집에 짧은 기고를 해달라는 부탁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1986년 1월호와 2월호 6월호 3회에 걸친 ‘애린’이란 제목의 시(詩) 연재다. 그 외에도 대설 ‘南’의 6회 연재가 있었으나 대설처럼 길고긴 ‘南’에 얽힌 추억담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우선 ‘애린’에 관한 회상을 말하고 싶다. 시를 연재한다는 것이 문제가 있긴 하나 그때 그만한 사연이 있어 단행했던 기억이 난다.

전라도 해남에 내려가 살 때다. 나는 지나친 음주로 병이 났고 그 병으로 시름시름 앓았다. 외우(畏友) 이문구 형이 위문차 내려와 이런 말을 했다.

“당신 아픈 것을 보니 그야말로 일거수 일투족이 애린(哀)일세. 일거수 일투족, 사사물물을 ‘애린’이란 제목으로 시 연재를 해보는 게 어떤가? 그래서 모인 시로 우리 ‘실천문학’에서 시집을 낸다면 좋지 않겠나.”

이형이 실천문학을 맡고 있을 때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게 있어 이형은 문자 그대로 외우다. 그의 말을 거절하기 힘든 친애(親愛)의 정이 내겐 있다. 승낙했고 그 이전에 써둔 것들과 새로 쓴 것들을 묶어 당시 신동아 차장이던 이화복 형을 통해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애린’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혹은 누구일까? 묻는 사람이 많았다. 해석도 구구했으며 이야깃거리도 많았다. 내 숨겨둔 애인이라는 설, 유럽으로 여행 갔다가 그곳에서 결혼한 내 첫사랑이라는 설, 한자로도 哀 또는 愛 등 여러 가지로 해석했으며 소문에 따르면 신동아 발표와 시집 간행 바로 직후엔 전라도 이리 역전에 ‘애린’이란 카페가 생겼다고도 한다.



무엇인가 안쓰럽고 슬픈 사람의 냄새를 풍기는 ‘애린’이란 말 또는 이름에 대한 궁금증은 그 무렵 내 주변을 감쌌다. 새삼스럽지만 이제 와서 사실을 밝히면 다음과 같다. ‘애린’이란 이름의 제목(신동아 이전부터 써왔던 ‘애린’ 연작시들의 제목)을 쓰기 위해 나는 불문학을 전공하는 전채린 교수를 만났다. 전교수의 동생 이름이 전애린(田愛麟)인데 그 발음이 특이하고 좋아서 기억하고 있던 터다. 사랑스럽고 부드럽고 안쓰럽고 불쌍한 그리고 둥글고 모성적인 푸근함이 서린 말이었다.

6, 7년간의 독방 감금 생활 결과 나에겐 이상한 증세가 많이 생겨 있었다. 여러 가지 사건도 있었지만 그중 두 가지만 얘기한다면 하나는 벽면 창으로 인한 생명의 발견이고 또 하나는 평소에도 자꾸만 손을 쥐엄쥐엄해쌓고 부드럽고 둥글고 말랑말랑한 것을 만지고 싶은 간절한 감각적 갈증과 결핍이 극심했다는 사실이다. 감방 안에서 경험하는 것 일체가 딱딱하고 모나고 메마르고 차갑고 녹슬고 직선이나 직각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중얼거리는 버릇이었는데 혼자서 “애린” “애린아” 하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감옥 안에서 생각과 사상을 재정립했다. 생명, 평화, 화해와 공생의 사상으로의 대전환이었다. 그 전부터도 생명은 내 시의 주요 테마였지만 그것은 죽음과의 대결 속에 있는 생명이었지 죽음까지 포함하는 우주적 실제로서의 생명은 아직 아니었다.

남이야 민주화 투쟁을 어떻게 하건 내 경우엔 부드러움과 여성성, 생명 외경 등에 의한 동조, 포위에 의해 서서히 그리고 완만하게 폭력을 변화시켜가면서 전반적으로 새 이념과 새 사상, 새 문화의 창조에로 나가고자 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민주화가 생명, 생태, 환경 이념을 토대에 두고 진행돼야 하고 그 근거는 생태학은 물론 동학이나 불교 또는 노장학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상처받은 자들의 위로자 ‘애린’

그것이다.

그 생각들이 이미 감방에 있을 때 나의 시가 프랑스 레지스탕스 문화의 꽃이던 ‘엘자’, 루이 아라공의 처형당한 아내인 그 ‘엘자’의 이름, ‘엘자’의 눈, ‘엘자’의 신비로울 정도의 부드러움과 섬세함 등 미적 감각의 포위에 의해 도리어 나치즘의 폭력과 포악성의 딱딱함이 여지없이 폭로되고 정신적으로 패배케 하는 그 ‘우회’에로 나아가야 한다는 시적인, 전략적 수정을 가져왔다.

‘애린’은 ‘엘자’의 울림과 같은 계열에 서 있다. 애린은 한마디로 상처 받은 자들의 위로자 이름이다. 애인이요 누님이며 어머니고 또 자기 내부에 있다는 ‘아니마’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나는 전채린 교수에게 그 이름 사용을 허락받았고 전애린씨에게 양해를 구하는 말을 전해주기로 약속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와 정립하건대 애린의 한자는 愛麟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愛麟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가, 때로는 나 자신마저도 애린이라는 카페이름 같은 이미지로 남아 왔다. 왜 그럴까?

그것은 3회에 걸친 신동아 연재와 그에 이은 두 권 분량의 ‘애린’ 시집 간행 이후 10여 년에 걸쳐 서울, 해남, 충주, 일산 등을 전전하며 아픈 세월을 보내야 했던 슬프고 어두운 사연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여성성과 유연함에 의한 폭력의 포위. ‘엘자’의 전략에 입각한 ‘애린’의 문화적 유희.

이것을 알아챈 사람은 돌아간 채광석 형 한 사람뿐이었고 그때 시작된 나에 대한 비난과 중상은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비아냥거림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토대를 확보하고 있다. 그것은 확신이나 고집 같은 것이 아니다. 도리어 덧없는 감상에 가까운 서정을 도저히 뿌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여성과 어린이, 안쓰러운 누님 그리고 고생 속에서도 자식을 품에 안고 눈물 짓는 모든 어머니의 모성만이 유일하게 남은 인류회생의 출구라는 것. 그 서정적인 출구를 나는 최근 율려운동(律呂運動) 과정에서 양을 상징하는 율(律)보다 음을 상징하는 려(呂)가 더 중요시되는 복천율려(復天律呂)인 여율(呂律) 그리고 그것의 구성 원리인 팔려사율(八呂四律), 즉 여성성이 중심이 되고 남성성이 보완적 위치에 서는 미완적 우주원리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고 있다.

바로 이 팔려사율(八呂四律)의 기우뚱한 균형이 다름아닌 ‘애린’이다. ‘애린’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 도리어 도처에서 아파하고 숨죽여 눈물 짓는다.

사방을 돌아봐도 모두 다 아프다. 치유해야 할 상처와 병들뿐이다. 이 문명의 병. 이 세계에의 치유책은 여성적 우주 원리 이외에선 발견할 수 없는 것인데 바로 이 원리의 이름이 ‘애린’이다. ‘애린’의 어머니, 할머니인 마고(麻姑)다.

나는 최근 마고의 묵상집을 구상하고 있고 그 마고의 다른 이름인 이사(夷史: 동이족의 홍불이고 역사가, 천문학자, 정치가로서의 동이여인)에게 바치는 서정시도 몇 편 썼다.

이 모두가 ‘애린’의 후속편이다.

애린!

카페이름 같고 신파조 유행가 제목 같은 이 ‘애린’이란 말이 아직도 나의 가슴에 서늘한 그늘로 남는 까닭은 내가 아직도 깊은 상처와 무거운 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민주화도 완성되지 못한 채 사회도 자연도 병들어 이 땅 사람들의 상처는 더욱더 깊어져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돌이켜 15년 전 신동아에서의 ‘애린’ 연재를 생각해 보니 대설 ‘南’은 그것대로 합법성이 있지만 만용에 가까운 행동이었으나 지령 500호와 함께 ‘애린’ 시의 연재라는 괴팍한 행동이 ‘애린’이란 이름의 안쓰러움, 부드러움과 더불어 용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솟는다. 500회 지령을 빌려 부디 너그럽게 용서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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