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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학 집대성한 ‘한의사들의 대부’ 東原 이정래

文理를 튼 깨달음, 醫道의 경지

동양의학 집대성한 ‘한의사들의 대부’ 東原 이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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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 仁山문예창작 펠로십 중편소설자살금지법 동아 仁山문예창작 펠로십은 인산 오창흔 선생이 기탁한 재원을 바탕으로 젊은 문인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동아일보사가 신설한 창작지원 제도다. 설립 첫해 펠로로 소설가 김운하(金雲河·본명 김창식·36), 조경란(趙京蘭·31)씨가 선발됐다. 펠로로 선발된 작가들의 작품은 매년 ‘신동아’를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세상을 이해하면 할수록 그만큼 온갖 종류의 장엄함이 줄어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모든 미지의 것, 신비한 것에 직면했을 때 우리를 엄습하고 납득할 수 없는 것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은총을 구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친, 저 외경의 지극히 근본적인 요소가 공포였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공포심이 줄어들면서 우리는 세상에 대한 매력 역시 상실한 것이 아닐까? 공포감과 함께 본연의 품위와 장엄함도 사라져 세상이 우리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세계와 자신에 대해 더욱 용감하게 생각하게 된 이래, 세계와 자신을 더욱 경멸하게 된 것이 아닐까?

프리드리히 니체 (Fridrich Niz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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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마곡시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사건들의 첫 징후가 나타났다. 그날 밤, 크리스마스 파티의 흥분에 들뜬 마곡시는 대낮보다 환했다. 누군가가 밤하늘에서 마곡시를 내려다보았다면, 마곡시는 마치 깊은 밤의 어둠 속에서 홀로 찬연히 빛을 발하는 큰 별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날 밤은 마곡시를 에워싸고 있는 바닷속 물고기들조차 마곡시의 불빛들과 흥청거리는 소음 때문에 단잠을 설쳐야 했으니.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이 가까운 시간, 마곡시의 저명한 원로 인사 최형기 목사는 예년처럼 성탄절 기념 예배를 올리고 있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로 서양 중세 고딕양식과 동양의 전통 건축양식을 절묘하게 혼합하여 지은 마곡교회 안은 몇몇 고위 인사를 비롯하여 수천 명의 신도들이 최 목사의 강론을 들으며 예수 탄생을 축복하였고, 수십 대의 방송 카메라들이 그 광경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최 목사의 열정과 신앙에 찬 강론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이다. 그의 심장이 갑작스레 반란을 일으켰다. 늙은 목사는 가슴을 움켜쥐며 강론대에서 쓰러졌다. 그는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사들은 안타깝게도 그에게 영원한 사망을 선고했다. 그의 죽음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자 사람들은 애석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신이 아주 특별한 날을 택해 총애하는 그를 천상으로 불러들였다는 듯이 그 죽음을 신이 내린 영광스러운 축복으로 해석했다. 그의 영원한 죽음의 선고와 더불어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은 꺼졌다. 예수 탄생의 전설을 추억하기 위해 만든 말구유 장식도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다시 교회의 어둡고 습한 창고로 치워졌다.



성탄절 이틀 뒤, 최형기 목사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마곡 시장은 죽은 자의 명예와 업적에 걸맞은 경의를 표하기 위해 시민장을 선포했다.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바다는 고요하고 하늘은 맑았다. 영구차를 앞세우고 마곡시 중앙로를 지나는 장례 행렬은 최대의 명절인 시 건립 기념 축제일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장엄하고 떠들썩했다.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한 것은 물론이고,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긴 추모 행렬에는 기독교 신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인들도 대거 참석했다. 목탁을 두들기는 불교승들, 노자상을 앞세운 도교도들, 그리고 화려한 금박 장식을 한 코끼리들을 대동한 힌두교도들과 멋진 터번을 머리에 두른 이슬람교도들도 뒤질세라 만트라와 코란을 암송하며 행렬에 참여하고 있었다. 마곡시의 명물인 서커스단의 피에로며 닭털과 비둘기 깃털로 된 날개를 단 천사들, 아름다운 반라의 무희들, 사자, 호랑이, 원숭이, 재주 넘는 곰들까지 그 행렬에 끼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행렬에는 디오게네스라는 별명을 가진 기인, 술통의 현자마저 그 유명한 술통을 굴리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몸으로 뒤따르고 있었다. 하늘에는 방송용 헬기들이 요란한 소음을 내며 거리를 취재하고 있었고, 헬기에 놀란 비둘기들은 장례 행렬에 질금질금 똥을 싸댔다. 개들은 짖어댔고, 허리를 감싸 안은 젊은 연인들은 연신 입을 맞추었으며, 경찰관들은 자꾸만 행렬에서 벗어나려는 서커스단 동물들에게 즉석에서 거리질서를 가르치느라 진땀을 뺐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추모 행렬에 참가하는 것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신문기자의 자격으로 그 행렬에 참가하고 있었다.

마곡시 남쪽에 마련된 시립 묘지에 장례 행렬이 도착한 순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운명은 최 목사의 무덤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구차에서 검은 관이 내려져 미리 준비된 무덤 속에 안치되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작별을 고하려는 사람들이 차례로 장미꽃을 관 위로 던져 넣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도 채 못 되어, 목사의 무덤자리는 붉은 장미꽃들로 뒤덮여 작은 동산을 이룰 지경이 되었다. 장미꽃들은 끝없이 던져졌고, 무덤 파는 인부들은 그 꽃들을 치우는 데만 반나절은 족히 걸리겠다고 투덜댔다. 그러는 사이에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났다. 장미꽃 무덤이 들썩이는가 싶더니 장미꽃다발들이 무너지며 그 사이로 죽은 최 목사가 불쑥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장미꽃을 던지려던 한 중년 부인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만 들고 있던 장미 가시에 찔려 비명을 질렀다. 한 남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환호성을 질렀고 신앙이 돈독한 한 노파는 무릎을 꿇으며 성호를 그었으며, 놀란 코끼리 한 마리가 앞발을 높이 쳐들었다 다시 내려놓는 바람에 한 젊은 남자가 코끼리의 육중한 발에 짓밟히고 말았다. 그러나 그 순간, 코끼리 발에 밟혀 신음하며 버둥대는 불쌍한 그 남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러분……저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다시…”

장미꽃다발 사이에 서서 자기를 둘러싼 군중과 동물들을 둘러보며 긴 한숨을 내쉰 뒤에, 최 목사는 무거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죽은 자의 부활! 예수의 부활을 신앙으로 믿고 있던 기독교도들조차 자기 눈앞에서 벌어진 기적의 광경에 두려워하며 몸을 떨었다. 갑자기 바빠진 것은 기자들이었다. 카메라와 수십 개의 입이 한꺼번에 터졌다. 장례식은 갑자기 부활절 축제의 한마당으로 돌변했다. 최 목사는 몰려드는 기자들과 군중을 피해 자신의 시체를 싣고 왔던 검정 리무진 영구차에다 이번엔 시퍼렇게 산 육신을 숨기고는,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저 멀리로 서둘러 사라져갔다.

2

최 목사 부활하다!

다음날, 이런 유의 제목이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성급하게도 “부활한 현대의 예수”라는 선정적인 제목을 뽑은 신문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우리 곁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를 포함하여 마곡시의 모든 기자들이 백방으로 그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그의 엄격한 지시 때문인지, 그의 가족들조차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럴수록 그에 관한 소문과 논쟁은 더 불어나기만 했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최 목사가 정말로 부활한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의학적 착오에 의해서 사망 선고가 내려진 것이었는지, 그의 부활이 진짜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종교계에서는 물론 그의 부활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환영했다. 그들은 그 부활 사건에 대해 악에 물든 이 세상에 대한 신의 엄중한 경고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죄를 회개하고 주 앞에 겸허히 무릎을 꿇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목사의 죽음이 하필이면 성탄절에 일어났고 또 예수처럼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사실이 그런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해가 바뀌자, 다행히도 최 목사 부활 사건의 흥분은 불에 달궈진 냄비가 식어버리듯 점차 가라앉는 듯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이 다시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여전히 작년부터 심각한 침체와 하락의 늪에 빠진 경제 문제가 화두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돈’과 경제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기업가들의 부도로 인한 ‘자살’ 따위는 워낙 흔해빠진 일상사처럼 되어서인지, 이젠 여간해서 주요 뉴스거리로 취급되지 않았다. 자살절벽이라고 이름붙은 마곡시 북쪽 해안 절벽에서는 실패한 사업가, 실직자, 실연당한 사람과 같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 예년 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나 차디찬 겨울바다를 향해 뛰어들었고, 고작 돈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하는 반인륜 범죄들만 그런 사건의 희귀성 때문에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얼굴을 내밀 뿐이었다. 그 밖의 문제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계에서는 그 사건을 어물쩍 넘기려 하지 않았다. 이성에 의해 축출된 신의 존재가, 최 목사의 불가사의한 부활 사건에 의해 실제로 증명되었다고 간주하는 것 같았다. 최 목사는 어느새 기독교인들에게 ‘재림 예수’로 숭배되기 시작했으며, 그의 부활 사건은 ‘최후의 심판’이 다가왔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었다. 중세 시대와 같은 권력과 권위를 꿈꾸는 기독교계가 다시 세력 탈환을 꿈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 셈이었다. 가슴에 띠를 두르고, 핸드 마이크를 들고 대중을 선동하는 목사와 전도사들이 봄을 맞은 개구리들이 땅 속에서 튀어나오듯 사방에서 쏟아져 나와 거리를 점령했다. 마곡시의 어느 거리를 가더라도 이들 신의 사도들이 외쳐대는 핸드 마이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최 목사는 그들에겐 위대한 잔다르크였다.

“예수를 믿으시오! 믿는 자는 부활과 영생을 얻지만, 믿지 않는 자에겐 지옥의 유황불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만이 구원받습니다!! 최 목사님의 부활을 상기하십시오!!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살고자 하는 자는 예수를 믿으시오!!! 최후의 심판이 눈앞에 닥쳤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듣고, 눈 있는 자는 보시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사실 최 목사 사건이 아니더라도, 마곡시에서는 가끔씩 기이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몇 년 전엔 생김새는 잉어 같고 몸에는 새의 날개가 달려 있으며 푸른 비늘과 흰 머리에 붉은 주둥이를 한 고기떼가 마곡시의 남쪽 해안에 떼로 나타났다간 사라졌다. 또 언젠가는 집채만한 흰수염고래 한 마리가 서쪽 해변에 밀려와 죽어 있기도 했었다. 슬픈 여옥의 전설은 또 어떤가? 어느 해인가 마곡시의 남쪽 해안 절벽 꼭대기에 밤마다 소복을 입은 여자 유령이 구슬픈 목소리로 가야금을 타며 노래를 부른다고 하여 마곡시가 한바탕 유령소동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찌나 슬픈지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사람들은 그녀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대여, 강물을

건너지 말라 했더니

그대는 끝내

강물을 건너고 말았구려.

강물에 떨어져 죽으니

그대여, 아아 어찌하리야.

나중에 떠돈 소문에 따르면, 그녀의 이름은 여옥이었고 그녀의 남편이 그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것이다. 남편의 자살로 인한 슬픔을 못 이긴 그녀는 가야금을 뜯으며 이 노래를 부르다 결국 남편을 따라 자살해버린 것이다. 그녀는 오래 전에 죽었지만 그녀가 불렀던 노래는 다시 부활했다. 마곡시의 한 유명한 여가수가 그 노래를 불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토록 남겨주었던 것이다. 그때 여옥의 한 맺힌 유령은 마곡시의 최고 무당이 직접 나서 원혼을 달래는 한바탕 한풀이 굿을 한 뒤에야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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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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