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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만 먹는 사람들

풀만 먹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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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식은 어떤 경우든 건강에 이로운 행위다. 배추나 무 같은 겨잣과 식물은 대장암에 걸릴 확률을 크게 낮춘다. 바나나는 위궤양에 좋다. 콩을 규칙적으로 먹으면 당뇨환자의 경우 인슐린을 일부 줄일 수 있다. 체리는 충치를 예방한다. 생강·마늘·양파는 혈액희석제로서 심근경색을 예방한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구제역, 광우병 파동 이후 쇠고기·돼지고기 같은 육식을 기피하는 현상이 직장인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구제역 파동이 났을 때 서울 시내의 육류 식당에는 손님이 끊겼다. 인류사에서 최근처럼 육식의 효능을 의심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1970년대부터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 육류의 폐해 때문에 이제 육류는 위험식품이 되고 있다. 육류만큼은 못하지만 생선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횟감으로 사용되는 양식 생선들이 항생제로 사육되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런 추세 때문에 최근에는 아예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한경숙씨 가족의 채식 실천

한경숙씨(47) 가족은 성원 모두 채식을 실천하는 집안이다. 채식을 하는 단체나 개인은 있지만, 한씨 가족처럼 가족 모두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씨의 가족은 친정어머니, 남편, 큰딸(17), 아들(15), 조카(21) 등 6인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채식을 시작한 사람은 음식을 만드는 주부 한경숙씨였다. 한씨는 3년 전 명상단체에 가입했는데, 여기서 채식을 하라고 권했다. 그는 이전부터 육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터라 혼자서 채식하기 시작했다. 그런 한씨를 가족 가운데 큰딸이 먼저 따라왔다.

한씨는 초기에는 그저 건강에 좋겠다 싶은 정도로 채식 효과를 평가했다. 그러다가 차츰 학습을 통해 환경, 기아, 전쟁 등 지구적인 문제가 육식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큰딸의 채식은 한씨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주었다. 한창 성장할 딸아이가 제대로 발육하는 데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씨는 딸이 영양 부족을 겪지 않도록 채식 요리를 연구하면서 가족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육식에 길든 가족들의 입맛을 바꾸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고기 대용으로 버섯을 쓰는 등 다양한 채소요리를 내놓았다.



1년이 지나자 딸의 입맛은 완전히 채식으로 돌아섰다. 그 뒤부터는 복잡한 요리를 만들 필요가 없게 됐고, 단순한 요리만으로도 만족하게 되었다. 두부를 살짝 데쳐서 양념장에 찍어먹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었다.

채식을 하게 되면 몸과 머리가 맑아지면서 신체에 변화가 찾아온다. 그런데 채식주의자가 된 한씨의 큰딸은 조금 차원이 다른 의식 변화를 겪었다. 채식을 하고 난 뒤부터 큰딸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식으로 사고방식이 바뀌었다. 과자도 달걀과 쇼트닝(돼지기름)이 들어간 것은 먹지 않았다. 그것이 자기의 기호였고, 선택이었다.

딸은 이렇게 변했으나 나머지 가족들은 여전히 육식을 고집했다. 특히 남편이 문제였다. 한씨의 남편은 집안 내력으로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한씨의 집요한 권유로 술과 고기를 끊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개인 결단으로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남편은 중소기업의 이사로 업무상 외부사람들과 자주 술자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남편이 술과 고기를 끊고 술자리를 거부하자, 회사는 사표를 내든지 술과 고기를 도로 먹든지 선택하라고 엄포를 놓았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남편은 무알코올 맥주를 싸들고 다니면서 술자리에 참석했다. 물론 동물성 안주는 손도 대지 않았다. 1년을 그렇게 하자, 회사에서는 결국 남편을 연구직으로 돌리고 술자리 참여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의 채식주의자 40만명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채식주의자를 4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한국의 채식주의자는 종교적 이유나 수행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 15만명, 건강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 15만명, 환경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 10만명으로 추산한다.

똑같이 채식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 채식을 하느냐에 따라 다섯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육류와 유제품은 물론 벌꿀까지 먹지 않는 비건스(vegans) 채식주의자 ▲유제품은 먹되 달걀은 먹지 않는 락토(lacto) 채식주의자 ▲유제품과 달걀을 먹는 락토-오보(lacto-ovo) 채식주의자 ▲유제품과 달걀은 물론 생선까지 먹는 페스코(pesco) 채식주의자 ▲거기에 닭고기도 먹는 세미(semi) 채식주의자다. 이 가운데 가장 정도가 강한 비건스 채식주의자는 쇠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지에 사는 두 발, 네 발 달린 동물은 물론 생선 유제품 달걀 등 육류와 관계된 것은 전혀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다. 이들은 채소를 먹어도 생명을 만들어 낸다 해서 뿌리나 이파리는 삼가고 열매만 먹는 열매주의자(fruitarian)와 손을 잡고 이론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부류는 전체 채식주의자 중에 10% 정도다.

대다수 채식주의자는 락토-오보 채식주의자다. 고기와 생선은 금하지만 우유와 달걀은 먹는다. 이보다 약간 엄격한 부류가 락토 채식주의자다. 생선을 먹는 페스코 채식주의자와 닭고기까지 먹는 세미 채식주의자는 소수다.

채식주의자를 나누는 기준은 또 있다. 자신이 채식주의자임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채식만 고집하는 이들을 ‘개방형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반면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소극적으로 채식을 실천하는 이들을 ‘은둔형 채식주의자’라고 부른다. 은둔형에 속하는 이들은 굳이 자신이 채식주의자임을 밝히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식사할 때 혼자만의 메뉴를 고집하는 일도 꺼린다.

종교나 수행을 위한 채식이 아니라면 사람들을 채식으로 유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문제다. 2000년 한국사회는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7%를 넘어 서서히 고령화사회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건강하면서도 오래 살면 좋겠지만, 문제는 많은 이가 만성 질병을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만성 질병은 나이 때문에 생기는 질병이 아니므로 습관을 고치면 피할 수도 있다. 청소년도 만성 퇴행성 질환(이른바 성인병)이 생기는 것을 보면 생활습관이 나이보다 더 중요한 병인임을 알 수 있다.

만성 퇴행성 질환은 크게 영양 관련 질환, 흡연 관련 질환, 알코올 관련 질환으로 나뉜다. 영양 관련 질환은 대부분 영양과다로 생긴 병이다. 비만증,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증, 혈관성 치매, 악성 종양(대장암 유방암 전립선암), 골관절염, 골다공증 등이 있는데, 대부분 동물성 식품 섭취와 관련 있다.

육류 섭취가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라지만, 최근에는 육류의 질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육류를 공장에서 가전제품 찍어내듯이 대량생산하면서부터 시작된 문제다. 밥 먹듯이 고기를 먹는 현대인의 식생활은 공장식 가축 사육장을 탄생시켰다. 현재 우리가 먹는 육류와 유제품, 달걀은 30년 전에 먹던 것과는 완전히 질이 다르다. 공장식 사육장에서 길러진 가축들은 엄청난 양의 유독성 화학물질과 인공 호르몬을 주입한 탓에, 가축의 체내에 남아 있는 화학물질이 그 고기와 우유를 먹는 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옮겨진다. 이런 화학물질은 대부분 2차대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들이다. 공장식 식육제품에는 예외없이 살충제, 성장촉진제, 진정제, 방사성 동위체, 제초제, 항생제, 식욕촉진제, 구충제가 잔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 쇠고기·돼지고기 ·닭고기 재료가 농가 앞마당에서 노는 닭과 우리 안에서 꿀꿀거리는 돼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의 고기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착각이다. 모든 가축은 집단 사육되는 동안 대부분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 좁은 닭장에 갇힌 닭은 서로 깃을 사납게 쪼거나 죽이려 하고, 심지어 산 채로 서로 몸을 뜯어먹으려고 한다. 닭들은 가끔씩 꽥 소리를 내지르며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라 뒤집혀 죽기도 하는데, 죽은 닭의 시체를 해부해보면 심장이 굳은 피로 가득하지만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돼지도 마찬가지다. 돼지사육장에서 가장 흔한 문제 중 하나인 꼬리 물어뜯기는 자연스런 욕구를 철저히 억압당한 나머지 완전히 미쳐버린 짐승들의 절망적인 행동이다.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 때문인데, 이로 인한 폐사를 막기 위해 사료에 온갖 약품과 항생제가 들어간다.

소사육장은 어떤가. 대부분의 소 사육장에서 소들은 적은 비용으로 살을 찌우기 위해 이상한 먹이를 받아 먹는다. 암모니아와 깃털 섞인 톱밥, 총천연색 유해잉크가 들어간 잘게 자른 신문지, 플라스틱 찌꺼기, 쓰레기 하수 처리물, 못 먹는 수지와 기름, 양계장 두엄, 시멘트가루, 판지 조각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동종인 소를 도축하고 남은 찌꺼기까지 들어간다. 광우병이 바로 이런 사료를 먹인 것이 원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

생선도 예외가 아니다. 양식장에서 사육되는 광어나 우럭 같은 생선들은 각종 화학약품이 섞인 사료를 먹고 자란다. 또 이 생선들은 도시로 수송되는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로 폐사하는 경우가 잦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사료에 항생제를 넣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채식은 어떤 경우든 건강에 이로운 행위임에 틀림없다. 서양과학자들이 증명한 사실을 추려보자. 배추와 무 같은 겨잣과 식물은 대장암에 걸릴 위험성을 크게 낮춘다. 바나나는 위궤양에 좋다. 콩을 규칙적으로 먹으면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을 일부 줄일 수 있다. 체리는 충치를 예방한다. 생강·마늘·양파는 탁월한 혈액 희석제로서 심근경색을 예방한다. 양파는 강력한 항생제로 5분간 생양파를 씹고 있으면 입 안이 무균 상태가 된다.

육류가 주식인 서구 사회에서는 점차 육식이 건강에 해롭고 채식 위주의 자연식이 이롭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슈바르츠 박사와 스위스 취리히대학 생물학과 비르헤르 박사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육류에 들어 있는 지방은 혈관에 찌꺼기를 만들어 관상동맥 혈전의 주 원인이 된다.

이와 반대로 채소가 건강에 이롭다는 연구결과는 속속 나오고 있다. 채소는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당뇨·고혈압·폐암·심장병·유방암에 걸릴 확률을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를 예로 들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 요시푸라 카우무디 박사는 브로콜리와 양배추 그리고 녹색 잎 채소, 감귤류, 비타민C가 든 과일을 많이 섭취한 사람일수록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낮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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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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