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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파는 다빈치 에어컨 파는 피카소

광고 속의 미술 이야기

아파트 파는 다빈치 에어컨 파는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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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광고는 기발한 착상이 생명. 문화와 이미지를 중시하는 현대인에게 소구하기 위해서는 순수미술에서도 고품격 아이디어를 찾아내야 한다. 명작을 내세워 교묘하게 소비자에게 다가서는 첨단 광고기법과 그 숨은 논리.
광고는 상품이 있고 소비자가 있는 시장에서만 자랄 수 있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옛 동구권이나 북한의 빛 바랜 사진 같은 살풍경 속에서는 어디에서도 광고를 찾아볼 수 없다. 광고라는 꽃이 자라기 위해 필요한 또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자유일 것이다. 만들고 팔고 살 수 있는 자유 말이다.

이 자유가 얼마나 모순에 찬 허울 좋은 것인지를 지적하는 일은 이제는 철 지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광고를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말할 때 이 꽃이 요사스러운 꽃인지도 모른다는 의혹은 지우기 힘들다. 이렇게 광고는 보기와는 달리 결코 단순하지 않다.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어 마치 공기처럼 매일 호흡하고 살아가지만 실제 광고는 매우 복잡한 메커니즘을 지닌 시스템이며,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아무도 자유스러울 수 없는 거대한 권력이기도 하다.

인간이 오늘날처럼 이미지가 집중된 시대에 살았던 때는 일찍이 없었고, 홍수를 이루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광고와 관련을 맺고 있다. 소형 인쇄물은 물론이고 벽 전체를 도배하다시피 한 대형 간판에서부터 고화질의 멀티비전을 이용한 동화상 이미지까지 우리는 이제 이미지에 포위되어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쏟아지는 이미지의 홍수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상대적으로 빈한한 사람들이 광고 이미지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는 점도 아이러니다.



하지만 광고는 노동자든 지식인이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인간을 단순 소비자로 바꾸어놓았다. 이렇게 보면 광고는 상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 그리고 구매력으로 재편된 새로운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지적이 정확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이 새로운 사회관계와 인간관계는 사물을 보는 관점과 가치관을 바꾸어놓았고 감성과 감각까지 바꾸어 놓는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광고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광고를 시각예술의 한 장르로 정당하게 취급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나아가서는 본다는 행위의 위력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만 광고의 위력과 해악을 올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가장 성공한 광고 카피를 떠올려 보라고 하면 이런 문구들을 쉽게 기억해낼 것이다. 이 카피들은 추측하건대 매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성공한 광고 카피를 하나 더 든다면 모 침대 회사의 모순 어법을 이용한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를 들 수 있다. 분명히 가구이지만 가구가 아니라고 하는 이 역설적 카피는 침대가 건강과 관계된 가구라는 뜻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고, 나아가 지나치게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난 후 허리를 걱정하던 많은 사람들을 심정적으로 설득할 수 있었다.

광고 문구는 위의 예에서 보듯이 매출과 직결될 정도로 상당히 중요하다. 간단한 한두 마디 속에 제품의 이미지와 소비자의 뇌리에 각인되기 쉬운 간결성은 물론이고 시적 여운까지 남겨야 하니 광고 카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만져질 듯 생생한 시각효과

하지만 이제 광고에서 문구는 갈수록 그 중요성과 호소력을 잃어가는 추세다. 이런 변화의 배후에는 무엇보다 제품의 소비 사이클이 급속히 짧아진 후기 산업사회의 소비 패턴이 자리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면 영상시대이기도 한 오늘, 문장보다는 이미지가 중요해져 가는 전반적인 문화 흐름이 근원적인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논리적인 기억이 감각적인 기억에 자리를 양보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색과 형태는 감각적인 것들로, 무의식적으로 기억되고 저절로 떠오르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텔레비전과 만화를 보며 자란 요즈음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도 이미지 홍수 시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본 사람들은 비행 순찰차가 고층 빌딩 사이를 날아가는 장면 한켠에 코가콜라와 팬암 항공사의 네온사인 광고가 번쩍이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부터 20년 후인 미래에도 코카콜라와 팬암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음료회사이며 항공사로 살아남는다는 이 메시지는 이른바 PPL(Product Plac ement) 마케팅의 전형으로 꼽을 만하다. 영화를 꼼꼼히 보는 사람들은 요즈음 들어 이 PPL 광고가 한국 영화에도 부쩍 늘고 있음을 알 것이다. 꽤 잘 만든 한국 영화 중 하나인 ‘주유소 습격 사건’에서 주유소 기둥에 붙어 있는 모 카드 회사의 광고판을 떠올려보자. 이미지는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은밀하게 숨어 있을 때 그 위력을 발휘한다.

영화의 소품이나 배경에 잠깐 등장하는 이런 유형의 광고는 책 마케팅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주인공이 들고 다니는 시집이나 소설책이 있다고 하자. 내용이 실망스러울 정도로 부실하지만 않다면 아마도 쉽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 광고의 대세는 문장에서 이미지로 옮겨가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고화질 TV 같은 첨단 디스플레이 기기의 발달과 점점 소형화하는 단말기 등 정보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갈수록 심화할 것이다. 얼굴의 솜털까지 느껴질 정도의 선명도라면 이미지는 눈으로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지기 위한 것으로 변할 것이다. 시각예술이면서 촉각에 호소하는 이런 유의 시도는 불과 몇 년 안에 안방을 휩쓸 것이고, 이미 이러한 하이퍼 리얼리즘적 광고시대를 대비하는 광고회사도 적지 않다.

따라서 광고계에서도 기술이나 반짝이는 재치만으로는 살아 남기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기술은 아주 빠르게 발전할 것이고, 재치나 아이디어만으로는 갈수록 강해지고 고도로 세련될 일반 대중의 이미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제부터는 선명한 색이나 또렷한 이미지 자체가 관건이 아니며 이러한 고화질을 통해 무엇을 조합해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느냐에 광고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미래의 광고에서도 역시 생명은 콘텐츠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4~5년 동안 한국 광고에 나타난 순수미술(Fine Art)을 응용한 광고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의 광고 콘텐츠의 현재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하는 데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상품 빛내는 ‘액자의 마술’

같은 시각예술에 속하는 미술과 광고는 어쩌면 태생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광고가 미술을 활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팝아트 이후의 실험적 미술에서 보듯이 미술이 광고를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미술이 광고를 응용하는 예는 다양하다. 그중에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액자를 활용하는 경우다. 액자에 들어가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보자. 그림의 가치가 상당히 달라져 보이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액자에 넣는 행위는 한 대상의 가치를 인정하고 동시에 각별한 위치를 지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브르 박물관장의 유머러스한 제스처는 액자의 논리를 잘 읽어낸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포즈다. 제품을 마치 액자 속의 그림처럼 이젤 위에 올려놓은 한 전자업체의 PDP TV 광고 역시 얇아진 두께를 강조하는 기능적 효과 이외에 화질이 유화 수준이라는 함의와 물건 가격이 비싸다는 암묵적 표현을 담고 있다. 아울러 아직은 아무나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이중, 삼중의 메시지를 깔고 있다. 디지털 기기이기 때문에 이미지를 마치 그림처럼 조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들어 있을 것이다.

“명작의 미학”이라는 진부한 말보다 액자 속의 그림처럼 이젤에 놓여 있는 PDP TV의 이미지는 훨씬 더 웅변적이다. 한 인쇄업체의 광고나 안경테 제작업체의 광고 역시 가치와 품격을 더하는 액자의 가치를 잘 활용한 광고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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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진 <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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