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한국적 살롱문화 溪山風流의 산실

전남 광주 기세훈(奇世勳) 고택

  • 조용헌 <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 > cyh062@wonkwang.ac.kr

    입력2005-05-25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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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택 뒤 700평 대숲에서 ‘사각사각’ 들려오는 대나무 이파리 소리와 온갖 새들의 합창, 그리고 대숲에서 자라 맛이 일품인 죽로차. 한국의 고급문화를 상징하는 ‘계산풍류’의 현장이 바로 기세훈 고택이다.
    한국적 살롱문화 溪山風流의 산실
    기(奇) 고(高) 박(朴)’이라는 말이 있다. 전남 광주 일대에서 알아주는 성씨(姓氏)를 손꼽을 때 흔히 하는 표현이다. 광주 일대라고 하면 그 범주가 광주를 포함하여 나주, 장성, 창평(남평, 담양, 화순, 동복까지 포함됨)까지 이르는데, 이곳에서는 기·고·박 세 성씨를 명문으로 여기는 풍속이 현재까지도 전해져 온다.

    조선시대에는 이 세 성씨보다 레벨이 떨어지는 집안에서 이들 명문과 혼사를 맺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다행히 혼사가 성공하면 주위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택(턱)걸이 혼사’라고 불렀다. 수백년간 명문으로 인정받아 온 기·고·박 집안은 그만큼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어느 집안이 명문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걸출한 인물을 한 명쯤 배출해야만 한다. 학문이 높고, 의리를 지키고, 인품이 훌륭하다는 세가지 자격 조건을 가진 인물이 나오면 그 집안은 주변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명문으로 대접받게 되고, 그 인물은 그 집안의 중시조가 되기 마련이다. 기·고·박 세 성씨는 바로 이런 인물들을 배출하였던 것이다.

    광주 일대에서 기씨 집안이 명문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1527∼1572년)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출현 때문이다. 고씨 집안에서는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전투에서 삼부자(三父子)가 함께 전사한 의병장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 1533∼1592년)을 배출하였다(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고재욱, 대법관을 지낸 고재호, 국회부의장을 지낸 고재청, 3공 때 국회의원을 지낸 고재필씨가 그 후손들이다).

    박씨 집안에서는 문장과 학행으로 이름을 날린 눌재(訥齋) 박상(朴祥, 1474∼1530년)과 그의 동생인 육봉(六峯) 박우(朴祐, 1476∼1547년), 그리고 육봉의 아들로 시인이자 영의정을 지낸 사암(思庵) 박순(朴淳, 1523∼1589년)을 배출하였다(국회의원을 지낸 박종태, 전남대 총장을 지낸 박하욱씨가 그 후손들이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이들 집안에서 훌륭한 인물들이 나왔음은 물론이다.



    한편으로 기·고·박이라고 할 때 기씨를 제일 앞에 세우는 이유는 이 지역 사람들이 고봉 기대승이라는 인물을 그만큼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가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아울러 광주 일대를 가리키는 광(주), 나(주), 장(성), 창(평)이라는 표현도, 원래는 나주가 제일 큰 동네여서 나, 광, 장, 창으로 불려져 왔는데 광주에서 고봉이 배출됨으로 인해 광주를 앞세우게 된 것이라고 고봉 후손들은 힘주어 주장한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고봉이라는 한 인물이 이 지역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던 셈이다. 아무튼 기씨가 명문으로 자리잡게 된 배경에는 고봉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과거는 그렇다 치고 현재 기씨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고봉 기대승의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는 기씨 집성마을 중 하나가 광주시 광산구(光山區) 광산동(光山洞) 광곡(廣谷)마을이다. 광곡은 한자 이름이고 우리말로는 ‘너브실’이라고 부른다. 동네 앞에 나주평야의 일부분인 넓은 들판이 펼쳐 있어서 너브실이다. 너브실 50여 가구 중에서 몇 집만 빼놓고는 모두 기씨들이 살고 있다.

    너브실의 기씨 집성촌

    너브실에서 가장 유명한 집이 고봉의 13대 후손인 기세훈(奇世勳, 1914∼현재)박사의 고택이다. 애일당(愛日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