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낮은 중국’ 라오웨이(老威) 지음, 이향중 옮김/퍼슨웹 기획, 이가서 펴냄/374쪽/2만3000원
브레히트의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연상시키는 이 말은, 중국의 시인 라오웨이가 뱉은 말이다. 이 무슨 소리인가. 전세계가 경탄과 두려움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중국에서, 어느 때보다도 화려하게 용의 비천을 꿈꾸고 있는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독재와 가난에서 벗어나 인민들이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게 된 중국에서, 이 무슨 이상한 발언인가.
여기 이 ‘찬란한 발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중국 인민의 목소리가 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인 그 목소리는 소리 높여 어떤 주장을 하지도 않고 현재 자신의 남루한 삶을 과거 독재자의 탓으로 돌리며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하늘을 보며 조용히 뇌까린다. “이놈의 비, 열흘을 줄창 내리네, 아주. 지겨워 죽겠어. 내일은 어쩌려나? 씨바, 누가 알겠어.”
유명한 시인이었던 저자 라오웨이(老威, 본명 랴오이우·廖亦武)는 1989년 천안문사건에 항의하는 시를 발표하고 관련 영화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4년형을 살았다. 출옥해 보니 처자식은 모두 떠났고, 먹고 살기 위해 그는 술집에서 악기를 연주해야 했다. 그러나 라오웨이는 거리의 악사로 살면서도 계속 책을 펴낸다. 1999년 나온 두 권의 책은 “중국의 다른 모습, 소수가 아닌 다수의 중국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지만 그는 또다시 체포되고 책은 몰수당했다.
비루한 영혼의 기록
쫓기고 몰리고 술집에서 악기 연주로 끼니를 때우며 10여년을 보낸 라오웨이는, 그 힘겨운 시간 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2001년 책으로 펴낸다. 제목은 ‘중국저층방담록(中國底層訪談錄)’. 밑바닥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뜻이다. 이 밑바닥에는 그 자신도 들어가 있다.
적나라한 인터뷰를 통해 무명(無名)의 인민들을 생생하게 살려낸 이 책은 ‘중국언론사상 기적’이라는 평과 함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베이징에서 개최된 논평회에서 한 베이징대 교수는 상기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간의 목소리는 결코 완전히 누를 수 없다. 왜냐하면 잔혹한 생활이 모든 것을 빼앗아가더라도, 혀가 남아 있는 한 그들은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응은 정부의 심기를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유력한 주간지 ‘남방주말(南方週末)’은 라오웨이와 유명 언론인 루위에강의 인터뷰를 실은 죄로 편집부 인원이 대거 인사이동 조치당했다. 물론 라오웨이의 책은 판금됐다. 문제의 인터뷰에서 루위에강은 라오웨이에게 “당신은 인간의 영혼을 기록한 것이다. 비루하고 적나라하고 위선적인, 그러나 분명히 사회역사의 뿌리를 이루는 그 살아 있는 영혼 말이다”고 말한다.
‘저 낮은 중국’은 인터뷰 60개 중 16개를 골라 번역한 책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개혁개방이 만들어낸 주변인들(인신매매범, 불법 인력거꾼, 가라오케 아가씨, 마약중독 시인 등), 평범한 생활인들(철거민, 공중변소 관리인, 시체 미용사 등), 정치운동의 희생양들(늙은 홍위병, 지주 할아버지, 우파(右派) 등)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일치하지도 않고 특별한 논리도 없다. 그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말할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가 개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시골에서 처녀들을 데려다가 유흥업소 등에 팔아 돈을 버는 첸구이바오(錢貴寶)는 ‘사회의 쓰레기’라는 비난에 발끈하면서 말한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했지만, 누가 산골동네에 가서 투자를 하나? 자기가 직접 나가서 개혁개방을 할 수밖에 없어. 이건 자구책이야, 자구책!”
공산당원이었다가 현재의 부인에게서 난생 처음 계급하고는 상관없는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서, 우파요 악질분자로 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부인을 택한 펑중츠(馮中慈)는 말한다. “가난한 사람이 혁명을 하려는 건 밥 먹고 옷 입고 마누라하고 애를 가지기 위해서 아닌가. 영화에서는 ‘누구누구는 인민이 키운 아이다’라고 하지. 인민의 젖꼭지는 대체 어떻게 생겼는데? 나는 모르겠네. 큰 이야기일수록 믿을 게 못 돼.”
이런 밑바닥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개혁개방이니 문화대혁명이니 하는 역사적 사건들은 너무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공중변소 관리인인 저우밍구이(周明貴)에게 있어 문화대혁명 시절은, 똥을 훔쳐가는 사람들에게 “똥 훔치는 건 수정주의자들처럼 자기 이익만 챙기는 거다. 수정주의와 투쟁하자”고 외치던 다소 우스꽝스런 기억으로 남아있다.
개혁개방 이후의 혼란스러움은,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에서도 드러난다. 오입쟁이 책 도매상 탕둥성(唐東升)은 “‘지도자를 사랑하느니 자기를 사랑하는 게 낫다’는 게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적 결론 중 하나”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마약중독자가 되어버린 시인 황허(黃河)는 ‘되찾은 자아’에 대해 다르게 평가한다. “신중국이 들어서면서 인민들에게 일거리가 생기고 희망이 생겼지. 그런데 수십 년 세월이 지나버린 지금, 여전히 자기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자기일 따름이란 걸 모두 알게 되었지. 공허함이 다시 밀려오지”라고. 그리고는 영혼을 만족시켜주는 건 이제 마약밖에 없다고 되뇐다.
모든 이에게 각자의 역사가 있다
이들의 낮은 목소리가 내는 커다란 울림은, 자신이 거대한 역사와 정치의 피해자임을 소리 높여 역설하는 대신 담담하게 기억을 풀어놓는 데 있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역사는, 정부의 공식 역사도 아니고 역사가들에 의해 평가되고 해석되는 역사와도 다른, 실제 그 역사를 묵묵히 살아낸 사람들의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떠한 역사책이나 훌륭한 이론서에서도 보여줄 수 없는 역사의 단면을 풍부하고 생생하게 드러내준다.
늙은 홍위병 류웨이둥(劉衛東)은 세상에 대해 분노하지만, 마오쩌둥에 대해서는 깊은 애착을 보인다. 인터뷰 도중 그의 사고방식이 아직도 홍위병 같다고 지적하는 저자에게 그는 되묻는다. “내가 왜 내 과거를 부정해야 하나?”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과 구술(口述)에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를 재해석하는 글쓰기는 인류학적 전통과 맞닿아 있다. 이름모를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가 어떻게 사료로서의 객관적 가치를 지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인류학적 역사쓰기는 그 객관성과 역사관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공식 역사에서 억눌리고 침묵을 강요당한 대중의 기억과 목소리를 이끌어내어, 주류 역사에 대항하는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역사가 있다”고 역설하는 라오웨이의 저작은 단순한 인터뷰 기록이 아닌 새로운 역사쓰기의 의미를 지닌다. 책 뒷부분에서 중국 현대사 연표에 인터뷰 대상자들의 개인사를 끼워넣은 역자의 신선한 시도는, 이렇게 개인의 삶을 통과하며 굴절되는 거대한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진정한 한중교류의 시작
최근 한국에 불고 있는 중국붐 속에서, 우리에게 제시되는 중국과 중국인의 모습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노회한 장사꾼, 새로운 중화제국을 꿈꾸는 대륙, 한국 스타에 열광하는 젊은이…. 이 중 어디에도 없던 중국인들을 우리는 이 책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이 만남은 한중관계를 새로이 정립해야 하는 현 시점에서 더욱 소중하다.
그동안 중국에 대한 관심은 주로 실용적인 관점에서 과열됐을 뿐 실제 살아 숨쉬는 중국인의 모습을 겸허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등한시되었다. 상호이해가 빈약한 속에서 월드컵 때는 양국 네티즌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고, 다시 고구려사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과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당황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과 당황스러움은 거꾸로, 우리가 숨을 고르고 차분하게 중국인에 대해, 그들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할 토양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눈에 드러나는 한중간의 갈등과 충돌은, 비로소 진정한 한중교류가 시작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것은 더 이상 정부간 교류나 경제교류가 아니라 양국 대중의 만남이요, 살갗이 부딪치는 소리이다. 민족주의적 논리가 부딪치면 갈등은 첨예해진다. 그럴수록 다양한 낮은 목소리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작자 라오웨이의 평범한 말은 다시 한번 힘을 지닌다.
“이제 우리는 하나하나의 구체적 생명 속으로, 그 세포와 살과 핏속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