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 담론’없는 12대 국정과제
- 산업 마인드 없는 교육·보건정책
- ‘공무원과의 전쟁’ 없이는 정부혁신 불가능
- 富는 ‘파이’가 정해진 판돈이 아니다
- 국부 손실시킨 ‘정책 과거사’ 청산하라
한국 사회의 경제사회적 침체와 통합성 위기의 원인을 놓고 한쪽에서는 친북, 좌경, 반미, 포퓰리즘 세력의 준동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불균형 발전, 중앙 집중(분권과 자율 배제), 정부에 대한 불신, 혼탁한 사회와 왜곡된 역사적 정의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허상’과 ‘곁가지’를 놓고 벌이는 엉뚱한 편 가르기와 소모적 공방전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를 어떻게 개혁·개조해야 할지, 시급하고 중요한 국정과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개혁을 위한 ‘미래담론’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를 포함한 한국 사회 엘리트층 전반의 혼미는 참여정부의 12대 국정과제 내용과 이를 별다른 비판 없이 수용하는 모든 세력의 모습에서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국정과제가 일찍이 정확하게 잡혔더라면, 그래서 진짜 ‘전쟁’을 치러서라도 해결해야 할 중대하고 시급한 국정과제에 대한 인식에 일치했다면 이처럼 소모적인 갈등은 없었을 것이다.
2003년 2월 대통령직인수위가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발표한 12대 국정과제는 결국 무수히 많은 개혁과제 중 참여정부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지목한 것들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는 노무현 정부의 현실 인식과 비전, 철학, 전략이 드러나 있다. 12대 국정과제는 크게 네 범주로 나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외교·통일·국방분야 :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정치·행정분야 : 부패없는 사회, 봉사하는 행정, 지방분권과 국가 균형 발전, 참여와 통합의 정치개혁 ▲경제분야 :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 미래를 열어가는 농어촌 ▲사회·문화·여성분야 : 참여복지와 삶의 질 향상, 국민통합과 양성 평등의 구현, 교육 개혁과 지식문화 강국,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
12대 국정과제 선정부터 잘못
그 어느 하나 불필요한 것도, 덜 중요한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국정과제의 교과서’나 다름없다. 아마 그래서 야당과 언론, 전문가들이 국정과제를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12대 국정과제의 체계와 순위, 범주를 잘 살펴보고 사고(思考)의 시·공간을 확장해보면(100여년 전의 세계와 또 한번 도래한 문명사적 전환기인 향후 100여년의 세계를 조망해보면) 의외로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들이 빠져 있고, 그나마 접근방법도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장 미국 민주당의 국정과제와 비교해보자. 미국 민주당 지도자회의(The Democratic Leadership Council)가 펴낸 239쪽짜리 책자(State and Local Play Book, 이는 미국 민주당의 선거공약집이나 마찬가지다)의 목차와 범주를 살펴보면 우리 국정과제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민주당의 국정과제는 크게 9개 분야로 나뉜다. ▲예산(조세정책 포함) ▲교육 ▲전자정부와 전자상거래 ▲환경·에너지·운송 ▲보건의료 ▲안보와 범죄 ▲정치 ▲사회·가족, 주택 ▲국가경제개발.
민주당은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을 지출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범주를 구분하고 있다. 교육, 환경, 에너지, 운송, 범죄, 가족, 주택, 보건의료 등이 독자적인 범주로 나눠져 있는 것.
하지만 참여정부의 국정과제에는 이 모든 것이 중첩돼 있다. 예를 들어 참여정부의 12대 국정과제의 하나인 ‘참여복지와 삶의 질 향상’ 과제의 상세항목은 이렇다.
△근로소득공제 확대로 기초생활보장 △공공병원 확충 및 지역보건센터형 보건지소 설치 등 공공의료 비중을 전체 10%에서 (2008년까지) 30%로 강화(보건의료) △진료비 본인 부담금 총액상한제도 시행 등 의료의 보장성 확대(보건의료) △보육료의 평균 50% 국가 지원(보육) △시간제 육아휴직제도 도입(보육) △전략환경평가제도 도입(환경) △에너지부문의 환경세 도입(에너지) △생활체육, 문화지출비용 소득공제(문화) △5년간 수도권 주택 150만호 건설(주택) △버스의 기능회복과 경전철 중심 교통시스템 구축(교통).
하나의 과제에 보건의료, 보육, 환경, 에너지, 교통, 주택, 문화 문제가 다 들어 있다.
미 민주당 국정과제는 미국인의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이 적확하게 맞춰져 있는 데 비해 참여정부의 국정과제는 주요한 유권자 집단인 농어민, 노동자, 여성, 빈곤층, 지방민을 위한 정책이 하나의 범주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범주 구분과 서술 체계, 순위는 사소한 차이가 아니다.
참여정부는 ‘참여복지와 삶의 질 향상’ 과제를 기본적으로 복지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런데 보건의료는 복지수단일 뿐 아니라 동시에 고부가가치 산업이기도 하다. 국제수지(외화벌이)나 일자리 창출, 첨단산업발전 측면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전략산업이다. 만일 한국의 보건의료 기관이 비용 대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고객(환자)이 찾아올 것이다.
싱가포르는 보건의료를 전략산업 육성 차원에서 접근한다. 지난해 인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중국, 인도, 중동지역으로부터 15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 5억달러 가량의 수익을 올렸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2년까지 100만명의 환자를 받아들여 3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2010년까지는 세계 15대 생명공학 기업을 유치해 1만3000여명의 고용을 창출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한국의 병원 수준이나 인력의 우수성 그리고 의료서비스의 질과 생명공학기술이나 정보통신기술 수준을 감안하면 싱가포르가 100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때 한국은 그 10배인 1000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외국인 환자들은 곧 외국인 관광객이자 쇼핑객이다. 그러므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를 거론하면서 의료산업과 교육산업의 선진화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보건의료 부문(산업)의 선진화 방향은 명백하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소비자 선택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당연히 국가가 건강보험으로 부담하는 ‘표준’과 개인이 사적으로 부담하는 ‘고급’으로 나눠야 한다. 좀더 차별화된 의료 서비스를 바라는 내·외국인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려면 이른바 귀족병원, 귀족보험을 설립 운영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반 서민들과 건강보험료조차 못내는 빈민층에게 주어지는 보건의료 서비스 질이 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본시장에서 자본을 쉽게 조달할 수 있는 주식회사형 병원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
다음은 박용현 서울대 병원장이 지난해 11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우리나라엔 민간병원과 공립병원의 구분이 없다. 모든 병원을 산업이 아닌 공공재 개념으로 보고 있다. 공공병원도 정부 지원이 적어 수익을 내지 않으면 병원을 운영할 수 없으니 민간병원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반면 민간병원은 정부의 통제에 묶여 의료 서비스를 차별화시킬 수도 없다. 높은 교육 수준의 의료진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이것을 산업화할 전략이 없다.”
생명공학 재벌 탄생도 가능
일반 기업처럼 이윤 창출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병원이 생겨나면 당연히 의료기관의 투명성 및 감독기관의 전문성 강화가 빠질 수 없다. 나아가 각 병원별 의료수가를 공시해 사전에 환자가 치료비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노령화사회가 되면서 점점 수요가 늘어나는 가정간호, 노인병원 분야에도 국가나 금융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영세한 개인들이 경쟁하는 구도를 혁파해야 한다.
병원은 생명공학기술이나 정보통신기술과도 결합하고, 질병예방사업이나 웰빙산업과도 결합해야 한다. 더 나아가 미국 최고의 병원과 중국 최고의 (중의학)병원을 끌어들이고, 한의학을 한국 고유의 수출 상품으로 만드는 노력도 할 필요가 있다. 제도권 병원이 터부시하는 대체의학도 실제 환자를 고치는 능력이 있다면 앞서서 체계화, 양성화해야 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의술과 생명공학 분야의 메카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보건의료 및 생명공학분야에 뿌리를 둔 거대 재벌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국인병원이나 외국인학교 설립 허용은 이 같은 내부 개혁 후에 하거나 병행추진돼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골치 아픈 내부개혁을 회피하고 경제특구에 슬쩍 외국인학교와 병원을 얹는 방식으로 간다. 당연히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진행된 어설픈 의약분업 시도에서 보듯이 의료개혁은 자칫 이해관계자들의 극렬한 저항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소비자의 후생을 강화하고 국가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라면 그야말로 대통령직을 걸고 전쟁을 벌여야 한다. 전쟁은 과거사나 국보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으로 해야 한다.
‘참여·자치·교육복지·평준화’를 내세운 교육정책도 보건의료 정책처럼 기본 접근방법부터 잘못돼 있다. 사람의 전 생애(라이프 사이클)에 걸친 소비지출을 분석해보면 교육비의 비중이 상당하다. 물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교육, 의료, 관광, 유흥 등을 위한 삶의 공간이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급증하는 유학생, 유학비, 기러기 아빠들이 그 방증이다.
교육은 우리가 아무리 공공재 혹은 복지수단이라 외쳐도 이미 산업적 성격을 뚜렷하게 띠고 있다. 교육(산업) 경쟁력 강화는 국제수지와 국가·산업경쟁력 측면, 그리고 사회통합 측면에서 ‘일석삼조’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만큼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국정과제에는 이런 관점이 너무나 취약하다. 문화를 산업으로 인식하는 시각은 있지만 교육과 의료를 산업으로 인식하는 시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싱가포르는 의료, 금융, 물류, 법률 등과 더불어 교육도 전략산업이라고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교육개혁도 의료개혁과 마찬가지로,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를 약화시키지 않는 것을 전제로 교육 소비자의 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즉 보건의료처럼 ‘표준’을 약화시키지 않고 ‘고급’이 공급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영리목적의 교육기업 설립과 교육시장 개방, 교육기관 투명성 강화 및 감시·감독 장치 강화 등을 요구한다.
또한 평생교육과 사회교육만큼이나 조기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돼야 한다. ‘교과서 앞질러 배우기’ 식이 아니라 다양한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기숙학교도 필요하다. 교육 목적의 과학관, 박물관, 도서관도 크게 늘려야 한다. 자녀의 소질, 취향, 성장 속도, 부모의 가치관 및 재정 능력에 따른 다양한 교육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립학교도 필요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쓸모없는 지방 공항에 쏟아부은 수천억 원에 이르는 혈세는 이를 충분히 가능하게 할 만한 재원이었다.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과 같은 산업에 대한 정책은 시장에 맡겨도 되지만, 교육과 보건의료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법과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쳐놓지 않으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또한 교육·의료는 그 자체로도 전략산업일 뿐 아니라 물류, 금융, 연구개발(R&D) 기지를 뒷받침하는 측면도 크다. 교육과 의료가 믿을 만하면 사람과 기업은 모여드는 법이다.
교육·의료부문을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수준으로 올려놓으려면 대대적인 개혁과 개방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쩌면 의약분업이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때처럼 강력한 집단적 반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편 가르기를 하고 전쟁을 치러서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조용하기만 하다.
지난 8월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집중해야 할 국정과제로 ▲반부패 투명사회 구축 ▲국가 균형발전 ▲선진화를 위한 동북아 거점국가 건설의 세 가지를 건의했는데, 노 대통령이 여기에 ▲정부혁신 과제(분권형 국정운영)를 하나 더 보탰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이 맡게 될 4대 국가전략과제가 선정됐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정부혁신 과제’는 12대 국정과제의 하나인 ‘부패 없는 사회, 봉사하는 행정’과 일맥상통한다. 그 세부 내용을 보면 부정부패 척결,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시스템 확립, 국민과 성과중심의 행정개혁 추진, 투명한 성과중심의 예산개혁, 국민생명과 재산보호를 위한 시스템 구축 등이다.
이 것도 정말 중요한 과제들은 비껴가면서 공공서비스 개선을 위한 곁가지만 건드리고 있다. 공공서비스의 질 개선은 공무원들이 봉사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한국의 비대한 관료제와 공공 서비스정신 부재는 조선시대에 이은 식민통치, 개발독재의 산물이기에 그 뿌리가 매우 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무원 임용제 개혁(고시제 개혁), 민간 기업 수준으로 고용임금 유연성 강화 및 보수의 현실화, 평가체계 선진화, 행정 투명성과 예측가능성 제고, 과도한 규제권 해소, 공공부문 민영화 등 공무원 조직과 전쟁을 치러야 할지 모르는 중대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뒤늦게나마 노 대통령이 ‘정부혁신 과제’를 국가전략으로 내세운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책임총리제를 핵심으로 한 분권형 국정운영’ 수준에 머문다면 실망스러울 것이다.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 역시 4대 대통령 과제 중 하나다. 이 과제는 본래 세계화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라는 도전에 대한 대응전략이다.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 아세안 같은 경제 블록화에 맞서 동북아 평화번영안보 공동체, 한·중·일 FTA 등으로 모색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올바른 전략이다.
하지만 세계화시대의 모든 국가와 산업(기업)은 동북아를 넘어 세계의 고객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시야를 넓혀야 한다. 내국인이 소비와 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교육비, 의료비, 관광·유흥비, 식비, 의류비 등을 어떻게 국내에서 쓰게 할 것인지, 더 나아가 외국인의 생산 및 소비행위를 어떻게 국내로 끌어들일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국정과제에서 나타난 참여정부의 사고 공간은 동북아를 넘어 세계로 충분히 확장되어 있지 않다.
세계화에 대한 대응전략은 기본적으로 지구 전체를 놓고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 특유의 적응력 신속성 근면성을 감안하면 이 전략은 적극적인 세계 진출로 나타나야 한다. 실제 중국, 일본뿐 아니라 몽골, 연해주, 구소련 지역, 동남아, 남미에는 아직도 미개척 분야가 널려 있다. 최양부 아르헨티나 대사의 이야기다.
“한반도의 13배나 되는 땅에 한반도 전체인구의 절반 수준인 3700만명이 살고 있으며, 넘치는 곡물 육류 수산 산림 광물자원이 있고, 가스 석유 등 아직도 전체 매장량이 얼마인지 모를 정도의 천혜의 에너지 자원을 가진 자원대국인 아르헨티나를 제대로 알고 진출하려는 전략 하나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나라에는 아르헨티나를 포함해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와 같은 메르코수르(MERCOSUR) 4국과 칠레 페루 볼리비아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남미지역의 농수축산, 광물 및 에너지 자원에 대한 제대로 된 보고서 한 권 없고, 제대로 훈련받은 전문가 한 명 없다.”
전세계를 무대로 투자, 취업, 이민, 유학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국가 발전전략이 될 수 있다. 적극적인 해외 진출은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먼저 해외에 널려 있는 기회를 포착하고 개발하는 데 소요되는 자금을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대기업은 물론 개인과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정부의 해외 투자 관련 정보와 지식 서비스 기능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이에 앞서 해외에 흩어져 있는 600만 동포를 긴밀히 연계된 비즈니스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물론 ‘동북아경제중심국가론’도 중요하다. 한국이 중국 해안 지역의 성장과 발전을 발판으로 비즈니스 거점국가, 물류와 금융허브, 관광지로 거듭나려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사전적 의미의 중심이나 허브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전략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이미 진행하고 있는 개성공단 활성화 사업이나 철도 도로 가스관 송유관 등을 연결하는 사업, 지방의 혁신 클러스트 사업 등도 중요하다. 더 나아가 새만금이나 평택항도 중국 해안 도시들과의 물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그 역할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물류허브 전략을 뒷받침하는 기지는 인천항과 광양항, 부산항뿐이다.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는 최상위급 국정 목표다.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걸었던 ‘조국 근대화’나 ‘민족중흥’과 같은 것이다.
최상위급 국정목표는 제반 국정과제나 개혁 작업의 총화다. 뛰어난 공공 서비스와 교육·의료 서비스, 투명한 기업과 정부,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기업의 미래가치를 꿰뚫어보고 인내할 줄 아는 유연하고 현명한 금융,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낮은 갈등 해소 비용 및 협조적 관계, 높은 기업 출생률 등의 총화인 것이다. 따라서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나 ‘양성평등’ 같은 유형의 국정과제와 동일 선상으로 내려와서는 안 된다.
갈지자로 걷는 노동정책
참여정부가 시대현실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균형감각, 정치적 상상력이 취약한 교수 및 구(舊)운동권 출신인사에 크게 의존하다보니, 좌파적 성격이 배어 있는 정책이 적지 않다. 이는 노동정책과 외교·안보·통일 정책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자는 ‘사회 통합적 노사관계 구축’과제에, 후자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제에 포함된다.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은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 문제도 다루고 있지만, 주로 ‘집단적 노사관계’의 안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기조는 대체로 국가의 개입과 억압을 해소하는 것이다. ‘필수 공익사업 범위 외국 수준으로 축소’ ‘노사분규 관련 법위반자 불구속 수사’ ‘평화적 쟁의행위 업무방해죄 신중 적용’ ‘노동사건 손해배상 및 가압류 청구 남용 방지’ ‘공공부문 구조조정 노동자 참여 제도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전반적으로 노동정책의 기조는 전 노동자의 12%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직노동자, 그것도 강력한 교섭력을 가진 강력한 조직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주로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참여정부가 반(反)기업적이라고 비판받는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참여정부 초기 노동정책 보좌진의 친노동적 성향(네덜란드 모델에 심취한 데서 보듯 지나치게 이상주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등 조직노동자의 주류는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정권이라 규정하고 적대적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2003년 화물연대파업, NEIS문제와 관련한 전교조의 저항, 2004년 지하철·LG정유·코오롱·서울대병원의 쟁의는 한국의 대기업, 공기업 노동운동의 좌편향이 얼마나 극심한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는 ‘갈지자걸음’을 걷던 참여정부를 기업 편으로 밀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바로 그렇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이 친노동정책을 실제로 편 것이 무엇이냐’고 되묻는지도 모른다. 친노동정책은 집권 초기에 예비는 되었으나 민노총의 영웅적 투쟁(?)으로 실행되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기업은 노무현 정부 초기의 ‘선언적 친노동성향’에 대해 비난하는 반면 조직노동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실질적인 ‘친기업적 행보’를 비난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한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제는 주로 대북정책만 다루고 있다. 이 협소한 시각은 두 가지 문제점을 낳았다.
하나는 북한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려는 시각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소극적인 대북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북한관리’를 최상위에 놓는다면 평화를 정착시키는 과제와 더불어 2000만 북한주민의 굶주림으로 인한 세대 재생산 위기를 해소하는 과제, 북한을 세계적 차원의 국제분업 및 협업 체제에 편입시키는 과제,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정치·군사·경제적 영향력을 제어해 통일 여건을 유리하게 만드는 과제 등이 주요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북한 핵 해결 → 남북협력 심화 →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3단계 전략에만 매몰돼 매우 경직된 대북정책을 펴고 있다. 그렇다고 북핵문제가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도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남한 자본의 대북 진출은 주춤거리고 이 틈을 타서 중국, 유럽, 일본 자본의 대북 진출은 대단히 활발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북한에 가장 인색한 참여정부가 친북·반미 의혹을 받는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거대하고 강력한 중국에 대한 외교·안보적 대응책이 취약해 결과적으로 한·중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관계를 약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참여정부 초기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은 ‘당당한 대한민국’은 노무현 캠프가 2002년 대선 선거운동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까지 로고처럼 사용해 왔던 것이다. 이는 한민족이 오랫동안 중국과 일본, 미국에 짓눌려 할 말을 제대로 못하면서 살아왔다는 역사적 피해의식의 발로이자 노무현과 386의 심리 기저에 흐르는 정서다. 이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언명한 2004년 9월 MBC 대담에서 “미국에 대해 할 말을 좀 하는 편”이라는 노 대통령의 비외교적 언사로 나타났다.
어쨌든 참여정부의 당당함(자주)에 대한 집착은 외교·안보 노선의 기조를 ‘원교근공(遠交近攻·멀리 있는 나라와 손잡고 가까운 곳을 경계한다)’이 아니라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통해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듯한 양상을 띠게 만들었다. 요컨대 반미 연북 연중 노선이 한미동맹 관계를 소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당함에 대한 집착과 등거리 외교노선이 한미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있다. 참여정부의 모습은 미국의 주요 정책담당자들이 읽는 미 보수언론의 ‘편향보도’라는 필터를 통과하면서 실제보다 훨씬 반미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경제정책은 한나라당도 지지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세력의 주된 공격 지점은 바로 경제분야다. ‘분배위주’ ‘포퓰리즘’ ‘반시장, 반기업 정서를 조장한다’ ‘경제위기에 대한 인식이 안이하다’는 등 숱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도대체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무엇이 문제일까.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4개의 국정과제로 나뉘어 있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동북아경제중심국가 건설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 ▲미래를 열어가는 농어촌 등이 바로 그것이다.
‘동북아경제중심국가’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했다. 과학기술 정책은 기본적으로 산업 정책이기에 분배 위주니 반기업정서니 하는 비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비판의 근거들은 아무래도 규제정책이 줄줄이 달려 있기 십상인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과제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여기에는 ‘규제 일몰제 실시’ ‘수도권 집중 억제정책의 완화’ 등 기업을 위한 정책도 있지만, ‘출자총액 제한 제도 유지’ ‘증권 집단소송제 및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 도입’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등 재벌개혁 정책도 있다.
일찍이 12대 국정과제가 발표됐을 때 경제정책과 관련해 한나라당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는 단순한 계열분리가 아니라 금융감독으로 막아야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계열분리 청구는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 “집단소송제는 소송 남발의 부작용을 막을 방안을 마련한 뒤 시행해야 한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단계적으로 축소 폐지하고 상속증여세 포괄주의는 조세법률주의의 기본정신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행해야 한다”….
현재 한나라당이 경제정책에서 정부여당과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지점은 감세 정책이다. 한나라당은 중소기업에 대한 3년간 소득세와 법인세 및 세무조사 면제, 소득특별법 제정을 통한 노인에 대한 공제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또 재래시장 육성특별법을 좀더 강력하게 만들자는 입장이다. 그 어디에도 전설처럼 떠도는 노무현 정부의 좌파적, 분배중심주의적 기조를 문제삼는 내용이 없다. 출자총액 규제는 재벌들의 원성에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있긴 하지만 이로 인해 재벌의 생산적 투자가 가로막힌 적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비록 순환출자를 통해 지분 늘리기 시도는 가로막혀, 특히 SK그룹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나라당도 단계적 폐지를 거론하고 있다.
보수성향의 시민단체인 북핵저지시민연대 회원들이 8월27일 서울 광화문에서 개최한 ‘노무현 정권의 경제파탄, 애국세력 탄압’ 규탄대회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투자 부진의 원흉으로 자주 들먹이는 반기업정서도 그 실체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인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실사구시 능력을 상실한 일부 자산가들의 착시인지 모를 일이다. 물론 민노당 강령에 극렬한 반시장, 반개방, 분배위주 정서가 흐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정책 기조와 관련해서는 민노당과 노 대통령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면 한나라당과 노 대통령 사이에는 훌쩍 건너뛸 수 있는 조그만 실개천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개방화와 관련해서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과정에서 보듯이 참여정부는 경제개방의지가 약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농촌의원들의 반란을 방관한 자칭 주류세력들이 더 반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책의 일관성, 투명성 역시 이전 정부와 비교하면 심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정말 그 어디를 보아도 노무현 정부가 좌파적 경제정책을 편다거나 반기업정서를 조장한다고 볼 근거가 없다. 또 그럴 이유도 없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이전 정부에 비해 경제 관료에게 자율과 권한을 더 많이 주고 있다. 이건 확실하다. 지독한 내수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경제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단기적 경기부양책에는 인색하다. 한마디로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재정 및 조세정책과 통화정책은 박정희 시대 이래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경제 관료 및 전문가들이 더욱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관치가 있다면 그것은 정치논리의 소산이 아니라 특정 부문을 통제하는 일부 관료들의 텃세, 밥그릇 다툼의 소산일 가능성이 크다.
참여정부는 검찰권의 실질적인 독립을 이뤄냈다. 노 대통령 측근의 엄청난 희생을 무릅쓰면서도 대선자금 수사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반시장적 정책의 뿌리인 정경유착 고리를 잘라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숱한 비판에도 참여정부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이 같은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노무현 정부가 펼치고 있다는 반기업, 반시장, 분배 위주 정책에서 전선이 형성되지 않은 것은 그 기조를 문제삼을 만한 경제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기업정서 타령, 분배 위주나 포퓰리즘 정책 타령, 대한민국 정통성 타령은 민노당과 노무현 정부의 엄청난 간극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상적, 정책적 색맹들의 비이성적 정서의 소산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시장원리를 강조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가져가도록 허용해 이들을 견인차로 모두 공동번영하자는 사람은 있어도 시장근본주의자, 개방근본주의자는 없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이들 정치권 386을 제대로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유수 대기업의 경제연구소 등 경제전문기관에도 콘텐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취약한 구조개혁 의지
참여정부의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에 대한 무관심, 기업인 적대시, 분배위주 정책, 경제정책의 일관성 결여, 정치논리에 의한 시장원리 왜곡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앞에서 길게 설명했듯이 교육 및 의료 정책, 공공서비스 정책, 동북아중심국가론을 비롯한 세계화정책, 노동정책, 중국과 미국 간 등거리 외교를 추구하면서 한미동맹을 다소 균열시키는 듯한 외교정책 등 비경제 분야의 정책적 단견 내지 난맥상의 문제다.
이는 기본적으로 통찰력과 균형감각, 정치적 상상력이 취약한 정치집단이 역시 같은 부분이 취약한 관료, 교수, 구운동권 출신에 크게 의존해 국정 과제를 단순 수렴해서 작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겐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히틀러처럼 수십 년 묵은 낡은 국가·사회 시스템을 골격부터 바꿔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히틀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고속도로, 항만, 발전소, 박람회장 등 사회간접시설 건설을 강행해 철강산업과 자동차산업, 석유화학산업, 방위산업, 관치은행 육성 등의 효과를 이끌어냈다. 김대중 정부의 구조개혁 의지는 기업, 금융, 노동, 공공 등 4대 개혁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정부는 IMF 환란과 ‘경제신탁통치’라는 여건을 활용해 구조개혁을 거칠게 밀어붙였다.
불요불급의 의약분업 정책과 자동차, 유화, 반도체, 철도차량 등 7개 업종의 ‘빅딜정책’은 지나치게 강력한 구조개혁 의지의 기념비이다. 물론 졸속과 실패의 기념비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이 같은 구조개혁 의지가 유달리 취약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참여정부 들어 기업·금융부문 개혁은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제라는 명분으로 약화됐다. 또 공공부문 개혁은 사실상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부패 없는 사회, 봉사하는 행정’ 과제 아래 ‘효율성, 민주성, 조화되는 정부조직 개편 추구’라는 립 서비스 수준의 선언으로 어물쩡 넘어간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 ‘부처에 인사정책 자율성 부여’ ‘인사편중 시정 구체적 방안 마련’ 등과 같이 자율과 분권을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04년 하반기 들어 정부 조직에 업무혁신담당관을 만들어 상당한 힘을 실어주고는 있지만, 공무원 임용제도 및 ‘철밥통’을 건드리지 않고 제대로 성과를 낼 리 만무하다.
교육·의료부문 구조개혁은 방향성도 없이 지지부진하고, FTA 등 개방협상은 비록 방향성은 명료하지만 관료들 손에서 지지부진한 상태다. 산업정책도 김대중 정부와 비교하면 뚜렷하지 않다. 박정희식 선택과 집중전략은 가능하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효용을 다한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처방은 의사로 치면 외과 수술을 하고, 뒤틀린 뼈를 교정하고, 어긋난 뼈를 붙이는 그런 식의 치료와는 거리가 멀다. 거칠게 말하면 노무현 정부의 치료는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거대한 외과처방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 혈액순환, 기의 흐름 등을 문제삼는 내과의사나 한의사 수준의 처방만 구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분권과 자율, 참여, 투명, 깨끗함, 사회정의 등의 이름으로 구사된다. 과거사 진상규명이나 국보법 폐지 같은 곁가지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상식만 주장하는 보수세력
어쨌든 노무현 정부의 내과처방 위주의 정책, 분권화와 자율화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강자들일 수밖에 없다. 즉 공무원, 노동쟁의 조정법에 대해 고민이라도 할 수 있는 조직노동자, 전교조, 시간강사·조교를 거느리고 국가 프로젝트에 쉽게 접근해 노동의 양과 질에 비해 많은 것을 누리는 교수, 잘 나가는 개인병원 의사, 지방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토호들이 바로 수혜자인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국가경쟁력이 총체적으로 떨어지면 모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원래 노 대통령은 사회적 강자들이 저지르는 불의에 대한 전투의지가 가장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국정과제 작업을 담당한 측근이나 관료가 구조개혁의 비전과 전략이 취약하고, 이들 사회적 강자들의 이해관계나 편협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보니 국정과제 곳곳에서 사회적 강자에게 더 많은 권리를 주는 정책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부는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권, 자율, 참여, 투명성을 확대 강화시켜야 할 부문과 히틀러 박정희 리콴유 김대중 등 전직 지도자들이 보여준 구조(시스템)개혁과 혁명이 필요한 부문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자칭 보수세력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 이래 오로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한미동맹, 대한민국의 정통성 같은 상식만 역설해 왔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과(過)보다 공(功)만 확대해서 보려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 치적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김 전 대통령을 이해하지 못하면 노무현 대통령을 이해할 수 없다. 미래담론이 아닌 상식화된 과거담론에 의지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려고 하면 과거지향세력으로 비치지 않을 수 없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은 기본적으로 힘이 있는 쪽이다. 신자유주의자 소동이나 반미·친북·좌파 소동이나 북한의 신경질적이고 우스꽝스런 행동은 기본적으로 참혹했던 한민족사가 남긴 업보다. 피해의식이 만든 극단적인 사고와 알레르기 반응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민족의 독특한 특성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참여정부와 여당의 386은 극도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북한을 대할 때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 다루듯 매우 조심하는 편이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에 대한 일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우려는 그 단적인 예다. 그런데 과거사나 국보법 문제를 제기할 때 보았듯이, 참혹한 세월을 통과하면서 북한 지도부 못지않은 피해의식이 있는 보수우파들에 대해서는 전혀 조심스럽지 않다. 이는 심히 부당하다.
부(富)는 도박판의 판돈이 아니다
비록 허상과 착시에 기반을 두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의 정통성, 한미동맹,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기(國基)가 노무현과 386과 진보세력들에 의해 흔들릴까봐 노심초사하는 보수세력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행위는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당면한 중차대한 과제를 풀어가는 데 과거사나 국보법이 관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결코 분배위주 정책을 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분배위주라는 시비가 이는 것은 자칭 보수세력의 실사구시와는 거리가 먼 태도의 소산이다. 한편으로 노무현 정부가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균형에 집착하는 태도의 소치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이정우 정책실장은 균형발전 지방분권 신행정수도 동북아경제중심 등 4개 사업을 “국가경쟁력을 몇 단계 상승시킬 수레의 네 바퀴”라고 표현하면서 “이를 일관성 있게 추구하면 국가경쟁력은 높아지고, 나라의 품격이 달라지며 결국 선진국 진입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이 말한 4개 사업 중 3개는 사실 ‘균형’의 범주에 해당한다. 그런데 과연 균형을 잡으면 나라의 품격이 달라질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참여정부의 빈부격차 해소 문제도 그렇다. 미국 민주당,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의 신노선이 표현된 강령적 선언 어디에도 빈부격차 해소라는 말은 없다. 빈곤 해소라는 말은 있을지언정. 그것은 그들이 비정해서가 아니다. 부(富)라는 것은 부자가 많이 가진 만큼 빈자가 적게 가지는 도박판(제로섬 게임)의 판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여전히 빈부격차를 문제삼는다. ‘국민통합과 양성평등의 구현’ 과제의 하부 추진과제 중 첫 번째가 ‘빈부격차 완화를 통한 계층통합’이다. 이는 좌회전 깜빡이 격인 정책을 낳는 모태일 것이다.
국부손실 정책과거사 청산해야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한창 상상의 나래를 펴는 소년기와 혈기와 의기가 뻗쳐서 불의를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충동적 주먹질을 하기 쉬운 청년기에는 이를 증폭시키는 서유기(西遊記)를 보지 말고, 모든 것을 파워게임이나 권모술수로 풀어가는 나이인 장년기에는 삼국지(三國志)를 보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 같은 중국의 지혜에 비추어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많은 것을 ‘불균형-불공평-부정의-당당함(자주)’의 문제로 보는 사람으로 주변을 채우지 말아야 한다.
확신컨대 한국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려고 한다면, 거꾸로 산 사람을 부관참시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을 일이 아니다. 정부와 시장, 사회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감시·감독 장치를 치밀하게 하며 공정경쟁과 법치주의를 철저히 시행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반역자와 기회주의자가 판치던 한국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정화된 것은 선언적으로라도 보장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법치주의 등을 보장한 자유민주주의와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제도로 정착돼 자체 정화와 진화를 보장했기 때문이다.
과거사 진상규명을 꼭 해야 한다면 고발당할 사람도, 고발할 사람도 이미 죽어 없어진 수십 년 전의 과거사가 아니라 수천억 원의 예산낭비를 가져온 지방공항 프로젝트, 대우자동차, 한보철강 같은 거대 기업의 해외매각 과정에서 기업의 초토화와 매각전략 및 노하우의 부재로 인한 국부(國富)손실 문제 등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는 과거사의 전말을 파헤치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