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 1867년, 캔버스에 유채, 90×117cm,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 박물관 소장
그렇다고 섹스에 대한 욕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자에 대한 욕망이 충동적이고 맹목적인 남자는 항상 미녀와의 하룻밤을 상상한다. 상상 속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섹스 중 하나가 강간이다. 현실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강간하기 위해서는 여자를 납치하는 것이 가장 초보적인 방법이다. 무력한 여자 앞에서 남자의 힘을 정면으로 보여줄 수 있다.
여자를 납치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 세잔의 ‘납치’다. 남자가 여인을 안고 숲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남자는 긴장으로 몸이 굳어 있고 안겨 있는 여자는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다.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 숲은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하늘에는 빛 한 줄기 보이지 않는다. 남자의 발밑에는 썩은 나뭇잎만 가득하다. 두 명의 님프가 한가하게 장난을 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 여자의 육체 외에 모든 것을 다 어둡게 처리하고 있는데, 어두운 색은 납치, 폭력, 불행을 상징한다.
폴 세잔(1839~1906)은 이 작품에서 남자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지만 남자를 고전적인 스타일로 그려 넣음으로써 현실과 다른 세계임을 확실히 하고자 했다. 세잔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성적인 관심이 많으면서도 여자를 유혹하거나 사귀지 못했다.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 1570년, 캔버스에 유채, 182×140cm,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 박물관 소장
기원전 509년 공포정치를 편 타르퀴니우스는 사촌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에게 반한다. 그리고 접근해 섹스를 요구한다. 죽이겠다고 협박하는데도 루크레티아가 끝내 거절하자 타르퀴니우스는 결국 힘으로 그녀를 겁탈한다. 다음 날 아침 루크레티아는 아버지와 남편을 포함한 모든 가족을 모아놓고 자신이 당한 일을 털어놓고 복수를 당부한다. 그리고 자살한다. 이에 콜라티누스와 그의 가족은 시민봉기를 일으켰고 타르퀴니우스는 결국 추방당했다. 옷을 입은 타르퀴니우스는 침대에 누워 있는 벌거벗은 루크레티아를 칼로 위협하고, 그녀는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루크레티아의 위로 뻗은 팔은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남자에게 잡혀 있어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를 보여준다. 희고 부드러운 침대 시트와 검은색 커튼은 여자와 남자의 성격을 나타내며, 남자와 여자의 다리가 나란히 평행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두 사람이 이뤄질 수 없는 관계임을 암시한다.
<흑인여자의 강간> 1632년, 캔버스에 유채, 104×127cm, 스트라스부르 보자르 박물관 소장
상상의 최고조는 남들 보는 앞에서 여자를 강간하는 것이다. 관음증과 욕구 충족 그리고 힘의 과시를 동시에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명 앞에서 강간하고 있는 순간을 그린 작품이 코벤브르흐의 ‘흑인여자의 강간’이다. 침대에 앉아 있는 남자가 흑인여자를 안고 겁탈하면서 앞에 서 있는 남자를 향해 웃고 있다. 흑인여자는 저항하면서 시선을 돌려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옆에 서 있는 옷을 입은 남자는 놀라면서도 흑인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크리스티안 반 코벤브르흐(1604~1667)는 노골적이고 세속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비난을 피하기 위해 강간하는 남자를 보고 있는 두 명의 남자를 성서에 나오는 악마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강간> 1868~1869년경, 캔버스에 유채, 81×116cm,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가정집 같은 분위기는 남자가 돈을 치렀으며, 여자는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자신의 방까지 남자에게 허락했음을 암시한다. 벽난로 위의 거울은 남자의 욕망과 여인이 겪는 감정을 비춰 보인다. 코르셋을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는 붉은색 줄은 강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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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이 작품에서 남자가 문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남자의 성적 폭력을 암시하며 속옷차림으로 무방비 상태로 앉아 있는 여인이 성적 학대를 받고 있음을 표현했다. 그는 ‘강간’이라는 제목을 인정하지 않고 풍속화라고 불렀다. 방 안에 있는 남녀는 서로 소외시키면서 각자 고립돼 있어 에로틱한 분위기보다는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