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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를 타면 한국차가 보인다

쏘나타를 타면 한국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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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자동차가 다섯 번째 쏘나타 모델을 내놓았다. 13년 역사의 쏘나타 시리즈 ‘결정판’이라고 한다. 1988년 첫선을 보인 이래 한국을 대표하는 승용차로 입지를 다져온 쏘나타는 한국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현대자동차가 새해 벽두 쏘나타 시리즈의 전통을 이어받은 뉴 EF쏘나타를 내놓았다. 1월10일 판매에 들어간 이 모델은 EF쏘나타의 뒤를 이어 국내 중형차 시장을 리드하겠다는 현대차의 의지와 자부심을 담고 있다. 1999년 1월부터 개발에 들어가 24개월 동안 총 1600억 원의 개발비를 쏟아부었다는 게 현대차측의 설명이다.

현대차는 이 모델이 1988년 첫선을 보인 쏘나타 시리즈의 결정판이라고 자부한다. 13년간 한국 중형차의 대명사가 돼온 쏘나타는 혁신을 거듭하면서 중형차 기술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왔고, 이런 기술축적을 바탕으로 뉴 EF쏘나타를 내놓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광고 카피도 ‘쏘나타 최고의 작품’이다.

그러나 정말 ‘혁신’을 하고 ‘기술축적’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가령 새 모델에 장착한, 고연비(高燃比)에다 변속 충격이 없는 첨단 6단 무단변속기(CVT)만 해도 그렇다. 이 변속기는 유압기술 수준이 낮은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못해 현대는 지난해 8월경 일본 미쓰비시자동차가 양산한 것을 들여와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현대의 주장대로 자동변속기에 비해 실제로 연비가 10% 향상됐는지도 의문이다. 현대는 실험 결과가 이를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자사 홈페이지에 “CVT와 가솔린 직접분사(GDI) 엔진을 함께 장착해야 연비가 10% 정도 향상된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제대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쏘나타가 국내 중형차, 나아가 국내 자동차산업의 성장을 이끌어온 대표적 브랜드인 것만은 틀림없다. ‘쏘나타가 바뀌면 중형차의 기준이 바뀝니다’는 뉴 EF쏘나타 광고 문구에는 현대의 그런 자부심이 오롯이 깃들여 있다.





한국 중형차 ‘대표선수’

‘국산 승용차 최장수 모델’ ‘베스트 셀링 카’ 등 그간 얻어낸 갖가지 기록과 명성만 봐도 쏘나타는 국산 중형차를 대표하는 차종이다. 최장수 모델이다 보니 ‘훈장’도 많다. 포니 스텔라 엑셀에 이어 현대차의 네 번째 고유 모델인 쏘나타는 판매를 시작한 지 꼭 12년 만인 작년 7월 말 200만 대 생산 기록을 달성했다. 12년 동안 연평균 17만 대 이상씩 팔렸다는 얘기다. 자동차산업 선진국에는 한 모델이 1000만 대 이상 팔린 차종도 있다지만 우리 현실에선 200만 대만 해도 대단한 기록이다.

쏘나타 이전의 최장수 차종은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승용차 포니였다. 국내 자동차산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됐던 포니는 75년 12월에 태어나 90년 1월 단종될 때까지 14년 1개월 동안 생산됐다. 그런데 현대측은 쏘나타의 실제 나이가 99년 말로 14년 2개월이 되어 이 기록을 깼다고 주장한다.

이는 쏘나타의 출발시점을 공식 시판시점인 88년보다 앞당겨 잡은 데 따른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현대차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쏘나타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쓰인 것은 85년 10월 출시한 스텔라 최상급 모델(프로젝트명 ‘Y1’, 이때 표기는 ‘소나타’였다)에서였다. 쏘나타가 포니를 제치고 최장수 모델이 됐다는 것은 쏘나타의 ‘진짜’ 역사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1978년부터 새 중형차인 Y카 개발에 나선 현대차는 5년 만인 83년 봄에 스텔라를 선보였고, 85년 10월 스텔라의 최상급 모델인 소나타를 발표했다. 소나타는 스위치를 누르면 액셀러레이터를 밟지 않아도 일정 속도를 유지하는 오토 크루즈 컨트롤과 파워 스티어링 등 당시로서는 첨단 장비를 갖춘 중형차였으나,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스텔라와 차별화하는 데 실패해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2년 만에 슬그머니 단종됐다. 이름 때문에 ‘소(牛)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을 들어서였을까.

이런 사실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서인지 현대차의 일부 관계자들은 실질적인 1세대 쏘나타가 88년 7월에 나온 Y2 모델이라고 말한다. 북미 수출 전략형으로 개발된 Y2카는 국산 중형차로는 처음으로 앞바퀴 굴림방식을 적용하고 설계와 디자인까지 자체 해결한, 명실상부한 국내 첫 독자 모델이었다고 한다. 이후 91년 한 차례의 마이너 체인지를 거쳐 93년 쏘나타Ⅱ→96년 쏘나타Ⅲ→98년 EF쏘나타→2001년 뉴 EF쏘나타로 발전해왔다.

역사가 오래다 보니 ‘변종’도 생겨났다. 기아자동차가 지난해에 내놓은 옵티마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통합되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모양으로 나왔을 것이다. 현대가 EF쏘나타 후속 모델로 개발하던 차의 디자인을 기아에 넘겨줘 옵티마를 만들게 하고 자신은 뉴 EF쏘나타 개발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옵티마는 EF쏘나타를 기본으로 해서 태어난 쏘나타의 ‘의붓자식’쯤 된다고 할까.

‘오너형 고급차’ 전략 주효

88년 7월 공식 출시된 쏘나타는 나온 지 한 달여 만에 1만여 대의 계약고를 올려 대히트를 예고하더니 이듬해부터는 국내 히트 상품에 단골로 선정됐다. 쏘나타는 승용차 시장에서 94년 이후 96년과 98년을 제외하고 내리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쏘나타의 인기는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91년 7월, 대형차에만 채택하던 고급 사양을 갖춘 쏘나타 골드 모델이 나오자 다른 승용차 운전자들까지 금장 ‘GOLD’ 엠블럼을 부속품 가게에서 구해다 붙이곤 했다. 90년대 말에는 쏘나타의 ‘S’자 엠블럼이 서울대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대학입시를 앞둔 고교생들에게 집중적인 표적이 되기도 했다.

‘쏘나타’는 하마터면 공중으로 사라질 뻔한 이름이다. 당초 전 사원을 대상으로 한 신차 이름 공모전에 응모한 120여 개의 이름 가운데 최종 후보로 압축된 것은 ‘퀘스트라(Questra)’와 ‘쏘나타(Sonata)’ 두 가지였다. 하지만 많은 임원들은 쏘나타라는 이름에 부정적이었다. 한번 실패한 모델명(소나타)이기 때문에 신차 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반면 미국 현지법인 240여 딜러들의 의견은 달랐다. 쏘나타가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다는 것이었다. 이 차는 수출 전략형으로 개발됐던 만큼 결국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쏘나타로 결정됐다.

쏘나타는 현대차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들은 “쏘나타급 이하의 차종은 팔릴수록 손해를 보거나 겨우 손익분기점을 맞추고, 쏘나타급 이상 차종에서 수익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현대차가 판매한 승용차 31만3721대 가운데 쏘나타급 이상 차종은 17만4313대로, 절반이 넘는 55.6%를 차지했다. 쏘나타 덕분에 현대차가 얼마나 수지맞는 장사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쏘나타가 이토록 오래 인기를 끌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86∼88년의 ‘3저 호황’을 타고 우리나라도 자동차 대중화 시대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을 현대가 재빨리 간파, ‘오너형 고급차’를 지향한 전략이 먹혀들었다고 평가한다. 고급 오너차에 대한 수요를 예상해서 적절한 시점에 쏘나타를 개발한 게 성공요인이었다는 것이다.

현대는 이런 미래 수요를 이미 스텔라에서 감지했다. 스텔라는 지금의 쏘나타와 비슷한 크기였지만 엔진은 1.5ℓ급을 얹었다. 차 크기는 중형이지만 엔진은 준중형급을 탑재한 것이다. 당연히 언덕길 같은 데서는 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차는 그런대로 잘 팔렸다. 이 무렵부터 차에 관한 한 ‘큰 것이 아름답다’는 분위기가 싹트고 있었던 것.

현대는 쏘나타를 개발하면서 ‘이왕이면 큰 것’을 좋아하는 국내 소비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세심하게 배려했다. 국산 중형차로는 처음으로 앞바퀴 굴림형으로 설계한 것이나 엔진룸과 트렁크를 짧게 만든 것은 실내공간을 넓혀 큰 차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여러 사람이 타는 패밀리 카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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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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