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금융시장을 선도해 온 맨해튼의 월스트리트. 지난 30년간 낮보다 더욱 밝은 월스트리트의 밤을 밝혀온 우리의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술이 있습니다.”
신문광고처럼 세계 금융가의 밤을 밝혀온 우리조명(주)은 세계 유수 기업들도 불경기에 힘겨워하는 요즘, 조명기기 전문업체답게 대낮처럼 밝은 호경기를 누리고 있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기업
우리조명은 현재 내년 초까지 주문이 밀려 납기일을 맞추느라 공장을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하고 있다. 세계적 불황에도 끄떡없는 이 회사의 불황타개 비법은 적절한 수출과 내수 판매 비율. 수출과 내수가 각각 55 대 45로 나누어져 있어 웬만해서는 불황을 타지 않는다. 현재 우리조명은 세계 3대 조명 메이저인 GE, 필립스, 오스람 등에 OEM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아울러 ‘장수램프’ 브랜드로 내수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내수판매는 1996년부터 시작했는데 6년째에 접어든 지금 시장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일본, 독일, 영국 등 세계 1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30년 넘게 단일 제품을 수출해온 탓에 우리조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지도가 더 높다.
또 하나의 불황타개 비법은 이 회사 윤철주(尹喆柱쪾49) 사장의 미래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과감한 경영법이다. “투자 없이는 미래도 없다”고 믿는 윤사장은 중소 제조업체일수록 고품질과 앞선 기술의 제품 생산을 위해 창의적 사고를 지닌 젊은 사원을 많이 기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윤사장은 노련한 숙련공들의 기술 노하우와 참신한 신입사원의 창의적인 사고가 어우러질 때, 작지만 강한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 있는 제품생산을 위해서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우리조명은 내수시장의 40%를 차지하는 중국제품과 가격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베트남에 1만여 평의 대지를 확보, 제2생산공장 건립에 들어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제품은 국산에 비해 품질이 크게 떨어져 아무리 싸도 소비자들이 외면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품질에 거의 차이가 없어 국내제품이 가격경쟁에서 밀리고 있어요.”
2003년 베트남공장이 완공되면 장식용전구 사업장을 이전, 미국과 유럽지역 수출물량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곳에선 500명의 직원이 8000만개의 전구를 생산, 2000만달러의 소득을 올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조명의 매출은 지금의 배로 늘어 8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사장은 지난해 베트남공장 설립과 함께 현재 생산중인 일반조명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150억원을 투자해 일본 NEC와 함께 ‘우리ETI’를 설립했다. 우리ETI에서는 NEC가 개발한 냉음극형광램프(CCFL)를 생산하는데, NEC와 기술이전은 물론 생산마케팅 분야에 관한 전략적 제휴를 맺고 해외시장을 공동으로 개척하기로 합의했다.
CCFL은 초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의 발광소자로 사용되는 핵심부품.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시장도 매우 넓다. 이미 내년 6월까지 400만개(100억원어치)를 일본에 수출하기로 계약을 체결했고 현재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조명은 이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내년 초까지 100억원을 투자해 생산기기 2호기와 3호기를 들여올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연간 300억달러의 매출이 가능해진다.
300 종류의 전구생산
우리조명은 백열램프, 형광램프, 할로겐 램프(상업용 실외조명, 무대의 스포트라이트, 마이크로필름리더 등에 사용) 등 3개 사업 본부를 두고 300여 가지에 달하는 각종 램프를 생산하고 있다. 이중 백열램프에 속하는 장식용 전구 생산량이 가장 많다. 장식용 전구는 해외바이어 사이에서 그 품질을 인정받아 바이어들이 직접 주문을 의뢰해 온다. 그래서 국내 장식용 전구 수출의 80%를 우리조명이 하고 있다. ‘전구 하면 한국’을 떠올리는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길 꿈꾸던 창업주 장세원 회장(71·1998년 은퇴)의 바람이 일부는 이루어진 셈이다.
현재 우리조명은 자산 500억원에 부채 260억원 자기자본 240억원으로 부채비율 108%인 건실한 재무구조를 지니고 있다. 직원 수는 600명, 연간 매출액은 400억원이며 1999년에 코스닥에 등록했다. 이 회사가 코스닥에 등록한 사연도 독특하다. 1978년 우리사주조합을 만들어 사원들로 하여금 회사주식을 보유하게 했는데, IMF가 터지고 금융개혁법이 제정되면서 자산 100억원 이하인 직장새마을금고는 폐쇄하라는 조치가 내려지자 직원들이 보유한 주식이 환금성을 잃게 돼 그 가치를 살려주기 위해 코스닥 등록을 했다는 것이다.
폭염이 쏟아지는 중복, 1만여 평 규모의 반월공단 우리조명에 들어서자 물류창고엔 세계시장으로 선적돼 나갈 완제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각 생산라인의 뜨거운 불길 속에선 지구촌의 밤을 밝힐 각종 램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리조명 직원들은 비록 OEM 생산이지만 세계 유명 전기기기 제조회사들에 수출한다는 데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생산 제품의 80% 이상을 GE와 필립스에 수출하고 있는 것. 특히 GE와는 1977년 거래를 시작해 올해로 24년째 수출을 하고 있다. 이런 큰 회사와 오래 거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앞선 기술과 우수한 품질 때문이다. 여기에 은퇴한 장세원 회장의 인간적인 비즈니스도 한몫 했다.
“1980년 컴퓨터 프로그램 교육을 받으러 미국에 갔을 때 회장님께서 거래처도 돌아보고 오라고 하셔서 거래업체를 방문했는데 다들 회사이름은 모르고 ‘미스터 장’만 아는 겁니다. 그때 그분이 인간적인 비즈니스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 섬유사업을 하다 1966년 서울 염창동에 풍우실업을 설립하고 전구를 만들기 시작한 장회장은 일찍이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경영자다. 그는 “기업은 만리장성을 하나 쌓는 것과 같다. 모래성이 되지 않고 굳건하게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선 이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주인이 돼야 한다”며 평소 재목이 될 만한 직원들을 따로 불러 여러 가지 경영교육을 시켰다. 1979년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입사한 윤철주 사장도 6개월 동안 매일 한 시간씩 장회장에게서 회사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것을 배웠다.
“회사 경영법부터 생산관리법, 회계, 원가계산법까지 다 가르쳐주셨어요. 그때는 20대여서인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한 귀로 듣고 흘린 것도 많았는데 뒤에 내 개인사업을 하면서 그때 배운 것이 많이 도움이 됐어요. 지금도 그 가르침을 토대로 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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