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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부 · 산자부의 IT 산업 대혈투

정통부 · 산자부의 IT 산업 대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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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산업 관련 업무 분장이 이토록 중차대한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정보기술을 빼놓고는 어떤 분야도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게 된 시대 상황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냥 ‘산업’이라고 하면 그것이 ‘IT산업’을, 또 그냥 ‘문화’라고 하면 그것이 ‘디지털 문화’를 가리키는 세상이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산자부만 해도 추진 중인 정책의 약 40%가 IT산업과 관련된 것이다. 문광부가 관장해 온 출판, 문학, 미술, 영상 등도 오프라인 텍스트에서 온라인 콘텐츠로 빠르게 양질전화하고 있다. 어찌 보면 ‘정보’와 ‘통신’이 관련된 모든 산업을 자기 영역으로 선언한 정통부와 타 부처 간의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정통부 대 산자부로 대표되는 부처간 갈등에는 단순히 공무원 사회의 해묵은 ‘밥그릇 싸움’으로 폄하하기엔 석연치 않은 문제가 내재해 있다. 시대는 IT산업 전반의 업무를 관장하고 부처간 업무 조정 및 협력을 이끌어낼 조직을 요구하고 있다. 또는 정부 각 부처가 반목 없이 자기 분야에서 IT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유도하는 구조적이고 효과적인 방책을.

정통부는 현재 상황에 대해 “IT 분야가 이른바 ‘물 좋은 곳’으로 인식되고, 이쪽으로 돈과 인재가 몰리자 위기의식을 느낀 타 부처가 괜한 욕심을 부리고 있다. 일부 의미 있는 문제제기도 IT기본법 제정으로 해소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업계와 학계, 타 부처에서는 차제에 정통부의 위상과 역할, 그리고 이를 포함한 정부의 IT정책 전반을 재고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체신부가 정통부로 확대 개편된 것은 1994년 12월이다. 김영삼 정부는 미래 국가발전의 핵심전략 산업인 정보통신 사업추진체계를 보강하기 위해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개칭했다. 정통부는 기존 체신부 업무 외에 상공자원부의 정보통신산업 육성 및 과기처의 정보산업기술 개발 업무를 이관해왔다.

당시 정통부에 부여된 최대 과제는 국가·사회 정보화 추진이었다. 1995년 7월에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보화촉진기본법을 제정했다. 핵심 내용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보화추진위원회’ 설치와 ‘정보화촉진기금’ 조성이었다. 주관부처는 정통부. 주로 통신사업자들이 낸 출연금으로 조성한 거액의 정보화촉진기금은 이후 정통부가 IT 관련 대규모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데 든든한 재정 기반이 되어 주었다.



‘육성’과 ‘규제’라는 양날의 칼

정통부가 국가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에 기여한 공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2001년 5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는 600만 명. 전체 1440만 가구 중 무려 41%가 정보고속도로의 혜택을 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최근 발간한 ‘OECD회원국 초고속망에 관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30개 OECD 회원국 중 1위”라며 회원국들에게 “한국의 사례를 배울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정통부는 우리나라가 기술대국으로 부상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특히 CDMA· IMT-2000 등 핵심 통신기술 개발에 진력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무선통신 대국으로 부상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정보통신산업 육성에도 5년간 6098억 원을 투자했다. 이로써 IT산업이 2000년도 국내총생산(GDP)에 12.9%(132조8000억원)를 차지할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정통부에 대한 IT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통신업계와 정통부 간 불신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다. 10년 가까이 ‘동반 성장’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업계와 학계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정통부가 국내 경쟁을 유도해 국제경쟁력을 높인다는 미명하에 통신사업권을 남발, 업계의 총체적 부실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정부가 출연금을 받는 기간통신사업자만 37개사에 이른다. 이중 상당수가 이미 부도가 났거나 도산 위기에 몰려 있다. 장비업체나 설비업체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 넓어진 시장만 보고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과당경쟁에 치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통신사업권 남발이 ‘과거의 실책’이라면, 현재의 쟁점은 정통부가 쥔 ‘육성’과 ‘규제’라는 양날의 칼이다.

통신사업은 공공의 성격이 짙다. 적정한 주파수 대역과 통신회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파수는 국민 모두의 재산이므로 통신업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출연금을 내고 정해진 주파수 대역을 ‘사야’ 한다. 그러므로 정통부가 PCS나 IMT-2000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것은 거칠게 말해 ‘주파수를 할당받을 자격이 있는 기업을 선정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통신사업은 경쟁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첨단IT산업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한 업체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면 모르되, 여러 업체가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는 공공성과 수익성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 통신시장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사업권을 내준 정통부로서는 모든 사업자가 일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정책적으로 배려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사용하는 것이, 이른바 ‘공정 경쟁’을 위한 각종 규제이다. 한국통신·SK 등 선발업체의 가격 인하를 불허한다든가, 이동통신업체가 기간통신망 사업자에게 지불하는 접속료를 조절한다든가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우수한 기업을 육성해야 하는 과제도 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논리에 따라 옥석을 가리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통부 동향 파악에 바쁜 업계

이렇듯 상반된 목표에서 나온 정통부의 각종 통신정책은 업계에서 환영을 받기는커녕 일관성이 없다, 특정 사업자만 비호한다, 경쟁원리에 어긋난다는 등 불신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부처가 산업정책과 경쟁정책을 동시에 취급함으로써 발생하는 혼란이다.

예를 들어 한국통신은 “대주주인 정통부가 공정 경쟁이란 명목으로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회사의 수익과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사업권을 남발한 건 우리가 아니라 정통부인데, 이제 와서 다른 업체도 먹고 살아야 하니 시장을 잃어달라는 건 지나친 요구가 아니냐”는 것이다.

반대로 데이콤, 하나로통신 같은 신생사업자는 “살아남기 위해선 접속료 인하 등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통신과 밀월관계에 있는 정통부가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모두로부터 지탄을 받는 모양새다.

모 통신업체 부장은 “요즘은 각종 규제 때문에 일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어떤 분야나 시장 형성 초기에는 공정 경쟁을 위한 각종 장치가 필요하다. 그 장치들이란 대개 규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 규제들은 시장이 활성화되고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 통신업계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정통부는 여전히 통신업체들을 공기업처럼 다루려 한다. 업계 자율이란 허울좋은 명목일 뿐, 실제로는 정통부의 허락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IMT-2000 사업만 해도 ‘동기식 1사, 비동기식 2사(1동 2비)’ 등의 표준 규제 규정만 두지 않았던들 지금처럼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 견해다.

모 통신업체 정보담당 임원은 “통신업체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은 기획실이나 마케팅이 아니라 정보부서에 배치된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정통부와 경쟁기업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때로는 투자, 기술개발보다 정통부의 의중을 탐색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고 말했다. 시장을 상대로 승부하는 것보다 정통부로부터 뭔가를 얻어내는 것이 이윤 창출에 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다.

“정통부의 정책에는 일관성이 없다. PCS나 IMT-2000 사업자 선정 때도 그랬고, 이동통신 관련 정책을 수립·운용하는 면에서도 그렇다. 정통부가 의욕적으로 벌인 사업들의 결과를 보자. 초고속통신망 업체 적자, PCS 사업자 부실, 무선데이터통신 업체들은 오늘내일 하고, 서울이동통신 등 호출서비스 업체들도 전멸 직전이다. 안 된다고 했다가 상황에 밀려 허용하고, 다시 반대쪽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면 규제를 강화하는 식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모 통신업체 A이사의 신랄한 비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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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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