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호

현대차 정의선의 ‘트럼프 2.0’ 시대 승부수

[Focus] 최초 외국인 CEO 선임, 트럼프에게 100만 달러 기부까지…

  • 유수진 연합인포맥스 기자 sjyoo@yna.co.kr

    입력2025-02-1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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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사 이래 최초 外人 CEO 호세 무뇨스 선임

    • ‘미국통’ 전면에… 트럼프 시대 불확실성 대응

    • 전기차 보조금 폐지·관세 폭탄 ‘압박’ 극복이 관건

    • 우호적 관계 형성에 집중… 트럼프-정의선 만남 추진

    1월 6일 경기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신년회에서 정의선 회장이 새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1월 6일 경기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신년회에서 정의선 회장이 새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호세 무뇨스(60).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말 현대차 신임 사장 대표이사(CEO)에 선임한 인물이다. 그의 임명은 현대차그룹 내부는 물론 재계 전반에서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1967년 현대차 출범 이래 57년 동안 전례가 없는, 최초의 외국인 CEO이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기업으로 범위를 넓혀도 외국인 임원이 CEO직을 거머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후 현대차그룹 안팎에선 깜짝 인사의 배경을 파악하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했다. 재계 문법에서 ‘사상 최초’는 특별한 의도가 내포돼 있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즉 정의선 회장이 올해 드라이브를 걸고자 하는 그룹의 방향성과 목표를 짐작할 수 있다.

    스페인 국적인 무뇨스 사장은 일본 도요타와 닛산 등을 차례로 거친 인물이다. 이른바 ‘순혈’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현대차에 합류(2019년)한 지도 5년여밖에 되지 않았다. 2023년부터 사내이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외국인 임원 최초 사례는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사 직전까지도 하마평에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정 회장의 선택은 그였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신년사에서 “혁신을 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국적과 성별, 학력, 연차와 관계없이 오로지 실력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창의적이고 열성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겠다”는 각오도 덧붙였다.

    정 회장의 발언은 신임 사장 발탁에 능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이에 자연스럽게 무뇨스 사장의 이력과 그간의 성과, 향후 기대되는 역할 등에 관심이 집중됐다.

    재계에선 현대차그룹이 ‘트럼프 리스크’를 고려해 이번 인사의 방향을 잡았다고 평가한다. 수년간 현대차의 북미 사업을 안정적으로 키운 수장을 CEO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단순한 리더십 변경이 아닌,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미래 산업 생태계 구축이라는 전략적 비전이 담긴 인사라고도 해석된다. 현대차그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전후해 미국에 상당한 정성을 쏟아부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보탰다.

    실제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미국의 리더십 교체로 북미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다. 높은 관세 부과와 전기자동차 보조금 폐지 등 악재가 밀물처럼 순식간에 밀려들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서로 경쟁하듯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월 6일 경기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신년회에서 정의선 회장(가운데)과 장재훈 부회장(왼쪽), 호세 무뇨스 사장(오른쪽)이 좌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1월 6일 경기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신년회에서 정의선 회장(가운데)과 장재훈 부회장(왼쪽), 호세 무뇨스 사장(오른쪽)이 좌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미국통’이자 ‘판매통’이 선보인 ‘무뇨스 매직’

    무뇨스 사장은 지난해 말까지 현대차의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으로서 북미 사업 전반을 책임졌다. 2019년 4월 처음 현대차에 합류했을 때부터 그의 역할은 북미 판매량을 끌어올리고 전 세계 판매 및 생산 운영 최적화와 수익성 등 전반적인 실적 개선, 사업전략 고도화를 주도하는 일이었다.

    당시 현대차는 2016년 이래 매년 줄고 있는 북미 판매량에 대한 고민이 컸다. ‘미국통’이자 ‘판매통’으로 유명하던 무뇨스 사장을 초빙한 이유다. 앞서 그는 도요타에서 유럽법인 스페인·포르투갈 판매 마케팅 담당을 지냈고, 닛산에선 유럽법인 판매 마케팅 담당, 멕시코 법인장, 북미 법인장, 전사 성과 담당 등을 역임했다. 특히 닛산 근무 당시 미국과 멕시코에서 기록적 판매 실적을 세워 정 회장의 눈에 띈 것으로 알려졌다.

    ‘무뇨스 매직’은 실체로 나타났다. 그의 손이 닿자마자 판매 실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딜러 경쟁력 강화와 수익성 중심 경영을 바탕으로 북미 실적을 빠르게 성장시켰다. 지나치게 세단 중심이던 현지 시장 포트폴리오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픽업트럭 등으로 다변화한 게 주효했다.

    그가 미국 시장을 책임진 시간 동안 현대차의 현지 판매량은 30% 넘게 증가했다. 2018년 67만7946대이던 판매 대수가 지난해 91만1805대로 34.5% 늘며 ‘역대 최다’ 신기록을 세웠다. 이는 현대차가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을 올리는 데도 기여했다. 미국은 현대차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현대차 내부에선 무뇨스 사장의 합류를 기점으로 미국 시장 내 영향력이 달라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런 인물을 CEO로 선임했다는 건 현대차가 올해 북미 사업 확장에 더욱 힘을 싣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응 전략과 비전 마련을 더욱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사실상 미국 시장에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현대차가 이번 인사에서 미국 전문가 한 명을 더 전면에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성 김 사장이 주인공이다. 현대차그룹은 김 사장을 그룹 싱크탱크 수장에 임명해 글로벌 대외협력과 국내외 정책 동향 분석 및 연구, 홍보 등을 총괄하도록 했다. 싱크탱크 역량 제고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에 따른 각종 지정학적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성 김 사장은 동아시아와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에 정통한 미국 외교 관료 출신이다. 부시부터 오바마·트럼프·바이든 등 역대 미국 정부에서 두루 요직을 맡았다. 미국 국무부 은퇴 후 지난해 1월 현대차에 고문역으로 합류해 글로벌 통상·정책 대응 전략, 대외 네트워킹 등을 지원해 왔다.

    ‘트럼프 2.0’ 시대 이중고… 전기차 지고 관세 늘고

    현대차그룹은 왜 ‘트럼프 시대’를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나선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후보 시절부터 바이든 행정부가 친환경 차 육성을 위해 시행한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 등을 예고했고, 보호무역 강화를 위한 고율 관세 부과를 공언해 왔다. 하나같이 현대차의 미국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를 확정 지으며 그의 입은 더 거침없어졌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첫날인 1월 20일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펼쳤던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180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하는 신차 가운데 전기차 비중을 50%까지 높이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폐기했고, IRA에 따라 책정된 자금의 지출을 즉각 중단하라는 지시가 포함된 ‘미국 에너지 해방’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현지에서 생산된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IRA에 따라 최대 7500달러(약 1100만 원)의 세금 혜택을 제공해 왔다. 미국산 전기차 가격을 낮춰 구매를 유도하려는 의도였다. 전기차 생산기지가 대부분 한국에 있는 현대차는 현실적으로 보조금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국내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미국으로 수출해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신공장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조감도.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신공장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조감도. [현대차그룹]

    ‌이에 현대차그룹은 75억9000만 달러(약 11조 원)를 투자해 미국 조지아주에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지었다. 미국 우선주의에 발맞춰 현지 생산 체계를 구축, IRA 보조금 기준을 충족해 현지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서려는 복안이었다. 이는 대규모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 미국과 한국 기업의 대표적인 ‘윈윈’ 사례로 거론되곤 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HMGMA에서 시험 양산을 시작했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아이오닉5, 아이오닉9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하지만 투자 결실을 채 보기도 전에 미국의 정책 교체로 다시 불확실성이 커졌다.

    이에 대해 이승조 현대차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는 1월 23일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트럼프 정부가 IRA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기 위해선 의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금방 끝나진 않을 것”이라며 “올해까진 유지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현대차는 만약 IRA가 폐지될 경우 HMGMA에서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차를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계획이다.

    관세 리스크도 여전히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추가로 물리고, 멕시코와 캐나다 제품엔 25%, 중국산엔 60%의 고관세를 적용하겠다고 예고했다. 취임 첫날 곧바로 실행에 옮기진 않았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폭탄 관세’를 세계 각국과 협상하는 카드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관세 부과 시 국내에서 자동차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기업은 물론 무관세 혜택을 기대하며 멕시코나 캐나다에 공장을 지은 기업도 타격을 입게 된다. 현대차그룹에선 기아가 멕시코 몬테레이공장에서 K3와 K4 등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트랜시스도 멕시코 현지에서 일부 부품을 생산한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경쟁사 대비 보편 관세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생산 공장을 여럿 운영하는 혼다나 도요타 대비 해당 국가 의존도가 낮기 때문이다. 이르면 4월부터 보편 관세가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유일 100만 달러 기부… 트럼프-정의선 만날까

    현대차그룹은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을 고려해 정식 취임 전부터 발 빠르게 대응해 왔다. 지난해 미국에서 역대 최대 판매고를 올리는 등 사업 확대에 속도가 붙은 만큼 새로운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구축해 각종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각오다.

    구체적으로 현대차는 국내 주요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100만 달러(약 14억7000만 원)를 기부했다. 기부자에겐 취임식 전날 만찬에 참석할 기회가 주어져 장재훈 부회장과 성 김 사장 등이 다녀왔다.

    이들은 해당 만찬을 비롯해 취임식 전후 열린 다양한 행사에서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 만나 네트워킹을 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차그룹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물밑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의선 회장의 별도 만남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제품이 트럼프 대통령 일가 근처에서 목격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를 두고 현대차그룹이 우호적 관계 형성을 위해 공을 들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SUV ‘GV 80’이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옆에서 한동안 방송 카메라에 노출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1월 20일 이방카와 그의 남편 제러드 쿠슈너가 워싱턴DC로 향하기 위해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당시 공군기 탑승 계단 바로 옆에 흰색 GV80이 주차돼 있었는데, 이 모습은 이방카가 공군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공군기에 오르는 동안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차량의 주인이나 용도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방카가 탑승하지도 않은 차량이 잠시 등장했다 사라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 측의 연출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된다.

    현대차그룹은 변화에 만전을 기하는 양상이다. 이승조 CFO는 “올해엔 국내는 물론 미국 신정부의 정책 등에 따른 리스크가 확대되는 시기”라며 “무뇨스 대표 등을 비롯한 경영진은 모니터링 분석을 통해 시장 환경 변화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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