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조 유상증자…‘금감원 중점심사 1호’ 꼬리표
주주로부터 자금 조달해 미국·헝가리에 투자
“주가 바닥 치는 시점에 하필이면…” 반발도
기존 주주 유상증자 참여도, 정당성 판단 지표 될 듯

최주선 삼성SDI 사장이 3월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인터배터리 2025’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최주선 삼성SDI 사장은 3월 19일 주주총회 직후 기자들에서 이같이 말했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삼성SDI의 유상증자를 중점심사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소식에 대한 답이었다. 삼성SDI가 추진 중인 유상증자에는 ‘금감원 중점심사 대상 1호’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중점심사제 도입 후 처음으로 이뤄진 주주배정 증자라는 상징적 측면과 1조7282억 원이라는 역대급 규모가 영향을 미친 결과다.
이수페타시스·현대차증권 소동에 해 넘긴 유상증자
금감원은 2월 27일 주주의 권익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고자 중점심사 제도를 도입했다. 중점심사 대상이 된 기업은 증권신고서에 유상증자의 당위성과 주주 소통 절차, 기업 실사, 이사회 논의 등을 충분히 기재했는지 면밀히 심사받는다. 금감원은 “중점심사 제도가 기업이 증권신고서를 충실히 기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기업 활동 침해 논란에도 선을 그었다.
삼성SDI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점심사제를 적용받는 ‘첫 타자’가 됐다. 당초 삼성SDI는 지난해 말 자본 확충을 검토했으나 고민 끝에 해를 넘겼다. 비슷한 시기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한 이수페타시스와 현대차증권 등이 소액주주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금감원은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이들에게 수차례 정정 신고서 제출을 요구하는 등 깐깐한 기준을 적용했다. 12·3 비상계엄 여파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진 것도 회사가 조달 일정을 미룬 원인으로 꼽힌다. 그사이 금감원이 중점심사제를 도입했다. 삼성SDI로선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겠지만, 언제까지 자금 조달을 미룰 순 없었다.
삼성SDI는 3월 14일 임시 이사회를 개최하고 주주배정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이날 오전 7시 열린 이사회엔 지난해 말 삼성글로벌리서치 산하 경영진단실로 이동한 최윤호 전 삼성SDI 대표이사를 제외한 이사진 6명이 전원 참석했다. 최 전 대표가 겸직했던 이사회 의장은 김덕현 사외이사가 직무대행을 맡았다. 이사들은 토론 후 출석 이사 전원의 만장일치 찬성으로 안건을 결의했다.
유상증자의 골자는 주주들로부터 1조7282억 원을 조달해 국내외 시설 투자 등에 사용하는 것이다. 미래 경쟁력 강화와 중장기 성장 가속화가 주된 목적이다. 기존 주주들에게 지분율대로 우선 배정한 뒤 실권주(失權株)만 일반 공모로 돌리는 형태다.
삼성SDI는 4월 9일 1차 발행가액을 주당 14만6200원으로 공시했다. 보통주 1182만1000주를 발행하는 만큼 1조7282억 원 가량을 모집할 전망이다. 주가 하락이 이어져 5월 16일 2차 발행가액이 낮게 형성되면 조달 자금은 감소할 수 있다. 확정 발행가액은 1·2차 발행가액 가운데 낮은 가액으로 정해진다.
회사는 유상증자로 마련한 자금을 미래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에 쓸 예정이다. 우선 절반 가까이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에 투입해 북미 생산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헝가리 법인의 각형 배터리 생산능력 확대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라인 확충에도 상당 부분 투입한다. 유럽 시장 대응 차원이다.
국내 투자도 병행한다. 전고체 배터리 설비 투자금으로 일부 배정했다. 삼성SDI는 2027년까지 업계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이뤄내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적기에 자금 확충이 이뤄져 계획대로 차질 없이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
삼성SDI는 이사회 직후인 3월 14일 오전 8시 38분 유상증자 결정을 공시했다. 장중 공시가 이뤄져 시장에 혼란이 가중될 우려를 줄이기 위해 아침 일찍 이사회를 열고 개장 전 공시를 마친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 개회부터 공시까지 10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특히 유상증자 사실이 공시 전 새어 나가지 않도록 보안에 각별히 신경 쓴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SDI는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자금 가운데 6413억 원을 헝가리 법인에 투입할 계획이다. 사진은 삼성SDI 헝가리 법인 전경. 삼성SDI
“소액주주 기만하는 삼성SDI 유상증자 철회하라”
주주들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다. 닷새 뒤인 3월 19일 정기 주주총회가 열렸는데 주총장이 위치한 서울 강남구 엘리에나호텔 옆에는 이른 아침부터 “소액주주 기만하는 삼성SDI, 유상증자 철회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소액주주연대의 시위 트럭이 자리했다. 주총에 참석한 주주들은 물론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도 한 번씩 트럭에 적힌 문구로 시선을 돌렸다.
이날 주총은 개회 전부터 소액주주들의 거센 질책과 비판이 예상됐다. 전기자동차 캐즘 등 여파로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6.49% 줄어든 데다 주가도 폭락한 탓이다. 삼성SDI 주가는 주총 전날인 3월 18일 종가 기준 19만800원으로, 1년 전 대비 57.03% 하락했다. 2년 전 장 중 80만1000원(2023년 3월 10일)을 찍었던 것과 비교하면 하락 폭은 76.18% 수준이다.
이 상황에서 대규모의 유상증자 계획 발표는 일부 주주의 화를 돋웠다. 배터리 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선제적 투자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 주주도 있었지만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는 시점에 하필이면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하느냐”는 항의 역시 끊이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유상증자는 구주주의 지분가치를 희석해 단기적으로 주가 하락을 이끈다. 실제로 유상증자 공시 당일 삼성SDI의 주가는 6.18% 하락했다.
결국 주총이 폐회될 때까지 약 2시간 동안 갑작스러운 유상증자 추진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 토로가 이어졌다. 몇몇은 “투자 자금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가 아닌 자산 매각이나 회사채 발행 등을 먼저 고려해야 했다”는 주장을 폈다. 유상증자 철회와 규모 축소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증권가에서도 아쉽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3월 17일 삼성SDI 관련 보고서에서 “보유 중인 매각 가능한 자산이 있음에도 자기자본 펀딩 방식을 취한 점은 주식투자자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삼성SDI는 삼성디스플레이(15.2%), 에스원(11%), 호텔신라(0.1%) 등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이 유상증자에 선을 긋는 양상을 보인 점도 아쉬움을 더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올해 약 10조 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해보다 3조 원가량 줄어든 규모지만, 여전히 만만찮은 액수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3월 20일 주총에서 “타사와 달리 유상증자 계획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김 사장은 “회사채나 일반적인 자금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다만 삼성SDI의 입장은 확고했다. 다양한 조달 방안을 검토했지만 재무 상태 등을 고려할 때 유상증자가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주총 의장을 맡은 김종성 삼성SDI 경영지원실장(CFO·부사장)은 “작년 말 기준 순차입금이 9조7000억 원으로 집계되는 등 1년 전보다 5조 원 이상 증가했고, 올해와 내년에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재무구조 악화로 사실상 자금조달이 쉽지 않고 금리가 높은 차입금을 써야 할 수 있어 증자를 우선해 고려했다”라고 말했다.
최근처럼 대내외적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건실한 재무구조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 역시 작용했다. 전기차 캐즘 등 여파로 당분간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인 만큼, 증자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이유다. 유상증자의 경우 자본 확충 효과가 있어 부채비율 같은 재무지표 개선에 도움이 된다.
삼성SDI는 이번 유상증자가 끝이 아니라는 견해다. 김 부사장은 “(유상증자) 한 가지 수단만으로는 투자에 필요한 자금 전부를 마련할 수 없다”며 “이번엔 유상증자를 하지만 다른 조달 수단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순서의 문제’로 이해해 달라”라고 말했다. 이어 김 부사장은 “회사채 발행과 주식 등 보유 자산을 매각해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함께 추진할 계획”이라며 “추가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삼성디스플레이 지분을 포함한 보유 자산 활용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삼성SDI는 삼성디스플레이 지분을 15.2% 보유하고 있다.
다만 4.99%에 달하는 자사주를 활용할 계획은 사실상 없다고 못 박았다. 김 부사장은 “자사주는 전략적 제휴 등 여러 활용 방안이 있어 삼성디스플레이나 다른 주식 처분보다 후순위”라고 밝혔다. 증자 철회 가능성에 대해선 “이미 관련 법률에 따라 이사회에서 결의한 사안이라 곤란하다”고 일축했다.
자사주 1억9150만 원 산 최주선 삼성SDI 사장
이날 주총에는 대표이사 내정자 신분이던 최주선 사장이 자리를 지켜 관심을 받았다. 최 사장은 해당 주총에서 사내이사에 선임된 뒤, 이어서 열리는 이사회에서 대표이사에 선임될 예정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미등기임원 신분이었던 만큼 굳이 주총장에 들르지 않아도 됐다. 주총이 끝난 뒤 열리는 이사회만 참석해도 대표이사 선임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사장은 2시간 내내 주총 자리를 지키며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지켜봤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주주들의 질책을 겸허히 수용했다.
삼성SDI는 주총 직후 이사회를 열고 최 사장을 대표이사 및 이사회 의장에 선임했다. 최 사장은 곧바로 삼성SDI 주식부터 샀다. 대표 선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자사주 매입인 셈이다. 1000주, 총 1억9150만 원(주당 19만1500원) 규모다. 삼성SDI 관계자는 “대표이사로 선임된 당일 자사주를 즉각 매입한 것은 책임경영 및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며 “앞으로도 중장기 성장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SDI는 주총 5일 뒤인 3월 24일 임시 이사회를 재소집해 남은 유상증자 일정을 일주일가량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배터리 산업 정책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대두하는 만큼 변동성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다. 주가 급락 리스크를 최소화해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증권신고서를 자진 정정하며 일부 보완하기도 했다. 배터리 사업과 시장 전망 관련 각종 데이터를 최신 내용으로 업데이트하고 주주와의 소통 노력도 담았다. 금감원이 증권신고서 내용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실제로 금감원은 3월 27일 중점심사 2호로 선정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유상증자 관련 내용을 충분히 기재하라”며 정정을 요구한 바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월 20일 국내 자본시장 사상 최대 규모인 3조6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SDI는 유상증자가 흥행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주관사와 잔액인수 계약도 체결했다. 주주의 참여 저조로 미달이 나더라도 자금조달 자체가 무산되지 않도록 대비한 것이다.
다만 향후 삼성SDI의 유상증자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2024년 기준 삼성SDI의 주요 주주는 삼성전자(19.58%)와 국민연금공단(7.39%) 등이며, 지분 1% 미만의 소액주주가 전체 지분의 61.72%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국민연금뿐 아니라 소액주주들도 힘을 합쳐줘야 성공적인 유상증자가 가능한 구조다. 삼성SDI가 유상증자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