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호

“이회창은 북한 노동당식 줄세우기 중단하라”

‘원조보수’ 최병렬 한나라당 경선후보

  • 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 daum@donga.com

    입력2004-09-03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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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풍은 호남을 거의 석권할 것이므로 영남의 반만 먹으면 선거는 끝나버리는 겁니다. 이미 이회창 후보는 빌라로 상처를 입었고 또 무슨 카드가 기다리고 있다는데…. 더구나 우리 정치판이 ‘창(昌) 대 반창(反昌)’ 구도로 돼 창이 반창에 포위된 형국입니다.”
    한나라당의 인천지역 대선후보 경선이 이회창 후보의 압승으로 끝난 4월13일 저녁, 최병렬 후보 캠프에 있는 최구식 언론특보로부터 전화가 왔다. “미안하지만 단독 인터뷰 대신 다른 잡지 기자들과 함께 간담회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애당초 ‘영남 출신의 원조보수’로 나선 최병렬 후보의 바람이 인천에서 미풍으로나마 나타나리라고 예상하고 인천 경선이 끝난 다음날인 4월14일 오후에 인터뷰일정을 잡아놓았지만 첫 경선 결과가 너무 처참하게 나왔던 것. 4월14일 오전 12시 서울 여의도 맨해턴 호텔의 중식당에서 최병렬 후보를 만났다.

    -최후보가 아무리 뒤늦게 경선에 뛰어들었다지만, 언론이 그렇게 대대적으로 선전해준 ‘최풍’이 너무 미약했던 것 같습니다.

    “인천지역 지구당이 11개인데 8개는 이회창계고 3개가 이부영계입니다. 이부영씨가 지난번에 원내총무하면서 공천심사위원회에 들어가 3명을 추천해준 겁니다. 아무튼 두 사람은 지구당 커넥션이 있으니까 유권자들을 자유롭게 접촉해서 홍보하고 지지를 부탁하는데, 내 경우는 지구당 순방 자체가 금지되다보니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어요. 그리고 내가 4월5일에 경선후보로 등록했는데 이미 4월3일에 등록을 마감했기 때문에 바람이 일 근거가 없어요. 홍보물도 대회 당일에 경선 현장에서 나눠주기 때문에 유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전화 한통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참모들이 ‘인천 경선은 건너뛰자’고 건의하기도 했어요. 이회창과 이부영 두 후보가 8 대 3으로 나눠먹는 조직선거에 내가 낄 틈이 없다는 거지요. 맞는 말인데, 내가 엊그제까지 당의 부총재를 한 사람으로 자신의 유불리만 따질 수 없어서 참여한 겁니다.”

    -그나마 최풍이 불 수 있는 근거는 국민선거인단인데 이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습니까.



    “투표율이 61%인데 그러면 당원이나 대의원들은 50% 가까이 참석했을 것이고 나머지 선거인단은 10여% 정도만 참석했을 것인데, 이런 조직선거를 ‘국민이 참여하는 경선’이라고 하는 것은 사기입니다. 대의원들에게 미리 전화하고 투표에 참여하는 날에도 버스안에서 이회창 지지하라고 하는 등 철저히 줄세우기 조직선거였습니다. 경선장에서 이회창 후보가 연설할 때 환호하는 것 보세요. 완전히 동원선거예요. 그게 추대대회지 경선입니까.”

    -국민참여 경선이 되려면 각 후보들이 동등하게 선거인단을 모을 수 있는 기간이 있어야 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충분히 모을 시간이 있습니까.

    “나는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참여했는데 해놓고 보니 인천 등 5개지역은 이미 끝난 상태이고,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도 거의 임박했어요. 김문수 사무부총장에게 이야기해서 이틀씩 연기하긴 했는데…. 이틀동안 무슨 수로 나를 지지할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내겠습니까.”

    -결국 조직선거로 인해 당 바깥의 민심이 경선에 반영될 길이 없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이회창 대세론’에 취해 4년동안 자나깨나 이회창 합창만 불렀어요. 이게 뒤집힌 게 불과 3, 4주 전 아닙니까. 냉정하게 판단하면 올해 대선은 끝난 게임입니다. 이대로 뒀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 제가 나온 겁니다. 여당하다가 야당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어렵습니다. 고난의 길입니다. 그래서 이회창 후보를 통해 다시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비원이 깔려 있습니다. 당외 사람들을 만나면 ‘이제 이회창으로는 정권교체 끝났다’고 하는데, 당내 사람들은 ‘그래도 우리가 뭉치면 무슨 수가 있지 않겠나’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조금만 사리가 있어도 알 수 있어요. 우리 한나라당에서 하는 전화자동응답 여론조사에서도 경남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50%를 넘었습니다. 전국적으로도 50%가 넘었어요.”

    -한나라당 내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심각성을 모르고 집권할 꿈만 꾸고 있는 겁니까.

    “꿈에서 깨어나라고 내가 나온 것인데 아직 잠들어 있어요. 우리 당이 왜 이렇게 기울어졌어요? 기본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정치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어요. 노무현 개인이 이인제보다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라 기존 정치에 식상해 있던 국민들이 변화를 바라는 겁니다. 배후에서 노무현을 약간 받쳐준 느낌은 있습니다만…. 이것이 이회창 대세론이 무너진 동인이고 대세론을 무너뜨린 팩트들이 있습니다.”

    -어떤 겁니까.

    “첫째, 이회창씨가 자기 관리를 잘못한 겁니다. 우리가 4년 전에 정권을 뺏긴 것은 외형상으로는 이인제 후보가 뛰쳐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이 병역문제로 공격받고 지지율이 폭락했기 때문이죠. 따지고 보면 이회창 개인의 문제지 우리 당이 잘못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 당원들이 이회창씨에게 비난하거나 항의하거나 트집 잡은 일이 없습니다. 선거 후에는 이 정부가 이회창씨를 죽이려고 하니까 우리가 모시던 장수를 보호하려고 해서 지금까지 온 겁니다. 당 밖에 있는 사람들도 이렇듯 부패하고 안보도 흔들리는 정권을 바꾸기 위해서는 미우나 고우나 이회창밖에 없다고 기다려 왔는데, 이회창씨가 자신의 신변 관리를 잘못해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그래, 100여평의 빌라 3개층에 사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합시다. 이 세상에 법보다 무서운 게 있는지를 왜 모릅니까.”

    -이회창 후보의 주위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었습니까.

    “이회창씨는 이인제씨보다 지지율이 계속 높게 나오니까 자신을 포함해 모두 연말만 기다린 겁니다. 이회창씨 주변의 자칭타칭 측근인 ‘쥐새끼’들은 누가 숟가락 쥐고 이회창 총재 곁에 오지 않나 눈만 두리번거리면서 이 당이 흘러온 겁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위기에 처해 죽게 됐으니까 화려한 드라마를 연출해 ‘노풍’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그동안 박근혜 의원과 온갖 씨름을 하다가 그 한 사람 못 끌어안았고…. 한마디로 웃기는 리더십을 보여준 겁니다.”

    -영남후보론을 내세우며 출마했는데….

    “지금까지 나는 지역을 팔아 정치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을 봅시다. 내가 대선을 세 차례 해봤는데 영호남 빼놓고는 선거를 이길 수 없어요. 중부권은 어느 쪽으로도 왕창 기울어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노풍은 호남을 거의 석권할 것이고, 영남의 반만 먹으면 선거는 끝납니다. 이미 이회창씨는 빌라로 상처를 입었고 또 무슨 카드가 기다리고 있다는데…. 더구나 그동안 이회창씨는 사람들을 죄다 내쫓는 바람에 우리 정치판이 창(昌) 대 반창(反昌) 구도로 돼 있어요.

    -최후보는 왜 이회창후보와 멀어졌습니까.

    “이후보 주변의 몇 사람이 맨날 나에 대해 험담했기 때문입니다. 이후보는 귀가 엷어 저를 의심해요. 나는 도전할 생각도 없었는데….”

    -뒤집을 가능성은 있습니까.

    “이회창 후보가 오랫동안 총재를 해왔기 때문에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당이 경선에 일반 선거인단이 참여하도록 독려를 해주고 언론이나 당내외에 이회창으로는 힘들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단초만 열리면 이회창은 단숨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무슨 대책이 있습니까.

    “이렇게 조직적으로 나가면 국민경선이 의미가 없습니다. 인천 경선이 끝난 뒤 박관용 총재 권한대행과 김문수 사무부총장에게 전화를 해서 ‘지구당위원장들 줄 세워서 조직선거 하려는데 내가 잘못 나온 것 같다’고 했더니 자기들도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요.”

    -압승이 이회창 후보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봅니까.

    “한마디로 국민들에게 웃음거리지요. 세상물정을 몰라도 이렇게 모르느냐고 말입니다.”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습니까.

    “인천 경선을 보고 당에서 뭔가 보완조치를 취하지 않겠어요. 저도 이야기를 했어요.”

    -부산 경남에서 1위를 할 가능성은 있습니까.

    “표는 좀 나오겠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1위는 안되지…국민경선제의 취지를 살리면 몰라도….”

    -그런데 왜 이회창 후보에게 꼼짝들 못하는 겁니까.

    “우리 당이 기본적으로 여당 체질이라서 그런 겁니다. 항상 누군가를 중심으로 하는 멘털리티가 있습니다. 사정이니 뭐니 해서 많은 협박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살려면 이회창 주변에 모여야 이회창도 살고 우리도 산다’는 인식이 퍼진 겁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지난 16대 총선 때 공천장을 이회창 총재가 준 겁니다. 이른바 대세론에 따라 이회창이 대통령이 될 거다 하는 기대감도 있었죠.

    -노풍(盧風)의 거품이 빠질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까.

    “거품이라는 것은 인기는 있는데 돈과 조직이 없어 상대편에서 돈이나 조직으로 침투하면 허물어져버리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러나 노풍의 뒤에는 거대한 정부 여당의 조직력이 있죠. 자금력이 있고, 홍보기술이 뒷받침됩니다.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더 비관적인 것은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이회창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가 된들 국민들을 감동시킬 매력이 남아 있지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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