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호

“월드컵 끝나면 큰 꿈 꾸겠다”

정몽준 2002월드컵조직위원장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입력2004-09-03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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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수든 진보든 합칠 수 있다
    • 환경신당 탄생할 때가 됐다
    • ‘노풍’은 바람직한 현상
    • 박근혜 의원을 좋아한다
    • 한국축구 16강진출, 매우 희망적
    • 월드컵 끝나도 히딩크와 인연 맺을 것
    대한축구협회 회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 현대중공업 고문, 4선의 무소속 국회의원…. 정몽준 위원장의 하루는 빡빡하다. 하루에 소화하는 공식일정만 평균 10여개. 아침회의부터 심야미팅까지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다. 2002한일월드컵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월드컵은 그의 10년 축구인생은 물론, 정치적 운명까지 결정할 수 있는 최대의 승부처이기 때문이다.

    정위원장은 2001년 말부터 워밍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18일 후원회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에 나오는 ‘I have a dream(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을 인용하며, 2002년을 기다리는 심정을 슬쩍 내비쳤다. 그에게 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월드컵의 성공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도전이다. 정위원장은 2002년 1월부터 이메일 클럽 가입자들에게 ‘MJ LETTER’라는 웹진을 띄우고 있다. 웹진의 또 다른 이름은 ‘Blue Print’. 말 그대로 청사진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위원장에게 월드컵은 절호의 기회이자 애물단지다. 월드컵을 잘 치를수록 정치적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본격적인 정치행보를 하는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최근 정위원장의 정치적 발언에는 은유적 표현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일종의 연막전술이다. 정위원장과의 인터뷰는 마감 직전인 4월16일 저녁에 이뤄졌다. 정위원장은 손님 접견과 긴급회의를 마친 뒤 예정시간보다 50분 늦게 대한축구협회 접견실에 나타났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인 만큼 국회 보좌진, 월드컵조직위원회 대변인, 대한축구협회 관계자 등 모두 7명이 배석했다.

    ―어제 중국 민항기가 김해공항에 착륙하려다 추락했습니다. 지난해 월드컵 조추첨을 앞두고 중국팀의 예선경기를 한국으로 끌어오기 위해 노력하신 분으로서 가슴이 철렁했을 것 같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국가대표팀 평가전이 4월27일 인천에서 열릴 예정인데, 그때 1만명 이상의 중국 축구팬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비행기 사고는 우리쪽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고 중국 조종사의 실수이기 때문에 월드컵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 중국은 2008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뒤 2020년 월드컵 유치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이번 월드컵에 더욱 관심이 높은 거죠.”



    ―월드컵이 두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아쉬운 점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경기를 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됐어요. 북한이 월드컵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는 FIFA의 요구조건을 맞춰야 하는데 그중에 미디어석 1000석 이상이 문제가 됐어요. 북한이 그런 것까지 신경쓰는 걸 보고 ‘월드컵에 관심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국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월드컵을 계기로 일본과의 관계도 더 가까워지길 바랐는데 역사교과서 문제 때문에 제동이 걸렸어요. 하지만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좋아진 것 같아요. 1986년에 일본에서 ‘전세계에서 싫어하는 나라’를 조사했었는데, 그때 결과가 1등 소련, 2등 북한, 3등 한국으로 나왔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일본 국민의 절반 정도가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월드컵은 우리 국민들이 화합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스페인이나 프랑스가 월드컵을 통해 국민화합을 달성했고요. 지역감정이나 계층갈등 같은 문제도 ‘월드컵 푸닥거리’를 제대로 해내면 잘 풀릴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당장 지방선거가 월드컵 도중에 열리고 대통령선거도 눈앞에 있고 해서 힘든 점이 많아요. 다들 정치일정에 쫓기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고요. 아무튼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의 국민대화합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쉬워요.”

    ―월드컵이 임박했는데도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현 단계에서 다소 미흡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앞으로 남은 기간동안 한국대표팀의 A매치가 몇 차례 열리고 5월부터 외국팀들이 들어와서 캠프를 차리면 많이 달라질 것으로 봐요. 월드컵 열기는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때가 되면 밖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안으로 모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위원장은 1993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2002년 월드컵을 한국에 유치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FIFA 부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선거결과는 1표 차의 신승. 이후 정위원장은 FIFA 회원국을 드나들며 일본과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였는데, 공교롭게도 고 정주영 회장이 1981년 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뛰던 모습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두번 모두 상대국가가 일본이었고, 한국은 불리한 조건에서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한마디로 부전자전이다.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을 공동개최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들려주시죠.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일본이 우리보다 5∼6년 먼저 관심을 가졌고, 유치위원회도 2년 빨리 만들었거든요. 저는 유치위원회라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영국에서 막 돌아온 이홍구 대사를 만났습니다. 제가 이홍구 대사에게 유치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더니 그분이 금새 알아듣고 청와대 정무수석을 두 번 만났대요. 그런데 정무수석이 나서지 말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롯데호텔에 기자분들을 모셔놓고 ‘월드컵유치위원회 초대위원장 이홍구 박사 추대’라는 현수막을 걸었죠. 법적인 효력이 전혀 없는 행사였는데도 기자들이 기사를 잘 써주었어요. 다음날 이홍구 대사가 차를 타고 가는데 청와대에서 들어오라고 전화가 왔대요. 그날 김영삼 대통령이 이홍구 대사에게 “월드컵조직위원장 취임을 축하한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사고부터 치고 허가를 받은 셈이죠.

    한국과 일본이 경쟁할 때 제가 “절대 로비하지 말자. 양국이 축구시합을 해서 이기는 나라가 월드컵을 치르자”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1994년에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FIFA 회장 선거가 있었는데 그때도 제가 그런 제안을 했어요. 물론 농담이었죠. 그랬더니 아벨란제 회장이 정색을 하고 “그건 FIFA 규정에 어긋난다. 내가 FIFA 회장으로 있는 한 그런 방식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나요.”





    ―이번 월드컵 기간중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밝혀주십시오.

    “북한에 관해서는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요. 언론에 먼저 나버리면 북한쪽에서 싫어하거든요. 일단 아시아축구연맹을 통해 북한축구 관계자들을 초청할 생각입니다. 북한 당국이 허락하면 선수들도 남쪽에 와서 관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월드컵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16강진출, 경제적 성공, 한반도 평화, 코리아 브랜드 상승, 안전한 대회운영 중에서 하나만 고른다면.

    “모두가 중요하지만, 굳이 한 가지만 고른다면 안전한 월드컵을 꼽고 싶어요. 다른 분야와 달리 안전은 가장 소중한 인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99%를 달성해도 곤란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100%의 안전을 확보해야 합니다.”

    정위원장은 어릴 때부터 유난히 스포츠를 좋아했다. 1976년 전국체전 승마 장애물 비월경기에서 은메달을 땄으며 전국종합스키선수권대회에 출전해 4등을 차지한 적도 있다. 그는 다섯 번이나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정위원장이 다녔던 중앙중학교 축구부는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는 명문이었는데, 정위원장은 친구들과 응원을 다니면서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비록 정식으로 축구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정위원장의 축구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새삼 정위원장의 축구철학이 궁금해졌다.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머니 배속에서 태아가 제일 먼저 하는 게 발로 배를 차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축구는 인간의 본능적인 동작이에요. 또 축구를 전쟁 발레 체스가 합쳐진 스포츠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장기처럼 전략을 짜고, 발레처럼 뛰어오르면서 헤딩하고, 전쟁처럼 치열하게 맞붙잖아요. 그리고 축구는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스포츠입니다. 유럽에서 축구가 잘 되는 것도 그런 이유죠. 예전에는 전쟁을 벌였는데, 현대사회에서는 그게 곤란하니까 축구로 대신하는 거죠. 전쟁의 긴장과 갈등이 축구로 승화됐다고 볼 수 있어요.”

    ―슬하에 2남2녀를 두셨는데, 만일 한국 축구선수 가운데 한 사람을 따님에게 소개시켜 준다면 누가 적격입니까.

    “우리 아이들은 그냥 축구장 가는 걸 좋아해요. 축구를 좋아하는 건지 축구선수를 좋아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고요. 이동국 이천수 안정환 최용수…, 요즘 선수들은 다들 잘생겼잖아요.”

    ―국회의원 축구팀에서 주공격수를 맡고 있는데, 축구장에서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정치인은 누구입니까.

    “동네축구라 특별히 호흡을 맞추고 할 것도 없어요. 강창희 의원은 육사 다닐 때 선수로 뛰었는데, 김정남 감독이 고려대 다닐 때 맞붙은 적이 있대요. 정균환 의원도 축구를 좋아하고, 장영달 의원도 유연해요. 임종석 의원을 비롯해서 386 국회의원들은 다 잘 뛰어요.”



    히딩크 영입은 행운이다

    2001년 3월 현재 한국축구의 FIFA 랭킹은 41위. 상식적으로 월드컵 16강은 무리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16강진출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 근거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한국이 홈에서 월드컵을 치른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히딩크 감독에게 거는 기대다. 히딩크 감독은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를 이끌었고, 세계 최고 명문클럽 레알 마드리드 감독도 지냈다. 한국축구가 위험을 무릅쓰고 히딩크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긴 것도 그의 탁월한 수읽기와 풍부한 경험을 중시한 탓이다.

    ―히딩크 감독을 자주 만났을 텐데, 직접 얘기해보면 느낌이 어떻습니까.

    “히딩크 감독은 아주 현명한 사람이에요. 5개 국어를 구사하는데 가장 늦게 배운 스페인 말을 지금은 제일 잘한대요. 나하고는 영어로 대화하는데 단어가 아주 정확해요. 감독으로서 경험이 풍부하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지도자죠. 한국축구가 그런 사람을 모셔온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30∼40명에 이르는 대표팀을 2년 동안 이끌고 다니면서 인화를 유지하고 선수단을 완전히 장악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건 엄청난 능력이에요.”

    ―한국축구는 그동안 큰 대회에서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감독이 희생되곤 했습니다. 만일 히딩크 감독이 이번 월드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둬도, 계속 대표팀 감독을 맡길 생각입니까.

    “우선 한국이 부진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난 뒤엔 히딩크 감독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는 어떤 식으로든 히딩크 감독과 한국축구의 인연이 계속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최근 일부 언론에 대표팀 선수선발과 관련해 비판적인 의견이 실렸습니다. 축구협회 회장으로서 대표선수의 최우선 선발기준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재능, 성장가능성, 성실성, 전술적 필요성을 중심으로 판단하신다면.

    “모두가 중요하고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원칙적으로 선수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입니다. 우리는 감독을 믿고,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해야겠죠.”

    역대 월드컵에서 주최국이 예선에서 탈락한 일은 한번도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 축구팬들의 기대치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축구인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특히 월드컵 특수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정위원장으로서는 심각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정위원장의 측근들은 “한국의 16강진출 여부와 정위원장의 향후 행보는 무관하다”고 말하지만, 16강진출 여부는 이미 국민적 관심사로 등장했다. 정위원장의 ‘거리두기’ 전략과 무관하게 국민들은 16강진출을 과잉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목표는 1승과 16강진출입니다. 정위원장은 며칠 전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강한 자신감을 보였는데, 솔직히 16강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고 있습니까.

    “저는 어느 때보다 희망적이라고 봐요. 히딩크 감독도 얘기했듯이 지금은 16강 가능성이 50%쯤 되니까 날마다 1%씩 올라가면 본선에서는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제가 얼마전 유럽에서 홍명보 선수를 만나서 얘기했어요. 홍명보 선수는 이번에 네 번째 월드컵 출전인데 왠지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든대요. 예전에는 월드컵을 앞두고 왠지 막연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다르다는 겁니다.”

    ―국민적 기대치는 최소한 16강진출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민들의 기대는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죠. 우리는 축구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것도 감안해야 됩니다. 냉정하게 볼 때 한국은 D조에 속한 어느 팀도 압도하지 못하고 있어요. 다만 그동안 16강진출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해왔기 때문에 국민적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한국 축구팬들은 ‘편식증’이 심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2001년 컨페드컵 때도 한국경기 입장권은 일찌감치 동이 났지만, 세계적인 명승부가 펼쳐진 운동장은 텅텅 비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축구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애국심 차원에서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월드컵 축제는 세계 최고의 이벤트이자 문화행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국민들이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주인으로서 잔치를 즐겼으면 해요.”



    “나도 꿈을 갖고 있다”

    정위원장은 무소속 국회의원이다. 무소속은 얼마 전까지 여야가 정쟁을 벌이고,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일 상종가를 기록했다. 정위원장의 한표를 잡기 위해 여야의 중진들이 구애작전을 폈고, 아예 영입을 제안한 일까지 있었다. 하지만 여야가 본격적인 경선구도로 접어든 지금, 무소속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불과 몇 달 사이 정위원장은 외부요인에 의해 정치적 비중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다.

    ―지난해 12월 후원회에서 ‘나도 큰 꿈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겁니까.

    “참여연대의 공식 슬로건이 ‘여러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면 그 꿈이 실현된다’는 내용이더군요. 우리나라가 앞으로 잘 되려면 문화국가와 지식기반 사회로 나가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탐험심과 모험심의 분위기가 형성돼야죠. 인류사회는 탐험심과 모험심이 사라지면 망하는 겁니다. 그런 게 없으면 꿈을 꾸지도 않을 거고요.”

    핵심을 제쳐놓고 멀리 둘러 가는 정위원장 특유의 화법이다. 꿈을 물었더니 탐험심과 모험심으로 받았다.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그는 이미 신당창당 의사를 수차례 밝혔고, 신당의 이념에 대해서도 내부적 검토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위원장의 꿈은 아마도 그곳에 담겨있을 가능성이 높다.

    ―2002년 1월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환경신당 창당을 시사했는데, 신당의 테마를 환경으로 잡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월드컵이 끝나면 제가 10년동안 추진해온 사업이 일단 종결되기 때문에 지금보다 시간이 많아질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편안한 상태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고, 좀더 큰 꿈을 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환경을 테마로 하는 신생정당이 만들어지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도 독일의 녹색당 같은 정당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뭐냐’고 물으면 경제, 남북관계, 지역감정, 부정부패 해소 이런 걸 꼽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게 다 중요하지만 저는 환경문제가 제일 심각하다고 봐요. 환경은 7천만명이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문제이니까요. 지금부터 환경에 신경쓰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위원장의 정치적 밑그림은 어느 정도 드러났다. 이제 관심은 정위원장이 어떤 정치적 구도를 상정하고 있으며 언제쯤 행보를 본격화할 것이냐다. 정치권에서는 정위원장이 이미 오래 전부터 비밀 대권캠프를 가동하고 있으며, 단독출마를 준비중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정위원장은 단 한번도 대선출마를 공식적으로 거론한 일이 없다. 한마디로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는 연기만 피우면서 가겠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위원장님은 “월드컵을 잘 치르는데 집중하겠다. 월드컵이 끝난 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민심을 살피겠다. 조건이 되면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여기서 출마의 조건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입니까.

    “지금으로서는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만 전념하고자 합니다. 대선출마 여부는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결정할 것입니다. 우선은 여론조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론조사에서 당선가능성이 제일 높다면 결정하기가 쉽겠지만, 가령 여론조사에서 1등을 못했다면 심사숙고해야겠죠.

    선거는 결과적으로 한 사람을 뽑는 것이지만, 선거 자체가 하나의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제가 7월부터 후보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뛴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과정입니다. 민주주의는 프로세스(process)가 중요하며, 그 프로세스가 대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이 후보로 거론되는 것과 실제 후보가 돼서 국민들과 대화하는 것은 다른 거죠.

    저는 출마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준법의 문제를 검토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모든 국민들이 지키지 않는 세 가지 법, 즉 교통법, 건축법, 선거법이 있다고 합니다. 교통법은 너무 까다로워서 서울 시내에서 자동차 간의 거리라든지 주정차 금지구역을 정확히 지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고, 건축법도 역시 까다로운 점이 많다고 합니다. 저는 후보가 되면 선거법을 꼼꼼히 읽어볼 생각입니다. 내가 그 법을 다 지킬 자신이 있으면 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안 나갈 생각입니다.”

    ―월드컵이 성공하고 국민들이 높이 평가하면 출마한다는 뜻인가요.

    “월드컵의 성공 여부를 출마문제로 연결시키지 말았으면 합니다. 월드컵의 성공은 그 자체로 저의 꿈이고, 대선출마 여부는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죠. 하여튼 종합적으로 고민하겠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합칠 수 있다”

    ‘정치는 생물과 같다’는 말은 최근의 정치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두달 전만 해도 여야 대선주자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민주당 이인제 고문으로 정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총재의 악재와 민주당 국민경선제의 돌풍은 순식간에 정치구도를 바꿔놓았다. 그 핵심에 ‘노풍’이 있다. 노풍은 여야 구도의 틈새를 노리던 수많은 정치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탈당 카드를 뽑아든 박근혜 의원과 월드컵 이후를 기다려온 정위원장까지도.

    ―최근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노풍’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동료 정치인으로서 노풍을 어떻게 보세요.

    “바람직한 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노풍’은 우리 정치의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 예가 될 것입니다. 현재 우리 정치는 정당구조나 운영에 있어서 과거 냉전시대의 사고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여야가 정쟁에만 몰두하다 보니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한 측면이 있어요. 그 때문에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는 다양한 갈등을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정치권이 이를 이용한다는 비난도 듣고 있잖아요.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봐요.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는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를 흔히 권위주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그 시대 역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였습니다. 민주 대 반민주를 집권당 대 비집권당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맞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정치에는 집권당 대 비집권당, 영남 대 호남, PK 대 TK 등 많은 대결구도가 있었는데, 노무현 고문의 인기가 오르면서 진보 대 보수라는 말이 새롭게 생겨났습니다. 노고문의 부상으로 진보 대 보수 구도가 만들어진다면, 저는 그것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노풍은 시대정서의 반영이고, 보수 대 진보의 구도는 우리 사회가 한번 겪어야 할 상황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많은 분들이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쓰고 있는데, 그 의미가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남북이 분단돼 있으니까 북한에 강경하면 보수고 유화적이면 진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라고 봐요. 보수든 진보든 힘을 합칠 수 있다는 거죠. 보수와 진보는 서로 보완하는 관계거든요. 보수가 됐든 진보가 됐든 모두 대한민국이 평화롭게 잘사는 나라는 만들자는 것인데, 다만 방법이 조금씩 다른 거죠. 예를 들어 보수는 역사적인 경험을 중요시하고, 진보는 인간의 이성에 중심을 둔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획일적으로 보수 대 진보의 구도를 짜놓고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주 어리석은 발상이죠.”

    정위원장이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흘렸다. ‘노풍’이 정치판을 보수 대 진보로 재편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고, 보수든 진보든 힘을 합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위원장은 보수 대 진보의 판짜기 국면에서, 자신은 양쪽을 모두 아우르는 세력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문제는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더라도 이념적 중심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정위원장은 아직까지 자신의 이념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최근 여야는 대통령후보 경선을 진행중입니다. 이 과정에 이념시비가 핵심 주제로 등장했는데, 정치인 정몽준의 이념적 좌표는 무엇입니까.

    “‘온고이지신’이라고 할까. 저는 경험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또 저는 탐험심과 모험심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걸 이성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죠. 미국에 공화당하고 민주당이 있잖아요. 일반적으로 민주당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정당처럼 알려져 있는데, 미국 최대 부호인 케네기 가문과 록 펠러 가문은 모두 민주당이예요. 따라서 민주당에 대한 통념과 현실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죠.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시저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시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 로마의 명문귀족 출신입니다. 그런데 집정관 선거에서 민중파하고 원론파로 갈라졌을 때, 시저는 명문귀족 자녀임에도 민중파에 속했어요. 그렇게 보통사람의 인식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저도 최대한 자유롭게 사고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국 보수와 진보를 유연하게 오가면서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위원장이 시저나 록 펠러 등을 언급한 부분은 또 다른 의미에서 눈길을 끈다. 한마디로 자신의 출신에 대해 미리 방어벽을 친 셈이다. 정위원장은 ‘재벌의 아들도 사안에 따라 노동자의 편에 설 수도 있다’는 말을 미국과 로마의 역사를 빌어 표현했다.

    ―12월 대선에서 국민들이 대통령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이 될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도덕성이나 경륜, 비전 등은 당연한 것이지만, 저는 무엇보다 지역감정을 극복해서 국민화합을 이룰 수 있는 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우리 정치는 지역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많은 정당들이 지역보스가 운영하는 사당의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패거리 정치가 이뤄졌던 원인도 여기에 있고, 숱한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거죠. 21세기의 첫 번째 대통령선거에서는 더 이상 이 같은 과거의 병폐가 재현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지역감정이나 보스정치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분이 국가를 이끌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도 발전할 수 있으며, 부정부패를 근절한 수 있습니다. 국민화합이 이뤄져야 남북관계도 자신감을 갖고 개선해 나갈 수 있습니다.

    또 감수성을 풍부하게 지닌 분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공직자가 국민에게 피해를 입힐 때는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감수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공직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기계적 인간’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경험이 많아지면서 intellectual capital(지적 자본)과 emotional capital(정서적 자본)이 마모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정부가 국민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 오만해질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의약분업만 해도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에게 묻고, 그들에게 결정권을 주었다면,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고 봅니다.”

    모든 정치인에게는 약점이 있다. 약점을 어떻게 만회하느냐에 따라 정치인의 명암이 결정된다. 이미지 메이킹 측면에서 약점을 넘어서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약점을 누그러뜨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약점을 아예 장점으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차갑다’는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경우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격하다’는 인상을 적극적으로 돌파한 사례일 것이다.

    ―정위원장은 대중적으로 ‘귀족’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까 제가 록펠러하고 시저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성장한 과정을 보면 그렇게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는 서구적 의미의 귀족이라는 게 없었고요. 6·25 전쟁이 터졌을 때 제가 폐렴을 아주 심하게 앓았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정말 위험할 뻔했다고 합니다. 전쟁 때는 산 사람도 죽는 판이었으니까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난 걸 행운으로 생각해야겠죠. 우리나라가 2차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가로서 이만큼 발전한 것도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아직까지 미흡한 점이 많지만, 2차대전이 끝나고 독립한 국가 중에 이렇게 잘된 나라는 거의 없잖아요.”

    ―‘정위원장은 귀족 이미지가 강해서 최근의 정치적 흐름과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위원장이 대선에 출마하면 귀족 이미지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세간의 시선을 어떻게 보십니까.

    “저에게도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점이 있습니다. 다만 그게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죠. 저를 잘 아는 분들은 귀족적이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정위원장의 정치적 지지기반은 영남인데, 그쪽은 이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세를 양분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매우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에서 얼마 전에 영남민심 여론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를 보면 그래도 제가 그쪽에서는 괜찮은 것 같아요. 저는 아직까지 욕을 먹지는 않고 있으니까요.”

    ―정위원장님이 영남에서는 강세를 보일 거라고 보시는 거군요.

    “글쎄요. 강세라고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괜찮은 조사가 자주 나왔어요. 재미있는 것은 2∼3년 전에 한나라당이 분기별 여론조사를 하면서 ‘우리 당에서 대통령 후보는 누가 될 거 같으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이회창씨가 네번 모두 1등하고 제가 계속 2등을 했어요. 민주당에서도 네번 조사했는데 제가 네번 다 4등했고요. 저는 어느 당도 아닌데 그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양쪽을 다 합치면 내가 1등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지난해 ‘지식공작소’에서 ‘박근혜가 정몽준을 만났을 때’라는 책을 출간한 일이 있다. 이 책의 첫 부분은 ‘근혜와 몽준의 밀담‘으로 시작하는데, 그 내용이 흥미롭다.

    몽준 : “사실 월드컵 16강에만 들면, 우리 국민은 환호할 겁니다. 능력도 인정받을 거고, 인기도 좀 오르겠지요. 그러나 월드컵에만 목매고 있을 수는 없어요. 어느 경우가 되든, 새로운 정치세력을 담아낼 그릇을 준비해야지요.”

    근혜 : “각오가 단단하시군요. 사실 정치권 현실이 너무 피폐해요.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그래서 고심도 많이 하고, 아버님 생각도 많이 나고, 그러다가 국민들이 저를 성원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다시 용기가 솟고…. 아무튼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다시 찾아주고 싶어요. 아버님이 그랬듯이.”

    몽준 : “박의원과 나는 아버지 관계도 그렇고, 영남 기반에다, 근대화 노선에다, 나라를 생각하는 방식이나, 아무튼 비슷한 점들이 많아요.”

    비록 가상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지만, 두 사람의 노선과 정치스타일이 잘 녹아있는 대화록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최근에도 가끔씩 만나서 테니스를 치는 사이다. 얼마 전엔 박의원의 생일파티에 정위원장이 참석했으며, 박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하자 정위원장은 신당에 동참할 뜻을 시사한 적도 있다.

    ―‘박근혜가 정몽준을 만났을 때’라는 책의 제목대로 두 분이 정치적으로 결합할 가능성이 있는 겁니까.

    “전 개인적으로 박근혜 의원을 좋아해요. 박의원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지금보다 테니스를 더 자주 쳤어요. 박의원이 오랫동안 고생했잖아요. 그런데도 자신을 잘 유지했고…. 박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한 다음 저와 같은 상임위원회(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들어왔는데, 자리도 바로 옆이고 해서 둘이 여러가지 얘기를 주고받습니다. 박의원하고 같이 앉아서 얘기하니까 국회 가는 게 기다려지더라고요. 예전엔 출석률이 안좋다고 야단을 듣기도 했는데, 이젠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정치적으로 힘을 모을 수도 있습니까.

    “저 혼자서 된다 안된다는 얘기를 했다가 또 야단 맞으면 어떡합니까. 허가를 받아서 얘길 해야지요.”

    ―두 분이 추구하는 정치 스타일이 비슷하니까 대선 국면에서 연대할 것이라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누구나 다 같이 할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겠죠.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생각이 다르더라도 궁극적인 목표가 같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 같이 할 수 있는 겁니다. 정치인은 언제나 포용력을 보여야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고 얘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정위원장의 겉모습에서는 권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농담을 잘하고, 눈물도 많은 남자다. 정위원장은 지난해 12월12일 정동영 의원의 후원회에서 축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이날 어눌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정씨는 얼마 전까지 김, 이, 박, 최씨에 이어 성씨 순위가 5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씨들이 ‘밤일’을 열심히 해서 4위로 올라섰습니다. 정동영 의원과 저는 모두 정씨입니다.”

    2001년 3월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 때는 정위원장의 오열이 문상객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청운동 빈소와 계동 사옥, 아산병원 영결식장 등에서 정위원장은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아버지를 보내놓고 울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정위원장의 모습은 현대가(家) 형제들 중에서도 두드러져 보였다.

    ―얼마전 정주영 회장의 1주기가 지났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버님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만큼 아버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단신으로 기업을 일으켜 한국 최대의 그룹을 당대에 구축하셨던 아버님은 모든 일에 적극적이며, 세상일에 호기심이 많았던 분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지니셨으며, 공자보다도 맹자를 더 좋아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현대중공업 공장벽에는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되는 길이며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다’라는 일종의 사훈과 같은 글이 있는데, 이처럼 아버님은 ‘개인이 발전하지 않으면 국가의 발전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개인이 희생돼도 괜찮다’는 주장에는 반대하셨습니다.

    아버님은 겉으로 박력이 넘치는 분이었지만, 내면적으로는 굉장히 섬세한 마음을 가진 로맨티스트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느 해 2월에 아버님과 함께 산책을 하는데, 아버님께서 여기 저기 쌓여 있는 눈을 밟으시면서 ‘녹다 남은 잔설을 밟는 기분은 한겨울의 눈을 밟을 때와는 달라.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한 소년기를 보내셨고, 젊었을 때는 육체노동을 경험했기에, 스스로 ‘나는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제 오십이 넘었는데, 가끔 아버님을 생각하며 아버님이 오십이셨을 때 어떠했는가를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그때 벌써 건설, 시멘트, 자동차를 시작했고, 건설회사를 운영하면서 인부들과 함께 청운동 집을 직접 지으셨어요. 저도 인부들을 따라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님은 제 나이 때 정말 많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 훗날, 한 30년쯤 지난 뒤에 정몽준이라는 사람이 국민들 사이에서 어떻게 기억되기를 기대합니까.

    “이 다음에 혹시 제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이른 거 같고….

    ―지금도 4선 국회의원이시니까 나름대로 바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사적인 이익(private interest)이 아닌 공적인 이익(public interest)을 위해 일해보자는 신념과 공공에 봉사하겠다는 철학을 갖고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아버님이 생전에 말씀하시던 ‘국민이 좋아져야 나라도 좋아진다’는 이념을 잊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먼 장래에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 보다 현재 제게 주어진 임무, 제가 맡은 책임에 최선을 다합니다. 당장은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에만 신경을 쓰고 있고요. 현재의 일에 매진하고 퍼블릭 서비스(public service)를 실천하는 정치가로서의 신조를 펼쳐간다면, 국민들이 좋은 이미지로 기억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월드컵과 대통령선거. 많은 사람들은 두 가지 변수를 놓고 정위원장의 향후 행보를 예측하고 있다. 기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여기에 한가지를 추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리더십의 스타일이다.

    정위원장은 카리스마가 강한 사람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의 리더십을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한 부분이나, ‘철인정치’에 대한 호감,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로마인 이야기’를 감명깊게 읽었다는 점 등을 보면 그의 단면이 드러난다. 여기에 고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과 축구인·정치인·경제인으로서의 업무 스타일을 종합해볼 때, 그는 권력분산형보다 권력집중형에 알맞은 지도자임을 느낄 수 있다. 월드컵 이후 그의 리더십이 국민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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