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이재정(李在禎), 정범구(鄭範九), 한나라당의 김원웅(金元雄), 김홍신(金洪信) 의원 등 여야 개혁파 의원 10명은 2월7일 모임을 갖고 공동으로 3대 개혁입법안을 마련,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노력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 이들은 앞으로 민생정책과 정치개혁에 관한 연대를 해나갈 공동 정책기구를 결성하기로 했다. 이어 2월14일에는 여야개혁파의원 23명이 전체회의를 갖고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을 정식으로 결성했다.
이날 참석자는 민주당의 이종걸 김태홍 이호웅 정범구 이재정 김경천 송영길 임종석 박인상 천정배 김성호 장성민 정철기 이창복 정장선 의원 등 15명과 한나라당의 김원웅 김홍신 안영근 오세훈 김부겸 김영춘 서상섭 조정무 의원 등 8명이었다.
2월10일에는 여야 개혁파 의원 20여 명과 김중배(金重培)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박원순(朴元淳) 참여연대 사무처장, 최열(崔冽)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지은희(池銀姬)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등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참석한 연대모임이 국회에서 열렸다. 이날 시민단체 대표들은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말고 개혁파 의원들이 3대 개혁입법의 제·개정에 주도적으로 앞장서줄 것을 주문했고, 여야 의원들은 “시민단체와 힘을 모아 개혁입법을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와 같은 초·재선 의원들의 행동에 중진급 개혁파 의원들도 가세하고 나섰다. 민주당 내 개혁파 중진인 김근태(金槿泰)·임채정(林采正)·장영달(張永達) 의원 등은 최근 잇따라 모임을 갖고 ‘열린정치포럼’을 재정비, 개혁입법 처리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당초 초선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움직임이 있을 때만 해도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간주하던 여야 지도부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특히 여야 개혁파가 연대하는 공동정책기구 추진은 우리 정치사상 초유의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책연대를 표방한 여야 개혁파의 공동기구가 결성된다면 그동안 하향식 당론정치가 파괴되고 정책 중심의 새로운 정치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가능케 한다.
문제는 여야 개혁파 의원들의 이런 연대와 독자행보가 정치적 역풍(逆風)을 이겨내고 전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 과거에도 정치적 여건이 좋을 때는 개혁의 깃발을 내걸었다가, 역풍이 닥쳐오면 깃발을 내던지고 혼비백산 퇴각하는 행태를 보여온 터라, 이들의 움직임에 대해 아직까지는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시선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들을 둘러싼 정치환경도 그리 녹록하지 않은 실정이다.
개혁파 의원들이 역점을 두고 있는 보안법 개정 문제만 해도 아직 낙관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들은 당 지도부가 계속 보안법 개정을 미루거나 반대할 경우, 여야 개혁파 공동으로 독자적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의사와 무관하게 개혁파 의원들이 보안법 개정안을 독자적으로 제출하더라도, 막상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는 현실적 난관이 따른다. 당장 개정안이 법사위원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당 지도부의 동의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안법 개정의 진통
현재 법사위원회 위원장은 한나라당 박헌기(朴憲基) 의원. 위원장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보니 한나라당이 보안법 개정에 반대하는 한 법사위 상정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위원장을 제외한 법사위원은 14명인데 한나라당 6명, 민주당 5명, 자민련 3명으로 돼 있다.
이들 가운데 개혁파 범주에 속하는 의원은 송영길(宋永吉), 이종걸(李鍾杰), 천정배(千正培) 의원 정도고, 개혁파 의원들이 자유투표를 시행할 경우 중진인 조순형(趙舜衡) 의원이 가세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당 지도부가 동의하지 않는 한 법사위 통과는 무망하다.
이런 상황이니 여야 개혁파 의원들은 보안법 개정이 연기돼 현정부에서 개정이 사실상 물 건너 가게 되느니, 부결되는 한이 있더라도 투명한 과정을 통해 결론을 내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도 현실적인 면에서 여러 어려움을 안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고민. 다만 새로 민주당 원내사령탑을 맡은 이상수(李相洙) 원내총무가 그 동안 자유투표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보여왔다는 사실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겠으나, 과연 자유투표 불가를 견지하는 김중권(金重權) 민주당 대표를 설득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지난 2월7일의 모임은 이들이 넘어야 할 산이 많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날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공동기구의 성격, 명칭, 조직체계 등에 관한 충분한 논의 없이 김원웅(金元雄) 의원을 통해 언론에 보도된 데 대해 격한 토론이 벌어졌다.
일부 참석자들은 “언론에 보도된 대로 사무총장까지 두는 조직체계라면 사실상 정치세력화라는 오해를 촉발해 각당 지도부를 자극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당초 2월14일로 예정되었던 발족식은 연기됐고, 대신 전체 확대회의를 열어 논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개혁파의 연대 과정에 드러난 이런 혼선은 여러 부문에서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우선 같은 개혁성향 의원이라 해도 여야간에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지난해 12월26일에 있었던 여야 개혁파 26인의 송년모임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지난해 8월 임시국회에서 국회법 날치기 당시 수석부총무로 주역을 맡았던 민주당 천정배 의원이 모임에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한나라당 참석자들이, 천의원의 참석조건으로 날치기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것. 결국 이날 모임에서 천의원이 참석자들 앞에서 공개 사과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개혁파 내부의 미묘한 갈등은 지난해 9월에 추진된 국회정상화 공동성명 무산 과정에도 드러났다. 당시 여야 개혁파 의원들은 국회정상화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자는 데는 합의했지만, 파행정국의 책임소재에 대한 의견이 달라, 끝내 성명을 발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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