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황장엽과 국정원은 거짓말 그만 하라!”

“황장엽과 국정원은 거짓말 그만 하라!”

2/6
한나라당은 한겨레 칼럼을 문제삼았지만, 송교수와 국내 언론의 관계는 한겨레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글은 그동안 한겨레 외 다른 매체에도 실렸거나 지금도 실리고 있다. 동아일보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무렵인 지난해 6월13일 ‘하나된 미래, 관용으로 열자’라는 제목을 단 그의 특별기고문을 실었다. 지난해 7월7일 중앙일보 권영빈 주필(당시 논설주간)은 칼럼을 통해 “그의 저술이나 대화를 통해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나는 믿는다… 송교수는 암울했던 군사독재정권의 희생자”라며 당국에 그의 귀국조치를 촉구한 바 있다. 지난해 6월8일 남북정상회담을 주제로 삼은 MBC ‘100분토론’에선 사회자 정운영씨와 송교수의 전화대담이 있었다. 송교수는 현재 주간지 ‘시사저널’과 일간 ‘내일신문’에도 칼럼을 쓰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4월10일 임동원 통일부장관의 국회 발언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에 실린 송교수 글을 보니 임장관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데요.

“임장관 말이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얼마 전까지 국정원 수장이던 사람으로서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또 임동원씨가 처음부터 개입한 사건도 아니잖아요. 전임자들로부터 이어받은 사건이지요. 황장엽씨는 국정원 안가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주머니돈이 쌈지돈이고 쌈지돈이 주머니돈이라는 말이 이 사건에 딱 맞아요. 황장엽씨는 아무런 증거가 없어요. 황씨 변호인이 법정에서 내세우는 유일한 증거는 국정원측 주장이에요. 그런데 국정원 주장의 근거는 황씨 주장입니다. 결국 순환논리인데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진실이. 그런 상황에 국정원 수장을 지낸 사람이 그 고리를 스스로 끊을 수 있겠습니까. 순환논리의 연결고리를. 나도 그 위치에 있다면 마찬가지겠죠.”

―임장관은 정보기관 판단만 얘기한 것이 아니라 자기도 그렇게 믿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민들은 믿지 않을 수 없지요. 전 국정원장이자 현재 통일부장관인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데.

“기관의 입장은 어차피 수장이 책임질 수밖에 없어요. 실무자들이 아니에요. 법정에 내미는 증거물엔 국정원장 직인이 찍혀요. 아다시피 국정원도 내부 이해관계가 복잡합니다. 손발이 착착 맞는 것도 아니고. 황씨 문제를 떠맡게 된 국정원 책임자들은 골치 아프죠. 수장 된 사람으로선 그들의 처지를 고려하고 지켜줄 수밖에 없죠. 그들이 거짓말했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이 문제는 결국 재판이 끝나야 해결될 겁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에 황장엽씨와 국정원 관계가 좋은 편은 아니지 않습니까. 새정부 들어 황씨의 효용가치가 떨어졌지요. 그런데도 국정원이 황씨를 편드는 것은 황씨 주장에 근거가 있어서가 아닐까요.

“나도 그 점을 많이 생각했어요. 왜 그럴까. 분명한 것은 내가 만일 국내에 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점입니다. 황씨는 지금 누구 말대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예요. 그 사람이 처음 넘어올 때 황장엽 리스트가 있다고 얼마나 시끄러웠습니까. 그런데 그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잖아요. 그나마 얘기되는 것은 내 문제밖에 없어요. 그를 데리고 온 국정원으로선 그 사람 얘기 10개 중 하나쯤은 들어줘야 하지 않겠어요. 전부 거짓말이라고 하면 국정원 체면이 뭐가 되겠어요. 황씨가 제발로 걸어들어온 것도 아니고 이쪽에서 접촉해 데리고 온 거잖아요. 거기 관련된 사람들이 지금 국정원 중추부에 있을 거라고요.”

―국정원의 대국민 신뢰도가 고려된 것이라는 얘기지요?

“내가 해외에 있으니 그런 일이 가능한 겁니다. 내가 (황장엽 리스트 대상으로) 가장 적당한 거지요. 국내에 없으니.”

―황씨 말은 북한에 있을 때 김용순 대남담당비서가 말했다는 거죠. 나름대로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닌 듯 싶은데요.

“98년에 황씨가 그런 주장을 하자 북에서 반박성명이 나왔죠. 김용순이나 황장엽이나 정치국 후보위원이 아니어서 후보위원 명단을 알 처지도 아니고 알아도 당 체제상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대해 그런 얘기를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또 황씨가 그런 얘기를 들었다는 93년경 김용순 비서는 대남담당이 아니고 국제담당이었다는 겁니다.”

송교수는 당시 북의 반박성명을 ‘킹 소프트’라는 미국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확인했다고 한다. ‘킹 소프트’는 북한 중앙통신의 보도 내용을 인용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은 상당히 높은 직위인 모양입니다.

“사회주의국가에선 원래 정치국이 파워센터 아닙니까. 한마디로 모든 핵심적 사안은 거기서 결정한다고 봐야지요. 정치국엔 정위원과 후보위원이 있어요. 정위원은 발언권 투표권이 있지만, 후보위원은 내가 알기론 발언권만 있어요. 정치국은 이렇게 구성됩니다. 먼저 전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들을 선출하죠. 그 다음 중앙위원회에서 다시 정치국원을 선출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핵의 핵의 핵인 거죠. 사회주의국가에선 다 비슷해요. 소련도 중국도. 노동당 정치국이라면 북한사회의 틀을 결정짓는 핵 중에 핵이라 할 수 있죠. 황장엽이나 김용순 같은 사람은 거기 끼지 못해요. 비서직은 업무를 상시적으로 수행하는 책임자지 정책 결정권자는 아니거든요.”

송교수는 “내가 그런 자리에 있다면 영광이지요”라며 웃었다. 송교수 문제와 관련한 국정원의 공식입장은 “증거는 있지만 안보상 이유로 밝힐 순 없다”는 것이다.

“재판과정에 가장 핵심적 문제가 제기돼 우리측에서 증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면 항상 그런 식으로 나온단 말이에요. 독일 변호사를 만나 물어봤어요. 그 변호사 말이 ‘그건 다 이긴 싸움 아니냐’는 거예요. 판결은 반드시 증거에 기초해야 하고 판결문에 근거를 남겨야 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러이러한 증거로 이렇게 판결한다는. 만약 국가안보상 이유로 증거를 댈 수 없다면 아규먼트(논쟁)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는 거죠. 독일법으로는 말도 안 된다는 거예요.”

―소송은 진척이 있습니까.

“2년 이상 질질 끌고 있어요. 저쪽에서 엉터리 자료를 내밀면 이쪽에서 반박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어요. 재판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이제 황씨는 아예 사라지고 황씨의 증인으로 나선 국정원과 나의 대결만 있어요.”

―저쪽에서 내놓은 자료 중 눈에 띌 만한 것이 있습니까.

“예전에 황씨가 안가에서 재판받은 적이 있잖습니까. 신변안전을 이유로. 99년 9월28일로 기억되는데, 비공개였어요. 당시 나는 미국에 있었어요. 그런데 며칠 후 북한이 중앙통신을 통해 그 재판을 언급하며 국정원과 황씨를 공격했어요. 국정원은 ‘봐라. 송두율이 변호사에게 재판관련 자료를 받아 북에 넘겨줘 공개된 것 아니냐’고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연합통신 기자가 당시 재판정에 있었어요. 연합통신이 기사화하는 바람에 공개된 겁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입니까. 그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상상력을 발휘해 얘기를 꾸며내고 있어요. 인터넷에 들어가 9월29일자인가 30일자 연합통신을 확인해보니 그 내용이 나와 있더라고요. 그런 따위의 황당한 증거들, 지금까지 수십 가지가 넘어요.”

―변호사는 뭐라고 합니까.

“변호사는 기본 논거와 증거를 다 댔으니 빨리 판결을 독촉하는 것밖에 할 일이 없데요. 왜 이렇게 오래 끄는지. 독일에서는 최장 끌 수 있는 기간이 2년이거든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나 판결이 내릴지….”

―재판부에서 출두하라는 요청은 없었습니까.

“겁날 게 없으니 피할 이유는 없죠. 황장엽씨가 자기는 신문을 받는데 원고인 내가 받지 않는 건 부당하다고 불평했어요. 그래서 작년 7월4일 ‘늦봄통일상’ 수상을 계기로 국정원측과 귀국협상을 벌일 때 국내에 들어가면 조사를 받을 생각이었어요. 사실 국정원이 나를 신문할 권리는 없죠. 법정에 넘어간 문제니. 그렇지만 국정원이 황씨 주장과 관련해 궁금해하면 호텔 같은 데서 조사에 응할 수 있다고 약속했습니다. 준법서약서는 쓰지 않는 조건으로. 그때 얘기가 다 돼서 비행기 표 끊고 짐까지 다 쌌어요. 그런데 조선일보가 사설로 문제를 삼고 한나라당이 시비를 걸고 나오는 바람에 일이 틀어졌어요. 중간에서 조정한 사람이 난처하게 됐지요. 결국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갔죠.”

2/6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목록 닫기

“황장엽과 국정원은 거짓말 그만 하라!”

댓글 창 닫기

2023/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