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왔다 갔다 합니다만, 국내외 요인과 관련해 새로운 금융위기가 올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까?
“금융위기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외환 보유고가 950억 달러에 가까우니 외환 유동성으로 인한 금융위기는 가까운 시일 내에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금융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최근 일본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금융위기는 항상 발생할 소지가 있습니다.
일본은 1991년부터 경기가 침체돼 10년이 지나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왜 일본이 금융 구조를 빨리 조정하지 못 하고 오늘까지 끌고 왔느냐 하면, 외환 보유고가 굉장히 많이 쌓여 있어 외부적인 압박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부적으로 고통 없는 개혁을 한다고 한 것이 오늘날 일본 경제를 이렇게 몰고 왔다고 봐요. 우리도 외환 보유고가 950억 달러나 되니까 97년에 겪었던 것 같은, 외부 압력에 의한 위기는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고는,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춰 근본 문제 해결 없이 장기적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을 주의 깊게 살펴 빨리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과감하게 강구해야 합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에 경제부총리를 없앴다가 올 초에 부활시켰습니다. 팀장이 없어 부처간 정책 혼선이 많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부활됐는데요. 재직 경험에 비추어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의 관계는 어떠해야 이상적이라고 봅니까.
“경제부총리가 있고 없고에 경제 정책이 좌우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재경부장관은 부총리로 승격되기 전에도 경제팀을 리드,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선임장관입니다. 경제정책의 조정이 부총리 타이틀이 있기 때문에 잘 되고 없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없앴다가 왜 다시 만들었는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대통령 중심의 정치 제도에서 경제수석이라는 자리는 대통령에 대한 경제 자문과 경제 교육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자주 만나 얘기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알 수 있지요. 경제수석은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대한 판단을 옆에서 보좌하는 사람이니 매우 중요합니다.
행정부의 경제를 조정하는 부총리와 경제수석의 관계가 제도적으로 정형화되기는 어렵습니다. 대통령의 생각에 따라 부총리에게 경제에 대한 총괄 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줄 수 있고 경제수석에 그 기능을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대통령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쪽에서는 남한도 경제가 어려운데 정부가 북한에 너무 퍼주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의 급격한 와해를 막고 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해 파탄에 빠진 북한 경제를 어느 정도 도와줘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남북경제 협력의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적자 대북사업, 정부가 맡아야
“남북경제협력을 단순하게 경제성만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남북의 평화 공존이나 장기적 통일 대비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소한 북한 경제가 자체 생존이 가능해야만 장기적으로도 상호 교류를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그걸 바탕으로 통일 기반을 닦을 수 있습니다.
그 동안 북한에 돈이 얼마만큼 갔는지, 또 너무 많이 퍼준 건 아닌지,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남북 교류의 주도적 역할은 사실 정부가 해야 합니다. 정부가 재정 능력 범위 내에서 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민간기업의 교류라고 하는 것은 자체 판단에 의해 수익이 있으면 하는 거고 수익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투자를 하면서 수익을 전제로 하지 않는 기업은 기업이 아닙니다. 기업이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또는 남북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어떤 사업을 할 수는 있겠지요. 그건 기업이 건실하고 여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입니다. 수익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기업활동을 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금강산관광은 북한 송금 액수를 월 1200만 달러에서 600만 달러 정도로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해 카지노와 면세점을 허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적자투성이 대북사업을 민간기업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주도하는 컨소시엄 형태로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금강산관광 사업은 현대가 스스로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원래 계획대로 수익이 나지 않아 적자가 쌓였단 말이에요. 개인 기업이 일을 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처리할 거냐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것 같아요. 유일하게 남북간 교류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 금강산 관광사업인데 이걸 중단해버리면 결국 남북 교류가 갑자기 멈춰버리는 모양새여서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해법을 찾는 수밖에 없어요. 관광공사와 합작을 취하는 형태도 검토할 수 있겠지요. 그래도 적자는 계속 날 거예요. 그 적자를 개인기업이 떠맡을 수는 없습니다. 이건 정부가 알아서 판단할 수밖에 없어요.”
―카지노나 면세점은 어떻습니까.
“남북교류를 위해 정부는 남북협력기금 같은 데서 보조를 받아서라도 금강산 사업을 지속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이런 점에 명확히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해요. 혹시 특정 민간기업의 재정을 도와준다는 비난이 두려워 사행심 조장을 통한 재원 조달을 고려한다면 이는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고 봅니다.”
재벌개혁, 이룬 것 없다
―미국 경제가 경착륙을 하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일본 경제도 어렵습니다. 두 나라 경제의 침체가 오래 지속되면 한국 경제도 어려움이 커질 텐데요.
“일본 경제는 10년 동안 현재와 같은 상태였기 때문에 큰 영향을 끼치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 금융 문제 같은 것은 우리나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리라고 생각해요. 미국도 1995년 이후에 지나친 호황을 타면서 증시에 상당한 거품이 생겼어요. 나스닥이 2000년 초에는 5000까지 올라갔다가 최근에는 1700선으로 빠지고 다우지수도 1만2000대 가다가 지금 9000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원래 거품이 한번 크게 생기면 그것이 꺼지는 과정도 오래갑니다.
미국이 그렇게 되면 우리 정보통신(IT) 분야 수출이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겁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우리나라는 정책적 노력을 통해 경제 기반을 건실화하고 이후 세계 경제 전반이 향상됐을 때 뻗어나갈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이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원인은 뭐라고 보십니까.
“85년도 9월21일 프라자 협정이 있었어요. 그 당시 달러가 일본 엔, 독일 마르크, 영국 파운드, 프랑스 프랑 등 모든 화폐에 대해 평가 절상을 했습니다. 엔이 지나치게 평가절상 돼버리니까 일본 수출업체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어요. 그걸 보완한다고 저금리 기조를 계속 유지했지요. 그때 재테크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부동산과 주식에 엄청난 돈이 몰려 땅값,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89년에는 니케이 지수가 최고 3만9750까지 상승했어요. 절정에 이른 겁니다.
89년 노무라 보고서를 보면 95년에 가면 니케이 지수가 8만까지 간다고 예상하고 있어요. 1990년대에는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큰소리도 쳤지요. 일본은 그렇게 자신감에 넘쳤고 세계 각국이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순식간에 무너진 거예요.
1991년부터 경기가 침체됐지만 일본 사람들이 어떤 자만을 보였느냐 하면, 이까짓 것 경기 조절로 금방 해결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경기정책으로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95년 중반, 96년에 들어서야 그것이 구조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됐지요.
일본도 한국처럼 오버 캐퍼시티(과잉 시설)와 오버 론(과잉 부채)이 문제입니다. 그런 상황에 정책적 판단 미스가 오늘날 일본 경제를 이렇게 만든 겁니다. 90년대 들어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이 극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금융이 독자적 시장으로 빠르게 팽창하는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이지요. 변화에 적응 못하면 일본이나 우리나 똑같은 겁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정치적 리더십이 없어 경제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쪽으로 여론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일본 경단련 회장을 맡고 있는 도요타자동차 사장은 일본 총리를 패기있고 젊고 박력있는 사람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일본이 지난 10년 동안 10번에 걸친 경기부양책을 쓰면서 1조2000억 달러를 투입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어요. 구조 문제를 경기 부양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안 되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좋은 교훈이 될 수 있겠지요.”
―경제위기 이후 한국 재벌도 타율에 의한 개혁이 많이 이루어졌다고 보지 않으십니까.
“내가 보기에는 크게 바뀐 것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히려 한두 개 재벌이 어려움을 겪는 것 외에는 영역도 확대됐고 힘도 더 생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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