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론’과 ‘대만론’으로 유명한 만화가 고바야시는 만화를 통해 모임의 이념을 전파하고 있다. 최근 중국어로 번역된 ‘대만론’에도 ‘종군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내용이 들어있어 그는 한때 대만으로부터 출입국금지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모임의 실무책임자인 사무국장은 국학원대 강사인 다카모리 아키노리(高森明勅·신도학)가 맡고 있다.
모임은 발족 이후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강연회, 심포지엄, 요인면담회 등을 열어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했다. 지부결성에도 착수해 99년 10월까지 도쿄(東京) 두 곳을 포함해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 전체에 지부를 만들었다. 회원은 지난해 3월 1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모임이 이처럼 급속하게 세를 넓혀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자민당내 보수세력이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자민당은 1993년 8월 ‘역사검토 위원회’라는 것을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1995년 2월까지 19명의 강사를 초빙해 20회의 회의를 열었다. 이 위원회가 낸 최종 보고서는 일본의 침략 및 가해 사실을 부정하고 이를 국민의 역사인식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국민운동’이나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제작’ 등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의 지향점은 모임의 지향점과 비슷하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를 비롯해 현내각 각료의 3분의 1가량인 6명이 이 ‘역사 검토 위원회’의 멤버였다.
1996년 6월 자민당 내에 결성된 ‘밝은 일본 국회의원 연맹’과 1997년 2월에 출범한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도 동조자다. 이들은 교과서검정기간에 나타난 한국과 중국 등의 수정요구는 명백한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마키타 구니히코 외무성 아시아국장이 국회답변을 통해 “내정간섭이라는 것은 국제법상 타국이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는 사항에 개입해서 강제적으로 자국에 따르게 하는 것”이라며 “한국 등의 주장은 내정간섭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히자 이를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또 “한국 등의 교과서에도 일본을 왜곡해서 기술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 이에 대해 항의를 한 적이 있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젊은 의원 모임’은 모임의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 뒤에는 “앞으로 교과서 채택을 엄정하게 하는지 감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자민당의 문교과학부회도 “나라 안팎의 부당한 요구가 있어도 최후까지 엄정하고 공정한 검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측면에서 모임을 지원했다.
국회 질의나 답변을 통해 모임 측을 지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문부성 장관은 1998년 6월 국회에서 “현행 역사교과서가 균형을 잃고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하며 “검정 전에 내용을 시정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검정 전 시정’이라는 것은 출판사가 최초 검정본을 내기 이전에 스스로 내용을 고쳐서 제출하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것으로 이는 ‘사전 검정’에 해당된다.
이 발언은 기존 7개 역사교과서가 ‘종군위안부’를 없애거나 축소하고, ‘침략’이라는 단어를 ‘진출’로 고쳐 검정을 신청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물론 해당 출판사들은 문부성으로부터 아무런 압력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어디까지나 자주적으로 결정(자주규제)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정부와 문부성, 그리고 정치인의 압력 때문에 ‘알아서 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산케이신문의 지원사격
2000년 8월 자민당의 고야마 다카오(小山孝雄) 참의원의원은 교과서 채택문제와 관련된 질문을 통해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 관방 장관과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문부성 장관으로부터 “교과서 채택권한은 교사들이 아닌 교육위원회가 갖고 있다”는 답변을 끌어냈다. 이는 모임측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는 답변이었다.
1997년 개헌운동의 선봉장 노릇을 하던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통합해서 만든 ‘일본회의’도 든든한 후원자다. 일본회의도 각 도도부현에 지부를 갖고 있는데 회원은 모임 회원과 거의 중복된다.
2000년 4월 발족한 ‘교과서개선연락협의회’라는 새로운 단체도 모임을 돕고 있다. 이 단체는 교과서 집필자여서 어느 정도 법적규제를 받게 되는 모임을 대신해 활발한 선전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익의 이익을 대변하는 산케이신문의 지원사격도 빼놓을 수 없다. 산케이신문은 1999년 10월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의 통신부’라는 연재기사를 게재했다. 이는 기존 역사교과서에 점수를 매기는 기획으로 집필자는 모임 멤버들이었다.
모임이 집필한 교과서를 출판하는 후소샤도 산케이신문 계열의 자회사다. 따라서 산케이신문은 신문사이기에 앞서 이해 당사자에 해당된다. 이 신문은 그동안 수차례의 사설과 기사 등을 통해 이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한 아사히신문 등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일본 정부는 한국이나 중국의 주장에 굴해서는 안된다고 촉구했다.
산케이신문은 한국이나 중국이 교과서검정과정에 근린제국(近隣諸國)조항 적용을 요청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나카니시 데루마사(中西輝政) 교토대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반박했다. 나카니시 교수는 “중국과 한국에는 근린제국조항이 없다. 이는 일본만 지고 있는 의무다. 근린제국조항은 법률이 아니고 일본의 내규나 실무수준의 처리기준, 관청내 문서에 불과하기 때문에 타국이 (이를 근거로) 참견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에는 1982년 ‘근린제국조항’을 만들 때의 배경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일단 만들기는 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불리하다. 그러니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다. 모임측의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 뒤 산케이신문은 ‘총리와 문부과학성이 잘 대처했다’며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사카모토 요시카즈(坂本義和)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정부의 책임을 묻는 한국이나 중국 등의 목소리는 ‘내정간섭’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정치가나 관료의 오직사건을 교과서에 쓰라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외국에 나가서 저지른 전쟁이나 식민지 지배로 심대한 피해를 본 사람들이 그런 내용을 정확하고 성실하게 기술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반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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