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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격 노리는 ‘家臣군단’ 동교동계

대반격 노리는 ‘家臣군단’ 동교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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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내 권력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투쟁의 당사자는 동교동계와 소장파. 민주당의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동교동계는 소장파의 반란에 맞서 대오를 갖추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대결. 동교동계 최후의 반격카드는 무엇일까.
대반격 노리는 ‘家臣군단’ 동교동계
2001년 6월14일 오후 2시 서울 마포 일신빌딩 8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오른쪽 복도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사무실이 눈길을 끈다. 같은 층의 다른 사무실들이 두터운 철문으로 닫혀 있지만 유독 이 사무실만은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아예 출입문이 유리문으로 돼 있어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다.

들어서면 정면에 안내데스크가 있고 좌우로 유리 칸막이로 구획된 제법 큰방들이 배치돼 있다. 마치 어느 벤처기업 사무실을 연상케 하는 산뜻한 인테리어. 그러나 넓은 공간에 비해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다. 주인은 없고 객들만 진치고 있는 묘한 사무실. ‘딱’ ‘딱’… 경쾌한 마찰음이 들린다.

입구 오른편 휴식공간인 듯한 방에 50~60대 중년 남자 4명이 짝을 지어 마주앉아 바둑을 두고 있다. 또 다른 남자 하나는 바둑을 두는 사람들 사이를 서성이며 훈수를 두고 있다. 그 맞은편 방에 들어서자 여사무원이 보인다. “이 방 주인은 언제 오느냐”는 질문에 여사무원은 “오시는 날도 있고 안 오시는 날도 있어요”라고 간단하게 대답한 뒤 제 볼일을 본다.

이곳이 바로 동교동계의 계보사무실인 ‘내외연구소’다. 그리고 방의 주인은 민주당 권노갑 전최고위원, 지금 정치권에서 가장 화제를 몰고 다니는 바로 그다. 중년 남자 몇이서 한가롭게 바둑을 즐기던 그 날, 권 전위원은 이 사무실을 찾지 않았다. 오후 늦도록 바둑돌 놓는 소리만 요란하게 건물에 울려 퍼졌다.

권노갑의 2인자 처신 원칙



그러면 권 전위원이 모습을 나타낼 때 내외연구소의 풍경은 어떨까. 민주당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3월 개소식 직후 마포사무실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지난 3월달 개소식 직후였습니다. 아침 10시경 권 전위원이 나타나기 전부터 그를 만나러 온 정객들로 50여평 사무실이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민주당 현역의원들도 몇 명 있었습니다. 다들 내로라하는 사람들인데 한참을 기다린 끝에 5분 남짓 권 전위원과 면담하고 나오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정권에서도 대통령 다음의 실력자는 있었다. 전두환 정권 때는 노태우씨가 2인자였고, 노태우 대통령 때는 박철언 전의원이, 김영삼 대통령 때는 김현철씨가 각각 막강 2인자로 군림했었다. 김대중 정권의 2인자는 누가 뭐라 해도 권노갑 전위원이다.

그러나 권 전위원은 역대정권의 2인자들과는 그 처신에서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호시탐탐 1인자의 자리로 승격을 꿈꾸는 과거의 2인자들과 달리, 권 전위원은 1인자 자리를 넘보지 않는 유일한 2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인자이면서 1인자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다는 원칙, 바로 이 점이 김대통령이 권 전위원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결정적 이유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비서 출신인 한 측근인사의 전언.

“YS와 DJ 두 사람 모두 가신을 뒀지만 YS는 가신그룹 내부의 경쟁과 서열 상승을 위한 갈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편이었습니다. 중간보스의 자율성을 보장해줬다는 거죠. 그러나 DJ의 동교동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동교동계가 다른 정치집단보다 정치적 탄압을 많이 받기도 한 까닭에 DJ를 정점으로 철저히 종적 질서를 강조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두 가신그룹의 정치문화의 차이는 2인자들의 처신에도 영향을 끼쳤죠. 김대통령이 권 전위원에게 어느 정도 권력을 인정할 뿐 아니라, 주변의 비난 여론에도 권 전위원을 쉽게 배척하지 않는 데는 언제나 자신의 역할에 한계를 정하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권 전위원의 처신이 결정적 이유로 작용했다고 봐도 될 겁니다.”

DJ로부터 정치를 배운 권 전위원은 자신을 따르는 정치인들과의 관계에서도 철저히 DJ스타일을 따라하고 있다. 어쩌면 DJ보다 더 DJ다운 방식으로 사람과 조직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비서출신 인사의 말.

“지난 연말에 권 전위원의 비서들이 송년회를 겸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 6월초에 다시 모임을 갖기까지 한번도 비서진끼리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사이 권 전위원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도 비서출신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한다거나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비서진들과 권 전위원 사이가 소원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권 전위원과 비서들 사이에는 1대1로 수시로 의견교환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권 전위원이 필요한 사항을 물어오면 이에 답하는 식으로 권 전위원과 비서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되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 비서들 사이에 횡적인 모임이 필요가 없는 겁니다. 권 전위원을 정점으로 한사람 한사람을 1대1로 관리하는 방식, 이런 사람 관리는 전형적인 김대통령 스타일인데 그걸 그대로 배운 거죠.”

권 전위원은 내외연구소 외에 마포 인근에 별도의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이곳에서는 젊은 비서진들이 모여 권 전위원의 비서업무 및 정무업무를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위원의 이런 사람관리 방식은 최근 민주당 내분과정에서 또 다른 의미에서 주목을 받았다. 소장파 의원들은 당초 민주당 내 ‘구악(舊惡)’으로 동교동계를 지목했지만 권 전위원을 제외하고는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았다. 성명파 의원들마다 거론한 쇄신대상 인사가 달랐는데, 여기에는 김대통령에서 권 전위원을 거쳐 개별 정치인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동교동의 조직문화 탓에 집단으로서의 동교동계 영역이 불투명한 것도 한몫을 했다. 어디까지가 동교동계인지, 누가 동교동계인지 사람마다 평가가 다른 까닭에 표적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권 전의원 측근인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상도동과 달리 동교동계를 표현할 때 ‘범(凡)동교동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교동계라고 내세우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핵심 동교동계와는 별도로 ‘범’이라는 접두사가 붙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DJ와 인연을 맺은 비서 출신만 해도 300명이 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거죠. 그만큼 동교동계는 권 전위원과 김옥두, 한화갑 의원 등 몇 명을 제외하고는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세력이 방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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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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