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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이회창家

예산의 이회창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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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검찰서기 지낸 부친 친일시비 내막
  • ●경매 넘어갔던 이총재 종가 문화재 지정 무산 배경
  • ●거부감 약화, ‘고향사람’으로 인정
  • ●이회창 흠집내기는 예산에서 역효과
  • ●친척들에게 인심 잃은 ‘대쪽 父子’
대선이 가까워지면 정치권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것이 후보자들의 고향을 둘러싼 논쟁이다. ‘고향사람한테 표 좀 달라’는 호소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고,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겨 동서남북으로 나라를 가르는 병폐가 끝없이 이어진다. 정책대결보다 지역대결로, 합리가 아닌 연고나 정실(情實)로 승부를 내려는 한국 정치의 한심한 부분이다. 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논쟁에 정치권은 사활을 걸기라도 한듯 열을 올린다. 민심을 자극하고 끌어들여 표를 만드는 데 이보다 더 간단하고 편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고향을 둘러싼 여야의 입씨름도 이런 차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8월8일 대전 시국강연회에 참석한 이총재는 충남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도 충청도 사람”이라며 연고를 강조했다. 그러자 이 지역을 텃밭으로 여기는 자민련이 “이회창 총재는 충청도가 아니라 황해도 태생”이라며 발끈했다.

이총재의 고향은 충남 예산이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 예산은 이총재의 고향이라기보다 그의 부친의 고향이다. 이총재가 태어난 곳은 황해도 서흥이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전남 담양이다. 그후 아버지 근무지를 따라 광주와 청주, 서울을 전전하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성인이 돼서는 서울에서 살았다. 한마디로 입때껏 예산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충청권 공략의 교두보

그렇다고 이총재의 주장이 얼토당토않은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고향이자 조상이 살던 곳도 고향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이총재의 아버지는 예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예산엔 이총재의 조상묘가 자리잡고 있으며 친척이 많이 살고 있다.



이총재는 틈나는 대로 예산을 찾아 충청도 사람들에게 그곳이 자신의 고향임을 인식시키려 애쓰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그의 예산행은 매번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정대 스님 발언 파동’ 직후인 1월20일 이총재는 불쑥 예산에 내려가 선영(先塋)을 둘러본 후 인근 수덕사를 방문해 주지 법장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총재는 5박6일의 여름휴가도 예산에서 보냈다. 휴가 첫날인 7월28일 선영을 참배하고 개축 중인 부친 생가를 둘러봤다. 또 한나라당 예산지구당을 찾아 당직자들을 격려하는 한편 대전·충남 지역 지구당위원장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 다분히 ‘정치적인’ 휴가를 보낸 셈이다.

한나라당은 이총재의 예산행에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8월6일자 한 일간지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핵심당직자는 “지난 대선에 이어 내년 대선에서도 충청권이 캐스팅보트를 쥘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 총재가 충청권에서 선전한다면 마음을 놓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 충청권에 전력투구하는 것”이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말하자면 예산을 충청권 공략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이총재가 8월8일과 10일 대전과 청주에서 잇따라 시국강연회를 가진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에 따라 자민련과 민주당의 경계태세도 강화되고 있다.

자민련은 이총재가 충청도 땅에 발디딜 때마다 불편한 심기를 담은 성명을 쏴대고 있다. 민주당에선 충남 논산이 고향인 이인제 최고위원의 견제구가 눈에 띈다. 충청권의 적자(嫡子)임을 내세우는 이최고위원은 최근 ‘적의 심장부’에 뛰어드는 저돌성을 과시했다.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의 아성인 부여와 공주를 8월7일 찾아가 자민련을 격분시키더니 8월16일엔 예산을 방문해 한나라당을 자극했다.

그에 앞서 민주당은 7월말 민주당보를 통해 이총재 부친의 친일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이총재 부친의 예산 생가 복원을 비난하고 나섰다. 친일의혹은 이총재 부친이 일제 때 검찰 서기를 지낸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립운동가 후손인 민주당 김희선 의원은 “일제 말기에 검찰 서기를 했다면 독립투사를 탄압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이총재 부친의 생가는 이총재 집안의 종가(宗家)이기도 하다. 일반인이면 아무 문제가 안 될 종가 복원 공사가 구설수에 오른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그것을 정략적 행위, 곧 이총재의 충청권 민심 잡기의 일환으로 보기 때문이다. 둘째는 문화재 지정 시비다. 소문에 따르면 종친회 측이 예산군에 그 집을 문화재로 지정해달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총재 부친의 생가 복원 공사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이총재 부친에 대한 친일의혹 제기는 타당한가. 또 예산 사람들은 이총재를 고향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총재가(家) 사람들은 예산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 예산에 사는 이총재의 친척들은 이총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런저런 의문을 품고 예산의 ‘이회창 민심’ 탐방길에 올랐다.

동으로는 아산, 서로는 서산, 남으로는 공주, 북으로는 당진에 닿아 있는 예산군은 인구 10만의 작은 고장으로 2개의 읍(예산, 삽교)과 10개 면으로 구성돼 있다. 예산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버스 정류장 표지판의 사과 그림이다. 능금축제, 능금아가씨선발대회, 능금아파트, 애플타운 등이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사과로 유명하다. 아울러 국보 49호인 수덕사 대웅전과 덕산온천도 이 고장 사람들이 손꼽는 자랑거리다.

예산이 배출한 역사적 인물로는 추사 김정희, 윤봉길 의사, 이태규 박사 등이 있다. 국내 최초의 이학박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박사는 이회창 총재의 중부(仲父)로 1992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이총재 부친의 생가는 바로 이박사의 생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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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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