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정치세력간의 치열한 다툼으로 번져갈 수도 있다는 것을 박태준 허화평 두 사람의 악연에서도 엿볼 수 있다.
3김이 현실정치권력을 행사하면서 전국구는 ‘친위 인맥 심기’보다는 공천헌금 명분의 정치자금조달 창구로 변해간다.
이른바 ‘정당 오너체제’가 굳어지면서 여야를 망라한 가신 및 측근실세를 중심으로 한 사당(私黨)화의 폐습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게 된 것이다. 다음은 김영삼 정권기의 선거제도 운용과 전횡에 관한 소식통 M씨의 증언.
“15대 국회의원 공천이 한창이던 지난 1996년 1월25일, 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김윤환 대표가 ‘공천 희망자를 공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부산 출신 곽정출(郭正出) 의원이 ‘이미 다 결정해 놓고 무슨 공모냐, 쇼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1주일 후인 2월2일 신한국당은 전국 253개 지역구 중 92%인 233개 지역구의 공천자 명단을 발표했다. 1월31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공천심사위를 열어 공천 후보자를 심사하고 2월2일 오후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당무회의에서 공천자 명단을 확정한 것이다.
공천 희망자를 공모하겠다고 한 지 불과 1주일여 만에 명단을 발표하는, 초특급으로 진행된 공천에 탈락자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탈락자인 박제상 의원은 ‘200명이 넘는 후보자를 불과 몇 시간 만에 심사하는 공천심사가 애들 장난이 아니고 뭐냐’고 반발했다. 신한국당이 이처럼 속전속결로 심사를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이 이미 3개월 전부터 비선라인을 중심으로 공천자를 내정해 왔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당시 공천 후보자를 직접 청와대로 부르거나 전화를 걸어 일일이 낙점했다. 이 과정에 참여한 사람은 핵심 측근인 강삼재(姜三載) 사무총장과 이원종(李源宗) 청와대 정무수석 정도였다. 그 뒤의 공천심사위원회나 당무회의는 모두 형식적인 통과의례에 불과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천권을 장악한 정당 오너는 ‘황제’와 같은 권력을 누린다. 정당마다 ‘공천심사위에서 민주적 심의’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오너인 총재와 그 핵심 측근이 막후에서 낙점하는 게 현실이다. 공천권을 장악한 당 총재의 의중에 따라 국회의원 목숨은 살았다 죽었다 하는 ‘파리 목숨’이 되는 것이다.
지역구가 이러했으니 전국구 공천은 말할것도 없었다. 정당 오너의 손에 순번이 뒤바뀌고 사람이 교체되기 일쑤였다. 당시 국민회의도 사정은 비슷했다. 9명의 공천심사위가 구성됐지만 김대중 총재의 ‘대리인’으로 불리는 권노갑(權魯甲)씨가 심사위원으로 참여, 김총재의 의중에 따라 공천자를 결정했다. 공천에 목숨을 건 후보자들은 권의원에게 ‘줄’을 대려 난리였다. 공천심사위원들은 이를 피해 서울의 리베라호텔과 워커힐호텔로 옮겨다니다가 나중엔 서울 외곽인 기흥의 콘도까지 가서 작업 했다.
상위순번은 20억∼30억원
결국 ‘거점지역 물갈이’ 차원에서 호남 현역 의원 9명이 탈락했다. 이들은 ‘왜 하필이면 나냐’며 읍소도 하고 반발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탈락한 한 중진 의원은 ‘우린 파리 목숨이야’라며 자조했다. 선거 때마다 밀실 공천, 줄대기, 탈락자들의 반발과 잡음이 되풀이되는 것이 우리 정당의 현실이다. 모든 게 오너 한 사람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또 다른 증언. 1996년 4월 총선에서 국민회의 전국구 후보로 당선된 한 의원의 말이다.
“전국구로 국회에 들어오고 보니 동교동계 일부 가신 의원들의 눈초리가 매섭더라.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당신은 공천 헌금 한푼 내지 않고 금배지를 달았으니 당을 위해 더욱 몸을 바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가신 출신 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몰라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양김씨와는 다르지만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에게도 그런 측근이 있다. 이총재가 3김 정치 청산을 외치자, 당내에서는 ‘이총재도 3김처럼 측근 중심으로만 움직여 당을 사당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3김 시대의 전국구를 둘러싼 공천헌금 폐단은 13대 총선 때 제1야당으로 부상한 평민당의 전국구 공천이 선명한 사례로 꼽힐 수 있다. 이에 관련된 한 정치권 소식통의 증언내용.
“당시 평민당은 재야에서 영입한 박영숙 총재권한대행을 전국구 1번으로 내세우고 김대중 문동환 최영근 조승형 후보가 11번부터 14번까지 포진했다. 이때 2번부터 10번까지가 공천헌금을 내고 전국구 후보자리를 따낸 케이스다. 당시 2번부터 5, 6번까지의 상위순번은 평균 20억원의 헌금을 냈다. 14번까지를 당선권으로 보았기 때문에 15번과 16번을 받은 당료출신의 정기영·조희철 의원은 공천헌금을 내지 않고 원내 진출에 성공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13대 때 제2, 제3야당이 된 통일민주당과 공화당의 전국구 공천 및 헌금액수 도 평민당의 경우와 비슷했고, 그 이전의 야당들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지금까지 야당은 사실상 전국구를 팔아 마련한 자금으로 선거를 치르다시피 해왔기 때문에 당 총재나 대표 또는 계파보스가 측근을 배려할 경우에도 다른 후보와의 형평을 고려, 공천헌금을 일부 대납해주거나 ‘성의’를 표시하도록 하는 방법을 썼다. 3김씨 주도의 정당들에서 전국구 운영실상의 치부를 극명하게 노출시킨 사건들이 한국 정치사에서 줄이어 터져나온 것은 이와같은 왜곡된 정치풍토를 대변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야당의 경우 이에 대해 “전국구 공천 순위를 헌금 액수에 따라 결정하는 것은 정치자금의 99% 이상이 집권여당에 몰리는 현실에서 돈 없는 유능한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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