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호

후보 되고 반도체부터 챙긴 이재명, 기업은 노심초사

[재계 인사이드] 대선에서 정점 찍을 ‘반도체의 정치화’

  • 김형민 아시아경제 기자 khm193@asiae.co.kr

    입력2025-05-1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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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기간 중 나올 각종 ‘반도체 메시지’에 업계 주목

    • 李 경기도지사 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추진

    • 업계, 李 ‘U자형’ 한반도 에너지고속도로 건설 기대

    • 상법개정·주 52시간 근무 예외 반대…“양면성”

    • ‘기업 사정 잘 알기에 압박 능할 것’이란 우려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왼쪽)이 4월 28일 오후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 ‘K-반도체’ AI메모리반도체 기업 간담회를 위해 만나 대화하며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왼쪽)이 4월 28일 오후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 ‘K-반도체’ AI메모리반도체 기업 간담회를 위해 만나 대화하며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당내 후보로 최종 선출된 이튿날인 4월 28일, 대선후보로서의 첫날을 온전히 ‘반도체’에만 쏟았다. 우리 반도체를 육성하겠단 취지의 경제 공약을 내놨고, 뒤이어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를 첫 방문지로 택해서 갔다. 이어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 날인 5월 12일 경기 화성시 동탄을 찾아 반도체 웨이퍼에 ‘세계 1위 반도체 강국 도약!’이라고 적은 뒤 웨이퍼를 들어 보이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는 이를 크게 반긴 것으로 전해진다. 유력 대권주자가 다른 곳을 마다하고 반도체를 먼저 챙긴 사실은, 기업들에는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차후 이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을 때 반도체 기업들의 어려운 사정과 반도체특별법 등 꽉 막혀 있는 입법 문제 등을 헤아려줄 것이란 기대도 품을 만했다. 

    이 후보를 만나 환영 인사 정도로 그칠 줄 알았던 곽노정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사장)는 예상외로 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인공지능(AI)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건 세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진 지금 반도체가 가장 큰 화두란 점을 강조하고 “국가와 기업이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함께 힘을 모아 반도체 선도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크다”고 했다. 곽 사장은 2022년 3월부터 지난 3월까지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을 맡았다. 협회장으로 일하며 업계에서 들어온 하소연에, 직접 SK하이닉스를 경영하면서 느낀 소회를 담아 풀어낸 요청으로 읽힌다.

    곽 사장의 말대로, 우리 반도체는 6월 3일 대선을 앞두고 백척간두에 서 있다고 할 만큼 기업들의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시장 경쟁은 치열해졌고, 미국발 관세 변수로 인해 시장엔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에 따라 다가오는 대선을 통해 선출될 새 정부가 중요해졌다. 정부가 어떤 기조로 가느냐에 따라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운명이 크게 좌우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이미 미국, 중국, 대만,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은 각국 정부의 폭넓은 지원을 등에 업고 세계 무대에서 싸우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 기업의 경우 정부의 후원이 미약하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주요 메모리 시장은 지금 우리 기업들이 선점하고 선두 자리를 꿰차고 있지만, 앞으로의 향배는 가늠하기 어렵다. 다른 국가들의 추격은 거세졌고, 지금의 1등이 영원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행보, 밑바탕엔 ‘경기도지사 이력’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선출돼 우리 반도체의 미래를 밝힐 수 있을까. 그가 적임자인지 여부는 유권자의 선택으로 판명될 일이지만, 현재로선 그가 선거기간 중 몸소 던질 각종 ‘반도체 메시지’가 많은 주목을 받을 거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어느 후보보다도 먼저 정책을 제시하고 움직였기 때문이다. 세부 행보도 도드라져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절반 안팎을 오가며 우위를 보이는 상황까지 더해지며, 기업들은 더욱 이 후보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볼 것으로 점쳐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 대부분은 이 후보를 “기업, 그리고 반도체 시장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경기도지사로 일한 이력이 밑바탕에 있다. 이 후보는 2018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경기도지사로 일했다. 이때 경기도는 많은 기업과 여러 사업을 했다. 네이버, 두산건설 등 당시 이 후보와 손잡았던 기업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반도체와 관련해서도 행보가 굵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의 첫발을 뗀 것도 그가 경기도지사로 있던 때였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의 국가적 필요성을 검토해 온 산업통상자원부는 2019년 2월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에 산업단지 공급물량 추가 공급을 요청하면서 조성을 위한 절차를 본격화했다. 대상지로는 경기 용인시 원삼면 일원이 선정됐다. SK하이닉스가 경기도의 지원 아래 이곳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길 희망했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때 첫 단추를 끼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국가적으로 큰 사업으로 거대해졌고, 주요 기업들의 입주와 공사에도 속도가 붙었다. 공사는 오는 2027년 2월 완공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클러스터의 문을 여는 ‘커팅식’에는 이번 대선에서 선출되는 대통령이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의 운영도 새 정부의 기조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이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SK하이닉스를 가장 먼저 찾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후보로선 이를 통해 6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본인의 정책 구상에서 반도체를 등한시하고 있지 않음을 표방하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후보가 내놓은 반도체산업 지원책도 반도체 기업들이 원하는 바를 일단 대부분 다 담고 있다. 그는 대선후보로 선출된 당일 오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글을 올려 △반도체특별법 신속한 제정 △반도체에 대한 세제 혜택 확대 △반도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인프라 구축 및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신속 조성 △반도체 연구·개발(R&D)과 인재 양성 전폭 지원 등을 공약했다. 

    조금 더 넓게 보면, 4월 24일 내놓은 ‘U자형’ 한반도 에너지고속도로 건설도 반도체와 연관돼 있다. 동해안에 포진돼 있는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바다 밑 송전케이블을 통해 남해안을 돌아 서해안으로 끌어오겠단 구상이다. 전기의 종착지는 경기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현되면 이 전기는 상당한 전력량이 필요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들이 잇달아 세워질 경기도에 공급된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십 차례 회의를 통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 U자형 전력망 구축 방안을 논의해 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실현 가능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이 후보는 본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 이를 구체화하고 실현하겠단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 구상을 짚으면서 실현 가능성도 높였다. 경기도지사로 일하면서 파악한 수도권 내 전력망에 관한 정보도 유익하게 활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2월 26일 국토교통부가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남사읍 일원에 추진 중인 첨단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계획을 승인했다. 사진은 처인구 이동읍의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 부지. 뉴스1

    2024년 12월 26일 국토교통부가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남사읍 일원에 추진 중인 첨단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계획을 승인했다. 사진은 처인구 이동읍의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 부지. 뉴스1

    그래도 “양면성 있다” 우려…상법·R&D 주 52시간은 ‘물음표’ 

    이 후보는 반도체 기업들이 기대할 만한 장점을 가진 것으로도 보이지만, 한편에선 정반대의 시각도 적지 않다. 기업을 잘 알고 있기에 이는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이른바 “양면성이 있다”는 평가다. 기업들이 가장 원하는 바를 아는 만큼 원치 않는 것들도 잘 알아, 기업들을 압박하는 데도 능할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아직 의문부호가 달려 있는 이슈도 적지 않다. 상법 개정안과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 예외 등이 대표로 꼽힌다. 이 후보는 국회를 통과한 뒤 정부에서 제동을 건 상법 개정안을 더 독하게 만들어 재추진하겠단 뜻을 4월 20일 주식시장 활성화 공약을 내놓으면서 내비쳤다.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가 선임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여야가 상법 개정안을 놓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폐기됐던 내용을 다시 추가해 내용을 강화하겠다고 한 것이다. 

    모든 기업이 경영활동에 큰 제약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는 내용으로, 반도체 기업들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해당 내용이 추가되고 상법 개정안이 더욱 독해지면 기업에 소속된 이사들이 지게 되는 법적 책임의 범위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리스크도 더 많이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사는 이사회에서 기업의 경영 현안에 대해 결정 권한을 갖는데, 리스크가 커지면 적기에 발 빠른 결단을 내리기 힘들 수 있어서다. 특히 반도체 기업들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빠른 경영 판단이 필수인데, 상법 개정안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반도체 R&D 인력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의 예외를 둬야 하는 문제는 반도체 기업들이 강력히 요구해 온 바다. 반도체 R&D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몰아쳐야 하는 근무의 특수성과 기술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장시간 고밀도 근무가 불가피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주 52시간으로 제약된 우리 근로기준법상 근무 형태에서 예외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도체 업계를 중심으로 빗발쳤다. 국회에선 여당이 나서서 이 내용을 반도체특별법에 포함해 추진했지만, 이 후보와 민주당이 노동계의 반발 등을 고려한 반대의견을 고수해 본회의 처리가 무산됐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해 11월 28일 고용노동부 장관이던 시절 경기 삼성전자 평택공장에서 열린 반도체협회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반도체특별법이 원안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해 11월 28일 고용노동부 장관이던 시절 경기 삼성전자 평택공장에서 열린 반도체협회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반도체특별법이 원안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반도체의 정치화 흐름…다른 후보 공약도 주목

    이 후보는 이 문제에 대해 한때 수용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으나, 법안의 본회의 처리가 무산된 뒤 입장이 다소 바뀌었다. 이 후보는 5월 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경제5단체장과 간담회를 하며 반도체 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 예외 문제와 관련해 “양쪽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별로 차이가 없는데 없는 차이를 만들어서 싸우고 의심하더라”며 “기존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입법보단 고용노동부가 현재 시행 중인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 것이다. 

    정부는 3월 13일 이 제도의 새 업무 지침을 마련하며 반도체 R&D 인력의 특별연장근로를 허가해 주는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다. 이 후보는 이것만으로도 기업들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도체는 최근 업계에서 고도로 ‘정치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도체가 간혹 정치권에서 다른 이슈를 덮을 정도의 영향력을 보일 때도 있는데, 이런 상황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AI와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의 총수들은 정치인들과 만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 최근 전 세계 외신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이런 풍경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해지고 있다. 정치인들이 반도체 기업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해외 반도체 소식을 우리 기업들이 직면한 현실과 대조해 보는 일도 흔해졌다. 선거에선 자신을 우리 반도체를 부흥시킬 적임자로 홍보하는 이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반도체 기업 공장이 포진한 지역구의 국회의원들은 반도체 관련 일정을 ‘0순위’로 소화한다.  

    이러한 ‘반도체의 정치화’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대선에선 후보들은 반도체를 빼고 경제 공약을 내놓기 어렵다. 반도체를 모르면 유권자들로부터 경제에 무지한 대통령 후보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지금은 이 후보만 구체적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곧 있으면 다른 후보들도 차별화된 반도체 지원책을 잇달아 내놓고 격론을 시작할 것으로도 보인다. 

    이에 따라 여권에서 나올 공약에도 기업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 역시 전임 정부가 추진하고자 했던 반도체 지원책을 그대로 이어받을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아 보인다. 김 후보는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아 한국반도체산업협회와 간담회를 열고 “반도체특별법으로 근로시간 선택 확대, 건강 보호 등에서 서로 합의한다면 대한민국 반도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로 예외 등 반도체특별법의 원안이 그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기업 관계자들에게 말한 바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도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개발을 시사한 바 있다. 2월 20일 이준석 후보는 경기 이천에 위치한 SK하이닉스 공장을 찾아 반도체 상황을 점검한 뒤 업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국제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대한 통상 압박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며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한 공약을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주 52시간 근로 예외 적용에 대해서는 “예외 적용에 동의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쟁점화하기보다는 현장에 맞는 맞춤형 솔루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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