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잘해야 성공한다.” 요즘처럼 이런 이야기를 실감하는 때도 없을 것 같다. 우선 TV를 보자. 방송사마다 오락프로에 각종 ‘토크’가 붐을 이룬다. SBS는 ‘이홍렬쇼’를 필두로 윤다훈·신동엽 두 입담꾼을 MC로 등장시킨 ‘두남자쇼’를 방송하고 있다. ‘남희석의 색다른 밤’이란 프로에는 ‘토크 콘서트’라는 ‘색다른’ 명칭도 붙여졌다. 이들 프로그램은 대부분 연예인들을 출연시켜 그들의 말솜씨와 ‘개인기’로 시간을 채운다.
연예계에서 드러내놓고 ‘말재주 겨루기’를 시키는 곳은 KBS 2TV ‘서세원 쇼’의 ‘토크박스’다. 이 코너에 나온 출연자들 가운데 ‘토크 경연 1위’에 오르면 단번에 인기가 상승한다고 한다. 모 개그우먼은 여기서 말솜씨를 인정받아 8년 동안의 무명 생활을 하루아침에 청산했으며,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까지 맡았다는 ‘실화’가 있다. 또 최근 활동이 뜸했던 한 탤런트는 이 코너에 나와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말과 춤솜씨’로 1위에 오른 후 드라마와 오락 프로의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고도 전해진다.
이런 사정 탓에 요즘 연예인들은 강박관념에 걸린 듯 ‘말 잘하기’에 노력을 쏟는다. 가수는 노래, 배우는 연기면 그만이었던 시대는 갔다. 외모만 괜찮으면 인기를 모으는 ‘비디오 스타’들이 각광받던 시대에서, 이제는 말 잘하는 ‘오디오’ 스타들이 부상하는 셈이다.
또 하나 TV에서 말과 관련해 두드러진 현상은 연예인보다 더 인기있는 스타강사들의 출연이다. 97년 ‘신바람 건강법’의 황수관 전 연세대 교수, 98년 ‘아우성’의 성교육 전문가 구성애씨, 1999∼2000년 ‘노자강의’의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2001년 ‘동양의학’의 한의사 김홍경씨 등은 고정팬을 가진 강사들로 강연장마다 적잖은 수의 청중을 몰고 다닌다. 특히 EBS에서 KBS 1TV로 옮겨 ‘공자강의’를 진행중인 김용옥씨의 경우, 강의를 공개 녹화하기 전 김씨가 스튜디오 입구에서 연단까지 간신히 헤집고 들어올 정도로 방청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곤 한다. 이들은 청중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를 쉽고 흥미롭게 풀어내는 말솜씨를 지녔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경제계에서는 또 어떤가. 요즘 홍보(PR)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PI(President Identification)다. 즉 CEO의 지명도를 높여 그 효과를 기업에 반영하는 이른바 퍼스널 브랜드 만들기인 것. 이를 위해 홍보회사는 고객사 대표의 언론 인터뷰를 주선하고, 말솜씨가 부족한 CEO의 경우 모의 인터뷰를 하거나 심지어 비디오카메라로 인터뷰 장면을 찍어 돌려본 뒤 검토 분석하는 교육까지 동원한다. 좀 극단적으로 말해서, 말 못하면 사장 노릇도 못 하게 될 판이다.
이런 시류에 따라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는 올 봄학기부터 언론 인터뷰, 연설, 협상 등의 기회가 많은 기업대표나 사회지도층, 개인 브랜드 이미지가 조직 가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조직의 리더나 개인을 대상으로 ‘CEO PI전략 최고위과정’(www.signiapr.com)을 신설, 미디어 트레이닝에서부터 기업 IR에 이르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습득하는 과정을 운영하기로 했다.
사원들도 ‘말하기’의 그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업들은 채용시 면접 비중을 늘려잡고 있다. 간신히 바늘구멍을 통과한 ‘인재’들에겐, 또다시 숱한 업무보고와 회의가 기다린다. MBA 출신들이 필수적으로 거치는 프레젠테이션은, 이젠 대부분의 기업들에서도 관행이 되고 있다.
말을 못 하면 결혼하기도 어렵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지난 여름 수도권지역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는 ‘말 잘하는 남자’가 ‘과묵한 남자’보다 더 여성들의 호감을 얻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성을 처음 만났을 때 호감을 느끼는 성격유형으로는 ‘말 잘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이 69.6%로 높은 선호도를 보였고, 자신의 배우자로 유머있고 말 잘하는 남성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에도 반수 이상(57.2%)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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