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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益을 키워야 公益이 살찐다

私益을 키워야 公益이 살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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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직사회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위기가 심각하다. 견제와 균형, 자유와 책임이라는 말들은 공허하기만 하다. 사회구성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개체들이 나서서 공공구조의 혁파를 주도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지금 ‘공공성의 위기’에 처해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 자금이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에 투입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엄청난 금액이 벌써 연기로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또 그보다 많은 금액이 회수 불능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만도 아니다. 그렇게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과 기업이 구조조정이란 이름을 내걸고 퇴직시킨 직원들에게 퇴직금 외에 상당한 액수의 퇴직위로금을 지급했다거나, 또 어떤 은행에서는 직원이 은행돈과 고객이 맡긴 돈을 들고 달아난 사건이 일어나 우리를 실망시켜서만도 아니다.

그나마 경영실적이 괜찮다는 어느 공기업은 부당 내부거래를 일삼다 수천억 원대의 예산을 낭비했고, 또 다른 공기업은 낙하산 인사에다 방만한 경영이 쌓이고 쌓인 끝에 부도를 내 그 회사를 믿고 거래한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을 접해서만도 아니다.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할 고위 공직이 자격과 능력이 모자란 데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정권 획득과 유지 과정에 도움을 준 인사들에게 적절한 검증절차 없이 맡겨지고, 그런 기관의 직원들은 그것을 빌미 삼아 임금과 복리후생비 인상을 요구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만연돼 공기업 부실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해서만도 아니다.



무너지는 공공성



우리 사회의 버팀목 구실을 해주리라 믿었던 지식인 그룹마저 정부나 기업의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평가위원이나 자문위원, 연구위원 자격으로 참여하면서 공익의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비판하기보다는 “굳이 기관장의 비위를 건드릴 이유가 있느냐”며 그들의 계획에 동조해주고, 심지어 무리인 줄 알면서도 그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해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비일비재해서만도 아니다.

정말 이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싶은데, 불행하게도 우리의 위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교육 예산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의 사교육비를 쏟아붓고 있지만 여전히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문제점투성이인 교육현실, 연초에 책정된 예산이니 해를 넘기기 전에 집행해야 한다며 멀쩡한 것을 헐었다가 다시 까는, 이제는 연례행사가 돼버린 보도블록 교체공사, 준비가 미처 덜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의약분업을 강행하다 겪은 사상 초유의 의료대란, 그래 놓고도 의료보험의 재정 고갈 때문에 의료보험료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소액 진료를 보험에서 제외, 이를 의료저축제도로 보상받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는 등 의약분업과 국민의료보험제도의 설립취지를 무색케 만드는 보건복지 행정, 농축산물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해 급기야 농민들이 배추밭과 대파밭을 갈아엎는 사태까지 촉발시킨 농림행정 등 그 예를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유권자들 앞에서는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토해냈던 선거공약도 당선되고 나면 ‘내가 언제 그랬냐’며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당 총재의 심기를 헤아리는 데는 누구보다 잽싼 모습을 보여주는 정치인들, 국민의 이익을 지키고 게임의 룰이 공정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심판 구실을 해줘야 하는 데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지탄받는 경찰과 검찰, 상업성을 앞세우고 공익성을 저버렸다고 허구한 날 도마에 오르는 방송들…. 능력이 부족하면 도덕적으로라도 앞서야 할 텐데, 우리의 공직사회와 공공부문은 그것마저 실종된 듯하다.

공공성의 위기가 공직사회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말대로 이런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으니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공중화장실 벽에는 으레 ‘화장지와 물을 아껴 씁시다’ ‘사용하신 후에는 반드시 수도를 잠급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데도 수도꼭지에선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이게 사람이 일을 볼 데인가 싶을 만큼 엉망으로 더럽혀진 경우도 허다하다.

공원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큼직한 팻말을 세워둔 것만도 부끄러운 일인데, 그것마저 잘 지켜지지 않는다. 보도(步道)로 노출된 지하철 환기통은 애연가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거대한 재떨이처럼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다른 사람의 신경을 건드릴 정도로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예민한 전자기기들이 작동되는 병원이나 비행기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을 사용한다.

주택가 골목길에서는 주차 때문에 이웃끼리 시비가 붙고, 지난번 폭설 때는 집 앞 골목에 쌓인 눈을 누가 치워야 하는 문제로 주민과 동사무소 간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기 집을 나서면 모든 게 공공의 것들인데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공의식 실종현상은 여러 사람이 모여 공통된 목표를 위해 일하는 회사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월급을 받고 일하는 직원이라면 근무시간만큼은 회사 일에 열중해야 할 텐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회사 컴퓨터로 자신이 투자한 주식의 동향을 살피고 매매 주문을 낸다. 그런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상사가 따끔하게 지적하는 경우도 드물다. 대개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듯 지나치고 만다.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다 외환위기 직후 미국으로 취업이민을 떠난 배남석씨는 최근에 펴낸 ‘절대로 일하지 말라’는 책에서 “미국에선 근무시간을 도둑질하는 사람은 없으며, 미국인들은 그것을 가게에서 물건을 훔친 것과 같은 짓으로 생각한다”고 전한다. 미국인의 90% 이상이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데도 그렇다고 한다.

부족한 ‘공공 체험’

흔히 ‘경쟁력’이라고 하면 사기업의 경영성과나 노동생산성 같은 것으로만 알기 쉬우나, 공공부문의 경쟁력은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것이 확보되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 저하는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 삶의 질도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국가예산과 공공기금이 당초의 목적과는 달리 엉뚱한 곳으로 낭비되고, 먹을 것을 마음놓고 먹을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며, 게임의 룰조차 공정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런 곳에서 과연 무엇을 제대로 이룰 수 있는지를.

그런데다 지금 우리가 맞이한 ‘개체의 시대’란 자급자족 사회가 아니다. 다양한 사익(私益)들이 때로는 서로 손잡고, 때로는 첨예한 대립을 보이면서 굴러가는 이익지향적 사회다. 따라서 이해관계의 통행이 빈번한 길목에는 성능 좋은 교통신호등을 설치하고 유능한 교통경찰관까지 배치해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므로 위기는 날이 갈수록 심화된다. 어떻게 보면 오늘 우리가 맞이한 총체적 위기란 공공성의 위기가 촉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 분석이 절대로 필요한 만큼, 우리가 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리고 공익에 대해서 왜 이다지도 무관심한 것인지를 먼저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끼리 살 때는 누가 잘나고 못났는지를 따질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이런 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우리와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행동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이익을 놓고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세계화시대엔 우리의 의식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된 데는 물론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공공에 대한 사회·문화적 경험과 그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게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광장 공원 극장 지하철 공중화장실 경기장 우체국 체육관 병원 박물관 방송국 등 공공을 위한 시설물들이 우리의 삶 가까이로 들어온 것은 대체로 광복 이후로서, 그나마 우리가 살아가면서 절실하게 필요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곳에 있는 것들을 손쉽게 베껴놓은 결과였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의 소산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왜 그걸 만들어야 하며, 그걸 만들어야 한다면 어떤 크기와 모양으로 하고 그 비용은 어떻게 조달할 것이며, 또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에 대해 깊은 검토나 국민적 합의 같은 것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거저 주어진 것이라 여겼고, 자신과의 관련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공공의 것도 내 것’이란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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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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