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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형·권희로의 ‘영웅 스트레스’

조세형·권희로의 ‘영웅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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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 어둠 속에서 쫓기고 의심받던 조세형과 권희로가 갑자기 유명 인사가 되고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환경 변화다. 우리는 가끔 벼락부자나 스타덤에 오른 연예인, 운동선수가 마약에 빠지거나 음주운전 사고, 문란한 성생활로 파멸하는 예를 보아왔다.
  • 주위에서는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대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갑자기 생긴 돈과 명예가 낯설기만 하다. 그 낯섦은 고독감이 되고 스트레스가 된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술과 마약, 쾌락을 좇는 것이다. 조세형과 권희로는 이런 심리 상태였던 것 같다.
범죄자에서 사회 저명인사로, 다시 범죄자로 극적인 변신을 하며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세형과 권희로의 심리세계에는 일제 강점이라는 비극적 역사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조세형은 1943년 일본제국주의가 막바지로 치닫던 때 태어났다. 항일투사로 알려진 아버지는 얼굴도 본 적이 없고 어머니마저 일본경찰의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이 된 끝에 세상을 떠나 유일한 혈육인 형의 손에 이끌려 세상살이를 시작한다.

권희로는 1928년 일본에서 조선인 부모 사이에 태어났는데 부두 목재하역 인부로 일하던 아버지는 권희로가 4세 때 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어머니의 재혼으로 의붓아버지와 살게 된 권희로는 의붓아버지의 성을 따라 ‘김희로’로 불리면서 가난과 차별에 찌든 삶을 살게 된다. 어린 조세형과 권희로의 심리와 성격형성 과정이 예사롭지 않았을 것임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고아가 되거나 일본 땅에서 차별받으며 자란 아이가 수도 없이 많다. 그중에는 힘든 어린 시절을 성공에 이르는 추진력으로 승화시킨 사람들도 있고 죄 짓지 않고 선량하게 살아온 사람들도 있다.

불우한 환경이 조세형과 권희로의 범죄행각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자신의 의지와 선택, 주변 사람들의 역할 역시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두 사람의 심리세계를 들여다보자.

아동학대와 애정결핍이 만든 범죄자

유아기와 아동기에 부모로부터 적절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하는 아동들은 욕구불만, 욕구의 비정상적 편중, 입·항문·성기·외음부에 대한 병적인 집착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조세형처럼 생후 18개월 동안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하는 경우 손톱을 물어뜯거나, 음식을 토할 때까지 먹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줌을 싸거나 토하는 행동을 커서까지 나타낸다. 조세형의 말이다.

“저는 매일 밤 이불과 옷에 세계지도를 그렸습니다. 열서너 살까지도… 오줌싸개는 어디를 가나 붙어다니는 제 별명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성결핍이 범죄로 이어지면, 어머니 같은 따뜻함을 주는 불에 매료되어 방화범이 되거나 결핍된 모성을 채우기 위해 여성을 상대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다행히도 조세형은 유아기 큰형이 얻어 물린 동네 아주머니들의 젖 때문이었는지 극단적으로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자가 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조세형이 절도과정에 보인 귀금속이나 장신구 등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모성결핍과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권희로는 감정 조절을 배우는 시기인 4살 때,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할 아버지를 잃는다. 이 시기에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감정 조절을 못해 곧잘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어머니나 형 또는 주위의 다른 어른들이 아버지 노릇을 해주면 극복될 수 있지만 권희로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반면 조세형에게는 형의 존재와 엄한 고아원 규율이 아버지 노릇을 충분히 해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세형은 결코 피해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상해를 입히지 않아 ‘신사도둑’으로 불린 반면, 권희로는 갈등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과격하고 폭력적인 반응을 보여 문제를 악화시켰다.

조세형과 권희로가 아동기에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은 ‘학대’였다. 조세형은 고아원에서, 권희로는 일본의 학교와 길거리에서였다. 아동 학대는 아이들에게 정서 불안과 자신감 결여, 탈출 욕구, 심한 허기, 피해 의식, 가학성을 일으킨다. 또 피난처와 휴식처로 삼을 대상에 몰입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배고픔을 해결하면서 동료애도 느낄 수 있는 길거리 친구들과의 절도행위가 그 탈출구였다. 규범의식과 도덕, 죄책감 같은 것은 배울 틈도 느낄 여유도 없었다. 그 결과 둘 다 소년원과 소년보호원을 드나들며 점점 더 범죄세계와 범죄문화로 빠져들었다.

‘말썽꾸러기’라는 낙인

조세형과 권희로에게는 일찍부터 ‘말썽꾸러기’ ‘골칫덩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조세형은 ‘오줌싸개’ 버릇 때문에, 권희로는 ‘조센징’이라는 사실과 참을성 없는 격한 성격 때문이었다. 권희로가 밝힌 학교와 거리에서의 낙인찍기 예다.

“찌그러진 도시락에 들어 있는 보리밥을 본 일본 아이들이 심하게 놀리자 화가 나 주먹을 휘둘렀는데, 선생님은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슬리퍼로 마구 때렸다. 맞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가난한 탓에 먹을 수 있었던 유일한 단백질은 집에서 구워먹는 돼지발이 전부였다. 돼지발을 먹으며 다가가면 어른들까지도 ‘더러운 조센징, 저리 가’ 하며 물벼락을 끼얹던 일은 영영 잊을 수 없다.”

‘말썽꾸러기’라는 낙인이 찍힌 아이들의 심리는 처음에는 ‘왜 나만’이라는 반발 심리와 함께 노력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보려 애쓰지만 낙인 찍기와 처벌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아예 자기 스스로 ‘어쩔 수 없는 말썽꾸러기’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쯤 되면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생각과 함께 말썽 부리고 일탈행위를 하는 것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이라고 여겨 처지가 비슷한 일탈자들과 함께 어울린다. 절도는 배고픔을 해결하고 갖고 싶은 것을 손에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절도 유혹에 별 저항 없이 빠져드는 데는 이처럼 ‘자신이 일탈자라는 인식’이 중요한 기능을 한다. 바로 조세형과 권희로가 일찍부터 절도죄로 소년원과 소년보호원을 출입하게 된 심리적 배경이다.

소년원과 소년보호원에서는 더 경험 많고 기술 좋은 선배 수감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로부터 전문적인 범죄수법과 함께 ‘범죄자라는 정체성’을 물려받게 되며 범죄자 세계의 말투, 행동, 수칙 등 ‘범죄 문화’에 편입되고 그 습성에 젖게 된다. 출소하면 사회는 ‘전과자’라는 낙인을 찍고 차가운 시선으로 대한다.

그래서 다시는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돌아가기가 힘들다고 느끼는 반면, 익숙해진 범죄자 세계에서는 더 나은 절도 기술로 손쉽게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어 ‘범죄자 삶’이 체질화된다. 이처럼 청년기까지 조세형과 권희로의 삶은 범죄꾼으로 경찰의 감시대상 리스트에 올라 일정한 때가 되면 ‘단속’ 또는 ‘검거’되어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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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cwpyo@cwp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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