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그 자리에서 제게 히로뽕을 투약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모든 짓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났습니다. 부산 거리를 칼을 들고 다니면서 배신자를 찾기도 했습니다.…여자와 하루 동안 성관계를 가졌는데 그때는 정말로 기분이 좋았고 모든 게 내 세상이었습니다. 옷을 입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기도 했지요.
옥상에서 여자를 강간하면서 여자 목에 칼을 들이대고 인질로 잡았습니다. 경찰 기동수사대 마약단속반이 출동해 마이크로 이야기했습니다. 인질을 놓아주면 히로뽕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기동수사대가 쏜 가스총에 맞아 정신을 잃었습니다.
…저는 마약중독자를 위해 인생을 걸고, 청소년을 위해 봉사하고자 이 편지를 썼습니다. 마약이 주는 효과는 너무 좋아서 그 맛을 알면 영원히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약을 한 번 하면 죽음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홈페이지(www.drugfree.or.kr) ‘상담&교육’ 란에 올라 있는 한 마약중독자의 경험사례다. 17년 동안 마약을 하다 단약교육을 받고 현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 중독자는 편지에서 “마약은 인간의 힘으로 끊을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마약수사부 신설
‘마약과의 전쟁’은 어쩌면 영원히 끝이 나지 않을 인류의 숙제인지 모른다. 검찰은 해마다 이맘때면 마약사범 자수기간을 설정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검찰청 주변에 관련 포스터가 붙었다. ‘마약류 투약자 특별자수기간 실시’-‘마약과의 전쟁 선포’ ‘마약에서 해방’ ‘자수자는 형사처벌 면제 및 무료 재활치료’. 자수기간은 3월12일∼6월30일이다.
마약류 사범이 날로 늘어나는 가운데 검찰이 마약수사팀을 대폭 강화하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4월20일 검찰은 대검 마약부와 서울지검 마약수사부를 신설했다. 기존의 대검 강력부 소속 마약과와 서울지검 강력부 소속 마약과를 독립시켜 별도의 부서로 만든 것이다. 검찰의 이러한 조처는 우리 사회의 마약 거래 실태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반에 널리 쓰이는 마약이라는 용어는 엄밀하게 말하면 마약류의 한 종류다. 지난해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마약류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쓰이고 있다. 마약류는 마약 대마 향정신성의약품을 총괄하는 것이다. 또 마약류 관련 법규는 기존의 마약법, 대마관리법 및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을 통합한 것이다.
마약은 크게 천연마약과 합성마약으로 나뉜다. 천연마약에는 아편 모르핀 헤로인 코카인 등이 있으며, 메사돈 염산페치딘 등이 합성마약에 속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진정 및 진통제로 쓰인다는 점. 그러나 중독될 경우 도취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신체조정력을 상실하는데, 심하면 죽음에 이른다.
대마는 대마초(마리화나) 또는 대마 수지(樹脂)를 가루로 만든 헤쉬시 등의 이름으로 널리 유통되고 있다. 마약과 달리 의약용으로는 쓸모가 없고 도취감과 약한 환각상태가 특징이다.
향정신성의약품 중 대표적인 것은 메스암페타민이라는 의약명을 갖고 있는 히로뽕(필로폰)이다. 각성제인 히로뽕은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마약류 중 으뜸을 차지하는 것으로 식욕억제 효과를 내며 환시 환청 피해망상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다. 마약과 마찬가지로 증독증이 심할 경우 목숨을 잃는다. 그 밖에 환각제 LSD, 지난 4월 마약류로 새로 지정된 염산날부핀 등이 향정신성의약품에 해당한다.
한편 대학가를 중심으로 젊은층에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는 신종 마약 엑스터시(MDMA·일명 도리도리)는 환각성과 암페타민의 특성이 섞여 있는 합성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엑스터시는 히로뽕보다 값이 싸면서도 환각 효과는 3배 가량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월 서울에서 회의를 가진 유엔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거래되는 마약류 밀매 규모는 2000년 현재 5000억 달러(약 600조 원)에 이른다. 마약류 불법거래에 따른 돈세탁 규모는 약 2500억 달러. 또 적발된 마약류 남용자 수는 2억 명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마약류 유통 추세에 발맞춰 국내 마약류사범도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1950∼60년대 가장 흔했던 것은 아편과 메사돈(합성마약)이었다. 1970년대 들어서는 대마초가 크게 유행했으며,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는 메스암페타민, 곧 히로뽕이 주종을 이룬다. 대검 마약과장을 거쳐 6월14일 초대 서울지검 마약수사부장에 취임한 정선태 부장검사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내성적이고 욱하는 성격의 한국인에게 히로뽕이 가장 잘 맞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주한미군과 한국여자 유학생
한편 1995년부터 연평균 18.5%의 증가율을 보인 마약류사범은 1999년 1만 명을 넘어섰다. 마약류사범 증가추세는 언론 보도만 봐도 실감이 난다. 거의 매일 마약 관련 기사가 눈에 띈다.
아울러 마약류 유통량도 폭발적인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1996년 이후 주요 마약류 압수량은 연평균 82kg 수준이었는데, 지난해엔 158.8kg으로 전년(76.3kg) 대비 108.1% 증가했다. 올해 들어선 5월 현재 73.5kg의 마약류가 압수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9.8%가 증가한 수치다. 지난 5월17일에는 단일 밀수량으로는 최대 규모인 30kg(1000억 원 상당)의 히로뽕을 국내에 들여오려던 밀수업자가 검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서울지검 마약수사부 정중근 검사에 따르면 마약시장은 예전엔 수요자 중심으로 움직였으나 요즘은 공급자 중심으로 바뀌었다. 마약류 판매자들은 일반 영업사원처럼 행동한다. 이들이 즐기는 판매수법은 처음에 공짜로 제공해 ‘길’을 들인 후 ‘영구 고객’으로 삼는 것이다.
정검사에 따르면 과거엔 유흥업계 종사자, 연예인, 운전기사 등 특정계층의 수요가 돋보였지만, 요즘엔 대학생, 일반 직장인, 가정주부, 약사, 한의사 등 다양한 계층으로 번지고 있다. 이제 마약은 우리의 일상이 된 것이다.
수사 사례 중엔 아내가 중독자인 남편을 따라 마약을 복용한 사건도 있다. 또 결혼한 지 일주일 만에 마약 복용으로 검찰에 검거된 평범한 회사원도 있다. 검찰로부터 이 소식을 통보받은 그 회사원의 아내는 처음엔 너무 화가 나 “빨리 구속시켜 달라”고 했다가 뒤늦게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임신부가 마약을 복용하다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이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젊은층의 수요 급증이다. 그 중심엔 해외 유학생과 일부 부유층 대학생이 있다. 이들은 신촌 등지의 대학가 주변에서 레이브(rave) 파티나 댄스 파티 등을 이용하거나 호텔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서 집단적으로 마약류를 복용하거나 투약한다. 이들이 선호하는 것은 엑스터시 등 먹기에 편하고 값도 싼 신종 마약류다.
주한미군을 통해 유통되는 것도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에도 주한미군과 유학생 신분의 한국 여성 몇 명이 어울려 마약을 투약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엑스터시 대마초 헤쉬시 등 다양한 종류의 마약을 즐겼다. 엑스터시와 대마초는 주한미군이 구한 것이고 헤쉬쉬는 한국인 유학생이 스페인에서 밀반입한 것이었다.
대형화·대중화 추세와 더불어 또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공급선의 다변화다. 지난해 외국에서 밀반입된 마약류는 총 97.6kg. 전년(24.5kg) 대비 298.4%가 증가한 것이다. 그중 주종 마약류인 히로뽕 밀반입량은 46.5kg으로 218.5%, 대마초는 44.4kg으로 전년 대비 1010% 증가했다. 향정신성의약품인 펜플루라민 성분 등이 함유된 중국산 ‘살 빼는 약’도 36만 정이나 밀반입됐다.
기자는 6월7일 오후 서울지검 마약수사부 김진모 수석검사실에 들렀다가 포승에 묶인 외국인 2명이 조사받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다. 한 명은 흑인이고 한 명은 동남아계로 보였다. 알고 보니 흑인의 국적은 나이지리아이고, 다른 한 명은 필리핀인이다. 두 사람은 샤부(필로폰의 일종)라는 마약류를 서로 팔고 산 혐의를 받고 있었다. 김검사에 따르면 마약거래와 관련된 외국인 입국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또한 이들을 통해 엑스터시 등 신종 마약류 유입량이 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외국인 구속사례가 있었다. 김진모 검사는 5월16일 태국인 파누뎃 잔르엉(24)을 마약류관계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했다. 5월7일 중국 베이징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던 이 태국인은 여행용 가방 안 커피봉지에 히로뽕 500g을 숨겨 들어온 혐의를 받고 있다.
공급선 다변화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현상은 중국이 한국에 대한 마약류 주요 수출국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해외에서 몰래 들여온 히로뽕(44.5kg)은 모두 중국산이다. 히로뽕 1회 투약분은 0.03g이므로 44.5kg이라면 148만3333명이 한 번씩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0.3kg이 압수된 헤로인도 전량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검찰은 대검 마약부 신설 배경에 대해 “날로 국제화·조직화하는 국제마약조직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미국의 마약청과 같은 강력하고 전문적인 수사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전국 일선 검찰청의 마약수사팀을 총괄지휘하게 된 대검 마약부는 ‘국제 마약조직과의 전면전’을 선포, 앞으로 마약수사의 국제공조 강화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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