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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재벌 마약복용 소문 사실이다”

마약수사 비밀정보원의 증언

“일부 재벌 마약복용 소문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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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당일, 현장엔 A씨만 나가고 수사관들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대기했다. A씨가 몸에 숨기고 간 소형 송수신기는 200m 떨어진 곳에서도 대화를 들을 수 있는 장비였다. 수사관들은 A씨가 현장에서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행동을 개시한다. 예컨대 “물건 질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은 물건이 현장에 나타났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판매업자가 느낄 배신감(?)에 대해 묻자 A씨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여러 번 만나다 보면 정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막상 체포할 때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인간적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가장 황당한 경우는 판매자가 억울한 심정에 나를 끌어들일 때다. 신문과정에 엉뚱하게도 나를 마약 공급책으로 지목하는 것이다.”

마약수사의 어려움에 대한 A씨의 설명은 수사관들 얘기와 다르지 않다. 잠복수사, 며칠씩 밤새우기, 검거과정에 따로는 신체 위협….

공작수사는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약속과 달리 현장에 물건을 갖고 나오지 않거나 ‘선결제’를 요구해 돈만 챙기고 물건은 건네주지 않는 경우다. 그 경우, 판매자를 추적해 설령 신원을 파악해도 수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실제 거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판매업자를 잡아도 주범을 잡기는 여간 힘들지 않다. 몇 단계를 거쳐 물건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A씨에 따르면 때로 마약거래 수사는 마약업자간의 경쟁 때문에 덕을 보는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시장확보 경쟁의 부산물인 셈이다.

“이 세계도 정치판처럼 파벌이 있다. 마약시장을 독차지하기 위해 라이벌 조직의 움직임을 수사기관에 제보하는 것이다.”

A씨는 국내 마약유통 실태가 위험수위에 다다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마약사범은 1만304명. 그러나 이는 실제 마약복용자 수와는 무관한 수치다. 검찰은 마약복용자가 10만 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한다. 또 대부분의 마약사범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몰려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A씨는 사태를 훨씬 심각하게 본다.

“통계와 현실은 다르다. 전국 각지의 읍·면·동 단위까지 마약이 번지고 있다. 과거엔 전과자의 재범률이 높았으나 요즘 적발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마약전과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마약인구가 늘어난 것이다.”

A씨에 따르면 마약 복용자가 판매자로 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약을 오래 복용하다 보면 돈이 떨어지게 마련이므로 마약구입자금을 벌기 위해 판매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마약을 팔아 그 돈으로 마약을 사들여 복용하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마약장사에 나서는 악순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최근엔 청소년들이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약거래에 끼어드는 일도 늘고 있다. 10대 가출소녀들의 마약판매 심부름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부유층의 마약복용 소문

유흥업계는 예나 지금이나 마약유통의 온상이다. 마약 판매자들은 특히 카바레나 나이트클럽에 드나드는 주부들을 노린다. 자연스럽게 합석한 후 눈치채지 못하게 술에 ‘약’을 탄다. 같은 양을 먹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쾌감의 정도는 다르다.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약이 섞인 술을 마시면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약효가 나타난다. 온몸이 달아올라 남자에게 이끌리는데 한 번 맛을 들이면 끊기 힘들다. 그 후로는 공갈·협박에 시달리며 몸과 돈을 빼앗긴다.

A씨에 따르면 필로폰 판매책들은 보통 비닐봉지에 10g씩 넣어 가지고 다닌다. 구매자가 나타나면 주사기 단위로 판다. 주사기 하나에 들어가는 양은 보통 1g으로 친다. 하지만 실제로는 1g이 조금 안 된다. 10g을 주사기 13개에 나눠 담기 때문이다. 중독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1회 투입량이 평균 0.03g이므로 이 주사기 하나면 수십 회 투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중독이 심해질수록 1회 투입량은 점차 늘어난다. 약효 지속시간은 초보자의 경우 7시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4시간, 중독이 심한 경우엔 2시간 안팎이다.

필로폰 10g의 도매 가격은 50만∼60만 원대이고 중간도매 가격은 100만∼150만 원이다. 이것이 소매로 넘어가면 300만 원을 웃돈다. 하지만 이는 ‘정찰가격’이다. 실제 구매현장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므로 1g짜리 주사기가 50만 원에 팔리는 경우도 있다.

A씨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마약류의 주종은 여전히 필로폰이다. 필로폰보다 비싼 헤로인이나 코카인은 유통량이 적고, 일부 특정계층만 사용하고 있어 판매책이나 공급책을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한다.

A씨는 일부 재벌 등 부유층의 마약복용에 관한 항간의 소문에 대해 “다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누가 (마약을) 갖다 주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힘있는 사람들이라 잘못 건드렸다간 큰일나기 때문에 심증을 갖고서도 선뜻 수사하지 못한다. 또 ‘위쪽’에 선을 대는 업자들은 절대로 자신의 고객을 배신하지 않는다.”

A씨는 신체 위협을 받은 적은 없지만 전화로는 몇 차례 공갈·협박을 당했다. 주로 “손떼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그는 그 ‘충고’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기엔 ‘마약사범 근절에 일조하겠다’는 그의 소신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신동아 200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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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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