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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공동연구부터 하자”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

“민간 공동연구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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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과서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일본에 관해 비관하거나 낙관할 필요가 없다. 두려워할 필요는 더 더욱 없다. 오늘날의 국제질서, 그리고 한국의 국제적 지위는 그렇게 취약하지 않다. 지금 풀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다. 스스로 식민지 피지배 경험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남북통일을 지향한 노력을 꾸준히 펼쳐 나가면서 그 과정에 일본에 대해 주문하고 비판해 갈 때, 그때 비로소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속한 일본 대학에서 파견된 재외 연구원 자격으로 수개월간 영국 런던에 체재중이다. 일본을 출발하기 전에 이미 역사교과서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교과서 검정 문제가 한국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후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작업이 끝나고 내년도부터 사용될 예정인 교과서에서 보이는 왜곡이 단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자, 한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는 날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외교문제로까지 발전한 지난 1982년의 교과서 검정문제를 비롯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교과서 기술(記述)은 항상 남북한이나 중국 등 아시아인들에게 불쾌함의 불씨가 되어왔다. 이번에는 특히 일본 네오-내셔널리즘(neo-nationalism)을 대표하는 이른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모임’)이 작성하고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용 역사교과서에 대한 반발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일본에 있을 때는 ‘일본’이라는 내부에서 그것을 보고, 한국 내 움직임을 외부의 반응으로 관찰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러나 런던에 체재하고 있는 지금은 일본도 한국도 외부가 되어 있으니 등거리에서 대상화해 볼 수 있다.

런던에서 본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

런던에서 보고 있노라면, 당연한 일이지만 자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그것을 학교에서 가르치려 하는 일본의 움직임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로 보인다. ‘근대’라는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 속에서,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타인에게 전혀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었다거나 혹은 반대로 타인에게서 전혀 욕된 일을 당하지 않았다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구권(西歐圈)의 문화가 제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것은 비(非)서구권에 대한 식민지 지배나 침략전쟁과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에 놓여 있다. 한편 식민지 지배나 침략을 당한 측도 단순히 가해자에 대한 반발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반성이 불가결(不可缺)하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즉 지배·피지배의 문제는 선악을 준별(峻別)하는 것과 같이 이항대립적(二項對立的)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는 복합적인 문제다. 당연히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자신의 역사를 일방적으로 과시하는 내용으로서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모임’의 교과서는 자국(自國)의 과오를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일본’과, ‘일본인의 긍지’를 강조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게다가 이 움직임은 지극히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상할 정도로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다. 일본 전국에 걸쳐서 조직망을 구축하고 지방의회나 교육위원회에 교과서를 채택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산케이(産經)신문 등 커다란 매스 미디어가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비판, 방해공작을 가하고 있으며, 한국 등지의 반발에 대해서도 ‘주권침해’, ‘추악한 민족주의의 발로’라며 역선전을 퍼붓고 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일본 전체를 전전(戰前)으로 회귀시키려는 움직임이다. 일본을 우익적·파시즘적인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책동이다. 그 기본적인 사상은 ‘모임’의 교과서에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듯이 국가주의·천황주의·자(自)민족중심주의·아시아 멸시관(蔑視觀)이다.

나아가, 바깥에서 보고 있노라면, 교과서 기술의 왜곡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왜곡의 중대성을 많은 일본인들이 조금도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위기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이렇게까지 크게 떠들고 있는데도, 비판의 표적인 일본인들은 태연해 보인다.

물론 냉철하게 꿰뚫어보면 일본에서는 우익적 움직임에 반발해 불만을 토로하며 반대운동을 일으키는 층도 결코 적지 않다. 역사인식 왜곡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이나 집회도 열리고 있으며, 요즘 들어 급속하게 비판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던 신문이나 방송국 등 매스 미디어도 일부에서는 활발히 교과서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논진(論陣)을 펴고 있다. 우리가 일본 우익들과 싸울 때 연대할 수 있는 층은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일 것이다.

多數 일본인의 침묵

문제는 일본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절대 다수의 일본인들이 너무도 조용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한국의 움직임은 맹렬한 반대 일색인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 경위로 보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반응이며 일본에 대한 정당한 요구이기도 하다. 한국 현지에 있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미디어를 통해 본 한국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펼치는 등 지난날 험악했던 때의 한일관계를 상기시키는 듯한 반일의식이 만연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보더라도 일본은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생각한다. 나라의 최고책임자인 총리가 몇 개월 만에 바뀌는 정치의 불투명성, 예스(yes)와 노(no)가 확실하지 않은 대화법, 책임의 소재를 항상 애매하게 만들어 놓는 ‘무라(村落)’적 집단주의 …. 이것들은 이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는 ‘일본의 특성’이다.

그런 가운데서 현재 일본에서는 국가의식의 불안정, 국민의식의 흔들림,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과 그에 대항하려는 내셔널리즘이나 네오내셔널리즘의 움직임에 협공(挾攻)당하고 있다는 폐쇄감, 불안정한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초조함, 그리고 그것과도 관련되는 대미(對美)의식의 변화 등이 현저하게 눈에 띈다. 특히 오늘날 일본에서는 경제 중심의 글로벌화(化)와 정보기술(IT)혁명이 가져온 급격한 사회변화, 그리고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불황까지 가세해 사람들의 불안감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은 배외(排外)주의·복고(復古)주의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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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차 < 일본 가나가와 대학 교수· 한일민족문제학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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