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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 특성화로 도약에 성공

문화·관광 특성화로 도약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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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년 연속(1997∼2000) 문화·관광특성화 최우수대학, 2000년 대학종합평가 3개 영역(교육·연구·사회봉사) 우수대학, 98년 학사개혁 우수대학, 2000년 교육개혁 우수대학…. 최근 몇 년간 경주대학교가 각종 대학평가에서 거둔 성과다. 물론 외부기관의 실사 결과만 가지고 대학의 질을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론’을 넘어 ‘고사설’까지 나도는 지방대학의 현실을 감안할 때 경주대학교의 약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상북도 경주시는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역사 도시다. 시내는 물론 인접한 시골 마을에서도 천년 고도의 문화재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제아무리 전문적인 답사가라도 경주시 일대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려면 한 달 넘게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이런 까닭에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1995년 불국사와 석굴암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데 이어, 2000년엔 경주 일대의 모든 유적지로 그 범위를 확대했다. 말하자면 경주는 도시 전체가 세계적인 ‘문화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경주대학교는 그 뿌리를 관광산업에 두고 출발했다. 1987년 설립된 한국관광대학이 바로 경주대학교의 모태다. 이 때문에 1997년 교육부가 지방대학 특성화사업 지원대상학교를 선발할 때 경주대학교는 문화·관광분야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경주대학교에 설치된 30여 개 전공학과 중 약 30%가 관광특성화 사업과 관련돼 있다. 경주대학교가 관광 분야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경주대학교의 관광특성화 사업에 관련된 전공학과는 모두 10개다. 관광학부에 관광경영학 관광개발학 호텔경영학 외식사업학 등이, 관광외국어학부에 영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이, 그리고 문화재학부에는 문화재학과 문화재보존학 전공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중국어학과와 문화재보존학은 99년과 2000년에 개설돼 아직 특성화 분야에 편성돼 있지 않지만, 경주대학교는 조만간 이들 2개 학과도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철저한 실기 위주 교육

경주대학교 관광특성화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하게 실기 위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관광학관에 마련돼 있는 다양한 실습실은 시설과 기자재 면에서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레스토랑실습실, 조리실습실, 객실·프런트실습실 등이 있다. 레스토랑실습실의 경우 각종 테이블과 접시, 칵테일 도구 등을 실제 레스토랑과 똑같이 배치했다. 또 레스토랑실습실 옆에는 대형 조리실습실이 있어서 학생들은 조리에서부터 서비스까지 한번에 체계적으로 실습할 수 있다.



변우희 관광학부장은 경주대학교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실기에 강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이론 수업에서 벗어나 현장 분위기를 익히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4년제 대학을 나오고도 막상 실무에 투입하면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요. 하지만 학교에서 실습 위주로 배우면 현장 적응력도 높아지죠. 호텔이나 레스토랑 업계에서도 우리 학교 졸업생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실습실을 둘러보는 도중 야외수업을 하고 있는 30여 명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경영학과 3·4학년 학생들의 전공과목인 ‘호텔식음료 서비스 실무’ 시간이다. 호텔업계에서 10년간 근무한 김호기 교수는 베테랑답게 대형 접시에 포크와 나이프를 얹는 동작부터 음식을 나르고 치우는 방법 등을 능숙하게 선보였다. 김 교수는 “요즘엔 공원 같은 곳에서 뷔페를 마련하거나 연회를 여는 경우가 많아 야외 서비스의 비중이 커졌습니다. 학생들에게 야외 서비스의 기초를 알려주기 위해 외부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호텔 업무는 앉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고객에게 봉사하는 서비스죠. 그래서 현장 실무를 모르면 버티기 힘들어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지만, 학생들은 김 교수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호텔경영학과 3학년 조옥경 양은 “실습을 하면 호텔에 대한 느낌이 직접 전해집니다. 앞으로 호텔연회나 연회판촉 분야에서 일할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같은 시간, 조리실습실에서는 외식사업학과 3학년 학생들의 서양요리 실습이 한창이다. 이 과목을 담당한 최수근 교수는 신라호텔과 하얏트호텔에서 20년간 근무하고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요리계의 실력자. 때문에 수업은 인기 연예인의 TV요리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최 교수는 실습을 시작하기에 앞서 학기말 평가 과제물을 공개했다.

“조별로 1만5000원씩 지급하겠습니다. 이 돈으로 4만5000원짜리 요리를 만드는 겁니다. 코스는 4개로 해서 메뉴판을 직접 작성해보세요. 재료 선택과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그야말로 철저한 현장 학습이다. 재료비 1만5000원을 들고 직접 시장에서 재료를 사고,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요리를 만들라는 주문이다. 최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학생들을 훈련시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 교수의 수업은 계속된다. 학생들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최 교수의 요리 노하우를 받아적기에 바쁘다.

“양파가 매울 때는 어떻게 한다고? 레몬을 입에 물어봐.”

“향신료는 어떻게 보관한다고? 물에 푹 담그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살짝 적셔서 걸쳐 놓는 거야.”

“프랑스에서는 마늘을 일곱 번 삶아서 빵에 문지르거든. 마늘 맛은 사라지겠지만 소스로서는 최고지. 자, 그리고 이렇게 빵 위에 치즈를 얹어봐.”

“요리는 유유상종이야. 뜨거운 데는 뜨거운 것을 넣고, 찬 데는 찬 것을 넣어야지. 하지만 서양요리의 상당수는 실수로 탄생했다는 것도 잊지 말라고.”

최 교수의 시범을 지켜본 학생들은 조별로 양파수프와 생선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록 최 교수의 손놀림처럼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실습에 임하는 자세는 대부분 진지했다.

요리사로서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최 교수. 하지만 그는 학생들에게 요리 이상의 그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다. 단순히 요리 기술만 익히는 것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요리 기능과 더불어 경영 마인드를 키워야 한다는 게 최 교수의 지론이다.

“요리사가 요리만 알아서는 곤란합니다. 국제화 시대엔 요리도 사업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경주대학교 커리큘럼은 조리, 영양, 서비스, 외식 등을 골고루 섞어 놓았어요. 앞으로 이런 교육이 하나의 모델이 될 거예요.”

최 교수는 경주대학교의 관광특성화 사업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는 “지방대학의 특성상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생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경주대학교는 관광 분야에서 확실하게 뿌리를 내렸다”고 평가했다.

“특성화 덕분에 많은 기자재를 도입해서 학생들의 의욕을 끌어올릴 수 있었죠. 경주대학교에서는 관광학과 연계된 여러 학문을 함께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학습효과가 높습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부전공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최 교수가 서양요리 실습을 지도하는 동안 바로 옆방에서는 호텔경영학과 학생들이 토론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 과목을 가르치는 오문환 교수 역시 호텔업계에 33년간 몸담았으며, 한때 전국지배인협회장을 지낸 실무통이다.

호텔경영학과 4학년 신영미 양은 이날 ‘호텔의 인터넷 예약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를 발표했다. 경주지역의 5개 특1급 호텔을 현장조사해 인터넷 예약의 실태와 문제점을 연구한 내용이었다. 발표자는 컴퓨터를 이용해 파워포인트로 출력한 화면을 스크린에 쏘고, 학생들은 의문 나는 사항을 질문했다. 마치 대기업의 중역회의를 보는 것 같다. 이와 관련, 오 교수는 “수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파워포인트 사용을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 역시 관광특성화 사업이 경주대학교의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교수들의 연구비가 많아지고 장학금도 늘었어요. 97년 특성화대학으로 지정된 뒤부터 관광특성화 학부 학생들에겐 ‘긍지’가 생긴 것 같아요. 사실 지방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늘 대도시로 떠날 생각을 하게 마련인데, 특성화 학부는 다릅니다. 아마도 학생들이 입학할 때부터 뚜렷한 목표를 세우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교수들 중에 실무자 출신이 많아 취업에 유리한 것도 장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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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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