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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의 실수 눈물의 재활, 끝없는 차별

한번의 실수 눈물의 재활, 끝없는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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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의 집’은 서울 구의동에 있는 출소자들의 쉼터다. 출소자들은 평범한 삶을 애타게 찾고 있지만, 돌아오는 건 사회의 냉대와 차별뿐이다. 지난 겨울 나는 그들과 함께 살면서 출소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사회의 관심이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나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삽입된 가수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면서 ‘평화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2월 초순의 날씨치고는 추운 편이 아니어서 양복 차림으로 등산배낭에 속옷과 양말 정도만 챙겼다. 하지만 ‘평화의 집’에 한달 남짓 머무르는 동안 폭설과 혹한이 덮쳐 두툼한 외투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내내 후회해야 했다. 올 2월은 정말 추웠기에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겠지만, 함께 지냈던 ‘평화의 집’ ‘형제’(‘평화의 집’에서는 서로 그렇게 부른다)들이 있었기에 더욱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평화의 집’으로 가다

‘평화의 집’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가 출소자 가운데 의탁할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을 위해 운영하는 쉼터다. 즉 출소자들이 직업을 구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때까지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평화의 집’은 원래 금호동 산꼭대기의 허름한 집이었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 더 많은 사람을 받기 위해 구의동의 단독주택으로 옮겨왔다. 이사오는 것도 순탄치 않았다. 경매가 진행중이던 집을 매입했는데 대금을 다 지불했는 데도 집주인이 명도를 하지 않아 결국 소송까지 갔던 것이다. 경매가 계속됐으면 헐값에 넘길 수밖에 없었던 집을 제값에 사준 것도 고마울 텐데 기천만원의 이사 비용까지 요구하다니….

그러나 재판일에 소복(素服)을 입고 나타난 집주인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에 결국 돈을 더 주어야 했다. 아마도 그녀는 매수인이 비영리 봉사단체라는 것을 눈치채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결국 집주인의 끈질긴 투쟁 앞에 우리는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요구하는 대로 베풀 수밖에 없는 것이 ‘평화의 집’의 ‘태생적’ 운명이라고나 할까?



대대적인 수리 끝에 금호동 식구들을 이전시키면서 신부님들은 출소자의 집이란 사실이 이웃에 알려지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범죄인을 경계하는 우리 사회의 배타적 분위기를 의식했던 것이다. 고민 끝에 신부님들은 자신들이 몸소 출소자 형제들과 같이 기거하면, 마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신부님과 출소자 형제들의 공동체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전할 때부터 출소자 형제와 함께 지내온 서 수사님이 개인 사정으로 ‘평화의 집’을 떠나면서 금년 초부터는 이 신부님과 최 신부님 두 분이 머무르고 있다. 나는 연초에 “출소자들과 함께 살아보지 않겠느냐”는 이 신부님의 뜨거운 프로포즈(?)를 받고 술김에 “한 달만 살아보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결국 취중발언이 내 발목을 잡고 말았다. 10여 년간 교정사목위원이란 직책만 갖고 있었을 뿐 아무 일도 못하던 나는 뒤늦게 ‘평화의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평화의 집’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이다. 지하에 방 4개, 1층에 방 3개와 부엌, 2층에 방 2개가 있다. 나는 지하 방에 머물렀는데 최 신부님의 옆방이었다. 미닫이 방이었는데 처음 며칠은 밤중에 불쑥 누가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출소자 형제들이 혹시 밤에 몰래 들어와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경계심이 내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명색이 교정사목위원이라는 사람이 출소자들에게 경계심을 품고 있으니 일반 사람들은 오죽할까?

“한 달만 지낼 수 있게 해달라”

‘평화의 집’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천주교 신자가 기본조건이지만, 신자라고 해서 모두 ‘평화의 집’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명동에 있는 교정사목위원회에는 하루에도 몇 사람씩 출소자가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당장 가진 것이 없으니 한 달만 지낼 수 있게 해주면 자립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중에는 돈을 주지 않는다고 난동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신부님이나 수녀님은 그들의 사정을 들어보고 꼭 방을 구해줘야 할 사람인 경우 직접 계약에 나선다. 그냥 돈만 주면 방을 구하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 출소자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출소자들이 8만원짜리 쪽방에서 힘들게 지내는 반면, ‘평화의 집’은 깨끗한 방에 따뜻한 식사까지 제공한다. 이런 까닭에 ‘평화의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개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신부님들을 만나본 경험이 있거나, 조금만 도와주면 자립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침대와 탁자만 덜렁 있는 방에서 첫날밤을 보내며 ‘같이 지낼 형제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져보았다.

일본의 어느 정신분석학자는 이런 설명을 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자식이 여섯 딸린 가족이 있다. 부모는 성실하고 자식 가운데 다섯 명은 모두 일류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에 근무하며 술·담배도 전혀 안 하고 농담을 걸어도 통하지 않을 만큼 벽창호다. 그런데 자식 하나만 불량아다. 일류 대학에 들어가긴 했지만 재미없다고 중도에 집어치우고는 일정한 직업도 없이 이상한 여자들과 관계를 맺는가 하면, 여기저기 빚을 지고 형사사건에 연루되는 등, 가족들은 밤낮 뒤치다꺼리하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이 불량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학자는 우리 사회의 통념과는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불량한 아들은 다른 자식들의 ‘억압된 불만’을 떠맡고 있는 것이다. 착실한 다른 아들들의 그 올곧음에는 억지스러움이 있고, 그들은 그 고집스러운 기준에 맞지 않는 많은 경향을 억제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은 메마르고 따분할 수밖에 없다. 이 가족에게 ‘우연히, 운수 사납게’ 불량한 아들이 태어난 것은 결코 아니다. 만일 불량아가 없었더라면 나머지 아들 가운데 누군가가 그와 똑같은 불량한 자식이 되든가, 또는 그들의 일상 생활이 붕괴됐을 것이다.”

나는 그 정신분석학자의 추론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물음을 던졌다. 과연 ‘평화의 집’ 형제들은 우리 내부에 억압된 욕망을 대신 분출해 주는 사람들이며,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대신 저질러온 안전판인가?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뒤 다시 잠을 깼다. 방 앞에서 누군가가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 안드레아 형제였다. 아침식사를 8시에 하기 때문에 7시30분에는 일어나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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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형근 <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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