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1월25일 오후 6시, 경기도 안양 인근 수리산.
해가 짧은데다 산속이다 보니 일몰시각까지 30분이나 남았지만 주위를 분간하기 힘들 만큼 어두웠다. 그렇게 어둠이 깔린 수리산을 특전사 1개 중대가 소리를 죽이며 수색하고 있었다. 특전사는 일반 보병과 편제를 달리하기에 1개 중대라고 해도 병력은 겨우 10명을 상회한다.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 침투한 북한 공작원 3명이 군의 포위망을 뚫고 어느새 안양까지 북상했다. 더 이상 북상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대간첩작전본부는 정예 특전사 병력을 출동시킨 것이다.
선두에 선 선임하사가 뭔가 이상을 감지했는지 주먹을 불끈 쥐며 정지 신호를 보냈다.
“뭡니까?”
중대장이 자세를 낮추며 다가왔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습니다.”
선임하사가 낙엽을 가리켰다. 어둠 속에서 용케도 발자국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게 공작원의 발자국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 않소?”
중대장은 신중했다.
“발자국이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데다 2~3인이 빠른 속도로 뛰어간 흔적입니다. 이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된 마당입니다. 등산객일 리 없습니다. 북한 공작원이라고 봐야 합니다.”
선임하사는 당장 쫓아가자고 했지만 중대장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상대는 북한의 최정예로 꼽히는 정찰국 소속의 공작원들이다. 섣불리 행동하다 포위망이 뚫리는 수가 있다. 그렇다고 꾸물대면 꼬리를 놓친다. 상부에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할 것인가. 아니면 중대 독단으로 추격할 것인가. 잠시 고심하던 중대장은 쫓아가기로 했다.
“그렇다면 담배촌 쪽으로 빠져나가려 할 텐데, 병력을 반으로 나누겠소. 내가 추격할 테니 선임하사는 대원들을 인솔하고 담배촌에 먼저 가서 매복하고 있으시오!”
“알겠습니다.”
선임하사는 대원 중에서 6명을 지목하더니 앞장을 섰다. 대원들은 M16 소총을 꼭 쥔 채 선임하사의 뒤를 따랐다.
출동할 때 잔뜩 긴장했던 특전사 대원들은 막상 교전이 임박하자 평정을 되찾았다. 상대가 정찰국 소속의 공작원이라고 해도 대한민국 특전사가 그들을 제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대원들은 부지런히 선임하사의 뒤를 따랐다.
“너! 너! 저기! 그리고 너! 너는 저기!”
선임하사가 매복지점을 정해주자 대원들은 신속하게 매복에 들어갔다. 선임하사의 예측이 틀리지 않다면 곧 북한 공작원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전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지만 틀림없이 인기척이었다. 대원들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추격하던 중대원들이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지원병력에게 위치를 알리기 위해 쏘아 올린 신호탄은 공교롭게도 매복 대원들 앞에 떨어졌고 가뭄으로 바짝 마른 나뭇잎에 불이 옮겨 붙었다.
“불이다!”
갑작스러운 산불로 매복 대원들은 허둥댔고 그 사이에 북한 공작원은 유유히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긴급 출동한 특전사는 북한 공작원을 체포 혹은 사살할 수 있는 기회를 그렇게 놓쳐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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