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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부영 한나라당 부총재

“이회창 킹메이커 역할 하겠다”

  • 육성철 sixman@donga.com

“이회창 킹메이커 역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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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총재의 생각대로 쟁점 조항인 7조를 조정했을 경우, 한나라당에서 국보법 개정안에 몇 명이나 찬성할 걸로 보십니까.

“60명 이상 될 겁니다. 한 절반 정도…. 나는 그래야 앞으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을 희망이 있다고 봐요. 그리고 만약 당에서 자기 소신대로 못 찍게 하거나 막을 경우에는 큰 부작용이 생길 겁니다.”

이부영 부총재는 개혁파 정치인 1세대로 불린다. 그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90년 말이다. 당시 그는 재야운동권과 진보정당을 추진하던 세력으로부터 ‘개량주의자’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이에 이부총재는 “3당통합으로 만들어진 거대 여당 민자당과 맞서기 위해서는 강력한 단일야당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는 92년 3월 치러진 14대 총선서 민자당 중진 김동규 의원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뒤 정치권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재야인사와 운동권 출신 스타의 영입에 열을 올렸다. 새로운 인물을 ‘수혈’한다는 명분 앞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특히 지난해 16대 총선에서는 여야를 놓고 저울질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오죽 했으면 총선을 준비하던 한 시민단체 지도자가 ‘386세대가 공천을 따기 위해 기성 정치인 못지 않은 구시대적 행태를 보이는 데 실망했다’며 출마를 포기했을까?

―이부총재가 정계에 진출한 뒤 많은 후배들이 들어왔습니다. 16대 총선에서는 특히 386세대가 정치권에 많이 들어왔는데, 선배로서 386정치인들을 평가하신다면.



“그 사람들도 험한 시절을 살았습니다. 학창 시절 동서 냉전체제가 깨지는 것을 경험하고, 젊은 시절 IMF 경제위기도 체험한 세대죠. 그래서 앞으로 그 세대에서 나라를 짊어질 좋은 재목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기에 386세대는 나름대로 공통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은 87년 직선제를 이끌어냈잖아요. 그래서 뭔가 성취했다는 뿌듯함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더라구요.

386세대는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경험한 세대이기도 해요.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는 거나, 소련 연방이 붕괴하는…. 그렇다 보니 자기가 가졌던 사회주의적 신념이랄까 이런 것들이 몰락하는 것을 보면서 ‘편의주의적 세계관’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강한 쪽에 더 이끌리고 강한 편에 서서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으려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그 사람들의 투쟁이 기나긴 인고의 세월은 아니었잖아요. 짧은 시기에 어려움을 겪고 스타가 된 거죠. 투자는 적게 하고 소득은 많은 것 같은….”

―그건 386세대를 좀 폄훼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폄훼하는 것이 아닙니다. 386세대에게는 긍정적인 부분이 많아요. 앞으로 그들 가운데서 좋은 지도자가 많이 나올 겁니다. 다만 너무 편안하게 큰 흐름에 얹혀가려는 것을 경계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최근 386 정치인에 대한 여론이 나빠진 데는 도덕성 부분이 컸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광주에서 술판 사건이 있었고….

“학생운동 했던 사람들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도 젊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나는 그 점은 관대하게 봐주고 싶어요.”

흔히 ‘차세대 리더십‘을 얘기할 때 이부영 부총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내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리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부총재 자신도 인터뷰 초반에 “경제력이나 세력에서 그런 자격을 갖췄다고 보지 않는다”는 말로 대선 국면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시사했다. 그가 꿈꾸는 역할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킹메이커’쯤 될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가 ‘킹’으로 점찍은 사람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아닐까 한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런 느낌은 더욱 확실해졌다.

―21세기를 이끌어갈 대한민국 대통령은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애국주의를 마음에 담고 ‘열린 세상, 열린 세계화’ 이런 것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리더십이라고 봐요. 우리 역사에서 인물을 찾는다면 삼학사보다는 최명길, 그리고 서희 장군 같은 분을 탐구해야 할 겁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 후보로 결정된 거나 다름 없다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2002년이 가까워지면 계속해서 새로운 대안이 나타날 것입니다. 물론 한나라당 안에서 제일 유리한 주자는 이회창 총재죠.”

―이부총재는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비판하면서 통합적 리더십을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그런 노력이 먹혀들지 않을 때는 이회창 총재를 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지금 상황에 내가 밀고 안 밀고 하는 문제를 비중있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분하고 개인적으로 얘기해보면 생각이 많이 열려 있어요. 이총재의 생각이 열려 있는 걸 내가 알기 때문에 단념을 못하는 겁니다. 설득하고 비판하고 어떤 때는 공개비판을 하고 협박도 해야겠죠.”

민주당 장성민 의원은 1월 말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구도와 관련,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이부영, 박근혜(朴槿惠), 최병렬(崔秉烈) 부총재와 김덕룡(金德龍) 의원이 합종연횡을 통해 ‘보·혁연합’을 시도할 경우 상당한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와 관련, 이부총재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 내부 문제를 민주당 의원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야권분열을 촉발시키려는 음모라는 것이다.

봄 정국, 큰 변화 온다

―한나라당 대권주자 중 이부총재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은 6·3세대인 김덕룡 의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선 국면에서 김의원과 연대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김의원도 생각이 복잡한 것 같아요. 글쎄요. 요즘은 김의원이 나하고 연대할 생각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신동아’ 2월호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정·부통령제 개헌을 전제로 ‘부통령으로 누가 적합하냐’는 질문에 박근혜 부총재라고 답한 의견이 가장 많았습니다. 대권주자로서 박부총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같은 당에 속해 있는 사람에 대해 좋다 나쁘다 얘기하는 건 어렵고. 박 부총재도 지천명의 나이를 맞았으니까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겠죠. 다만 나는 부모님 쪽에 너무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봐요. 자기의 길을 자기가 만들어가려고 노력해야죠.”

―민주당 대권주자 가운데 김근태 최고위원은 이부총재와 남다른 인연이 있습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하면서 갈등도 많이 겪었고…. 만일 김최고위원이 대권주자로 부각돼 ‘민주화 세력이 모이자’는 제안을 한다면, 이부총재도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내가 한나라당에 남아 있으면서 관심을 갖기는 어렵지 않겠어요? 한나라당 사람이 아니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여기 있으면서 관심을 가지라고 하면,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말이 안 되는 것 아니에요?”

―결국 이부총재의 구상은 이회창 총재를 통합적 리더십으로 만들어서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그것이 정답이죠.”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후원회에 참석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그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인터뷰 중간에 ‘두고 보세요’라는 말을 수차례 되풀이하셨습니다. 앞으로 정국에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 보십니까?

이부총재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당선이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 끼칠 후유증을 설명한 뒤 국내정치 쪽으로 옮겨왔다.

“부시가 당선된 날 김대통령은 강공책을 결정한 것 같아요. 그런데 과연 ‘강한 정부’가 3~5월의 거친 파도를 넘을 수 있을까? 나는 한빛은행 재판을 유심히 봤어요. 그건 현 정부의 도덕성에 대해 법원이 던진 메시지라고 봅니다. 법원에 대한 인사가 진행되는 시점에 박지원 전장관을 의심할 만한 판결문이 나왔다니까. 이건 대통령을 재판한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건 올봄쯤 정국이 파열음을 내고 큰 일이 벌어질 거라는 전조나 다름없어요.”

80년대부터 진보진영 사람들이 이부영 부총재를 얘기할 때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이부영 부총재는 바른 말 많이 하고 깨끗한데,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쓴소리’가 그것이다. 한 예로 그는 87년 이후 치러진 세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매번 다른 사람을 밀었다. 87년엔 YS를 지지하는 ‘후단’ 그룹이었고, 92년엔 ‘범민주단일후보’인 DJ의 당선을 위해 뛰었다. 또한 97년엔 ‘DJP 공조와 내각제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이회창 후보 진영에 가담했다.

30년을 끌어온 ‘3김정치’가 막장을 향해 달리고, 여야 소장파 의원들이 헌정 사상 초유의 ‘쿠데타’를 시도하고 있는 지금, 이부총재는 또 다른 의미의 ‘결단’을 예고했다. 이제 그의 ‘행동’을 지켜볼 시점이다.



신동아 200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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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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