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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카투사 50년

꿈도 영어로 꾸는 엘리트 병사들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꿈도 영어로 꾸는 엘리트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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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 군복에 한국군 계급장을 달고 미군과 함께 일하는 병사. 세계에 유례가 없는 카투사(KATUSA)가 창설 반세기를 넘어섰다. 그들은 누구인가.
한·미 정상회담을 몇시간 앞둔 3월7일 아침 워싱턴.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방미중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조찬을 함께 하기 위해 숙소인 영빈관으로 찾아왔다. 김대통령은 파월 장관을 반갑게 맞으며 “저서에서 카투사를 높이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건넸다. 왕년의 무장(武將)답게 우방국 대통령 앞에서 깍듯한 몸가짐으로 예의를 갖추던 파월 장관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파월 장관은 육군 중령이던 1973년 9월부터 1년 동안 한국에 파견돼 동두천 미 2사단 캠프 케이시에서 대대장을 지냈다. 그는 97년에 펴낸 자서전 ‘My American Journey’에서 한 장(章)을 몽땅 할애해 그 시절을 회고했는데, 그중에는 당시 이 캠프에서 미군과 함께 근무하던 카투사 병사들에 대해 기술한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에게는 카투사라는 군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언제까지라도 달릴 수 있는 병사들이었다. 우리 부대들은 항상 병력이 부족했다. 내 대대는 700명 정원이었는데 500명 이상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이 부족 병력을 한국군으로 채웠다… 카투사들은 내가 지휘해본 부대 중 가장 훌륭한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절대 술 취한 채 나타나지 않았고 사라지는 일도 없었다. 그들은 지칠 줄 몰랐고 군기가 있었으며 무엇이든 빨리 배웠다.”

그 무렵 미군 병사들의 수준은 ‘세계 최강 군대’라는 명성을 무색케 하는 형편이었다. 베트남전쟁의 끝자락이던 당시는 미군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옮겨가던 시기여서 한국에 파견된 병사들도 대부분 징집병이었다. 상당수 병사가 읽고 쓰기가 서툴고 수학능력이 낮은 ‘범주Ⅳ’에 속했다.

이들은 군 복무 자체가 어려운 ‘범주Ⅴ’보다는 한 단계 위였지만, 한 마디로 ‘인생의 낙오자들’이었다는 게 파월 장관의 회고다. 지원병으로만 구성된 요즘은 약 4%의 병사가 ‘범주Ⅳ’에 들지만, 당시엔 그 비율이 50%에 가까웠다고 한다. 군기 확립은 언감생심, 마약과 싸움질, 인종문제, 풍기문란, 빈번한 탈영을 단속하기에도 벅찬 노릇이었다.

파월의 속마음

그런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지휘관으로선 늘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카투사들에게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카투사를 시험이나 영어점수로 선발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신체검사만 합격하면 카투사가 될 수 있었다. 학력만 놓고 보면 미군보다 나을 게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너나없이 먹고 살기 어려웠던 그 시절, 무엇이든 풍족한 미군 부대에서 군 복무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특혜였다. 미군 부대는 당시 한국군에 만연했던 구타와 기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군에서 미군 부대로 오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고, 카투사는 그런 경쟁을 거쳐 선발된 병사들이었다. 의사소통에는 좀 어려움이 있지만 그렇게 빠릿빠릿한 병사들이 ‘미군 병사가 동두천에서 하룻밤에 맥주 마시며 써버릴 수 있는 액수보다 적은 3달러를 월급으로 받을 뿐’이었으니(그 3달러조차 한국정부에서 지급했다) 파월 중령은 그때 벌써 아웃소싱의 이점을 체험했던 셈이다.

더욱이 미군과 카투사 간에 존재하는 문화차이는 군대의 효율을 높이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파월 중령은 한국군의 문화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가능케 하는 신속한 ‘시정(是正) 효과’ 때문에 이를 이용한 측면이 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드물게 카투사가 문제를 일으키면 그의 한국군 하사관을 찾아가면 됐다. ‘특무상사, 김이병이 명령을 잘 안 듣습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말 안 듣는 이병은 한국군으로 돌려보내졌다. 김이병이 구제될 만한 경우에는 특무상사와 김이병이 막사 뒤로 사라졌다. 그곳에서 김이병은 그의 잘못을 깨닫게 돼 있었다. 만일 미군 병사가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그는 변호사나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썼을지도 모른다. 자유와 질서, 개인의 권리와 단체행동 사이의 갈등에서 서로 다른 거래조건을 제시하는 상이한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고려할 때, 훨씬 덜 깔끔하고 상관에게 불편하긴 해도 나는 우리 방식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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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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