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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지령 500호 기념 특집

‘나와 신동아’

‘나와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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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젊은이들의 희망이었던 신동아 - 김동길
  • ● 장편연작시 ‘애린’ 연재 전후 - 김지하
  • ● 군사정권과의 아슬아슬한 곡예 - 노재봉
  • ● 내 생애 가장 보람찼던 편집장 시절 - 손세일
  • ● 폭발적 반응 불러일으킨 DJ·YS 기사 - 이경재
  • ● 아버지가 선물한 신동아 딸에게 사줄 터 - 최열
  • ● 비디오형 인터뷰로 보낸 그 5년 - 최일남
매우 어려운 세월이었다. 10·26 사태가 벌어지고 유신체제의 왕좌에 앉았던 ‘절대군주’가 졸지에 세상을 떠나 어수선했지만 그래도 민주화의 일선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서울의 봄’이 올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프라하의 봄’이 왔던 것처럼 서울에도 봄은 온다는 막연한 기대가 없지 않았다.

70년대, 80년대엔 ‘동아일보’가 의식이 살아 있는 젊은이들의 좋은 친구였고 희망이었다. 4·19의 푸른 꿈을 무참하게 밟아버린 것은 박정희 장군의 군사 쿠데타였고 10·26의 아롱진 꿈을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은 전씨, 노씨가 이끈 신군부였다.

군사독재하의 ‘동아’는 민중에겐 희망의 등대였고 믿을 만한 길잡이기도 했다. ‘신동아’ ‘여성동아’는 당시 동아일보의 오른팔 왼팔이었다.

당국의 감시와 탄압이 신동아에 집중되면서 의식이 뚜렷하고 젊은 기자들이 ‘여성동아’로 옮기기도 해 여성지에 대단한 글들이 실리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 신문이나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 날마다 벌어지는 희한한 시대였다.

박정희 장군이 대통령이던 시절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여권이 발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해외여행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전두환 장군이 제5공화국을 개설하고 이범석 형이 청와대 비서실장, 외무부장관 등의 요직을 거치면서 초기에는 추상 같던 전두환 정권에도 다소 느슨한 면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여권도 만들고 여행도 할 수 있게 돼 십수년 만에 뉴욕, 시카고, LA 등지를 둘러보았다. 아마도 그런 와중에 ‘신동아’에 83년 8월부터 ‘떠돌며, 생각하며’를 연재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담당 기자가 누구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당시의 동아 기자들은 모두가 군사정권에 대한 불만이 많은 터여서 기자의 마음이 내 마음이었고 내 마음이 기자의 마음이었다. 검열 체제가 얼마나 완벽했던지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글은 삭제되기가 일쑤였다. 요즘 기자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모두 의아스럽게 여길지도 모른다.

함석헌 선생을 모시고 장준하씨, 천관우씨, 이태영씨 등이 ‘씨의 소리’란 잡지를 하던 때의 일이다. 당시엔 중앙정보부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절대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서 잡지의 글 한 줄도 그 사람들의 동의가 있어야만 활자화 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잡지에 실릴 글에 “정보부의 이런 처사는 참기 어렵다”는 구절이 있었다. 언쟁이 벌어졌다. 그 쪽에서 내놓은 타협이 이런 것이었다. “정보부는 곤란하니 정 그렇다면 ‘보’자 하나는 빼주시오.” 그래서 ‘정보부’가 ‘정부’가 돼 나온 적이 있었다. 그들은 정보부가 정부보다 더 크고 소중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가. 어쨌든 안기부건 정보부건 그런 일을 맡은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그 수준이었으니 신동아의 고민도 어지간했을 것이다.

필자 마음이 기자 마음

그때는 기자들과 승강이를 하는 필자가 없었다. 요새는 잡지에 글을 쓰는 일이 아주 드물어 실정을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엔 기자가 필자를 동정하고 필자가 기자의 신분을 염려해주는 그런 분위기였다.

내가 신동아에 ‘떠돌며, 생각하며’를 기고하던 시절엔 의식 있는 모든 한국인에겐 ‘공동의 적’이 이었다. 그 ‘적’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군사독재’라는 이름의 적이었다. 그런데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돼 이른바 ‘국민의 정부’를 출범시킨 뒤로는 ‘적’이 없어졌다. 김대통령은 이제 정당과 이념을 초월해 인류애의 상징이 된 것일까. 그래서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 것일까.

요새 신문이나 잡지를 하는 사람들은 아마 맥이 빠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적이라고 하면 다소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정신적 작업에는 적이라고 부를 만한 투쟁의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날 ‘민주주의 적’이 과연 누구인가. 국민의 정부에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인물들이 대거 등용되는 것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국무총리, 국회의장, 당의 총재권한 대행, 대표도 모두 군사정권 시절의 인물들인데 앞으로 이 나라를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을 고차원의 화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원칙을 내동댕이친 타협은 타협이 아니라 변절이다. 오히려 신동아에 글을 쓰던 그 시절이 그립다. 더욱이 지난해 6월13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15일 공동성명이 발표된 뒤로는 정말 뭐가 뭔지 나는 모르겠다. 현정권이 군사정권의 거물들은 모두 높은 자리에 앉혔으니 군사독재가 정당화됐고 미전향 장기수와 복역중이던 간첩을 다 풀어주었으니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다 받아들이겠다는 얘기로 풀이되는데, 그렇다면 1980년대 젊은이들이 추구했던 자유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설 자리가 없지 않은가.

통일이 되기 전까진 자유민주주의로 기틀을 잡아야 한다. 대외적으로, 또 대내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에 따라 국시의 제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통일이 실현될 수 있다. 군사독재와 공산독재가 원료의 대부분인데 그 속에 자유민주주의를 양념처럼 조금 집어넣으면 그 국이 무슨 맛이 되겠는가.

한번 생각해보라. 글 한 줄 때문에 정보부에 붙들려 가서 매맞고 새우잠 자고 그리고 풀려 나와서도 또다시 그 짓을 되풀이하던 그 시절의 신동아 기자들이여. 내게 시간과 여유가 생기면 다시 떠돌고 싶다. 다시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체험을 ‘떠돌며, 생각하며’라고 이름지어 다시 신동아에 연재하고 싶다. 그 시절을 회고하며 영국시인 예이츠의 시 한 수를 적어 놓고자 한다.

비록 잎사귀는 무성하나

뿌리는 오직 하나

나의 청춘의 허위 많던 시절

나 잎사귀와 꽃들을

햇볕에 흔들며 자랑하였거늘

나 이제 시들어 진리가 될 건가

끝 줄 한마디 “나 이제 시들어 진리가 될 건가.” 나도 이젠 늙었다. 나도 주희(朱熹)와 함께 탄식한다. “나 이제 늙었으니 이 누구의 허물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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